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미국 손 들어줬다
  • 남문희 전문기자 (bulgot@sisapress.com)
  • 승인 2006.05.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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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 시험운행 전격 취소’ 막후 추적/‘아버지 부시’ 방북 등 새 변수 작용

 
북한이 5월25일로 예정되었던 열차 시험 운행을 하루 앞두고 전격 취소한 것에 대해, 북한 내부의 권력 갈등론으로 설명하려는 시도가 많다. 당 통일전선부와 내각은 적극적이었으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를 반대하는 군부의 손을 들어주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 권력 갈등론만으로 설명하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한 부분이 많은 것 같다. 특히 경의선 열차 시험 운행이 궁극적으로는 6월 하순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열차 방북과 연동되어 추진돼 왔고, 이는 또다시 북한의 6자회담 복귀와 남북 정상회담이라는 양대 아젠다와 직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볼 때, 더 폭넓은 해석이 필요한 것이다. 특히 남북 정상회담은 남북간 사안이라고 할 수 있지만, 6자회담의 경우 북·미, 북·중 관계와 두루 얽혀 있다는 점까지 시야에 넣을 필요가 있다. 즉, 6자회담 복귀라는 하나의 카드를 놓고 과연 김정일 위원장이 누구에게 인심을 쓸 것인가, DJ 방북을 앞세운 남쪽인가, 아니면 다른 쪽인가라는 경합 측면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양상으로 보면, 중국은 일단 북·중 양자 관계를 심화하는 데에 주력하고 있어 경합 대상에서 빠진 것 같다. 따라서 남쪽과 미국 간의 경합 구도가 존재한다. 이 중, 김위원장이 남쪽의 손을 들어주려면 최소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경우 중 하나가 되어야 한다. 즉, 미국이 대북 압박 정책을 계속 강행해 북을 코너에 몰고, 북·미간 대화 채널도 차단되어 다른 돌파구가 없는 경우. 아니면, DJ 방북에 얹어줄 한국 정부의 선물 보따리가 워낙 매력적이이서 김정일 위원장이 상황과 무관하게 결단을 내리는 경우이다.

북의 일방적 약속 위반에 분통을 터뜨리기 전에 최근 일어난 일들을 냉정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다. 먼저 북·미 관계. 최근 워싱턴은 네그로폰테 미국 국가정보국(DNI) 국장이 주도하는, 북에 대한 ‘테러리스트 어프로치(북을 테러 집단으로 규정하고 정권 와해 공작 차원에서 접근하는 해법)’와 라이스 장관이 주도하는 ‘디플로매틱 솔루션(외교적 해법)’이 정면충돌하는 양상을 빚었다. 5월5일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6명의 탈북자 망명 허용 조처를 계기로 ‘테러리스트 어프로치’가 본격 가동되면서 ‘김정일 측근에 대한 망명 공작설’ 등으로 분위기가 흉흉해지자, 라이스 장관을 정점으로 한 외교파가 들고 일어났다(<시사저널> 5월30일 참조).
지난 5월19일자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에 따르면, 북에 대해 리비아식 해법을 수용할 것을 촉구한 라이스 장관의  발언이 반격의 신호탄이었다. 5월17일 뉴욕 타임스가 보도한 ‘젤리코 보고서(6자회담과 북·미 평화협정을 병행 추진하겠다는 미국의 새 대북 정책안)’와 리처드 루거 상원 외교위원장이 추진하는 북한 관계법 입법 움직임 역시 외교파의 반격 연장선에서 일어난 일들이라 할 것이다.

명단 통보만으로 열차 시험 운행을 강행하려 한 정부의 방침과 이에 대한 북한의 전격 취소 맞대응이 충돌한 지난 5월23일과 24일은  워싱턴 내부의 세력 각축이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한 시점과 겹쳐진다. 외교 소식통의 전언에 따르면, 현상적으로는 6자회담과 북·미 양자 채널 그리고 대북 압박이라는 3자 동시 병행이라는 모양새를 취하겠지만, 실제로는 네그로폰테 유의 시도에 제동이 걸렸고, 라이스 장관의 해법에 힘이 실리는 방식으로 정리되었다고 한다.

