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중심의 사회주의로
  • 부다페스트ㆍ김승웅주간대리 ()
  • 승인 1989.1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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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서 ‘프라하의 봄’ 復權ㆍㆍㆍ두브체크 재기여부 관심

지금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전개되고 있는 개혁운동은 한편의 大河드라마다. 특히 지난 68년에 반짝하다가 시들어 버린 ‘프라하의 봄’을 기억하는 40대이상의 유럽인들에게 체코 드라마는 최근의 東ㆍ西獨 충격을 능가하는 드라마가 아닐 수 없다.

 이 드라마는 특히 알렉산더 두브체크라는 영광과 오욕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휴먼 스토리라는 점에서 유럽인들의 큰 관심을 끌고 있다. 68년 봄 당시 40대후반의 매력있는 사나이였던 그는 지금 68세의 노인이 되어 체코 군중 앞에 서 있다.

 웬체슬라스 廣場, 최근의 체코사태 발생후 1주일이 되던 날 두브체크는 칩거해온 브라티슬라바市를 떠나 민주화 현장에 섰다. 광장을 메운 수십만의 군중들은 “두브체크 만세!” “두브체크를 대통령宮으로”라고 외치며 그에게 환호를 보냈다. 단상에 오른 두브체크는 목이 메어 한참을 입을 열지 못하다가 눈자위에 눈물이 맺히는가 싶더니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우리가 표방했던 ‘인간의 얼굴이 지닌 사회주의’는 지금 여러분 젊은 세대의 마음 속에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인간의 얼굴을 지닌 사회주의’란 68년 ‘프라하의 봄’ 당시 그가 제창했던 민주화의 구호.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주의를 표방, 소련과 東歐국가들의 鐵壁에 대항했던 두브체크의 구호는 20년 남짓 한알의 밀알로 간직돼오다 지금 다시 發牙의 순간을 맞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두브체크를 환호하는 군중들은 이미 예전의 그들이 아니다. 그가 연설을 통해 굳이 ‘젊은 세대’를 지칭하는 이유도 그런 데 있는 것 같다.

 두브체크가 앞으로 취할 조치는 체코 민주화의 성패를 가름하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서방언론드릉ㄴ 그가 관심을 두고 있는 방향이 서방쪽이 아니라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노스트(개방)의 본향인 모스크바쪽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고르바초프쪽에서도, 과거 체코공산당서기장의 경력을 지닌 온건노선의 두브체크를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열흘 정도 계속돼온 공산당정부와 시민들의 대치상황은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의 방향으로 굳어져가고 있는 것 같다. 지난 11월26일 80만 군중이 운집한 프라하 중심부 레트나 광장에 정부측을 대표한 아다메치 총리와 두브체크 前공산당 서기장 및 하벨 ‘시민포럼’ 대표가 나란히 참여하여 앞으로의 개혁방향에 대해 연설을 한 점 등이 그같은 상황을 말해준다.


정부측 대표가 시민집회서 연설

 이날 연설에서 아다메치 총리는 “오늘 여기에는 경쟁과 권위 그 어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해 운집한 시민들의 열렬한 박수 갈채를 받았고, 이에 하벨 ‘시민포럼’ 대표는 “이제 대화는 시작되었다”고 선언했다.

 정부측 대표가 시민들의 집회에 참여, 연설을 한 것은 시민들의 민주화 시위가 정당하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하 것을 의미하며, 이는 ‘프라하의 봄’을 가져왔던 두브체크의 ‘인간의 얼굴을 지닌 사회주의’의 정당함을 인정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동안 소련 및 폴란드, 헝가리의 개혁정책에 대해 반대의 입장을 표명해왔던 보수적인 체코 공산당 지도자들의 저항을 물리치고, 현재 東유럽을 휩쓸고 있는 개혁ㆍ개방의 물길을 체코에 흘러들어오도록 하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뭐니뭐니해도 20여년전의 ‘프라하의 봄’을 재현코자 하는 체코 시민들의 불굴의 의지였다고 할 수 있다.

 시민들의 민주화시위가 본격적 단계로 돌입했던 것은 지난 10월28일의 공화국수립 기념일에 2만여명의 시민들이 프라하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시위를 벌이면서부터였다. 최근 동독에서의 시위사태와 동베를린의 국경개바은 체코 시민들의 시위에 자신감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시민들의 시위가 11월17일의 정부당국의 강경진압에도 불구, 더욱 대규모화하자 공산당 지도부내의 강ㆍ온파간의 대립도 치열한 형태로 전개되었다.대결의 양상은 야케스 서기장과 후사크 대통령을 비롯한 강경파 인사들과 재야단체들에 의해 정부내에서 유일하게 손을 잡을 수 있는 인물로 지목됐던 아다메치 총리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지난 23일 보안경찰의 국영텔레비전 방송 점거,체코군부의 ‘사회주의 수호 선언’ 등은 현 체코 사태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강경파들의 움직임이 목전에 다가온 것이 아닌가 하는 긴장감을 자아내기도 했었다.

 이때 강경파들의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긴장이 고조되던 정국을 개혁의 방향으로 유도한 것은 소련정부 및 체코에 주둔하고 있는 소련군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정치개혁에 완고한 입장을 보였던 강경 지도부의 사임과 일련의 가시적인 민주화 조치로 긴장의 파고가 높아져 왔던 체코 사태는 일단 대화와 타협이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신임 공산당 수뇌부가 앞으로 어느 정도의 개혁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계속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권을 잡고 있는 공산당 측의 역량이 문제시되고 있는 지금, 대중 앞에 다시 모습을 나타낸 두브체크의 거취와 시민운동을 주도한 ‘시민포럼’등 재야 단체 지도자들의 앞으로의 동향이 주목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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