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IP직배는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
  • 이성남 기자 ()
  • 승인 1989.1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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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IP는 미국 4대 영화사인 MGM, UA, 유비버설, 파라마운트의 작품을 세계영화시장에 수출하는 다국적 영화 배급회사로 한국 상륙은 세계 42번째이다.

 미국 영화업자가 한국 극장과 집적 거래할 수 있는 법적인 발판은 86년의 제6차 영화법개정을 통해 마련되었다. ‘외국인 및 외국법인의 영화업 등록금지’조항이 삭제된 것이다. 그동안 은밀하게 시장조사를 해온 UIP는 한국이 잠재력이 큰 황금시장임을 파악하고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고조된 개방 분위기를 틈타서 슬그머니 상륙했다. 이에 맞서 한국영화인들은 과격한 투쟁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얼핏 보아 ‘미제 배격, 민족 자주’를 표방하는 반미운동과 궤를 함께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UIP 저지투쟁에 많은 사람들이 양담배 불매운동에 참여하는 기분으로 UIP영화 보기를 미뤄왔다. 그러나 관객을 볼모로 삼는 영화인의 폭력적 투쟁은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키는 데는 잠시 성공했지만 폭넓은 공감과 지원을 얻는 데는 실패한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 YMCA시민자구운동본부에서 10월14일부터 21일까지 서울시내에 거주하는 중학생이상 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UIP 영화에 대한 시민의 반응이 분명히 드러난다. 외국영화 직접배급의 영향에 대한 의견을 묻는 설문에 대해 ‘한국영화계를 점령하게 되어 외국문화가 판을 치게 될 것이다’가 26.1%이고 ‘입장료 수입이 외국으로 빠져나가므로 경제적 손실이 크다’가 18.1%로, 부정적의견이 전체의 44.2%를 차지하고 있다. 이에 반해 ‘영화계를 자극하여 한국영화의 질적 발전에 보탬이 될 것이다’가 24.9%, ‘좋은 영화를 보다 쉽게 그리고 많이 접촉할 수 있을 것이다’가 9.7%로, 긍정적 의견이 전체의 34.6%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관람한 영화’를 묻는 설문조사의 결과는 대단히 역설적이다. 응답자 7백8명 중 가장 많은 수효인 1백58명이 관람한 영화가 바로 UIP직배영화인 <인디아나 존스>였고 두 번째로 많은 1백11명이 관람한 <레인맨> 또한 UIP영화라는 사실은 한국 관객의 이율배반적인 의식구조를 단적으로 증명한다고 할 수 있다.

 뱀소동과 최루탄 투척사건이 터지는 중에도 <인디아나 존스>와 <레인맨>을 관람한 관객의 수는 상위 20권 안에 든 국산영화 5편 곧 <행복은 성적순이…><서울무지개><매춘><달마가 동쪽으로…><그후로도 오랫동안>을 관람한 관객수효를 합친 것보다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현상이 직배든 아니든 영화만 좋으면 무엇이든 본다는 관객들의 태도에서 기인한 것임은 두말한 나위도 없다.

 그러나 한국영화라면 무조건 싸잡아 매도하기 전에 먼저 영화산업계의 구멍가게식 경영구조와 열악한 제작여건을 들여다보자.

 여기에서 그냥 보아넘길 수 없는 사실은 한국영화제작이 흥행업자들에 의해 주도되어왔다는 점이다.

 서울ㆍ변두리지역, 경기ㆍ강원지역, 충청지역, 경상지역, 부산ㆍ변두리지역, 전라ㆍ제주지역의 6개 배급조직을 장악하고 있는 소수의 흥행업자들이 영화제작에 끼치는 영향은 실로 막강하다. ‘영화 한편의 제작비가 집 한채값’인 현실에서 제작비를 미리 조달해주는 흥행업자들의 ‘마이다스적인 입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영화제작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

 한국의 1백여개 영화사에서 제작한 영화 대부분이 한결같이 “최소한의 인원으로 최대한의 정사 장면을 집어넣어 제작비를 줄인다”는 원칙(?)에 충실하여 만들어진 저열한 영화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영화를 예술로서보다는 돈벌이의 수단으로만 여기는 흥행업자의 요구에 영화계가 항복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그런 모든 사실을 알고도 묵인하거나 도리어 조장해준 정책당국의 책임이 크다 하겠다. 한국영화의 육성을 도모하는 진흥책이라기보다는 체제유지를 위한 규제책으로 악용해온 역대 한국영화정책이 결국 한국영화의 자생력을 고갈시켰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국영화계가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는 가운데, 제42회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林權澤 감독의 <아제아제 바라아제>에 출연한 배우 姜受延이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고, 스위스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신예감독 裵鏞均이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한 사실은 암울하기 만한 한국영화계에 비쳐온 한줄기 서광이 아닐 수 없었다.

 90년대 한국영화의 새 지평을 열기 위해서는 충무로식 의식- 영화법탓, 제도탓, 검열탓, 외화수입 자유화탓, 영세한 자본탓, UIP탓, 시나리오탓, 감독탓, 배우탓만 들먹이며 스크린 쿼터에만 의존하고 외설영화만 양산해온 충무로 매너리즘의 과감한 청산이 우선되야 한다는 한 영화인의주장이 그 어느 때보다도 설득력있게 들린다.

 <달마가 동쪽으로…>는 철저히 脫충무로식 방법으로 기획ㆍ제작ㆍ완성되지 않았는가? 이러한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영화정책 속에서 한국영화는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게 젊은 영화인들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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