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중심부로 날아간 ‘12ㆍ12’ 포탄
  • 조용준 기자 ()
  • 승인 2006.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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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총리 발언으로 정국 회오리…민주당 ‘정통성’ 들추며 강공, 민자당은 속앓이만

 


 黃寅性 국무총리의 12ㆍ12 사대 관련 발언이 정국에 회오리 바람을 몰고 왔다.

 79년 12월12일 당시 全斗煥 盧泰愚 씨 등 신군부가 주도한 12ㆍ12 사태는, 그것이 군사 쿠데타였느냐 아니면 합법적 행동이었느냐에 대해 6공 초기의 광주특위에서 치열한 논란을 거듭했으나 결국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끝났다. 그러나 金泳三 정부가 출범한 이후 과거의 역사적 사건에 대해 활발한 재조명 작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12ㆍ12 사태 역시 그 성격에 대해 명확한 규정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다.

 특히 《시사저널》에서 12ㆍ12 당시 수경사령관으로 수도권 방위를 책임지고 있던 장태완씨의 ‘반란군’ 진압작전 실패 10시간의 상황을 육필 수기로 단독 보도(제185호 참조)한 뒤 12ㆍ12에 대한 역사적 평가 작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장태완씨와 윤홍기 전 9공수여단장, 김진기 전 육본 헌병감 등 12ㆍ12사태 당시 진압군측 인사들은 반란죄ㆍ이적죄ㆍ지휘권 남용죄 등 군형법상의 주요 조항을 적용해 12ㆍ12 주역들을 법정에 세우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지난 8일 국회 사회분야 대정부 질의에 대한 답변에서 나온 황인성 총리의 발언은 두가지가 문제 되고 있다. 먼저 황총리는 민주당의 朴啓東 의원이 “12ㆍ12 가 군사 쿠데타냐, 합법적인 군사 행동이냐”라고 물은 데 대하여 “12ㆍ12 사태는 국가 위기상황에서 일어난 특수한 군사 행동이며 불법적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고 답했다. 그는 또 李海瓚 의원이 보충질문을 통해 “사태 주역들에게서도 듣지 못한 발언”이라며 발언 취소 및 사과를 요구한 데 대해서도 “12ㆍ12 사태는 국가발전과 민주화에 바람직하지 않을지 모르나 현재 5ㆍ6공으로 모든 국가경영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역사적 조명은 좀더 두고봐야 하며 불법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결국 황총리는 “12ㆍ12 사태가 불법은 아니라고 본다”고 두 번 말한 셈이다.

 

공격 화살, 김대통령쪽에 돌려

 이 날 발언은 황총리 자신의 개인적인 입장 피력이나 순간적인 발언 실수 정도로 끝날 사안이 아니라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황총리의 국회 발언은 행정부의 공식적 입장이 된다. 더구나 8일에 이어 9일의 긴급 기자간담회에서도 황총리는 “적절치 못한 표현으로 오해와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 사과한다”고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끝내 12ㆍ12 사태가 위법이냐 합법이냐에 대해서는 공식 답변을 회피해 파장을 더욱 크게 했다.

 12ㆍ12 사태의 합법성에 대한 논란은 그것이 현정권의 성격 규정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크나 큰 정치적 파문을 몰고올 것으로 예상된다. 황총리 자신한다”고 말한 것은 김영삼 정권도 결국 6공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 것이다. 따라서 만약 12ㆍ12 사태가 불법 쿠데타로 규정된다며, 불법 쿠데타 세력에 의해 만들어졌던 민정당 소속원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민자당과 현정권의 본질이 정통성 시비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다.

 이미 민주당은 김영삼 정권의 정통성에 초점을 맞추고 공격을 시작했다. 민주당의 朴智元 대변인은 8일 긴급 성명에서 “김영삼 정부가 12ㆍ12 쿠데타의 뒤를 잇는 정권이 아니라면 김대통령은 황총리의 발언을 해명하고 즉각 해임시키라”고 요구한 데 이어, 9일의 성명에서도 “12ㆍ12가 쿠데타인가 적법한 행동인가에 대한 김영삼 정권의 역사 인식을 밝히라”고 재차 요구했다. 박대변인은 또 10일 “김영삼 정권은 혈통에 문제가 있다”라고 말했다. 이런 민주당 공세는 새정권이 출범 초에 “6공 2기가 아니라 김영삼 정부라고 불러달라”고 요구한 데서도 알 수 있듯, 김영삼 정권의 ‘취약점’을 노린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현재의 개혁인 5ㆍ6공과 완전한 단절을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의 ‘불완전한’ 개혁임을 강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권 내부 권력 갈등 부를 수도

 민주당의 공격의 화살은 이미 황총리가 아닌 김영삼 대통령을 향하고 있다. 10일 아침의 민주당 최고위원회의는 황총리에 대한 해임권고 결의안을 채택하는 대신, 황총리의 12ㆍ12 사태 관련 ‘망언’에 대한 김대통령의 입장 천명에 초점을 맞추었다.

