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인들이 왜 반대했지?”
  • 안철흥 기자 (epigon@sisapress.com)
  • 승인 2006.05.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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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치 코드> 제작진, 교 회 반발을 홍보에 ‘이용’…감독, 개봉 뒤에야 허구 인정

 
매진이 아니라면 더 이상했을 것이다. 론 하워드 감독의 영화 <다빈치 코드>가 5월18일 전세계에서 동시 개봉했고, 예상대로 첫날부터 관객을 유인했다. 영화 제작이 결정된 때가 2004년 11월이고, 첫 티저 포스터가 공개된 것은 올해 1월 초다. 더 거슬러 올라가 원작 소설이 발표된 때가 2003년 봄이니까, ‘인류’는 만 3년째 ‘다빈치 코드 신드롬’에 빠져 있는 셈이다.

흥행과 작품성을 함께 보장하는 영화는 사실 드물다. 더구나 널리 읽힌 소설을 영화화한 것 치고 원작보다 더 낫다는 평을 듣는 작품은 별로 없다. <반지의 제왕> 정도가 예외지만, 1950년대 출간된 두껍고 난해한 이 판타지 고전을 미리 읽고 극장에 간 관객은 많지 않다. 전세계 40개 나라에서 4천3백만 부가 팔린 초대형 베스트셀러를 영화로 만들었다면 어떨까. 개봉 당일 극장에서 첫 대면한 영화 <다빈치 코드>는 징크스에서 벗어나기에는 힘에 겨운 듯 보였다. 

영화, 소설 잘 요약한 설명문 같아

복잡한 퍼즐 같은 소설을 2시간20분에 담아내기 위해 카메라는 바쁘게 움직였다. 로버트 랭던(톰 행크스)과 소피 느뵈(오드리 토투), 그리고 이들을 쫓는 오푸스데이의 ‘자객’ 사일러스(폴 베타니)가 시종 잰걸음으로 화면 위를 뛰어다녔지만, 내용을 숙지하고 있는 관객들에게 영화는 더 이상 ‘미스터리 스릴러 어드벤처’(영화사 홍보 문구)가 아니었다. 더구나 지루함을 피하고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 해석과 중세 기독교사에 관한 설명 등을 과감히 압축해버린 바람에 원작이 풍기던 인문학적 품격마저 사라졌다. 몇몇 장면이 원작과 다르기는 하지만, 영화는 소설 내용을 잘 요약한 독창성 없는 설명문 같았다. 

대신 론 하워드 감독은 영상의 무게로 흠집을 덮고자 했다.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그림을 컴퓨터 화면에 띄워 놓고 마우스로 조작해가며 막달라 마리아가 성배임을 ‘입증’하는 장면은 흥미로웠다. 루브르 박물관·빌레트 성·템플 교회·로슬린 성당 등에서 직접 촬영한 영상들은 마치 문화유산 답사기를 영화로 만든 것처럼 화려한 볼거리를 선사했다. 루브르 장면 중 일부는 작품 훼손을 막기 위해 세트를 지어놓고 촬영했는데, 그림의 질감이나 실내 구조 등이 실제 루브르인 양 감쪽같았다. 순제작비만 1억3천만 달러(약 1천2백30억원)가 들었다는 말이 실감났다.

기독교 비판 덕에 ‘문화적 코드’로 격상

작품성에 대한 혹평이 이어지고 있지만, 영화는 마케팅 차원에서만큼은 확실한 비법을 선보였다. ‘영화 제작을 둘러싼 정보는 최대한 공개하되, 내용만큼은 확실히 숨겨라.’ 1년 반에 걸친 제작 기간에 이런 원칙이 철저히 지켜졌다. 원작자 댄 브라운이 텔레비전 시리즈 대신 영화를 택한 배경에서부터 여배우 캐스팅을 둘러싼 비화까지 온갖 뒷얘기들이 보도 자료 형태로 뿌려졌다. 제작진은 아예 모든 제작 과정을 담은 가이드북 <다빈치 코드 팬북>을 영화 개봉 날짜에 맞추어 세계 35개 나라에서 동시 출간했다. 하지만 내용만큼은 철저히 함구했다. 개봉 전까지 기자 대상 시사회도 없었다. 특히 기독교 단체들을 향한 무대응 전략이 톡톡히 효과를 낳았다. 

 
“기독교인들이 왜 반대했지?” 영화를 보고 극장을 빠져나오는데 곁에서 이런 말이 들렸다. “한기총(한국기독교총연합회)에서 지금까지 영화 홍보를 맡아줬구먼.” 누군가가 맞장구쳤다. 기독교계의 반발은 영화 제작이 결정되었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여러 나라의 기독교 단체들이 우려를 표시했고, 한기총은 법원에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원작에서 ‘비밀 결사단체’로 묘사된 오푸스데이는 영화는 허구라는 사실을 자막으로 명시할 것을 요구했다.

제작진은 표면적으로 개봉 때까지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지만, 영화를 보면 론 하워드 감독이 기독교계의 반발을 의식한 흔적이 보인다.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아내였으며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 임신 중이었다는 설정은 소설과 같다. 그러나 민감한 내용들이 영상보다 대사로 주로 처리된 바람에 소설을 처음 대했을 때의 긴박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소설이 자세하게 묘사한 교황청과 오푸스데이의 음모는 지나가는 컷 속에 슬쩍 끼워 넣어져 있다. 칸 영화제에 참석한 론 하워드 감독은 영화를 개봉한 후에야 “영화는 픽션(허구)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영화 제작진이 기독교계의 반발을 홍보에 이용하기 위해 일부러 함구했다는 혐의가 짙다. 비난도 도움이 된다는 점은 마케팅의 기본이다. 한기총의 ‘다빈치 코드 특별대책위원회’ 위원장 홍재철 목사가 “상영관 앞에 바리케이드를 치겠다”라고 말한 직후 한국에서 영화 <다빈치 코드>는 단순한 상업 영화에서 ‘문화적 코드’로 격상되어 버렸다. ‘비난을 통한 홍보’는 원작 소설을 초대형 베스트셀러로 만드는 데에도 한몫했다. 교황청이 공식적으로 소설을 비난한 뒤, 로마 교황청을 방문한 관광객들의 손에 가이드북처럼 <다빈치 코드>가 들리기 시작했다.

제작진의 치밀한 마케팅 전략 덕분에 영화 <다빈치 코드>는 일단 흥행을 위한 순조로운 스타트를 끊은 듯하다. 한국에서만 개봉 첫날 24만 명이 전국 4백50개 개봉관에서 영화를 관람했다. 이는 올해 한국에서 개봉한 외화 중 가장 좋은 성적이다.

그럼 <다빈치 코드>는 장기 흥행작 대열에 끼일 수 있을까. 칸 영화제에 참석 중인 주연 배우 톰 행크스가 이런 질문을 받았는데, 그의 말을 전하면 이렇다. “(제작자) 브라이언 그레이저가 금요일(개봉 이틀째)까지 3백만 달러(약 28억원)를 벌어들인다고 장담했다.” 그럼 그 다음은? 물론 톰 행크스도 궁금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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