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 좌담] “큰손놀이에 소액 株主만 등터져”
  • 편집국 ()
  • 승인 1989.12.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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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제주가’체질도 큰 堊材…건전투자 풍토 정착돼야

명암이 엇갈린 80년대 증시, 우리 증시는 10년새 상장주식 시가총액 40배증가, 주가지수 1천포인트 돌파, 국민주 보급으로 인한 대중화시대 도래 등 양적 팽창을 보인 반면에 질적 발전은 이에 크게 못미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여전히 부양책에 울고 웃는 과제주가 체질, 내부자거래, 물타기 등 불건전 관행으로 힘있고 돈있는 자들의 ‘머니게임’장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 힁포에 골병이 드는 것은 선의의 투자자들, 투자클럽에서 활동하고 있는 일반소액투자자들이 지난 12일 오후 서울 명동 롯데빌딩에서 좌담회를 갖고 서로의 경험을 털어놓았다.

金洛賢 = 우선 정부나 일반인들이 증시를 보는 시각부터 바로 잡아야 합니다. 투기냐, 투자냐를 명확히 짚고 넘어가야 증시발전도 이룩되리라 봅니다. 10년전만 하더라도 증권사에 근무한다면 정말 ‘갈데 없어서 갔다’는 얘기를 많이 했습니다. 증시가 일부 콘손들의 투기장이라는 불신이 컸기 때문이죠. 그래도 그때는 규모가 작아 피해자 소수에 국한됐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몇주라도 갖고 있는 투자인구가 7백만명에 달하지 않습니까.

田台永 = 저도 투자자의 한사람이지만 꼭 벌어야 한다는 생각은 안합니다. 문제는 증권을 부동산투기와 동일시하는 일부 관료와 국민들의 시각에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건전한 재산증식 수단으로 복원시키는 인식전환만이 증시를 살리는 길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증시와 대체관계에 있는 부동산투기를 근절시켜야 합니다. 요즘 토지공개념법안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빈껍데기 아닙니까.

金正來 = 경제성장 과정에서 엄청나게 부를 축적한 대기업들은 각종 특혜를 받는 대신 정치자금으로 봉사하는 정경유착 구조가 증시를 투기로 몰고 갔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정부가 부동산투기를 묵인해줘 대기업들은 돈을 많이 벌었는데 80년대들어 한계에 달하니까 증시를 활성화시켜 자금조달의 길을 열어준 것이죠. 이 과정에서 투기, 단기이익 실현을 일삼는 큰손들의 행태가 계속돼온 것입니다.

金錦珍 = 소액자금으로 알뜰히 살펴 투자하는 나같은 사람이 대부분인데 왜 증권투자를 투기로 보는지 모르겠습니다.

田 = 증시가 투기라는 인식을 깊이 심어준게 실은 증권사였다고 봅니다. 약정고 올리기에 혈안이 되다보니 아침에 사서 주가를 올려놓고 저녁에 되파는 수법으로 거액을 챙겼습니다. 회전율만 높인 거죠. 이 수법에 소액투자자들은 백이면 백 모두 걸려듭니다. 한번 이 흐름에 상투를 잡히면 조금 벌다가도 이익은 물론 원금까지 날리기가 십상이죠.

金o = 5년 정도의 투자 경험에서 주식시장은, 기관보다는 재벌이라는 큰손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증권사와 손잡고 엄청난 자금력과 빠른 정보력으로 주가를 조작, 끌어올려서 팔고 내려서 사는 거죠. 큰손들은 우선 유보율이 낮고 빈껍데기인 저가주를 대량 사들입니다. 전광판을 잘 살펴보면 주가는 안 오르는데 거래량은 크게 증가하는 주식을 자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주식은 처음엔 가격변동이 없지만 조금 지나면 엄청나게 뛰기 시작합니다. 하루 정도는 관망하던 소액투자자들은 이틀 내리 上終價를 치면 움직이지 않고는 못 배깁니다. 큰손들은 재빨리 언론사에 상품개발, 증자 등 호재성 정보를 보내 경제면에 실어 주가상승을 더욱 부추깁니다. 이렇게 되면 전국적으로 개미군단들이 벌떼같이 달려들기 마련이죠. 상종가를 5번 정도 치게 되면 큰손들은 재빨리 팔아 철수준비를 합니다. 그것도 일시에 빠져나가 폭락장세가 되면 증권감독원의 조사를 받으니까 ‘옆으로 기면서’나누어 파는 거죠. 물론 이 호재성 정보는 나중에가면 어느 선까지 사실로 밝혀지지만 떨어지기전에 판돈은 거의 걷어간 상태입니다. 이 썰렁한 장의 피해자는 거개가 소액투자가들이죠.

