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로 떠오른 독일통일
  • 송두율(서독 뮌스터대 교수 사회학) ()
  • 승인 1989.12.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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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독인 여행기금’설치 등 콜의 10개항 제안 계기로 논의 활발…“선거 노렸다”비판도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 나서 헬무트 콜서독 총리는 연방의회에서 10개항으로 집약된 통일정책을 내놓았다. 집권 기민당이 이번에 제시한 통일정책은 처음에 야당인 사민당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것으로, 크게 세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여행자율화에 따르는 동독인을 위한 여행기금설치, 동?서독간의 낡은 통신 및 교통수단의 현대화, 대량적인 전문직업인들(의사?약사 등)의 서독 이주에 따라 동독 사회내에 조성된 어려움을 극복케 하기 위한 지원 등 긴급히 요구되는 동독지원정책을 골자로 하고 있다.

둘째로는 동독이 새로운 헌법과 선거법 제정, 그리고 시장경제적 전제조건을 마련한 이후의 동?서독간의 새로운 협력체제 문제인데, 이는 상당히 애매모호하게 표현되고 있다.

세 번째로는 동독 총리 모드로가 이미 제기했듯 동?서독간의 “계약공동체”적인 관계를 넘어서서 자유선거를 통한 민주적 정부가 동독에설 때 서독 정부가 그와의 ‘연방제적 구조’를 실현시키고 그 바탕 위에서 종국에는 ‘독일의 국가적 통일’을 이룩해야 하는 단계적 과정에 대한 최근의 선언을 담고 있다. 물론 실현가능성은 기민당이 다분히 다음 선거를 겨냥하여 내놓았다는 인상을 짙게 풍기고 있다는 점에서는 이미 비판을 받고 있다.

 

콜의 통일안엔 ‘동독 흡수론’깔려 있어

그러나 이러한 여러 가지 제한성에도 불구하고 현재 서독과 동독은 물론, 이웃하고 있는 여러 나라들에서도 독일통일 문제는 매우 진지하고 신중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서독헌법이 이미 규정하고 있는 잠정적 성격, 즉 “통일과 함께 현재의 서독 헌법은 무효”라는 규정을 둘러싼 논쟁들이 공허하게만 보였던 실정이었던 만큼 지난 한달여 동안 동독에서 일어난 급격한 변화를 어찌 평가해야 하는지 실로 어렵다. 그러나 이러한 급격한 변화 및 그에 조응하는 동?서독 내부의 통일문제는 이를 바라보는 시각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통일문제제기에 나름대로 연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만은 우선 확인해볼 수 있다.

독일의 분단은 2차세계대전을 도발한 데 대한 미?소?영?불의 징벌이라는 성격을 띠고 있었으나 미?소를 중심으로 한 냉전체제가 성립되면서 이러한 징벌적 성격은 점차 희석되어왔다.

서독은 물론 동독의 통일에 대한 기본구도는 독일 분단이 지니는 바로 이러한 징벌적인 성격과 냉전적 성격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달리 설정돼오곤 했다. 즉 보수적인 기민당(CDU), 그보다 더 보수적인 기사연합(CSU), 나아가 국우적인 독일민족주의당(NPD) 등은 그 동안 독일분단의 냉전적 성격을 일면적으로 강조하면서 독일통일을 서독에 의한 동독의 흡수와 통합으로 이해해왔다.

콜의 통일정책의 기조에는 이러한 흐름이 강하게 깔려 있기 때문에 동독은 재야세력까지도 이를 즉각적으로 비판하였다. 또 경기침체에 따른 실업자 문제를 외국인 노동자 때문이라고 주장하면서 승공통일적 구상에 배타적 민족주의를 가미하여 최근 집권 기민당의 표를 급격히 잠식하고 있는 공화파(Die Republikaner)를 견제하기 위한 선거전략적 측면도 깊이 숨어 있다. 동독시민이 외친 “우리가 인민이다!”(Wir sind das Volk!)라는 구호를 기민당은 “우리는 한 민족이다!”(Wir sind ein Volk!)라는 구호로 재빨리 바꾸어놓았다. 동독 인민이 사용하는 계급적 의미의 ‘das Volk’를 민족적 의미의 ‘ein Volk’로 바꾸어놓은 것이다. 독일말에서는 ‘인민’도 ‘민족’도 다같이 ‘Volk'라고 표현되고 있다.

