장준하씨 死因 “예단은 금물”
  • 문정우 기자 ()
  • 승인 2006.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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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ㆍ《월간조선》공방 속 유족 진상규명 나서


 sbs 미스테리 다큐멘터리〈그것이 알고 싶다〉는 지난 3월14일과 28일 두차례에 걸쳐 재야 인사 고 장준하씨의 사인을 추적하는 프로그램을 내보냈다. 〈그것이 알고 싶다〉제작팀은 두번째 방영된 ‘거사와 암살?’편에서 “이제 18년 전에 일어났던 이 사건은 단순한 변사 사건도 아니고, 더이상 의문사도 아닙니다. 명백한 타살입니다”라고 결론을 맺었다.

 그러나 《월간조선》5월호는 최근 〈sbs의 위험천만한 오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그것이 알고 싶다〉제작팀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월간조선》은 이 기사에서 “sbs 제작진, 목격자 김용환, 당시 담당 검사, 문제의 군 법무관 출신 변호사 등 관련자들을 두루 만나본 뒤 추락사를 뒤엎을 만한 증거는 하나도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그런가 하면 민주당 ‘장준하 선생 사인규명 조사위원회’(위원장 한광옥 최고의원)는 재난 5월1일 중간 활동보고서에서 《월간조선》의 기사와는 정반대되는 내용을 발표했다. 민주당은 이 보고서에서 “장준하씨의 사인은 중앙부에 흠이 있는 지름 2cm짜리 인공적인 물체를 가지고 직각으로 가격하여 생긴 후두부 함몰상이며, 따라서 단순 실족사가 아니라 타살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민주당 조사위원회는 또 장준하씨의 죽음에 모두 21가지 의문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관계자는 같은데 결론은 따로따로

 두달도 안되는 사이에 공신력 있는 언론 기관과 정당에서 같은 사건에 대해 전혀 다른 결론을 내리고 있는7 것이다. 더구나 타살로 보고 있는 sbs와 민주당 조사위, 그리고 실족사편에 서 있는 듯한 《월간조선》이 모두 단정적인 화법을 구사하고 있어 보는 이들을 더욱 혼란스럽게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취재 과정이나 조사발표 보고서에 등장하는 사건 관계자들이 서로 다른 것도 아니다. 대개 비슷한 면면의 인물들로부터 얘기를 들어보고 내린 결론이다. 그런데도 양측이 내린 결론이 이같이 딴판이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각자가 귀를 기울인 대목이 달랐기 때문이다.

 장준하씨 사건은 매우 복잡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단순하다. 75년 8월17일 아침 당시 유신 치하에서 반독재 투쟁의 선봉에 섰던 장준하씨는 호림산악회 회원 50여명과 경기도 포천에 있는 약사봉으로 산행을 했다. 오전 11시30분께 일행이 약사봉에 도착해 여장을 풀고 있는 사이에 장준하씨는 정상을 향해 올라갔고 그로부터 약 2시간 뒤에 벼랑 아래에서 시체로 발견됐다.

 일행에게 사고 소식을 알린 것은 김용환씨였다. 김씨는 67년 장준하씨가 옥중 출마했을 때부터 지역구인 서울 동대문구에서 지구당 일을 돌봤던 사람이다. 김씨는 장씨가 자기와 함께 정상에서 내려오다 발을 헛디뎌 추락했다고 증언했다. 경찰이나 검찰은 김씨의 주장을 사실로 받아들여 단순사고사로 처리했다.

 그런데 이번에 장준하 사인 논쟁의 불을 당긴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는 장준하씨의 죽음과 관련해 세가지 새로운 사실을 밝혀냈다. 첫째는 그동안 행적이 묘연했던 김용환씨의 신원과 소재를 알아낸 것이다(방송에서는 신원을 밝히지 않았다). 둘째는 당시 함석헌씨와 유족들의 부탁으로 장준하씨를 검안했던 의사인 조철구씨(민주당 인천 서구위원장ㆍ구세의원)를 찾아내 증언을 들은 것이다. 셋째는 군 법무관 출신 변호사 이근일씨로부터 자기가 장준하씨 사건에 개입했다는 고백을 이끌어낸 것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취재팀은 주로 조철구씨와 이근일씨의 증언을 토대로 타살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됐다.

 《월간조선》이 〈그것이 알고 싶다〉보도를 오보라고 몰아붙인 것은 위의 세가지 사실을 보도하는 방식과 내용의 신빙성에 문제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월간조선》은 우선 목격자인 김용환씨가 고향인 충남에서 18년 간이나 고교 교사로 재직해왔음을 sbs가 취재과정에서 알았으면서도 고의로 신원을 밝히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즉 신원이 불분명한 사람으로 처리해 시청자가 ‘뭔가 있구나’ 하는 느낌을 갖도록 유도했다는 것이다.

