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닫고 서비스 연 혁신 설계사의 '똑똑한 변신'
  • 이철현 기자 (leon@sisapress.com)
  • 승인 2006.06.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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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IBM, 사업모델 재구축해 통합솔루션 회사로 '우뚝'
 
IBM 하면, 제조업체 특히 컴퓨터 만드는 회사라고 생각하는 이가 많겠지만, IBM은 ‘서비스 업체’다. 1981년 8월 인류 최초의 PC(개인용 컴퓨터)를 출시하고 1997년 세계 체스챔피언 카스파로프를 패퇴시킨 슈퍼컴퓨터 ‘딥블루’의 창조주인 회사를 서비스 업체라고 하니 생뚱맞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기업을 둘러싼 환경이 바뀌면 기업도 변한다. 시장·기술·사람이 변하는 양태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기업은 사라지는 것이 시장의 냉혹한 논리다. IBM이 컴퓨터 제조 업체라는 정체성을 과감하게 벗어 던지고 ‘통합 솔루션 회사’로 변모한 것은 지난해다. 이미 IBM은 컨설팅·소프트웨어·서비스 사업이 전체 매출의 60% 이상을 차지한다. IBM은 지난해 5월 개인용 컴퓨터(PC) 사업 부문을 중국 레노보에 팔았다. 이제 슈퍼컴퓨터·소프트웨어·저장장치처럼 기업용 컴퓨터와 솔루션만 제조한다. 

한국IBM은 인터내셔널 IBM의 사업 모델을 국내에서 그대로 복사했다. 완벽한 변태(變態·탈바꿈)에 성공한 것이다. 변태의 키워드는 ‘혁신’이다. 이휘성 한국IBM 사장(45)은 끊임없이 혁신을 주창하고 있다. 사업 모델도 혁신에서 시작했다. 사장은 “한국IBM은 혁신자의 혁신자(innovator’s innovator)다”라고 말했다. 기술·경영·프로세스 혁신으로 기업 목표를 이루려는 기업을 돕는 것을 사업 모델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들은 지난 몇 년 동안 끊임없이 혁신을 추구했다. 이제 갓 회사를 꾸린 최고경영자라도 혁신을 입에 달고 다녔다. 실제 제품·서비스·운영 혁신으로 효율성과 차별성이라는 경영 성과를 거둔 기업은 적지 않다. 혁신으로 재미 보는 업체가 잇따르자 너도나도 혁신을 모방했다. 이제 남들 다 하는 혁신으로는 경쟁우위를 차지하기 어렵게 되었다. 무언가 다른 혁신이 필요했다. 그 혁신의  대안이 사업 모델 혁신이었다.

이 사장은 “과거 첨단 기술로 분류되던 것이 이제는 범용 기술이 되었고 산업이 통·융합하면서 지금까지 없었던 사업 모델이 잇달아 나타나고 있다”라고 말했다. 새 사업 모델은 지금까지 없었던 시장을 창출한다. 사업 모델 혁신으로 시장에 먼저 발을 내디딘 업체는 늘 그렇듯이 시장 선점 효과를 누리며 비약적으로 성장한다. 이 사장은 “사업 모델 혁신은 기업 안팎의 전략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조직을 재구성해 해당 기업이 더 핵심적이고 본질적인 역량에 집중하도록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사업 모델 혁신의 성패를 가늠하는 것은 최고경영자의 리더십이다. 한국IBM은 고객 회사의 최고경영자가 사업 모델을 혁신하는 과정에서 그 기업과 결합한다. IBM은 해마다 50억~55억 달러를 쏟아 부어 IT(정보기술) 부문 최첨단 기술을 개발해왔다.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컨설팅 역량과 합쳐 고객 또는 사업 파트너에게 새 사업 모델을 제시하거나 기업이 성장 동력을 찾아내는 작업을 돕기 위해서다.

