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정보 공개해야 공직자 비리 막는다
  • 남문희 기자 ()
  • 승인 2006.05.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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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적 정보 거래로 치부... ‘공개법 제정’ 서둘러야

 민자당 의원 재산 공개 파문을 계기로 그동안 몇몇 시민운동 단체와 학계 일부에서 추진해왔던 ‘행정정보공개법’제정 움직임이 크게 활기를 띨 전망이다. 행정정보공개법이란 정부 기관이 정책 결정 과정에서 작성한 각종 공문서를 몇몇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반에게 공개하는 제도이다. 민주주의가 정착된 선진국에서는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이제도를 다양한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국내세어는 지난 91년 청주시의회가 이같은 제도를 조례로 정한 이후 지방의회 차원에서 확산돼 가고 있는 추세이다. 그러나 중앙 부처 차원에서는 올해 안에 시안을 마련하겠다는 계획만 세웠을 뿐이다.

 이번 민자당 의원들의 재산 공개 파문으로 인해 행정정보공개법을 제정팔 필용성은 더욱 높아졌다. 현재 법 제정 운동을 가장 활발하게 펼치고 있는 다체는 ‘경제정의실천연합’이다. 경실련은 정부의 법 초안과는 별도로 초안 작업을 이미 끝내 책자로 펴낼 계획이고, 곧 국회의원과 일반 시미을 상대로 서명 작업을 벌여 의원 입법 형태로라도 법안 제정을 서두르겠다는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YMCA도 올해 사업 가운데 중요 목표를 지방차치제 확립과 정보공개 제도 도입으로 설정하고 적극적인 활동을 펴나갈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국민의 알 권리’가 공개의 근거

 민자당 의원들의 재산 공개 파문 이후 학계의 입장도, 공직자의 부정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우선 지난 81년 제정한 공직자재산 등록법을 개정해야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정부의 행정 관련 공문서를 일반에게 공개하나??? 제도를 통해 정책 결정 단계에서부터 비리와 부정이 개입될 소지를 없애야 한다는 쪽으로 모아지고 있다. 김석준 교수(이화여대.행정학)는 “당장 시급한 것은 공직자윤리법 개정이겠집만 관료 사회의 부정부패를 근본적으로 막기 위해서는 행정정보공개법 제정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강경근 교수(숭실대.법학)는 “정보 공개가 이루어지면 정책을 입안한 공무원에 대한 사후 추궁이 가능해지기 때문에 비리가 발생할 소지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라며 정보공개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방석현 교수(서울대.행정학)도 “공무원들이 정보를 공개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주는 게 필요하긴 하지만 우리나라도 이제는 정보공개법을 제정할 여건이 성숙했다”라고 견해를 밝혔다.

 전문가들은 정보란 민주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두가지 성격을 가진다고 말한다. 하나는 정보화 사회로 이행아면서 정보 자체의 경제적 가치가 커진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이것을 여러 사람이 공휴하지 못하고 독점되었을 때 나타나는 위험한 측면들이다. 그렇게 되면 정보를 독점한 소수가 그렇지 못한 다수를 지배하기가 쉬워지게 되고, 음성적이 정보 거래를 통해 치부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번에 재산 공개를 한 민자당 의원 중 몇몇 인사가 공직에 있을 때 얻은 정보를 악용해 부동산 투기 행위를 한 의혹이 짙게 나타남으로써 이러한 정보 독점의 폐해점을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현재까지 나타난 바에 따르면 공직에서 얻은 정보를 사적인 치부를 위해 활용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의원은 박준규 국회의장돠 임춘원.김문기 의원 그리고 약 20여명에 이르는 고급 내무관료 출신 의원과 일부 군 출신 의원이다. 이 중 박준규 의장은 공화당 3선 의원이던 지난66년 정부가 강남 지역을 개발하기 위해 세운 ‘새 서울 건설계획’이 확정되기도 전에 잠실 일대 하천부지와 밭 등 약 1만2천평을 사들인 뒤 이를 다른 지역 땅과 바꿔치기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임춘원 의원은80년대 이후 국회 재무위원회에 소속돼 있으면서 주로 은행으로 들어오는 부동산 경매 정보를 입수해 이를 헐값에 사들이는 방식으로 재산을 증식해홨다. 그밖에 고위 내무관료 출신과 군 출신 의원들 중 상당수가 정보를 사전에 입수하여 부동산 투기를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사실 정보 독점이 끼치는 폐해는 이번에 새삼스럽게 거론된 것이 아니다. 가까이는 5공화국과 6공화국 시절의 각종 권력형 비리,정경유착 사례 등이 바로 소수가 정보를 독점함으로써 가능했던 일들이다.

