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현장을 뛰는 가수 鄭泰春
  • 이성남 기자 ()
  • 승인 1989.12.17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내 노래, 힘의 정서 되찾게 해”

87년 6월 어느 시화전에서 기자는 가수 정태춘을 만나 택시에 동승한 적이 있다. 삼일로 고가도로 위에 다다랐을 때 청계천 일대는 차량과 사람이 뒤엉켜 큰 혼잡을 빚고 있었다. 학생과 시민이 한꺼번에 거리로 몰려나와 시위중이었던 것이다. 그때 옆자리에 있던 그가 갑자기 택시 문을 열고 내리더니 고가도로 위를 달려 시위대 쪽으로 가는 것이었다. 최루가스 속에서 노도같은 군중은 이리저리 흩어졌고 그의 모습도 이내 없어지고 말았다. 6 · 29 선언을 며칠 앞두고 목격한 가수 정태춘의 모습이었다.

그 뒤 청계피복노조를 돕기 위한 1일찻집과 현대중공업 농성장에서, 또 최근에는 전교조 집회장소에서 통기타 대신 북을 치며 노래극 ‘누렁송아지’를 신명나게 불러제끼는 정태춘을 자주 볼 수 있게 되었다. “노동 현장에서 예전의 노래를 불러보면 금방 깨달을 수 있어요. 그것이 얼마나 그들을 왜곡시키는 노래였던가 말이지요. 순수성을 지향하는 노래라고들 말하지만 결국 정태춘이라는 이름을 팔아 문화산업자본을 살찌우는 일에 동참해온 거지요.” 차분한 어조로 말문을 여는 모습이 영락없이 ‘사회과학으로 무장된 이 시대의 비판적 지식인’의 한 전형으로 비친다.

그의 얼굴 어느 구석에서도. “일몰의 고갯길을 넘어가는 고행의 수도승처럼 하늘에 비낀 노을 바라보며” 시인의 마을을 음유하던 흔적이나 “꿈을 꾸는 저녁바다에 갈매기 날아가고 섬마을 아이들의 웃음소리 물결따라 멀어져 가는” 서해를 관조하던 모습은 이제 남아 있지 않다. 그는 자신의 옛노래들이 사회적 인식없이 개인적인 세계관 속에서 지어진 ‘부끄러운’ 곡들이라고 잘라 말한다. 사춘기 감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이런 폐쇄적인 정서의 노래들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문제가 잇다는 사실을 순간순간 잊게 하거나 일시적으로 회피시킴으로써 정서적인 나약함과 도피주의를 부추기는 기제로 사용돼왔다는 것이다.

88년도에 발표한 ‘그의 노래는’이라는 작품에 이같은 각성의 자취가 배어나온다. “그의 노래는 별빛도 없는 깊은 어둠 속에서 나와/ 화사한 그대 향락의 옷자락 끝에 묻어/발길마다 채이며 떨며 매달려 이제 여기까지 따라왔는데/ 그의 노래는 그대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가려진 실상과 전도된 가치 속에서”

그의 포부는 “노동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투쟁의지를 고취시키고 그들 이익에 도움이 되는 노래”를 창작하겠다는 것이며, 따라서 그 노래행위가 예술적이냐 아니냐는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고 한다. 과연 요즈음의 그의 노래는 빠르고 거친 가운데 욕도 튀어나온다. 황당하리만치 원색적인 용어들이 노랫말로 노출되어 당혹감을 안겨주기도 한다. 예컨대 철거민의 아픔을 고발하려는 뜻에서 지은 ‘우리들 세상은’에서는 “이제 집사기는 다 틀렸네, 예라 더런 놈의 세상, 미친 놈의 세상 승질나서 뒈지겠네”라고 원색적 감정을 여과없이 표출시키고 있다.

유신독재, 광주항쟁, 6월 민주항쟁으로 이어진 질곡의 역사를 두루 체험한 한 대중가수가 이제 새롭게 태어나 억압당하는 다수의 고통을 위해 그들의 삶에 동참하겠다는 결의를 다질 때 시대의 아픔이 진하게 전달되어 온다.

송파구의 17평짜리 아파트에 전세로 살면서 아내 박은옥과 9살자리 딸 새난슬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말은 “정직하라”라고 하는 36살의 家長. 음울하게 가라앉은 사색적 분위기의 노래에서 벗어나 진취적이고 낙관적인 세계관을 바탕에 갈고 힘차게 앞으로 나가는 모습을 그리겠다고 그는 밝힌다. “한의 정서를 극복하고 힘의 정서를 되찾은” 그 노래들이 사회변혁의 도구로 이용되기를 온몸을 내던져 바라고 있다.

맷방석에 이웃들이 앉아 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고향집 마당’을 그가 다시 한가로이 노래할 수 잇는 ‘좋은 세상’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대해본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