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교통 大亂 대책도 ‘체증’
  • 서명숙 기자 ()
  • 승인 1989.1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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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시부터 몸살 시작…소통·승차·주차난 3重苦

서울. 새벽 2시12분. 그러나 남대문 시장뒤 회현고가도로 일대는 대낮처럼 붐빈다. 시장으로 진입하려는 차량행렬이 편도 2차의 자기 차선도 모자라 반대편 차선까지 점령한채 꼬리를 문다. 이런 ‘새벽 차량홍수’는 날마다 되풀이된다.

 쥐죽은 듯 조용하던 남대문 시장이 새벽 선잠을 깨는 것은 의류도매장이 서는 1시반께부터. 차량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도 이때부터다. 그러다 장이 본격적으로 서는 2시부터 차량행렬은 절정을 이룬다. 주인을 기다리는 자가용차들은 도로변에 엉켜있고, 물건 흥정을 끝낸 상인들은 그 사이를 헤집으며 택시를 잡느라고 이리 뛰고 저리 뛴다. 생존의 가쁜 숨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이 현장은 이제 서울의 차량 홍수사태가 밤낮뿐 아니라 새벽 2시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12월9일 0시40분 중부고속도로상에서 전세버스가 사고를 내 3명이 사망하고 27명이 부상당하는 참사가 일어났다. 이 차의 승객들은 바로 남대문 새벽시장에 물건을 구입하러 상경하던 대구지역 상인들이었다.

 12월15일의 가슴죄는 대학입시 전쟁을 앞두고 정작 먼저 벌어진 것도 ‘교통편 확보 전쟁’이다. 연세대 후문에 자리한 신촌 ㅇ여관의 경우, 지방에서 올라온 수험생에다 입시 당일아침 교통이 막힐 것을 우려한 서울시내 수험생가지 몰려들어 이미 한달전에 방이 동나고 말았다.

 이런 실정을 두고 12월11자 《타임》지는 “한국은 교통지옥”이라는 제목 아래 우리나라의 교통지옥을 호들갑스럽게 다루었다. 이 주간지는 약간은 과장된 어조로 “한국에선 경제붐으로 인한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거의 매일같이 2천명의 새로운 운전자가 거리를 누비고”, “음주운전, 만성적인 교통법규 위반, 안전벨트를 무시하는 태도가 한국의 교통사고율을 세계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있다”면서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운전하기 힘든 곳”이라고 단정지었다.

 서울의 교통난이 얼마나 심각한가는 올해들어 3천여명의 택시운전자들이 이직한 데서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나날이 심해지는 교통체증 때문에 수입이 준 데다 심지어 하루 3만7천원의 사납금조차 채우기 힘들게 되자 차라리 운전대를 놓아버린 것이다.

 흔히 교통관계자들은 “한국 교통문제의 절반은 서울의 문제”라고 한다. 소통난, 주차난, 승차난에다 교통문화의 부재까지 겹쳐 마치 엉킨 실타래처럼 꼬여 있는 현장을 살펴본다.

 

“7시전에 한강 건너야 한다”

 종로구청안에 있는 시경 교통관제센터. 이곳에 설치된 교통종합상황판에는 서울시내 주요교차로가 표시되어 있는데, 교통량이 너무 많을 때는 그곳에 빨간 불이, 정상적일 때는 파란 불이 들어온다. 그런데 바로 옆의 비디오 화면엔 차가 밀려 있는데도 해당교차로에는 파란 불이 켜지는 일이 많아졌다. 한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차가 어느 정도 밀려 있을 때는 빨간 불이 켜지는데 너무 많이 밀려 아예 꼼짝도 않고 있을 때는 도로밑에 깔린 감지기가 제 구실을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차가 ‘서있을’정도로 교통체증이 심각해진 것이다.

 사실 서울시 하루 교통량의 38%가 출퇴근 시간에 몰리기 때문에 이때의 교통체증은 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요즈음 운전기사들은 손님이 타면 “잘 아는 샛길을 알으켜달라”고 말하기 일쑤고, 샐러리맨들 사이에는 ‘7시전에 한강을 건너야 한다’는 게 생활철칙처럼 되어가고 있다. 이 시간대에 한강을 건너지 못하면 교통체증에 걸려 제 시간에 출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최근 서울의 교통체증이 다른 어느 나라 대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러시아워’현상이 아니라 ‘시도 때도 없이 하루종일’ 막힌다는 데 있다. 서울시 교통기획단의 김대호 연구원은 “아예 출퇴근길의 밀집현상, 집중시간대가 없어져가는” 추세라며 “이런 현상이야말로 현재 서울의 도로 등 기본시설이, 폭주하는 교통량을 감당하지 못할 수준에 이르렀음을 나타내는 것” 이라고 진단한다.

 89년 10월 현재 서울의 총 차량대수는 1백만대에 육박하는 95만6천대, 그중 자가용만 63만9천1백44대에 이른다. 자가용은 지난 80년의 9만9천5백대에 비해 6배 이상 늘었고 그만큼 체증현상도 가속화되어, 도심운행속도는 80년에 시속 30.8㎞였던 것이 89년에는 18.7㎞로 12.1㎞나 떨어졌다.