 또 조철구씨가 민주당 지구당위원장이란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했다. 《월간조선》은 〈그것이 알고 싶다〉취재팀이 조씨의 신원을 밝히지 않은 것은 “증언의 신뢰도가 떨어진다고 생각한 때문이 아니었겠는가”라고 꼬집으며 “조씨는 자신의 검안 소견에 대해서는 신중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월간조선》은 또 〈그것이 알고 싶다〉가 타살이라며 증거로 제시한 법무관 출신 변호사 이근일씨의 증언에도 많은 허점이 있다고 밝혔다. 75년 장준하씨 사고 당시 이씨는 강원도 원통에서 법무관으로 있었기 때문에 사건에 개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월간조선》은 이씨가 〈그것이 알고 싶다〉프로그램에서 진실을 알고 있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은 단지 허세를 부린 것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고 밝혔다.

 《월간조선》은 “sbs가 타살이라고 볼 결정적인 증언이라고 소개한 주장은 거짓말로 밝혀진 반면 김용환씨(실족사를 주장하는)의 진술은 제3자에 의해 사실임을 확인됐고 인간 대 인간으로 부딪쳤을 때도 공감할 수 있었다”고 결론을 맺었다. 결국 현재로서는 “누구도 실족사 추정을 뒤엎을 수 없고, 따라서 김용환씨는 결백하다”라는 것이다.

 

“유골 상태 양호하면 사인 규명 가능”

 《월간조선》의 지적 가운데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기는 하다. 특히 〈그것이 알고 싶다〉취재팀이 김용환씨나 조철구씨의 신원을 불투명하게 처리한 것은 상업주의 발상이었다는 비난을 들을 만도 하다. 하지만 그 때문에 믿을 수 있는 것이 김용환씨의 진술뿐이라고 한다면 문제는 다르다.

 18년 만에 처음으로 검안 소견을 공개한 조철구씨의 말은 이렇다.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될 수 있는 것은 검안의의 소견뿐이다. 의사의 소견을 증거로 받아들일 수 없다면 도대체 무엇을 증거로 받아들이겠다는 것인가. 나는 민주당 지구당위원장이기 이전에 전문의이다. 김용환씨가 유일한 목격자라고 하는데 이것은 증거가 되지 못한다. 김씨가 장선생과 같이 있었다는 것을 누가 증명할 수 있는가.”

 조철구씨는 “의사는 누구나 검안 소견을 말할 때 신중을 기한다. 실족사다, 타살이다하고 단언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장선생의 사인이 실족사가 아니었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애기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근일씨의 진술과 관련해서도 《월간조선》의 설명만으로는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월간조선》의 기사대로라면 이씨는 《월간조선》기자가 처음에 찾아갔을 때는〈그것이 알고 싶다〉에 보도된 인터뷰 내용이 장준하씨 사건과는 무관한 잡담이었던 것처럼 얘기했다. 즉 74년 긴급조치나 민청학련 사건 때의 암담했던 심경을 얘기했는데 그것을 마치 sbs가 장준하씨 사건을 얘기한 것처럼 보도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월간조선》기자가 sbs에 가서 녹화 테이프를 통해 그가 인터뷰할 당시 분명히 장준하씨 사건에 대해 얘기했음을 확인하고 다시 물어보자 말을 뒤집었다. “그런 말을한 것이 사실이라면 내가 녹화되는 것도 모르고 젊은 사람에게 말이 헤펐던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정말 그 사건과는 관계가 없다. 만약 민청학련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면 내 머리 속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는 알쏭달쏭한 말로 얼버무렸다.

 《월간조선》은 결국 그가 허세를 부린 것 같다고 결론을 내렸지만 그것은 상식적인 추론은 아닌 것 같다. 녹화하는 것을 몰랐다고 해도 방송사의 취재팀이 카메라를 메고 찾아갔는데 장준하씨의 죽음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을 얘기하면서 현직 변호사인 그가 그토록 가볍게 얘기했으리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월간조선》의 보도로 허튼 소리나 하는 사람으로 몰린 이씨는 현재 “《월간조선》도 나의 진의를 왜곡했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더이상 입을 열지 않고 있다.

 현재 장준하씨의 유족들은 필요하다면 장준하씨에 대한 부검을 실시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문국진 박사(법의학)는 “만약 유골 보존상태가 양호하다면 장준하씨의 사인을 밝혀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아무튼 유족들은 “현재로서는 사인에 대한 어떤 예단도 갖지 않고 얽힌 실타래를 하나하나 풀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얘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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