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떨리게 할 ‘보물 창고’ 열린다
  • 안철흥 기자 (epigon@sisapress.com)
  • 승인 2006.05.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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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미술관, 전형필 탄생 100주년 기념전

 
한국 미술사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반드시 놓치지 말아야 할 일정이 있다. 간송미술관 전시다. 1년에 두 차례, 봄·가을 보름씩만 열기 때문에 일정을 맞추지 못하면 두 계절을 기다려야 한다. 그렇다고 소장품을 맘대로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1971년 처음 개최한 <겸재 정선 특별전> 이래 간송미술관은 거의 매년 두 차례씩 문을 열었지만, 대개 개인이나 유파, 시대별로 전시회를 꾸몄다. 그래서 미술관측이 전시 주제에 맞추어 선별한 작품 외에는 일절 볼 수 없었다.

간송미술관의 문이 올해도 열렸다. 그런데 올해 봄 전시는 좀 특별하다. 간송 전형필 선생(1906~1962)의 탄생 100주년 특별전 형식으로 열린다. 간송미술관은 소장하고 있는 미술품 가운데 명품 100점을 골라서 전시한다. 분야도 도자기, 불교 조각, 그림, 글씨 등이 망라되어 있다. 가히 한국 미술사를 한자리에서 일견하고 요약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기회다. 간송미술관을 빼고서 한국 미술사를 서술할 수 없다는 풍문이 헛말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국보 12점 등, 명품 100점 골라 선보여

간송미술관 소장품이 몇 점이나 되는지는 극소수 내부 인원을 빼고는 아무도 모른다(00쪽 상자 기사 참조). 현재 알려진 바로는 간송미술관에는 국보가 열두 점, 보물이 열 점 있다. 하지만 어찌 숫자가 매겨진 것만으로 미술품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을까. 이번 전시회에 나온 작품들은 대부분 국보급이라 보아도 무방하다. 우선 대표적인 작품들을 열거해보자.

 
청자상감운학문매병(국보 제68호)은 간송이 자랑하는 보물 중 보물이자, 현존하는 상감청자 매병 중에서도 으뜸으로 치는 물건이다. 간송은 1935년 일본인이 소유하고 있던 이 청자매병을 되사는 데 거금 2만원을 들였다. 그 돈이면 당시 번듯한 집 한 채 사고도 남을 액수였다. 이밖에 청자 원숭이형 연적(국보 제270호)과 청자 오리형 연적(국보 제74호), 청자 기린형 향로(국보 제65호) 등 다채로운 양식의 도자기 열 점이 전시된다. 이들 대부분은 간송이 식민지 시절 일본인들에게서 거금을 들여 되찾아온 것들이다.

지난해 후반 국보 제1호 숭례문을 다른 문화재로 바꾸자는 논란이 있었다. 그때 새로운 국보 제1호의 가장 유력한 대안으로 제시되었던 문화재가 <훈민정음 해례본>(국보 제70호)이었다. 간송미술관 수장고에 깊숙이 보관되어오던 이 문화재가 이번에 공개된다. 계미명금동삼존불입상(국보 제72호)과 금동삼존불감(국보 제73호) 등 백제와 고려를 대표하는 불교 조각들도 오랜만에 바깥 나들이를 한다.

 
무어니 무어니 해도 간송미술관의 명성을 뒷받침해주는 명품은 역시 글씨와 그림에서 찾을 수 있다. 안평대군의 유려하면서도 아담한 글씨와 한석봉의 굳세고 꾸밈없는 글씨를 거쳐 그 유명한 추사 김정희의 ‘명선(茗禪)’에 이르기까지 조선 전기·중기·후기의 명작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글자 하나의 크기가 어른 머리보다 훨씬 큰 ‘명선’은 현존하는 추사 글씨 중에서 가장 크다. ‘차를 마시며 선정에 들다’는 뜻을 함축한 글귀로, 귀양에서 돌아온 추사가 차를 보내는 초의선사에게 고마운 뜻을 담아 보낸 글이다.

진경시대 문화의 우수성 확인할 기회

조선 후기 회화들은 특히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간송학파를 대변하는 진경시대라는 용어가 바로 이 조선 후기 회화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정립되었다. 이번 전시의 고갱이도 바로 이들 조선 후기 회화들이다. 겸재 정선의 <풍악내산총람(楓岳內山總覽:풍악내산을 한데 합쳐 살펴보다)>은 겸재가 절정기에 그린 득의작(得意作)으로, 진경산수의 실체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역시 겸재의 그림인 <청풍계(淸風溪)>에는 현재 우리가 보는 인왕산 동쪽 기슭의 자태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풍속화가로만 알려

 
져 있는 단원 김홍도가 실은 ‘문기(文氣)’ 흐르는 산수화를 즐겨 그렸다는 사실도 간송미술관의 소장품을 통해 드러났다. 또 <미인도>를 비롯한 혜원 신윤복의 대표적인 풍속화들이 이번 전시에 모두 나온다.  

전시되는 작품들은 모두 간송이 1930년대부터 1962년 급서하기 전까지 모은 것들이다. 10만 석지기 부자이던 간송은 일본이 빼돌린 문화재들을 되사들이는 데 평생에 걸쳐 전 재산을 털어 넣었다.

간송과 관련해서는 소설 같은 일화가 많다. 겸재 정선의 ‘해악전신첩(海嶽傳神帖)’이 친일파 송병준의 집에서 아궁이 속으로 사라지기 직전 눈에 띄어 지금까지 전해지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다. 훈민정음을 사러 내려간다는 헌책방 주인에게 “얼마 들고 가요?”라고 묻고는 “1천원”이라는 답에 6천원을 내주며 “1천원은 수고비요”라고 했다는 말도 전한다. 간송은 1937년 일본 도쿄에서 영국인 수집가 존 가스비의 청자 소장품 수백 점을 통째로 되사온 것을 계기로 미술관 설립에 나선다.

 
간송은 1934년 고양군 숭인면 성북리(현 성북동)에 1만여 평의 땅을 사들여 ‘북단장’을 건립하고 위창 오세창, 월탄 박종화, 청전 이상범 등 당대의 일류 문사·예술가들과 교류했다. 그리고 1938년 그 터에 국내 최초의 사립 미술관 보화각을 세웠다. 보화각은 1966년 간송미술관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간송이 남긴 미술품을 지켜온 한국민족미술연구소 최완수 연구실장은 “조선 후기 문화의 황금기인 진경시대 문화의 우수성과 우리 고유 이념에 기초한 고유색을 밝혀낼 수 있었던 것은 다 간송의 소장품 덕이다”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는 간송이 직접 쓰고 그린 글과 글씨 여덟 점도 함께 선보인다.
전시회 기간은 5월21~6월4일. 이번 전시회 역시 무료다. 문의 02-762-0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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