 그런데도 오늘도 서울시내에는 하루 평균 6백89대의 새 차가 쏟아져나오고 있다. 더욱이 최근 수출부진으로 판로가 막힌 자동차 회사들이 국내 고객을 상대로 앞다투어 유리한 구입조건을 제시하고 있어서 자가용의 수효는 더욱 늘어날 추세다.

 지금의 도로사정으로는 도저히 그 늘어나는 통행량을 감당할 수 없음은 불문가지이다.

 사정이 이런 만큼 교통전문가들은 가장 많은 사람을 가장 신속하게 실어나르는 지하철이 최상의 대중교통수단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현재 지하철도 낙원은 아니다. 출퇴근 때마다 초과밀 현상 때문에 팔다리가 접히고 비명을 지르는 등 갖은 고초를 겪어야 하는 지하철 승객들은 괴롭기만 하다.

 부평에서 강남으로 출근하는 회사원 안정숙(29)씨의 경우. 부평역에서 7시23분에 출발하는 전동차를 타는데, 이미 동인천에서부터 꽉 들어찬 승객들로 차안은 발디딜 틈이 없다. 내리는 사람은 없고 계속 늘어나기만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다 강남역에 도착할 때쯤엔 “마치 한바탕 사우나라도 한 것처럼 땀이 뻘뻘 나면서 온몸이 뻑적지근하고 팔다리, 허리가 모두 쑤신다”며, 그럴 때마다 “왜 사나 싶은 생각이 절로 난다”고 호소한다. 또 꽉 들어찬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나오다 잘못해서 가방끈이 떨어져나가고 구두가 벗겨진 채 내리기도 하고 아이를 놓치는 일가지 벌어지곤 한다. 본래 전동차 1량당 적정인원은 1백50명선. 그런데 1호선의 경우 러시 아워 때는 2백50~3백명이 타는 일은 보통이고 심지어 ‘승차한계’인 3백90명을 넘어설 때도 있다.


 4호선의 경우, 사정은 더 나쁘다. 서울시 조사에 의하면 출퇴근 시간대 미아―길음역 사이의 승객수는 아예 ‘운행불능’ 상태인 정원의 3배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규모 아파트가 밀집한 상계역을 출발한 4호선은 동대문역에 닿을 때까지 내리는 사람은 거의 없고 구역꾸역 타는 손님뿐이다. 그러다보니 한성대역쯤에선 초과밀 포화 현상이 일어나, 이곳 정류장에선 전동차안에 사람을 밀어넣고 서둘러 문을 닫는 ‘푸시맨’(실은 역무원이다)까지 등장하고 있다. 회사원 이모씨처럼 “사람들이 아직 타지도 않았는데 이미 터질세라 튀어나와 있는 사람들을 보면 도저히 탈 엄두가 안 나서 지각을 각오하고 두세번씩 보내고 나서야” 타는 사람들도 많다.

 

소방도로에까지 주차 경쟁

 지난 11월초 구로동 밀집주택가의 한 작은 봉제공장에 불이 났을 때의 일이다. 신고를 받은 소방차가 즉각 출동했지만 차 한대가 겨우 들어갈 만한 골목길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자가용 때문에 골목길 안쪽에 있는 화재현장에 진입하지 못해 애를 태우다가 무려 20여분이 흐른 뒤에야 가까스로 불길을 잡았다. 그 자가용은 이웃에 있는 전자대리점 주인의 것으로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아 좁은 골목길에 세워두었던 것.

 서울시에 의하면 서울 4대문안 도심지역에만도 불법주차건수가 무려 11만6천건에 이른다. 불법주차가 아예 공식화되다시피 한 곳은 다른 지역에 비해 주차시설이 턱없이 모자란 명동, 청계천, 을지로 3·4가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지역에서는 차 댈 곳을 찾지 못해 이리저리 빙빙 돌아다니는 ‘배회차량’들이 가뜩이나 체증 걸린 도시교통을 더 엉키게 하는가 하면, 이면도로는 물론이고 아예 도로변 1·2차선까지 불법점거해 ‘주차장화’하고 있다.

 하루종일 막히는 도로, 비명을 지르며 타야하는 대중교통수단, 도시의 선을 헝클어드리는 주차난. 이 ‘3중의 난’이 전쟁을 방불케 하는 것이라면 이 전쟁을 더욱 끔찍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세계적인’ 교통사고율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는 2만5천건의 교통사고가 발생해 1일 평균 32명이 사망하고 7백88명이 다쳤는데, 1987년에 견주어보면 무려 60%나 증가한 것이다. 인구 10만명당 교통사고 사망건수는 23.5명으로 영국의 9.8명, 일본의 10명, 미국의 19명에 비해 평균 2배나 된다. 차량 10만대당 교통사고건수는 더욱 많아서 영국의 2.5건, 일본의 2.4건, 미국의 2.6건에 비해 57건이나 된다. 이같은 현상은 끼어들기, 차선변경, 난폭운전 등 자동차문화가 정착되지 못한 데 상당한 원인이 있음은 물론이다.

 당국의 일관된 교통행정 부재, 시민의식 부재가 어울려 서울의 교통을 만성적인 소화불량을 넘어선 ‘大亂’의 상태로 끌고 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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