 한 예로 지난 92년 11월에  있었던 영종도 신국제공항 건설 공사의 낙찰 과정을 들수 있다. 영종도 신공항 제 1단계 3개 공구 공사에 대한 입찰에서 ㅎ개발과 ㅎ건설은 각각 정부내정가와 9천38원,7백46원밖에 차이가 안나는 금약으로 응찰해 낙찰했다. ㅎ개발과 ㅎ건설이 정보를 사전에 입수하지 않고는 이런 식의 응찰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밖에 수서비리 사건,정보사터 사기 사건,제2 이동총신 사건 등 ‘6공화국 말기 의혹 사건’이라고 불리는 권력형 비리들이 대체로 이런식이다.

전화번호부도 ‘3급 비밀’

 우리의 경우 정부에 의한 각종 정보 통제 및 독점 현상은 남북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30여년간 군사독재 정권을 거치면서 국민의 알 권리가 봉쇄되고 집권층에 의한 권위주의적 통치가 이루어져 온 데 원인디 있다 할 것이다.실제로 법적.제도적 측면에서 국민의 알 권리는 상당히 위축돼 있는 상태이다. 우선 정보 공개를 명문화한 일반법이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 알 권리에 대한 규정은 명문 규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지난 89년 헌법재판소에서 헌법제 21조 언론 출판의 자유를 확대해석함으로써 비로소 근거를 얻게 되었다. 이처럼 정보 공개 및 알 권리에 대한 규정이 취약한 데 비해 정보 비공개에 대한 규정들은 상당히 발달해 있다.

 정보 통제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규정들은 군사기밀보호법에 의한 군관련 정보 통제,사무관리규정,보안업무규정 등 공문서 관리 규정들에 의한 행정 관련 정보 통제이다. 대체로 공개해서는 안되는 범주에 속하는 정보는, 공개되었을 경우 국가안보에 영향을 주는 내용,새어나갈 경우 사회경제 생활에 혼란을 주는 내용, 개인의 명예난 사생활과 관련한 정보, 기업의 영업비밀 등이다. 이들 정보는 등급에 따라 1급.2급.3급 비밀로 구분하고, 비밀의 정도는 약하나 공개하기 곤란한 정보는 대외비로 처리한다.

 문제는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기준이 모호하고, 말단 실무자가 공개 여부를 판단하는 주체가 되어 있기 때문에 비밀 문서가 양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반 실무자는 실무자대로 안기부의 보안감사에 걸리지 않기 위해 웬만한 문서는 거의 비밀로 분류해버리는 경향이 많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어처구니 없는 사례도 발생한다. 5공화국 초기에 대법원에서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도 적을 이롭게 할 수 있는 내용은 국가기밀에 속한다”라고 판결한 적이 있었는데, 이에 따라 한때는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전화번호부를 3급 비밀 자료로 분류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

 비밀 문서나 대외비 문서만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일반 문서의 경우도 ‘공개하라는 명문 규정이 없기 때문에’ 공개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다음의 사례는 일반 국민이 행정 문서를 열람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경기도 이천군에 사는 이재숙씨는 지난 89년 3월22일~12월10일 약 9개월간 몇가지 토지관련 문서를 보기 위해 이천 군청과 실랑이를 벌여야 했다.그가 보고자 했던  서류들은 이천군 마장면 표교리 산 18번지 일대의 토지조사부.임야조사서 등 군청 단위에서는 어디나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특별히 공개하지 않을 이유가 있는 문서는 아니었다.

 이씨에게는 이들 문서를 열람하는 일이 매우 중요했다. 마장면 표교리 산 18번지 일대의 임야와 밭 등이 선조 대대로 상속되어온 미등기 재산이라는 부친 이봉열씨의 유언을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끈질긴 열람 신청은 이천 군청의 완강한 거부에 부딫혀 끝내 실현되지 못하고 말았다. 이천 군청은 일부 문서는 내무부에서 불허 방침이 내려졌다는 이유로, 그리고 일부 문서는 문서의 명칭이 잘못돼 있다는 트집을 잡아 문서 공개를 계속 거부했다.

