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鎬溶 결심은 항복인가 도박인가
  • 조용준 기자 ()
  • 승인 1989.1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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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파 배려 위해 ‘속죄양’자처 李源祚의원과의 끈끊어 光州책임 희석

5공청산의 문턱이 보인다. 출범 이후 2년 가까이 ‘가위눌림’을 당해온 6공의 표류정국이 지난 주말 鄭鎬溶의원의 전격적 입장 표명으로 뭔가 해결의 막장을 향해 달음질치고 있다.

 9일 민정당이 돌연 예정에 없던 확대당직자회의를 열어 “일사불란하고 효율적인 대야협상을 추진하기 위해 모든 것을 당총재에게 맡긴다”고 결론을 내리자, 채 몇시간이 지나지 않아 鄭鎬溶의원 또한 자신의 거취문제를 당총재에게 일임하기로 결정했다면서 공을 盧대통령에게 넘겼다.

 이에 따라 ‘鄭의원의 공직사퇴와 1회에 국한한 형식적 全씨증언’이라는 여권의 축소 5공청산 방안이 대략적으로 그 윤곽을 드러냈고, 야3당으로서는 盧대통령의 이러한 ‘청산카드’를 과연 어떻게 수용할 것이냐 하는 숙제를 맡게 된 셈이다.

 

여야합의 원만치 않을 땐 번복 가능

 盧대통령에게 공을 넘겨버린 鄭鎬溶의원은 과연 항복의 백기를 든 것인가 아니면 정치적인 일대 도박을 하고 있는 것인가.

 鄭의원이 9일 “모든 것을 대통령에게 맡기겠다”고 말한 것은 일차적으로는 그가 공직사퇴를 할 수도 있다는 뜻을 다른 표현으로 나타냈다고 해석할 수도 있으나 이는 그 의미 이상의 주목을 요구하는 대목이다. 鄭의원이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누누이 밝혔듯이 그가 공직사퇴를 하겠다고 말한 것은 아니므로 여야합의가 원만히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다시 말해 鄭의원의 요구처럼 자신의 공직사퇴로 5공문제가 매듭을 짓고 全씨의 국회증언도 형식적인 차원에서 마무리가 되지 않을 경우에는 얼마든지 자신의 공직사퇴를 ‘없었던 일’로 할 수 있는 명분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鄭의원의 9일 발언은 말 그대로 협상에 임할 盧대통령의 발언권을 강화시켜 주고 對野 입지를 넓혀주려는 고단수의 ‘노림수’일 가능성도 많다.

 말을 바꾸면 당내의 분열상을 정리, 당 총재에게 擧黨的인 체중을 실어주는 동시에 야3당 사이에 절충될수 없는 약점을 교묘하게 파고드는 전략적 차원의 ‘일보 후퇴’가 될 가능성도 높다는 뜻이다.

 鄭의원의 ‘무조건 일임’ 발언이 나온 당일인 9일밤 盧대통령이 鄭의원 지지 핵심세력인 吳漢九 金溶泰 李致浩 鄭昌和 鄭東星의원 등을 청와대로 불러 “대통령에게 힘을 모아 달라”고 부탁한 것도 당내의 분열상으로 인해 對野협상에 ‘쓸데 없는’ 힘의 낭비가 더 이상 없도록 해달라는 주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와 관련, 鄭의원의 한 측근은 “鄭의원이 결코사퇴하겠다고 말한 적이 없고 당 총재 또한 기존의 당론을 변경하는 어떠한 주문도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유의해달라”고 강조, 鄭의원의 9일 발언이 ‘사퇴할 수도 있다’는 뜻으로 해석되고 있는 데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鄭의원 의중 盧대통령에 충분히 전달

 그러나 鄭의원이 모든 것을 대통령에게 일임하겠다고 말한 이상 이미 대세는 공직사퇴 쪽으로 기울어진 느낌도 없지는 않다. 鄭의원 개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영수회담에서의 절충은 어차피 鄭의원의 사퇴를 전제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여야가 협상에 실패하고 여당이 일방적인 종결선언을 할 경우에도 鄭의원의 사퇴 없는 일방종결은 그만큼 국민적 공감을 얻기 힘들다는 측면도 있다.