田 = 어렵게 번 근로소득의 단물을 모두 챙겨간 겁니다.

金o = 여기서 큰 돈을 잃은 주부들이 울고불고 하는 사례를 저는 많이 봐왔습니다. 남편이 알면 영락없이 큰 부부싸움이 벌어지죠.

金正 =  저같은 소액투자자들은 항상 이 뒤를 따라가게 되고 ‘뱁새가 황새를 쫓아가면 가랑이가 찢어진다’는 식의 상황이 벌어집니다. 실제로 기관들은 1백미터 달리기 경주를 할 때 60미터 앞에서 출발하는 셈이죠.

田 =  소액투자자들은 정보에 어두워 증권사 상담직원에 의존하기 마련인데 이들은 대부분 1~2년의 병아리 사원들입니다. 원래 증권상담은 영업경력이 최소한 5년은 넘은 이른바 증시의 쓴맛 단맛을 모두 아는 사람이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문제입니다. 조금 고참이다 싶은 당담직원들은 우리를 거들떠 보지도 않아요. 부동산투기로 횡재한 신흥졸부들만 상대하죠. 또 이들 신입직원들은 아침회의에서 지목된 추천종목을 투자자들에게 사라고 권유하는데 이 주식들은 그 증권사가 많이 보유한 매물일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팔고 싶을 땐 이 종목을 추천, 사게 만들고 반대로 사고 싶은 물건일 때는 언급이 없거나 이 주식이 어떠냐고 물어봐도 좀더 기다려 보라고 합니다.

金o = 투자자의 60%가 2년 미만 투자경력의 초보자들인데 이들은 비싸게 사서 싸게 파는 재주밖에는 없습니다. 기관을 포함한 큰손들이 신규참여한 개미군단들의 무지함을 최대한 악용하는 거죠. 개탄할 사실입니다. 우리 투자클럽에서 계산을 해보니까 1년에 1조원 정도의 종을 거의 ‘강탈’한 것으로 나타납디다.

金o = 올해 ㄷ증권과 거래, 일임매매를 시켰는데 ㅎ건설 등 주로 건설주를 권유해 3천주 가까이나 사들였어요. 이는 사실 제 여유자금 폭을 넘긴 거예요. 그런데 산 직후부터 계속 떨어지는 겁니다. 결국 끈질기게 회복되기를 기다려 본전치기 선에서 팔아버렸죠. 일임매매가 위험하다는 것을 그때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金正 = 9월초에 소문을 믿고 얼떨결에 ㅎ악기 주식을 2천주 샀습니다. 그것도 꼭대기 선에서요. 지금 생각하면 미쳤었다는 생각밖에 안 듭니다. 그후 오를 것이라는 주가가 6천원선이나 빠졌더랬습니다. 팔아버리긴 했지만 엄청난 손해를 본 거죠. 떠도는 루머나 옆사람의 얘기만 믿고 투자하면 1백% 희생됩니다. 소신부족은 결국 손해를 초래한다는 값진 교훈만 얻은 것이죠. 이같이 증시는 고독한 장입니다. 최종판단은 스스로 해야 합니다.

金o = ‘증권투자는 자신의 판단과 책임으로’란 캐치플레이즈에 저도 동감입니다. 그러나 이 판단을 흐리게 하는 정부정책과 기관들의 영업행태를 다시한번 거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작년 12월로 기억되는데요. 증권감독원장이 모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경제민주화시대에 규제란 있을 수 없다’고 공언을 했습니다. 저는 이 말만 믿고 주식을 잘 골라 사들였는데 바로 그 다음날부터 규제가 들어오는 거예요. 기가 막힙디다. 신용으로 살 수 있었던 것을 현금으로만 사게 하니까 투자심리가 위축, 급락하기 시작했던 거죠.

