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기대와 우려 속의 미술품 수입개방
  • 고명희 기자 ()
  • 승인 1989.1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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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년초까지 수입 전면 자유화… “국내 미술계 발전시킨다” 찬성론에 “투기 조장한다” 신중론

스페인을 대표하는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비너스>(89년 수입)는 경기도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향기를 내뿜고 있다. 영국의 대조각가 헨리 무어가 창조한 <여인좌상>(83년 수입)은 지구를 반바퀴 돌아 서울 힐튼호텔에 안착했다. 그런가 하면, 예술의 본고자아 파리에서 온 이브 클랭의 작품 <스폰지>(89년 수입)는 과천 국립현댑미술관 창고 속에서 이국의 먼지를 쓰고 잠자고 있다. 정부의 미술품수입개방정책 덕택에 속속 국내에 입성한 해외미술품들의 현주소이다.

해외미술품의 수입개방은 농산물이나 영화와는 다르게 미술계 자체의 욕구와 정부의 개방정책이 맞아 떨어졌다는 점에서 일단 긍정적 평가를 얻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기대와 아울러 우려의 소리가 높다. 기업으로 성장할 정도로 화랑은 비대해지고 있는데 반해 우리 사회는 아직 미술작품을 바르게 인식할 토대가 되어있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런가 하면 미술품은 이미 투기대상으로 자리를 굳힌 상태에서 자칫하면 미술품 수입개방이 거간꾼들에게 호기만 제공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해외미술품 수입은 작년 7월부터 ‘수입추천제’를 통해 소규모로 계속돼왔었다. 이 제도는 문공부가 정한 수입추천 대상품목에 한해 소정의 절차를 거쳐야만 수입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미술품 수입이 상업성을 띠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이 제도의 본래 취지였다. 그러던 것이 상공부가 무역개방의 문을 대폭 확대하면서 그 파장이 미술에까지 미쳐 지난 7월 골동품이 ‘수입전면자유화’된 이후 90년초에는 조각작품이, 91년초에는 회화와 판화작품이 여타 상품처럼 상공부의 간단한 통과확인만으로 국경을 넘어 들어올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대해 미술계에서는 화랑가의 질서는 무론 작품가격이나 수장가의 계층 등에서 구조적 변화가 있을 걸로 예상하고 있다.

우선 긍정적인 측면에서 수입자유화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일반 미술애호가들이 손쉽게 세계미술과 접촉할 수 있다는 점을 들고 있다. 이화여대 서양화과 鄭秉?교수는 “서구미술사조에 대한 직접적인 이해의 폭이 넓어져 국내 미술계의 발전을 자극할 것”으로 평가한다.

그런가 하면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유명작가들의 작품이 쏟아져들어올 경우 국내작가에게만 한정됐던 수장가들의 관심이 크게 바뀔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는 올림픽 직후 외국작가 작품들이 대거 국내에 수입된 것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관세청과 무역협회가 집계한 86년 이후 예술품수입액수는 △86년 2천8백56만달러 △87년 4백2만달러 △88년 4천3백96만달러 등으로 급격히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들어 지난 10월까지의 미술품 수입은 4천4백61만달러로 지난해 연간실적을 이미 넘어섰다. 이중엔 프랑스의 대표적인 작가인 아르망이나 세자르, 소토, 미국의 레디 존 딜, 로버트 라우센버그 등의 작품도 상당수 섞여 있어 큰 관심을 모았었다.

 

미국 · 유럽의 재고처리장 될 우려

그러나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은 ‘有名?’에 맹종하는 경향이 있어 수입개방이 외국의 재고미술품이나 저질작품이 쏟아져 들어오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유명세는 투자가들의 잘못된 잣대에 불과할 뿐이지요. 독창적이고 작가의 개성이 드러난 작품만이 세계적인 가치가 있고 우리에게 좋은 문화적 체험을 안겨줍니다.” 서양화가 朴栖甫씨의 지적처럼 미술품수입은 상업성을 앞세우기보다는 문화교류라는 긴 안목이 선행돼야 하는데 국내에는 아직 그런 분위기가 성숙되지 못한 상태라는 진단이다.

실제로 미술품수입처인 문화재단이나 미술관, 화랑들은 대부분 상업성과 예술성을 적절히 조화시켰다기보다는 미술을 투자로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미술계의 지배적인 견해인 듯하다.

미술평론가 朴信義씨는 지난 6월 중순에 ㄱ화랑이 수입한 아르망 작품 20점 중 그의 예술의 진수가 담긴 60년대의 작품은 한 작품도 발견할 수 없었다며 “일본이 60년대 후반 미술품 수입개방을 취한 직후 미국이나 유럽의 재고처리장이 된 전철을 밟을 조짐을 보여준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또한 미국과 유럽에서 대량으로 나돌고 있는 피카소, 샤갈, 미로, 뷔페 등 유명화가들의 가짜 판화작품이 한국으로 흘러들어오는 것도 미술품 수입개방조치가 빚어낸 부작용이라는 지적도 있다. 사실 무역협회의 10월말 통계에 따르면, 금년 10월 판화수입은 1만3천달러로 작년 같은 달 5천달러에 비해 무려 1백89%가 늘어난 수치이나, 상당수 가짜가 섞여 있다는 게 미술계의 솔직한 반응이다.

한편, 미술품 수입개방이 국내작품 가격에 끼칠 영향에 대해서는 의견이 양분돼 있다. 가격면에서 다른 나라보다 높게 형성돼 있는 국내 미술시장의 경우, 외국의 작품값과 자연스런 비교를 통해서 전면적인 수정이 불가피하리라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전혀 영향이 없으리라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가나화랑 대표 李皓宰씨는 “국내작가들의 작품가격이 떨어지기는 커녕 오히려 수입작품의 국내판매가격이 국내인기작가들의 작품값 수준으로 덩달아 뛸 위험이 있다”고 강조한다. 그 결과 수입작품을 터무니없는 高價로 수장가에게 판매하여 엄청난 폭리를 취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인다.

그러나 또 다른 입장에서는 국내미술시장의 고질적인 병폐인 호당가격의 소멸은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추측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갤러리 현대에서 일하는 黃仁씨는 “작고한 유명인의 작품은 수량이 한정돼 있어 변화가 없겠지만, 이제 형성되기 시작하는 작품가격에서는 호당가가 폐지될 확률이 크다”고 전망한다.

미술품수입개방은 수입과일 자몽의 파동처럼 시민생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국내 미술시장의 유통질서를 파괴하고 문화적 사대주의를 가져오는 계기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미술을 아끼는 문화계 인사들의 지적이다. 오히려 이 수입개방을 계기로 국내 미술시장의 보호와 수준높은 해외미술품 수입을 위해 국내 미술시장 정비를 포함한 미술계 전체의 자각을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한국화랑협회 朴明子회장은 ‘미술관법제정’을 제안하기도 한다. 문화가 官이 주도하여 육성되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허점을 보완하는 제도적 보완은 官이 맡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현재 상당한 작품을 모은 수장가가 꽤 있다는 현실을 감안하여 세금감면 등 문화사업 지원혜택을 내용으로 하는 미술관법을 제정해서 국내미술시장의 유통구조를 판매 위주에서 소장 위주로 전환시키는 동시에 일반인의 문화수용의 폭을 넓히는 방향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자는 주장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미술인, 나아가 국민 전체의 미술에 대하나 안목이다. 고가로 수입된 작품이라고 해서 모두 가격에 합당한 미술적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그것을 가려낼 안목을 갖췄을 때, 비로소 우리는 세계미술의 진수만을 우리의 문화적 자산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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