 鄭의원의 9일 발언이 과연 盧대통령과 직접 만나 서로의 의중을 확인하고 난 다음에 이루어진 것이냐는 사실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들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함구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언론의 보도처럼 盧·鄭 면담이 7일 밤에 있었느냐는 여부에 관계없이 鄭의원의 의중은 직·간접적 채널을 통해 盧대통령에게 충분히 전달됐으리라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민정당의 李春九사무총장도 그동안 3차례(지난달20일, 27일과 청와대에서 盧대통령의 질책을 받았던 지난6일)나 鄭의원과 접촉, 鄭의원의 심중을 충분히 총재에게 전달할 수 있었고 8일 낮에는 徐東權안기부장이 마지막으로 鄭의원의 의중을 확인해 盧대통령에게 보고했다는 것이다. 특히 李총장이나 徐부장은 鄭의원과 만난 자리에서 최악의 경우 盧대통령이 통치권적 차원에서 출당조치까지도 검토할 수 있다는 뜻을 전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鄭의원이 자신의 거취와 관련하여 내세웠을 가능성이 있는 조건은 대체로 4가지로 요약된다.

 그 첫째는 자신의 퇴진으로 5공청산의 모든 것이 매듭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그가 청와대측과의 교섭과정에서 굳이 李源祚의원과의 연계를 극구 배제, 혼자서 ‘속죄양’이 되기를 자처했던 것은 일응武骨다운 호연지기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그가 李의원을 ‘동반’하지 않은 실제 이유는 光州문제의 책임을 희석시키기 위한 고단수의 정치적 포석 때문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5共비리를 크게 光州문제와 경제적 비리로 나눌 수 있다면 李의원의 이름을 함께 거명할 경우 李의원은 경제비리의 책임을 지는 셈이 되고 鄭鎬溶의원은 따라서 光州문제의 책임을 도맡는 꼴이 된다. 鄭의원의 호연지기는 결국 실리를 밑바닥에 깐 정치적 도박이라는 것이 그에 관한 비판론자들의 분석이다.

 두 번째는 全씨의 증언도 마무리 차원의 축소증언 형태로 이루어져야 하며 이 수순이 끝난 다음에는 全씨에게 더 이상의 제약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박철언·김복동씨 겨냥했다는 분석도

 셋째로 대통령 친인척의 정치적 활동 배제 요구이다. 이는 그동안 당내에서 줄곧 물의를 일으켜왔던 朴哲彦정무장관을 견제하고 金復東씨와 琴震鎬씨까지도 겨냥, 자신이 여권내 파워게임에서 밀렸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한 사전 다짐일 수도 있다.

 끝으로 그동안 鄭의원지지 서명운동과 관련, 서명파에게 가해질 수도 있는 정치적 불이익을 없애려는 배려로 생각할 수 있다. 9일 鄭의원이 “나를 비롯, 나를 지지하는 사람 모두가 다 총재의 뜻을 받들겠다고 행동해 왔던 것이지 당론을 어기려 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보기에는 당론 따로 현실 따로 노는 것 같아서 말을 해왔던 것이다”라고 말한 것도 이같은 사정을 염두에 두었음직하다.

 정가 관측통들의 분석에 따르면 이 4가지 조건 중에서 全씨 증언과 관련된 부분만 제외하고는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全씨 증언에 대해서는 지난번 여야중진회담에서의 합의사항이 있고 百潭寺측의 요구도 절충해야 하므로 盧대통령으로서도 그리 쉽게 결정지을 수 있는 여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朴哲彦정무장관 등 친인척 문제에 대해서는 그동안 당내 중진급 인사들에 의해서 친인척 정치활동 배제를 요구하는 진언이 몇 번이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전례를 생각할 때 무엇인가 가시적인 조치가 내려질지는 미지수이다. 그러나 李春九사무총장이 지난 8월 당정개편설 사전유포와 관련 朴장관의 자제를 요청한 이후 2번째의 진언을 했고 특히 鄭의원 지지의원들에 의해 조직적이고 집단적인 불만 야기로까지 발전했으므로 이번에는 잠정적이나마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조치가 불가피한 것으로도 보인다. 이는 연말쯤으로 예상되고 있는 당정개편의 내용이 드러나면 확인될 수 있는 사항이다.

 

이원조 의원 둘러싸고 평민·민주 갈등

 鄭의원의 9일 발언은 5공청산의 구체적 방안에 대해 야3당이 서로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으므로 이들의 주장이 결코 합치될 가능성이 없다는 판단하에 이루어졌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야권이 그들에게 다시 넘어온 공을 처리하는 문제에 대해 아직 전열을 정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날아온 공을 얌전하게 리시브하느냐 아니면 ‘백 어택’의 역공을 하느냐는 선택은 야3당 총재들의 회동에서 최종적으로 결정될 사항이지만 야권내 미묘한 역학관계 때문에 쉽게 해결될 수 없는 커다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5공청산의 방법과 관련해 평민당과 민주당 사이의 이해가 서로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평민당으로서는 아직 안심할 단계까지는 이르지 못했지만 鄭의원의 공직사퇴까지는 여권으로서도 양해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파악하고 협상 과정에서의 최대 걸림돌은 일단 넘어섰다는 비교적 느긋한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으로서는 “李源祚의원의 공직사퇴 없는 5공청산이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에서 한걸음도 물러서지 않을 태도이다.

