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발로 끝난 사랑과 행복
  • 이세용 (영화평론가) ()
  • 승인 2006.05.22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화 우묵배미의사랑

 
감독 : 장신우
주연 : 최명길 · 박중훈

정사현장을 들킨 남녀가 황급히 걸쳐입은 옷차림같은 마을 ‘우묵배미 ’. 머리는 도시로 향하고 몸뚱이는 농촌에 묻혀 있는 우묵배미라는 공간은 경제적으로 소외된 도시 변두리까지를 모두 포함한다. 소득을 올려주는 생산시설이라고 간판 달기가 부끄러운 치마공장과 비닐하우스가 있을 뿐이다.

富의 분배에서 비켜나 있는 우묵배미는 문화의 중심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다. 그래서 영화 <우묵배미의 사랑>속의 인물들이 문화를 접촉하는 순간은 작업장에서 라디오를 통해 유행가를 들을 때뿐이다. 땀흘리는 일이나 사는 일이 한결같이 처량한 ‘주변인 ’들, 우묵배미 사람들은 대화속에 메타포를 섞지 않는다.

주인공인 민공례(최명길)와 배일도(박중훈)만이 간접화법이 무언지를 알고 있다. 그러나 남편한테 구박받는 여자 민공례의 간접화법이 숙고 끝에 나온 것으로 진실의 무게를 갖는 데 반해 아내한테 무시당하는 (그래도 마땅한) 얼치기 건달 배일도의 수사학에는 진실이 결여돼 있다. 민공례는 농촌을 닮은 듯하고 배일도는 도시의 속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따라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같은 배일도에게 몸을 준 민공례의 사랑은 불발로 끝날 수밖에 없다. 당연히 그녀의 행복은 미수에 그치고 만다.

박영한 원작 <우묵배미의 사랑>을 각색?연출한 장선우감독은 이 시대가 안고 있는 빈곤의 문제, 향락에 감염된 소비문화의 부끄러움을 통하여 삶의 진실과 허위를 가려낸다. 민공례가 배일도와 정사를 결행하기까지는 ‘마음을 정리하기 ’위한 주저와 망설임이 있었지만 아무튼 변두리 치마공장에서 눈이 맞아 바람난 남녀의 삽화를 이만큼 아프게 그린 작품을 우리 영화에서 볼 수 있게 된 기쁨은 매우 크다. 뿐만 아니라 슬퍼서 아름답기까지 한 이런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전개시켜 재미있게 만든 감독의 솜씨는 단연 빛난다.

나는 한국문화의 특질이 恨보다는 해학에 있다고 믿는데, 김유정과 채만식 또는 이태준의 소설에서 읽을 수 있는 해학의 맛과 재미가 <우묵배미의 사랑>에서 머리를 내밀고 있음에 주목한다. 특히, 배일도가 공장에 나타나서 민공례에게 접근할 때, 그녀를 유혹하여 포옹하기까지 웃음과 아픔, 연민의 감정을 자유자재로 컨트롤하는 일품의 대사와 연출의 시퀀스는 기록되어야 마땅하다.

이 영화의 힘은 ‘현실감 ’에서 비롯된다. 배일도와 그의 처(유혜리)가 사는 장면이 아주 리얼하다. 그런 점에서 몇군데 과장된 액션, 배일도의 처가 다리 사이에 남편의 목을 끼고 레슬링선수처럼 이리저리 돌리며 혼내주는 장면과 시어머니 앞에서 넋두리하는 장면은 재미를 강조하다가 작품의 완성도를 놓친 안타까운 대목으로 생각된다. 여인숙에서의 정사신에서도 절제가 따랐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묵배미의 사랑>은 90년대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를 예고하는 첫 작품으로 부족함이 없다.

눈에 잘 띄지 않는 등장인물들로도 적역의 연기자들이 나와서 영화를 거들고 있으며 최명길의 연기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훌륭하다.

화면의 부드러운 연결과 카메라의 움직임은 관객의 심리적인 습관과 자연스럽게 아울림으로써 표현상의 리얼리티를 획득한다. 유영길의 촬영은 이제 아름다운 사물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답게 보는 ‘카메라의 눈 ’이 있음을 확인한다. 관객의 즐거움은 가장 보수적인, 믿는 즐거움인데 <우묵배미의 사랑>은 이 즐거움을 배반하지 않는 秀作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