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 시비 가려지나
  • 편집국 ()
  • 승인 2006.05.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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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상황 변화 따라 관련자 사법처리 될지 관심

 때 아닌 ‘12?12 성격 규정’ 논의가 잇따르는 가운데 이제 12?12는 ‘본의 아니게’ 법으로 시비가 가려져야 할 운명이 되었다.

“12?12는 군사 쿠테타인가, 아니면 합법적 군사 행동인가.”

파문의 불씨가 된 국회에서의 질문(5월8일 박계동 의원)은 형식상 양자택일을 강요했다. 그러나 위법임을 인정할 경우 그것은 곧 “범법자를 처단하라”는 주장과 함께 위법한 정권과 3당 합당으로 ‘한몸’이 된 현정권의 정통성 시비로까지 이어질 것이 뻔했고, 합법을 주장할 경우 과거 정권과의 다른 점을 내세우는 현정권의 논리적 모순을 인정하는 꼴이 되기 십상이었다.

그런 점에서 “현재까지는 위법이 아니고 역사가 평가할 문제”라는 황인성 국무총리의 발언과 해명은 적어도 논리적으로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 그동안 12?12 사태 관련자에 대한 사법 처리를 요구한 고발 사례가 많았지만 검찰이 이를 모두 무혐의로 처리하여 현재까지는 법적으로 위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황총리의 답안은 ‘모법 답안’은 아니었다. 또 “하극상에 의한 군사 쿠데타적 사건”이라는 김영삼 대통령의 어정쩡한 성격 규정(5월13일 청와대 대변인)도 정치적으로는 모범 답안이 될 수 있을지언정 논리적으로는 모순을 담고 있는 것이다. 즉 형식 논리상 청와대는 “불법(하극상)이지만 불법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쿠데타적)”라는 견해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야당은 처음부터 현 정권으로부터는 정답을 기대하기 어려운 난해한 질문을 던져 수확을 거둔 셈이다.

 

軍 보관 자료에서 새 증거 나올 수도

 이제 ‘역사적 평가에 위임하자’라는 청와대의 견해에도 불구하고 질문은 사법적인 판단을 요구하는 새로운 국면으로 전개되고 있다. 물론 12?12 사태에 대한 사법적 판단을 요구한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88년의 이른바 5공청산 과정에서 전?현진 대통령을 포함한 12?12 주역들을 대상으로 한 13건의 고발이 있었으나 검찰은 지난해말 이를 모두 무혐의로 불기소 처분한 바 있다. 검찰은 당시 “고발인에 대한 조사 결과 등을 종합해 볼 때 피고 발인에게 형사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판단돼 이같이 처리했다”라고 밝혔다.

따라서 법의 이치대로라면 현재 검찰에 접수된 5건의 고발 또한 같은 결론이 내려질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도 사법 처리 여부에 관심이 쏠리는 까닭은 과거와 달리 △문민 정부의 출범으로 그때와는 다른 시대 상황이라는 점 △사실 관계의 변화나 이를 입증할 새로운 증거가 나올 수 있다는 점 △피해 당사자들의 집단 고소가 제기될 수 있는 상황이라는 점 등 여러 변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시대 상황의 변화라는 논리는 가장 큰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청와대는 이미 “12?12사태 관련자에 대한 법적 제재는 검토하지 않고 있다”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청와대의 입장은 이미 전직 대통령 2명을 포함한 다수가 고발된 이상 법적 제재 여부는 사법부의 영역이지 청와대가 검토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묘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 따라서 여론의 추이나 정치 상황의 변화에 따라 법적 제재가 검토될 수 있을지 또는 모든 것이 전적으로 검찰의 판단에 맡겨질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시대 상황의 변화는 사실 관계의 변화나 새로운 증거를 낳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사법처리를 불가피하게 만들 수도 있다. 이미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한 재평가에 따라 새로운 증언과 관련 자료가 발굴되고 있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5?18의 경우 미흡한 수준일망정 광주 청문회를 거쳐 어느 정도 밝혀졌는데도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12?12의 경우 정부 차원의 어떤 여과 과정도 거친 바 없다. 야당이 ‘12?12 청문회’를 열자고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좀더 현실성 있는 변화는 군 내부에서 비롯될 수 있다. 최근 권영해 국방부장관이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검찰에 고발당해 검찰이 당시 사건 관련 자료를 요구하면 즉시 협조할 수 있도록 대비하라”고 지시한 것(5월18일 <동아일보>)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해 국방부 공보관실에서는 “장관 지시는 사실이나 자체 진상조사 계획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다”라는 애매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12?12 관련 고발 사건을 배당받은 서울지검 공안1부(조준웅 부장검사)에서도 당시 작전일지 등사건 관련 자료를 요청한 바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5?18 청문회 때와 달리 군에서 자체 보관중인 자료를 적극 수집할 경우 새로운 증거 자료가 드러날 가능성은 크다.