 

‘사회주의’를 통일대안으로 제시하는 입장도

이러한 태도와는 정반대로 독일의 분단을 징벌적 성격으로 이해하는 입장이 있는데 서독의 녹색당이 가장 대표적으로 이런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두 차례에 걸쳐 세계대전의 참극을 야기시킨 독일의 역사적 경험으로부터 통일독일이 또다시 불러올 재앙의 가능성을 이들은 배제하지 않고 있다. 통일된 독일이 불러올 참극보다는 분단의 고통을 택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이러한 태도는 지금까지 동독에서 더 강하게 나타났었다. 호네커 체제에 대한 예리한 비판적 지성의 한 사람인 동독의 원로작가 슈테판 하임은 서독에 흡수되는 동독이라는 발상보다는 자본주의 서독에 대한 독일땅 위의 한 대안으로서의 사회주의를 제시하는 입장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동독의 사회주의가 서독 자본주의에 대한 확실한 대안으로서의 전망을 동독 인민들에게 보여주지 않을 때 동독의 서독에의 흡수를 택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 하는 현실적인 문제가 최근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가령 집회 때 통일에 대한 요구도 나오고 심지어는 서독 국기를 가지고 나타나 주위사람들과 옥신각신하는 이들이 자주 보이는 일 등이 그러하다.

 

독일통일은 유럽 전체의 문제

독일 분단의 원인을 바라보는 이와같은 두 가지 시각, 즉 냉전적 시각과 징벌적 시각의 양측면을 동시에 강조하는 제3의 시각도 서독 사회에 상당히 퍼져 있는데, 가령 사민당(SPD)브란트의 동방정책은 그러한 시각의 대표적 예라고 할 수 있다.

전쟁을 일으킨 책임자인 독일이 참회하면서 동시에 전후 조성된 냉전체제를 완화시켜나가는 동?서독 관계 설정은 따라서 독일문제이면서 동시에 유럽문제라고 본다. 유럽이 정치?경제?군사적으로 분단된 상황인 만큼 독일의 통일 문제는 독일의 문제에서 나아가 유럽의 문제라는 것이다.

독일민족이 자주적으로 통일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민족중심적 이해와, 독일민족은 통일문제를 더 이상 거론해서는 안된다는 자기비판적 입장 또한 마찬가지다. 동?서독이 현재 놓여있는 유럽과 세계질서를 떠나서는 이해될 수 없는 것이다.

콜이 10개항의 통일정책을 내놓았던 것은 부시와 고르바초프의 몰타 정상회담이 있기 직전이었던 때였으므로 이 문제는 유럽이 당면한 급격한 변화의 중심적 고리로 하나로 인식되기에 충분했다.

아울러 미?소 양대국은 현재의 유럽질서가 급격히 수정되기를 원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콜. ‘발언권’있으나 ‘영향력’없어

그러면 독일통일 문제에 대한 유럽의 시각은 어떠한가. 12월8일 슈트라스부르크에서 열린 유럽공동체(EC) 정상회담의 결과가 이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정상회담은 독일통일과 유럽통합 사이에 놓인 문제에 대해 각국이 현재 보이고 있는 입장들을 조정하였는데. “우리는 독일민족이 그들의 통일을 자유스러운 자결권을 통해서 이룩할 수 있는 유럽의 평화상태를 추구한다”라는 문구가 이번 회담의 공동성명에 들어있다.