 許京萬 국회부의장은 이날 회의에서 “토요일만 해도 황총리의 개인 의견으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동안 청와대와 의견이 교환됐을 것이므로 일요일 기자간담회에서의 황총리 발언은 기대통령과 같은 견해라고 볼 수 있다. 김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12ㆍ12를 군사 쿠데타라고 규정했지만, 대통령이 되고 난 지금에는 그 견해가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김대통령의 입장 표명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민주당이 김대통령과 현정권에 대한 정통성 공격으로 나설 것 같지는 않다. 일단 대여 공세의 기틀을 잡기는 했지만 현정권의 개혁에 대한 압도적인 국민적 지지를 생각할 때 이 문제를 너무 길게 끌고 갈 경우 오히려 역공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현정권에 대한 흠집내기와 함께 야당의 위상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성과를 거두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현단계에서 민주당 공세의 초점은 대략 세가지로 모아진다. 첫째, 그동안 개혁 바람에 빼앗겼던 정국 주도권을 회복하는 것이다. 민주당은 金種泌 대표나 황총리처럼 과거 군사독재 정권의 양지에서 계속 자리를 잡고 있던 사람들이 개혁 정국을 주도하는 민자당, 그것도 지도부에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새 정부의 이념에 어울리지도 못하는 수구적 발상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역설적 현상을 공격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이번 사태 해결의 책임을 김대통령에게 넘기고 그 결과에 따라 두고두고 12ㆍ12 문제를 활용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런 민주당 방침은 10일 최고위원회의가 성급하게 총리 해임권고결의안을 내지 말고 김대통령의 입장 표명을 기다리자고 결론을 내린 데서도 알 수 있다.

 둘째, 12ㆍ12 사태의 성격을 둘러싼 논란은 여권 내부의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이다. 金元基 최고위원은 이와 관련해 “김대통령이 12ㆍ12를 불법이라고 한다면 여권 내부에 문제가 생길 것이다”라고 말했다. 민자당 현역 의원의 상당수가 과거 5ㆍ6공의 주축을 이룬 정치 세력이었기 때문에, 12ㆍ12를 부정한다는 것은 곧 민자당내 민정계를 인정하지 못한다는 것과 다름없다. 따라서 12ㆍ12 사태에 대한 성격규정은 여권 내부 권력의 갈등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

 셋째, 김대통령 독주에 대한 제동이다. 민주당의 李基? 대표는 개혁의 주도권을 국회로 끌어들이기 위해 그동안 상당히 공을 들여왔다. 현재처럼 국회가 개혁정국의 들러리나 서서는, 국회를 기반으로 하는 민주당의 존립 공간마저 흔들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대표는 10일 “행정부의 수반이 군사 쿠데타를 합법화하는 발언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를 대상으로 국회를 운영할 수 없다”고 강경론을 비치면서도 “법과 제도에 의한 개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개혁 입법이 앞서야 하고, 개혁 시대에 걸맞는 국회가 되지 못한다면 다른 방식으로 정부에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공격의 포문을 열었다.

 이와 달리 민자당은 뾰족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민자당은 뜻밖에 돌출한 암초를 만나 정국 주도에 상당한 차질을 빚게 되었다. 현정권 최대의 아킬레스건을, 그것도 자기 당 인사인 황총리가 건드렸다는 사실에 대해 매우 당황해 하는 분위기다. 金榮龜 총무는 자기를 도와주어도 시원치 않을 총리가 오히려 원내 전략에 차질을 빚게 하자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민자당의 대응 방침은 한마디로 ‘무대응의 대응’이라고 할 수 있다. 조기 진화를 겨냥한 일요일의 대국민사과문 발표마저 정국을 더욱 경색시키는 결과로 나타나자 아예 입을 다물고 여론이 수그러들기만을 기다리는 입장이다. 민주당 주장을 받아들여 황총리를 경질했다가는 민주당의 정치공세에 밀리는 형국이 될 뿐만 아니라, 12ㆍ12사태가 불법이었음을 인정한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김대통령은 정치적 수세에 몰릴 때마다 항상 뜻밖의 카드로 국면 탈출을 꾀해 왔다. 개혁 정국에 돌출한 ‘12ㆍ12 암초’를 그가 어떻게 돌파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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