 李의원의 공직사퇴 또한 鄭의원의 퇴진과 마찬가지로 지난번 야3당 총재회담의 공식적 합의사항일 뿐더러 5공비리특위의 위원장까지 맡았던 민주당으로서는 5공비리의 상징적 존재인 李의원만큼은 결코 양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민주당으로서는 李의원이 지난 대통령 선거 직전 야권의 분열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확신’을 가지고 全斗煥씨가 국회증언을 통해 그 부분과 관련된 사실을 소상히 밝혀주든지 아니면 李의원을 공직사퇴시키든지 둘중의 하나를 선택하라는 강공 일변도의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

 민주당이 李의원 처리문제를 계속 고집해서 합의에 의한 연내 5공청산이 힘들어질 경우 그 부담이 전부 민주당에 돌아올 위험이 있으므로 결국은 물러서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정가의 관측도 있다. 그러나 현재 민주당의 태도로는 그럴 가능성이 희박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민주당의 姜三載대변인은 “평민당과 공화당에서는 李의원 문제에 관해 우리가 적당한 선에서 후퇴해 주기를 바라는 모양이나 우리로선 절대 그럴 수 없다는 점을 명백히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민주당의 ‘막판뒤집기’배제 못해

 민주당이 李의원의 사퇴를 계속 주장하는 한 평민당으로서도 이런 민주당의 태도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야3당 총재회담에서 합의했던 사항이므로 이를 지켜야 한다는 측면에다 李의원 문제에 소극적으로 나올 경우 민주당의 평민당에 대한 의혹을 더욱 굳혀주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런 전후사정을 고려한다면 여권과 야권이 타협안 사이에는 아직도 상당한 거리가 있는 셈이고, 특히 야3당 사이에는 이해가 엇갈려 있어 영수회담 이전에 야3당 간의 이견이 절충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그러나 5공청산 정국 이후의 주도권을 놓고 평민당과 민주당이 신경전을 벌이고는 있지만 李源祚의원 문제가 걸림돌이 돼서 5공청산이 안된다는 구실로 정부 여당이 일방 종결을 선언할 수 있는 시점에까지 이르면 민주당이 결단을 내릴 가능성도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럴 경우 민주당으로서는 거국적이고 대승적인 차원에서 자신들이 희생했다는 명분을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권에서는 14일쯤, 늦어도 이번 주내에는 盧대통령과 야3당 총재와의 영수회담을 갖는다는 계획이다. 민정당은 이에 따라 朴浚圭대표가 10일 공화당의 金鐘泌총재와 접촉한 데 이어 11일에는 金大中 평민, 金泳三 민주당총재와 각각 접촉을 갖고 영수회담과 관련한 사전정지작업에 들어갔다.

 

여권, ‘일방종결’ 명분 얻을 수도

 그러나 청와대 영수회담으로 가는 길목에는 또 하나의 걸림돌이 작용하고 있다. 민정당이 개별회담을 원하고 있는 반면 민주당과 공화당은 4당 연석회담을 주장, 의견이 서로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평민당은 이에 대해 겉으로는 개별이든, 연석이든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으나 연석회담에 대해서는 상당히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 연석으로 회담이 이루어질 경우, 그나마 조성된 여야 합의 분위기가 야3당 간의 선명성 경쟁으로 인해 깨질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영수회담 이전의 야3당 총재회담에 대해서도 평민당은 소극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평민당이 청와대 영수회담 이전에 야3당 총재회담을 갖는 것은 스스로 족쇄를 채우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럴 경우 야3당 사이에 조정된 내용 이상의 소득을 얻을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협상 폭이 줄어들 수밖에 없고 그만큼 얻을 수 있는 효과가 적어진다는 것이다.

 야권의 이러한 분열상은 결과적으로 일방종결로 가는 여권의 명분을 더욱 강화시켜 주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여권으로서는 黨의 복종 서약→청와대 개별 영수회담→鄭鎬溶의원 면담→일방 종결선언→민심 수습을 위한 對 국민 담화문 발표 및 대대적 당정개편으로 이어지는 수순을 밟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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