서독은 유럽공동체가 이번 서독 정부의 동?서독 통일정책을 이러한 공동성명으로 지지해주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렇다면 서독은 1991년 초로 예상되고 있는 유럽의 ‘통화연합’을 위해 그들의 강한 마르크화를 어느 정도 희생시키는 수밖에 없게 되었다. 특히 영국을 비롯한 이탈리아?네덜란드는 서독이 그간 보여주었던 유럽공동체에 대한 의무가 통일을 위한 동독지원 때문에 소흘히 되거나 방기되는 것을 경고하는 의미에서 독일의 통일은 지지하나 어디까지나 ‘유럽통합의 전망’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던 바 있었다.

결론적으로 유럽통합과 독일통일 사이에는 갈등과 긴장이 있지만 잠정적으로는 이 두 요소를 같이 추구해야 한다는 데 합의를 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타협이 계속 어려운 조건 속에 맞닥뜨리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고르바초프의 최근 연석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그는 여전히 ‘전후의 정치적 현실’과 ‘독립적인 두 독일국가’를 이야기하면서 이를 부정하는 것은 유럽을 불안정으로 몰고가는 발상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지금은 경제대국이지만 패전국의 반쪽 땅 서독의 총리인 콜은 강하면서도 약할 수밖에 없다. 경제적으로는 별로 맥을 못추지만 전승국인 프랑스나 영국의 총리는 아니라는 데에 독일통일의 문제가 안고 있는 어려움이 놓여 있다.

분단이라는 사실 자체만을 두고 볼 때 독일과 한반도는 같은 운명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독일의 통일보다는 한반도의 통일이 더 용이할 것이라는 지금까지의 일반적 통념이 급격히 무너지고 있는 이때 독일의 통일논의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주고 있는가를 우리 모두 곰곰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독일의 분단이 전쟁을 도발한 패전국에 대한 응징과 징별의 성격을 지녔던 데 비해 한반도의 분할은 부당하게 이루어진 미?소 양대국의 자의적인 조치였다는 차이를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분단 내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동?서독 관계는 오늘의 남?북한관계의 척도를 가지고서는 도저히 잴 수 없는 현실적 상황과 전재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동?서독과 남?북한관계의 비교 설명에는 간단한 도식이 하나 등장하고 있는데, 서독은 남한이고 동독은 북한이라는 등식이다.

 

“남한=서독. 북한=동독”등식의 허구성

과연 남한은 서독과 비슷하거나 같은가. 우선 ‘라인강의 기적’과 ‘한강의 기적’이 상징하는 경제적 성장이 이러한 등식을 뒷받침하는 것같다. 그러나 서독의 경제력을 떠받치고 있는 민주적 정치질서와 체제, 그리고 사회적인 富의 분배에 지켜지고 있는 복지적 원칙들을 이등식은 우선 무시하고 있다.

그러면 북한은 동독과 같거나 또는 비슷한가, 같은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두 사회는 물론 비슷하다. 그러나 40만의 소련군대가 주둔하고 있는 바르샤바조약의 전초기지인 동독과 ‘블록 불가담’운동에 나서고 있으며 소련군대가 주둔하고 있지 않은 북한을 동일시할 수는 없다.

또 군사적 측면에서 볼 때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중추적 역할을 맡고 있는 서독이 미국에 대해 갖고 있는 상대적 자율성과, 4만여명의 미군과 핵무기의 보호와 통제 아래 있는 남한의 제한된 군사적 역할을 동일시할 수도 없다.

이러한 몇가지 점들이 우선 ‘서독=남한’‘동독=북한’이라는 등식에서 도출된 시각이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드러나게 한다. 盧泰愚대통령이 독일을 방문했을 때 바이츠제커 서독 대통령이 직접 남한의 인권문제를 거론하고, 특히 통일을 위해서 북한과 접촉하는 것을 ‘범죄시’하지 말 것을 촉구한 사실은 남한이 아직 서독은 아니라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남한이 북한에 대해서 ‘개혁’과 ‘개방’을 요구하고, 또 미국과 유럽공동체에 대해 ‘북방정책’에 대한 지지와 지원을 구하는 것은 실로 남한사회의 민주화를 전제조건으로 동반하여야함을 뜻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할 때 남한은 서독이고 북한은 동독이라는 등식은 공허한 것이며 남?북한 관계는 오히려 지금보다 더 악화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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