 결국 이 사건은 이씨가 89년 12월 17일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해 승소함으로써 일단락되기는 했지만 일반 국민이 행정 관청의 문서를 열람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새삼 일깨워 준 사례의 하나이다.

 이같은 행정정보 독점 체제에서는 일반 국민이 정부 기관이 소유하고 있는 정보에 접근한다는 것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상태에서 정부가 정보를 독점하는 것은 권력형 비리나 부정부패 같은 공직사회 내부에서 발생하는 문제점뿐 아니라 지역 주민의 생명과 재산이 달려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도 소수의 정책 결정자들이 자의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하게 할 수가 있다. 특히 산업 사회가 고도화하면서 나타나는 각종 공해. 환경. 소비자 보호 문제 등이 정보 독점과 관련해 새로이 중요한 사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핵폐기물 처리장 설치를 둘러싸고 과학기술처와 대상 지역 주민들 간에 벌어지고 있는 숨바꼴질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지난 90년 11월 주민들과 사전 합의 없이 안면도에 핵폐기물 처리장을 설치하려다 낭패를 본 과학기술처는 91년 12월24일 후보지역 여섯 곳을 발표하고는 후보지역 확정은 계속 미뤄오고 있다. 내면적으로는 일부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음성적을 회유하고 있기도 해 해당 지역 주민들이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공해추방운동연합의 한 관계자는 “과기처의 전략은 주민들이 지쳐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정정당당하게 입장을 밝히고 공개적으로 토론한다면 해결방안이 나올 수도 있을 텐데 철저한 비밀주의로 일을 하다 보니까 사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라고 비판한다.

미국은 정보 공개천국

 이처럼 우리나라의 정보 공개 수준은 아직도 후진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데 비해, 정보공개법을 시행하고 있는 몇몇 국가는 국민의 알 권리 신장과 이에 따른 정치 참여로 인해 부정부패와 행정부조리를 예방하거나 척결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정보공개법이 가장 잘돼 있다고 하는 미국의 경우, 베트남전쟁과 워터게이트 사건을 거치면서 ‘정보자유법’을 확립낳 이래 ‘일단 최고 결재권자의 결재가 끝나면 그 즉시 모든 문서가 공개되는’ 가정 완전한 정보공개법을 시행하고 있다. 미국 정보자유법의 또다른 특징은 외국인에게도 정보 공개를 허용하고 있다는 점인데, 지난 73년 김대중씨 납치 사건 때 일본의 한 통신사가 이를 이용해 이 사건의 주범이 한국의 중앙정보부였다는 점을 밝혀내기도 했다.

 또 미국 언론들은 레이건 행정부와 환경단체들 사이에 산성비의 유해성에 대한 논란이 일어나자 정보자유법을 이용해 “산성비는 환경에 유해하다”는 정부의 내부 보고서를 입수해 정부를 궁지에 몰아넣기도 했다. 또 챌린저호 발사후 발사할 예정이었던 우주왕복선에 다량의 플루토늄을 탑재했다는 정보를 입수해 발사를 저지하기도 했다.

 일본은 미국처럼 국가 차원의 일반법을 제정하지는 않았으나 각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정보공개 조례를 제정하고 있다.

 지난 92년 12월에 도쿄에 있는 ‘세금을 감시하는 모임’은 1년에 약 3천만엔에 이르는 도쿄 도지사의 접대비 내역을 밝히라고 요구하는 소송을 도쿄지방법원에 제기해 승소하기도 하였다. 이밖에도 ‘교직원의 체벌 보고서’ ‘악덕 상술에 의한 피해실태와 소비자 상당이 맣은 기업 이름’ 그리고 군사기밀 사항 중에서도 ‘핵병기 안전 확보에 관한 미 태평양군사령부 문서’ ‘대잠수함 작전센테에 관한 건물 설계도 및 건축 신청에 관한 문서’ 등 우리나라에서라면 상상할 수조차 없는 정보들이 공개 대상에 들어 있다.

 이처럼 정보공개법은 우리 사회가 더 깨끗한 사회로 나아가는 데 있어 중요한 법적 장치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지만 제정된다고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법안 제정뿐 아니라 실제로 정보가 공개될 수 있도록 강제하는 제도적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또 기존의 국가.사생활.기업 비밀 등과 균형을 맞추어 공개할 범위를 결정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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