 12?12로 인한 피해 당사자들의 고소는 검찰의 사법 처리 방식과 관련해 주목되는 변수이다.  장태완 당시 수경 사령관은 ≪시사저널≫(제185호)과의 인터뷰에서 12?12 피해 당사자로서는 처음으로 사법적 대응 의사를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장태완씨는 현재 개별 고소보다 집단 고소를 원하고 있고 또 사법 대응보다는 문민정부의 ‘선 진상 규명’을 바라고 있어 고소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다.

 

내린죄보다는 반란죄 적용될 가능성

 12?12 문제와 관련해 현재 가장 곤혹스러워하는 곳은 수사 주체인 검찰이다. 검찰은 “원칙에 따라 엄중 수사해 법대로 처리하겠다”(5월14일 김두희 법무부장관)라는 원칙론을 제시할 뿐 구체적인 수사 방향을 세우지는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건 주임 검사 격인 공안1부 조준웅 부장검사는 “아직 수건의 고발 사건이 취합조차 되지 않은 상태이다. 5월 하순부터나 법률 검토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검찰로서는 부담이 너무 큰 정치 사건이기에 수사 지침이 세워져야 수사가 개시될 수 있을 것이다”라는 것이 법조계의 일반적 시각이다.

 통상적인 절차대로라면 고소?고발 사건의 경우 고소 ·고발인 조사, 피고소?고발인 소환 조사, 기소 여부 결정 수순을 밟게 된다. 어떤 수순을 밟건 사건 처리 과정에서 사법 차원의 성격 규정이 자연스럽게 이뤄 질 것으로 보인다. 우선 고소의 경우 검찰이 무혐의(합법)로 불기소 처분하거나 무기한 또는 공소시효가 지나도록 처리하지 않으면 공권력 불행사로 인한 헌법소의 대상이 되므로 12 ·12는 헌법재판소에서 시비가 가려질 수도 있다. 검찰이 기소유예 이상의 조처를 취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불법성이 인정되는 셈이다.

 사법 처리를 전제로 할 때 법조계에서 거론되는 죄목은 형법상의 내란죄(제87조) 및 내란 목적의 살인죄(제88조)와 군형법상의 반란죄(제5조) 등이다. 이중 내란죄나 반란죄는 모두 법정 최고형이 사형(수괴, 모의 참여?지휘자, 중요 임무 종사자 등)이므로 공소시효가 15년이다. 따라서 혐의가 인정되면 내년 12월까지 처벌이 가능하다. 그러나 반란죄와 달리 내란죄의 경우에는 법조계 내에서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검찰 관계자들은 대체로 내란죄(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폭동한 자)보다는 반란죄(작당하여 병기를 휴대하고 반란한 자) 쪽에 가능성을 두고 있다. 형법은 제91조에서 ‘국헌을 문란할 목적’을 “헌법또는 법률에 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헌법 또는 법률의 기능을 소멸시키는 것”이나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 기관을 강압에 의하여 전복 또는 그 권리 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번에 고발된 당시 신군부 주역들은 12?12 이후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에 대해 내란방조죄로 무기징역을 구형했으며 5?17 이후 김대중씨에게는 내란음모죄로 사형을 구형했었다.

 검찰 일부에서는 쿠데타 자체가 초헌법적인 권력 창출 행위임을 들어 12?12 사태의 적용 죄목과 형량을 따지기 전에 이를 형사 처벌 대상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결정이 앞서야 한다는 견해를 내세우고 있다. 이는 곧 검찰이 독자적으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고 통치권자의 정치적 결단이나 국회에서의 정치적 해결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논리이다.

 한편 “형법 교과서에는 ‘성공한 내란죄’라는 것이 없다”라는 논리도 있다. 육군본부 법무참모실의 한 법무관은 “12?12가 쿠데타이고 ‘성공한 쿠데타’임을 전제할 때 내란죄는 실패해야 성립하는 것”이라면서 “군사 법원 검찰부로서는 당시 관련자로서 현역에 있는 군인에 대해 반란죄를 적용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기대하기 어렵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허 영 교수(연세대 ·법학)는 “12?12 사태가 아직 국민의 평가와 승인을 받은 적이 없다는 점에서 성공이냐 실패냐를 판단하기는 이르다”라고 말했다. 즉 지금와서도 계속되는 일련의 진상 규명 과정이 끝난 뒤 비로소 12?12가 성공한 쿠데타인지 아니면 실패한 쿠데타인지가 가려진다는 것이다. 또 허교수는 12?12에 대해서는 ‘단계적 군사 쿠데타’ 이론을 제기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헌법 이론 측면에서 12?12 그 자체는 쿠데타가 아니지만 12?12 이후 5?17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볼 때 12?12는 외국에서도 그 전례를 찾아 볼 수 없는 단계적 쿠데타의 시발점”이라는 것이다.

 정치?대공 분야를 담당하면서 주로 좌익 국사범만 잡아온 공안1부에서 유례없는 쿠데타 사건을 맡아 난생 처음 겪는 우익 국사범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도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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