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가르며 “내 몸뚱이를 사라 ”
  • 김당 기자 ()
  • 승인 2006.05.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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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시장 현장 취재‘범죄인 취급 잦은 단속 성토, 바람막이라도 설치해주기 바래

3월12일 종로5가 뒷골목 봉제공 시장

오후 1시30분쯤 종로5가 보령약국 옆 골목길로 1백미터쯤 들어가니 널찍한 길이 나오고 그길 양쪽으로 수십명의 젊은이들이 모여 있다. 거개가 20∼30대 남자들인 이들은 인근에 산재해 있는 가내봉제업체에서 주급 또는 월급제로 일하러 나온 봉제공들이다.

잠시후 안면이 있는 젊은이들끼리 서너명씩 짝을 지어 서로 주고 받은 ‘정보’를 종이에 열심히 적고 있다. 그 정보란 대개 ‘어디서 얼마에 어떤 사람을 구한다 ’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일자리를 찾는 봉제공들도 많지만 실은 일자리가 있으면서도 더 나은 곳을 알아보려고 나온 사람, 언제 옮겨갈지 모르는 종업원들을 벌충하려면 미리 얼굴도 익히고 다른 업주들과 정보도 교환해야겠기에 나온 업주, 그리고 업주들의 의뢰로 ‘시다 ’(조수)를 구하러 나온 재단사들도 많다. 이들의 임금수준은 시다가 25만∼35만원, 재단사보조는 50만∼60만원, 재단사는 기술에 따라 70만원에서 1백20만원까지 받기도 한다.

이같은 봉제공 시장은 청계6가 동화시장에도 서는데 아무래도 그곳은 청계천과 평화시장 일대에 점포를 두고 직접 물건을 내다파는 ‘제품집 ’이 많은지라 시장규모가 더 크다고 한다. 자신의 이름을 본뜬 ‘금석패션 ’이란 봉제업체의 사장인 나금석(33)씨는 “나도 지난 76년에 인력시장에 처음 나와 지금처럼 서성거리다 이 바닥에 첫발을 디뎠다 ”면서 “그때만 해도 종로통에 시장이 섰는데 보행에 지장을 주고 미관상 안좋다고 해서 골목길로 내쫓긴 것 ”이라고 이곳의 내력를 들려준다. 나씨는 “그때만 해도 시다생활 시작해 악덕업주 만나면 알량한 기술 가르친다는 핑계로 땡전 한푼 못받고 일하기 십상이었고 많아야 2만원씩 받았다 ”면서 “그런데 지금은 부르는 게 금이고 그나마 선뜻 나서는 사람도 드물어 애를 먹는다 ”고 푸념한다.

2시30분쯤 파장이 되어 인근에 있는 한성다방으로 들어가자 아직 거래상담이 채 끝나지 않은 듯한 몇몇 패거리들이 테이블에 앉아 있다. 이 바닥 경력이 14년째인데 월급은 65만원이라는 아이롱사 이영석(31)씨는 이곳이 구로공단보다 월급은 조금 높은 편이나 ‘의-퇴-   보 ’(의료보험, 퇴직금, 보너스)가 없고 노동시간이 더 길기 때문에 갈수록 일손 구하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인간시장 ’에서 1주일 노는 것은 노는 게 아니라는 이씨는 “업주들도 재단사 한명이 보조, 시다들을 꿰차고 데리고 나가면 문닫기 일쑤라 이래저래 이곳 인력시장은 붐비기 마련인데 성수기에는 열에 다섯쯤, 오늘은 열에 두셋쯤 거래가 성립했을 것이다”고 오늘의 ‘매기 ’를 진단한다. 그러자 곁에서 듣고 있던 다방주인 김평자(38)씨가 거들기를, “일감이 많을 때는 모셔갔다가 일감이 줄면 자르기 일쑤인 업주들도 문제 ”라면서 “그래서 인간시장이 생기는 것 아니겠느냐 ”고 나름대로 세태를 진단한다.