한국, 북한에 선물 대신 요구만 거듭

거의 같은 시기, 남쪽의 DJ 방북에 맞먹는   ‘매머드 카드’가 워싱턴에서 부상하기 시작한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부친인 ‘시니어 부시’의 방북 문제다. 이 문제는  5월22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연구소(ICAS) 주최 세미나에 연사로 등장한 허버드 전 주한 대사에게 ‘6자회담 여건 조성을 위한 아버지 부시의 방북’에 대한 견해를 묻는 방식으로 표출되었다. 그러나 그 이전부터 수면 아래서 아버지 부시의 측근 인사들을 중심으로 오랫동안 추진되어왔고, 북측으로부터도 이미 환영한다는 뜻을 받아둔 상태이며, 부시 대통령과 라이스 장관 역시 초기에 다소 소극적이었던 태도에서 최근 매우 적극적 자세로 바뀌어 있는 등, 이미 ‘쿠킹’이 완료되어 뚜껑이 열릴 날만 기다리고 있다는 점 등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아버지 부시는 재임 시절인 1991년 남한에 배치한 미국의 전술 핵을 철수시키는 결단을 내려, 그 뒤 남북 비핵화공동선언의 환경을 조성하기도 했던 인물이다. 그는 자신이 연임에 성공했다면 북·미 관계 정상화뿐 아니라 한반도 문제의 궁극적 해결에 일조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무척 아쉬워했다고 한다. 따라서 북핵 문제와 북·미 관계가 다시 답보 상황에 빠져 있는 지금 본인이 1994년 카터 대통령이 수행했던 것과 같은 구실을 할 수 있기를 열망하고 있다고 한다. 모든 대외 정책의 초점을 워싱턴에 맞추고 있는 김정일 위원장으로서는 ‘성사만 된다면 적극 환영’인 것이다.

정부 처지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다. 그동안 부시 행정부의 대북 압박 정책에 온몸으로 맞서 왔고, 심지어 노무현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에게 낯을 붉히기까지 하며 애를 써왔는데 이럴 수 있느냐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부 당국자들의 생각일 뿐이다. 미국에는 대북 압박 세력뿐 아니라 외교적 해법을 추구해온 세력도 있고, 항상 북과 복선적으로 접촉해왔으며, 북은 북대로 이런 전체 판세를 놓고 저울질해왔던 것이다. 반면에 우리는 늘 단선으로 상황을 읽고 대처해오다 보니, 다른 경우의 수에 대해서는 대책이 없다.

북의 위기에 맞서 우리가 뭔가를 해주고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다 보니, 북에 제시한 카드에 치열성이나 경쟁력이 매우 떨어진다. DJ 방북을 전후해 북에 제시한 여러 가지 제안을 보면, 선물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요구 사항에 가까운 것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DJ 방북은 김정일 위원장이 초청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쳐도, 경의선 방북이나 이종석 장관이 대북 경협의 전제로 제시한 납북자와 국군 포로 귀환 문제 역시, 북으로서는 들어주기 곤란한 것들이다. 납북자 문제는 이미 일본과의 나쁜 선례가 있기에 더더욱 쉽지 않은 문제였다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정부가 제시한 ‘경제 지원’은 얘기만 있지, 구체화한 내용이 거의 없다. 일설에 의하면 지난 5월12일 열차시험 개통 합의 이후 비교적 최근까지 김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북의 수뇌부에서는 남쪽이 좀더 진전된 안을 가져오기를 기다려 왔으나, 결국 실망만 하고 말았다는 얘기도 있다.

남북이 이처럼 답보 상황에서 헤매고 있을 때, 워싱턴에서 전변이 벌어지면서 북의 선택 기회가 넓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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