田 =  그뿐이 아니죠. 정부는 ‘공급이 수요를 창조한다’는 식으로 올들어 금융기관 등으로 하여금 대거 유무상증자를 하도록 권장했습니다. 이는 통화환수의 목적이 컸겠지만 어쨌든 소액투자자들을 들뜨게 했습니다. 그런데 정작문제는 이 증자일정을 사전에 입수한 기관을 포함한 큰손들이 장난을 친 겁니다. 어느 주식의 증자설이 파다하게 돌면 주가는 상한가로 뛰게 되는데 이 해당사는 이미 갖고 있던 구주를 몽땅 팔아치운 뒤 비로소 대규모 증자 발표를 하는 겁니다. 이때는 더 이상 매입여력이 없으니 주가는 곤두박질치게 돼 있어요. 이 과정에서 ‘물타기’니 ‘뻥튀기’가 개입되면 혼란은 더하죠.

金o = 증자설이 있은 후 증권회사에 물어보면 물량이 많아 주가가 오른다고 대답하고 다사고 나면 이제는 반등할 시점이라고 해요. 이런 그럴 듯한 말에 피해 본 사람이 많아요.

金o = 9월달 장이 반짝거릴때 이 장을 식힌 게 증권사 아닙니까. 대규모 유무상증자를 한 것이죠. 주식투자는 본인의 판단과 책임 아래 하라고 하지만 우리 소액투자자들이 어떻게 증자일정을 압니까. 증자란 대규모 물량공급으로 주가에 큰 영향을 주는 게 아닙니까. 시가할인율 축소조정도 시기상조였어요. 물론 점차 축소, 거래가격으로 증자후 무상을 받도록 해야겠지만 이 조치는 급격히 투자심리를 졸아들게 했습니다. 증자메리트가 없어졌기 때문이죠.

田 = 특별담보대출의 경우도 정부가 실기한 것입니다. 위축된 장이 살아나지 않았잖아요. 지금 보세요. 얼마전 물타기로 상장, 증자한 ㅅ은행을 떠받치기 위해 특담자금이 다 쓰여지지 않았습니까. 제 판단으론 11월초에만 부양책을 썼어도 이번 ‘12?12조치’같은 초고단위 처방은 필요 없었다고 봅니다. 이 조치는 통화팽창을 불러 증시를 투기장화할 우려도 있는 것입니다. 너무 극약처방이기 때문이죠.

金o = 따라서 저는 정부정책을 감시하고 증권관계기관의 힁포를 견제할 ‘투자자협회 결성을 촉구하고 싶습니다. 정치권력의 독주를 감시하기 위해 삼권분립 원칙을 세워놓았듯이 증시에도 견제와 균형의 원칙이 세워져야 한다고 봅니다. 일방적으로 소액투자자들만 당할순 없지 않습니까.

金正 = 올초에 이 결성 움직임이 있었는데 당초에는 재무부가 인가해준다고 했다가 슬그머니 꼬리를 빼고 있습니다. 항간에는 증권사등의 로비가 대단했다는 소문이 무성합니다.

田 = 우리나라가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지향하는 한 자본시장 육성은 절대명제라고 봅니다. 정부도 이렇게 돼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재정비가 시급합니다. 우선 투자자협회를 인가해줘 증시정책 일정에 어느 정도는 우리들의 의견을 수용, 참여시켜야 합니다. 힘있고 돈있는 자들의 독주와 힁포를 더 이상 방치하면 곤란합니다. 증권투자인구의 90%는 친여성향을 갖는 보수세력입니다. 안정을 희구하고 혁명을 싫어하는 중산층인 것입니다. 그런 이들이 요즘은 체제반대 세력화되고 있다는 얘기가 왜 나옵니까. 주가가 비스듬하게 상승곡선을 그리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金o = 내가 산 가격만 되면 빠져나가겠다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젠 증권이라면 보기도 싫다는 것이죠. 부양조치가 나와 일시적으로 전광판이 새빨개져도 얼마 못갈 것이라는 얘기들을 합니다. 증시가 기본적으로 관제주가에 의해 움직이는 불안정성 때문이죠.

金o = 또 증시안정을 위해선 기관투자가들을 보다 늘려야 합니다. 현재 30%밖에 안되다보니 이들이 담합, 주가를 조작하는 것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이들끼리 싸움을 붙여 서로 견제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田 = 물론 일반투자자들에게도 문제는 있습니다. 유보율이니 내재가치, 자산과 자본의 차이도 구별 못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더군요. 공부를 해야 합니다. 끈기를 가지고 투자동향을 분석하고 양질의 정보를 주는 간행물도 봐야 합니다. 노력하는 자만이 이익을 내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합니다. 잘못된 증시정책과 불건전관행은 비판해야 하겠지만, 우리도 모두 공부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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