 

3월13일 남대문시장 입구 중국집 조리사 시장

아침 7시쯤 남대문로 지하상가 입구 버스 승강장 주변에 30∼40대로 보이는 사람들이 20∼30명 모여 있다. 남대문시장을 중심으로 북창동과 남창동쪽에 형성된 이곳 인력시장은 지금은 중국집 조리사 시장으로 ‘전문화 ’되었지만 예전에는 잡화점식으로 각종 막벌이꾼들이 남대문과 서울역을 중심으로 날품을 팔던 이른바 ‘인간시장의 원조 ’이다. 그러나 점차 날품팔이들이 도심 재개발과 잇따른 철거조처로 변두리로 밀려나면서 성남 등지의 신흥 인력시장으로 옮겨가고 날품의 ‘업종도 분화 ’되면서 어느새 중국집 식솔, 그중에서도 주방장들이 대종을 이루게 되었다. “짱깨집 경력 10년 ”이라는 박인수(29)씨에 따르면 장안의 중국집 식솔치고 이곳을 거치지 않은 사람이 없다. 그 식솔들은 이곳에서 소개를 받아 ‘배달뽀이 ’부터 시작해서 주방일을 배우게 되는데 ‘싸환 ’(그릇닦이)부터 면을 뽑는 ‘라면 ’, ‘캉고 ’(주방장보조), 칼질하는 ‘칼판 ’을 거쳐 정통 코스를 밟은 주방장이 되려면 5∼7년이 넘게 걸린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도 옛날에 비하면 짧아진 것이다. 박씨는 “손으로 면을 빼던 시절에는 기술 배우는 기간이 길어 주방장 되기가 힘들었는데 지금은 개나 소나 중국집 들어오면 얼마 안 있어 ‘기술자 ’를 자처하는 통에 다 기술자고 주방장이다 ”는 말 끝에 ‘중국집 주방장 끝발 날리던 시절 ’ 얘기를 들려준다. 요컨대 70년대만 해도 주방장들이 뽀이들 두들겨패면서 기술 가르쳤는데 지금은 주방장은 쌔고 쌨고 배달원은 구하기 어렵고 뭐든지 귀하면 대우받는 세상이라 배달원이 왕이라는 얘기였다.

박씨의 말대로 여기 나온 사람들은 거개가 주방장들이고 배달원들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이들의 임금수준은 월급제일 경우, 싸환이 30만∼40만원, 라면이 50만∼60만원, 주방장은 60만∼870만원이다. 일당제로는 보통 2만5천원쯤인데 본디 유동 인력이 많은 탓도 있지만 주인에게 매인 몸이 되기 싫어 일부러, 또는 집 가까운 곳에 자리가 생길때까지 임시방편 삼아 일당제로 뛰는 주방장들도 많다.

일당제일 경우 구직자가 근처에 몰려 있는 직업소개소에 가서 중국집 상호가 적힌 명함(일명 딱지)을 골라잡아 1천5백원을 내고 그 딱지에 소개소의 싸인을 받아 중국집으로 전화를 걸고 찾아가면 거래가 성립된다. 딱지는 많은데 사가는 사람이 드물거나 인력시장이 파장할 무렵이면 소개소 직원이 ‘시장 ’ 근처로 슬슬 나와 재고(딱지)를 1천원이나 5백원에 ‘세일 ’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소개소에 대한 불만이 크다. 일당에서 ‘개비 ’ (소개비)니 중국집 찾아가는 차비니 해서 “따귀 빼고 기름 빼면 손에 쥐는 것은 몇푼 안된  다”는 말이다.

그러나 더 큰 불만은 표리부동한 정부 정책과 자신들을 범죄인 취급하는 경찰의 잦은 단속에 대한 것이다. 일당제로 뛰러 나왔다는 한 주방장은 “지난 2월27일에 노동부에서는 편의시설을 마련해 인력시장을 육성하겠다고 했으면서 경찰은 그 다음날과 3월초에도 단속을 나와 멀쩡한 사람을 붙잡아 갔다 ”면서 자신은 중부경찰서에 잡혀가 오후 5시에 풀려나왔으나 주민등록증이 없는 사람은 며칠째 고생했다고 불평을 털어놨다. 그러자 옆에 있던 주방장 조시태(32)씨도 “인간시장이라는 곳이 어차피 춥고 배고픈 사람이 나오는 곳이지 등 따시고 배 부르면 누가 나오겠느냐 ”고 반문하면서 “그러나 돈 벌러 나온 사람들이지 도둑질하러 나온 사람이 아닌 바에야 바람막이라도 설치해 도와주어야 마땅한데 정부에서는 재만 뿌린다 ”고 거든다.

 

3월14일 사당동 건축 인부 시장

새벽 5시쯤 되어 포장마차 근처에 여남은 사람이 모이길래 사진기자가 플래시를 터뜨리자 대뜸 한 사람이 “아침부터 재수없게시리, 필름 내놔 ”라고 달겨드는 통에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가까스로 무마하긴 했으나 ‘일용노조 ’가 생긴 것 아느냐고 물어도 여전히 심기가 상했는지 “미쳤다고 돈벌어서 그놈들 좋은 일 시켜주느냐 ”고 핏대를 올린다.

