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세의 나이로 세상떠난 호로비츠의 음악세계
  • 박은희(피아니스트) ()
  • 승인 1989.1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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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주의의 거장 피아니스트 루빈스타인이 9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을 때는 그래도 또 한 사람의 낭만파 거장인 호로비츠가 남아서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연주할 수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내심 안도감을 느꼈었다.

 그러나 끝내, 20세기를 마지막하는 1990년대를 앞두고 호로비츠옹도 세상을 떠났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다. 그러나 미국인보다는 소련인들의 사고방식을 훨씬 긍정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사람들은 어디를 가든지 선과 악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나는 곧 선을 찾아가는 것이다. 소련에서 선이란 곧 그들이 만드는 음악이다.”

 1904년 키에프에서 출생한 그는 61년만에 고국 소련을 찾아 모스크바음악원홀에서 연주할 수 있었다. 21세의 젊은 나이에 조국을 등지고 망명생활을 시작했으나 그는 끝내 고국을 잊지 못했고 84세의 나이로 다시 모스크바를 방문하여 일생일대의 역사적인 사건을 마련했던 것이다. 당시 미국과 유럽에 텔레비전을 통해 중계된 연주는 참으로 인상적이었고 감격적이었다. 청중들 중, 순수건을 꺼내어 눈물을 닦는 여인들의 모습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무뚝뚝한 고위층의 부릅뜬 눈에서도 역시 묘한 감동의 빛이 어른거렸다. 그날의 연주는 호로비츠가 러시아의 피가 흐르는 피아니스트임을 새삼스럽게 입증해주었다.

 호로비츠의 명반으로는 역시 차이코프스키, 라흐마니노프를 들 수가 있는데 말년에 녹음된 모차르트의 음악세계는 그의 독특한 해석으로 펼쳐진 연주로서 새롭게 그를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철학적이면서도 이지적인 정서를 투명한 피아노 음색에 담아내는 그는 매번 연주 때마다 색다른 분위를 연출해내어 긴장과 기대속에 새로운 흥분감을 맛보게 한다.

 기교의 대가로서 뿐만 아니라 완전 개성파로 음악적인 어법이 남달리 예민한 그는 피아노앞에 아주 낮게 앉아서 손가락을 쫙펴고 연주한다. 몹시 거북해 보이나 본인은 유연한 팔꿈치와 손목의 율동으로 너무도 자연스럽게 음악을 끌고 나간다. 격조높은 연주는 그리 흔치 않다. 호로비츠의 위대성은 위대한 예술을 만들려는 의지와 노력에서 그 가치가 더욱 높이 평가되고 있다고 보겠다.

 1978년이라 기억된다. 세계 전역에 걸쳐 중계된 백악관 초청연주 때의 모습이 너무도 또렷하게 기억난다. 조금은 냉정하면서도 명쾌하고 온화한 인상으로 무대에 올라 휘몰아치는 돌풍과도 같이 청중을 휘어잡고야 마는 그를 전세계는 놀랍게 바라보고 있었다.

 토스카니니의 딸 완다와의 결혼 후 미국에 정착해서 최초의 침묵시간을 가졌고 그후 새롭게 근 12년간의 긴 은둔생활로 들어갔다. 자기성찰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였다. 그는 연주생활의 긴장을 이렇게 피력한다.

 “늘 기차를 타고 다니며 연주를 주4회 이상해야 하는 피로감에 지친 생활이 싫어졌다. 조용히 평화로운 생활을 즐기고 싶다.”

 생전에 딸 소니아를 잃고 상심한 적도 있는 그는 엄격한 완벽주의자에 신경질적인 결벽성까지 더해 많은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피아니스트들과는 달랐다. 온세계 젊은 피아니스트들의 우상으로서 우뚝 솟은 호로비츠의 자리를 물려받을 만한 후계자가 없다는 것이 세계 음악애호인들의 절실한 아쉬움이다.

 우리로서는 무엇보다도 아쉬운 것이 그의 무르익고 세련된 음악을 한국 청중들이 실제로 들어볼 수 없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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