이곳에 모인 인력은 철근일, 공그리(시멘트 섞는 일), 아시바(건축 현장에 골조를 세우는 일) 같은 공사판 일 부림꾼이 대종으로 40∼50대 연령층이 많다. 이들은 오야지(목대잡이)들한테 낱낱이 불려가기도 하지만 대개 팀을 이뤄 현장으로 가게 되는데 날삯은 3만5천원부터 4만5천원까지. 물론 일거리 많을 때가 그 정도이고 날품거리는 적고 품팔이꾼이 많은 비수기 대는 3만원쯤이다.

5시30분쯤 되자 ‘환경정비 ’라고 쓰인 완장을 찬 두 노인네가 리어카를 끌고 나타났다. 두 노인은 사당2동에서 ‘새마을 인건비’조로 일당 8천원을 받고 날마다 새벽 4시30분부터 9시까지 이 동네 환경미화를 맡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들이 맡은 가장 중요한 작업은 이곳 인력시장에서 불을 지피고 그 불을 관리하는 일이다. 오늘처럼 5시반쯤에 불을 지피고 ‘시장 ’이 파하는 8시쯤에 불을 끈다. “이름은 뭐땜시 물어보냐 ”며 그냥 사당2동 새마을계 할머니라고 쓰라는 그 노인은 “요새 인건비 올리려고 업주가 데리러 와도 안가는 사람이 많다 ”며 “그래서 소문이 안좋게 나 데리러 오는 사람도 뜸한 것 같다 ”고 여기의 쌀쌀한 새벽 ‘공기 ’를 전한다.

 

3월15일 성남 복정동 날품시장

6시30분쯤 성남시 초입에 있는 복정일용노동조합 사무실 근처 허름한 타이탄 한 대가 길가에 서더니 “삽일 2명 ”이라고 외쳤다. 그러자 흥정이 붙었는데 ‘사자 ’쪽은 3만원, ‘팔자 ’쪽은 “최하가 4백원(4만원) ”이라고 버티는 품이 여간해서는 결판이 나지 않을 듯하다.

시나브로 서울에서 밀려난 날품팔이들이 이곳 성남으로 밀려와 터를 잡은 것이 이제는 전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인력시장이 된 곳-복정동 인력시장이다. 기술자건 건깡깡이건, 모가비건 맨꽁무니건, 그리고 노박이건 까리건 날품을 생계로 삼는 남녀노소가 평소에도 하루면 4백∼5백명씩 모이는 곳이다. 그래서 이곳 로타리(이곳 인력시장의 별칭) 사람들은 취재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이곳 날삯이 후하다는 소문이 나 경향 각지에서 몰려드는 바람에 가뜩이나 부족한 일거리 얻기가 더욱 빡빡해졌기 때문이다.

7년전부터 복정동에 터를 잡았고 지난 조합장 선거에서 11표차로 떨어졌다고 자신을 소개한 정운종(36)씨는 “여기서는 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일을 많이 내보내는 게 최고다. 따라서 사무실(노조)에서 인력을 끌어당겨야 하는데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고 노조를 나무란다. 정씨의 말마따나 다른 인력시장과 달리 노조 사무실과 대기실이 있으나 길가로 나와 자신을 데려갈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이 태반이다. 그러나 노조에 가입한 사람은 아직 많지 않지만 노조가 생김으로써 여러 변화가 온 것도 사실이다. 우선 조합원들이 스스로 임금 수준을 확립해 ‘3백원 밑으로는 안간다 ’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대신 맡은 일 만큼은 성실하게 완수해 ‘노가다 기질 ’을 없애려고 스스로 노력하는 점 등이 그것이다.

노동부에서 ‘인력시장 지원?육성 및 실태점검 지시 ’를 발표한 것은 지난 2월27일이다. 그 지시에 따르면 노동부조사로도 매일 평균 5천명이 전국 63곳의 자생적인 노동인력시장에 모여 그 중 상당수가 취업해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단순인력을 충원하는 기능을 맡고 있는 만큼 각 시?도가 화장실, 대기실 등을 세워 육성, 지원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보듯 필자가 취재한 대표적 인력시장 네군데 중 어느 한군데에서도 그런 ‘육성 및 지원 ’은커녕 ‘실태점검 ’조차 있었다는 말을 들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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