아웃소싱 방식으로 고객 기업과 결합

한국IBM이 기업 고객과 결합하는 주요한 방식을 아웃소싱이다. 전산 시스템 아웃소싱에서부터 재무·회계·관리 부문(백오피스)까지 총괄 관리한다. 아웃소싱은 기업 경영의 일부 과정을 외부 사업자의 역량을 활용해 수행하는 것을 일컫는다. 아웃소싱은 의뢰 기업에는 비용 절감을, 아웃소싱 수행자에게는 규모의 경제를 가능하게 하는 이점이 있다. 개별 기업으로서는 자체 정보 시스템 조직을 운영하는 것보다 시스템 기반설비와 인적 자원을 갖춘 아웃소싱 사업자를 활용하면 다수 고객의 전산 업무를 대행하는 사업자의 규모의 경제 효과로 의뢰 기업 역시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이 사장은 “(아웃소싱은) 핵심 역량이 아닌 분야의 첨단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대규모 투자 위험을 지지 않고 아웃소싱 업체가 개발한 첨단 기술을 활용하는 장점을 갖고 있다”라고 말했다. IBM 왓슨연구소가 세계 56개 다국적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기업 63%가 아웃소싱으로 순익을 크게 늘렸고 74%는 판매관리비용을 크게 줄였다. 60%가 넘는 기업은 총자산이익률(ROA)을 크게 높이기도 했다.

국내 기업 80여 개도 한국IBM과 아웃소싱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교보생명은 IT 기반설비(인프라스트럭처)와 데이터센터 관리를 한국IBM에 일임하고 오로지 영업과 신상품 개발이라는 핵심 업무에 회사 자원을 집중하고 있다. 국내 최대 포털 NHN도 IT 기반설비와 콜센터를 한국IBM에 맡기고 있다. 이 사장이 한국IBM과 전략적 제휴 관계를 맺어 가장 큰 경영 성과를 거둔 업체로 꼽는 곳은 대한항공이다. 한국IBM은 대한항공이 화물운송능력 부문 세계 1위에 오르는 데 크게 기여했으며, 대한항공 소속 여객기에 설치된 인터넷 서비스와 ‘전자 조종사(e-captain) 시스템’도 개발했다.

 
아웃소싱과 함께 한국IBM이 중점을 두는 것은 사업 모델 창출이다. 내로라하는 국내 기업과 합작해 새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이 사장은 “한국IBM이 가진 첨단 IT기술과 새 성장 동력을 찾고자 하는 고객의 욕구가 결합해 지금까지 없었던 새 서비스나 제품이 출현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현대자동차는 한국IBM과 손잡고 텔레매틱스 서비스 ‘모젠’을 출시했다. 한국IBM은 모젠의 시스템 개발과 유지 업무를 맡았다. 또한 삼성전자의 기업용 프린트 사업도 돕고 있다. 삼성전자는 기업 고객을 확보하기가 힘들어 기업용 프린트 사업이 활성화하지 못했다. 한국IBM은 삼성전자와 기업 고객을 공유하고 공동 마케팅을 펼쳐 삼성전자가 아시아와 유럽의 기업 고객을 확보하는 것을 돕고 있다.

한국IBM은 이 협력 모델을 확장해 한국 기업과 첨단 기술 부문에서 조인트벤처(합작사업)를 꾸리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IBM이 소니·도시바와 손잡고 STI디자인센터를 세우고 ‘셀브로드밴드엔진(CBE)’이라는 초강력 컴퓨터칩을 개발한 것이 대표적 모델이다. 이사장은 “협상이 진행되고 있어 아직 국내 기업을 거명할 수는 없지만 STI디자인센터와 비슷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내실을 다지는 데 치중했던 이사장은 올해 초 공격 경영을 선언했다. 부가가치가 낮은 컴퓨터 사업 부문을 정리했다. 그래서 매출 규모는 다소 줄었지만 총매출액은  1조원이 넘는다. 주력 사업이 컨설팅과 서비스로 재구성된 것을 감안하면, 한국IBM은 고부가가치 사업으로 사업 모델 혁신에 성공한 셈이다.

이휘성 사장은 “경영 실적 향상에 그치지 않고 한국 기업 환경과 프로세스를 혁신하는 것이 한국IBM의 꿈이다”라고 말했다. 이 꿈이 현실이 되면, 그것은 한국IBM뿐만 아니라 이 회사의 많은 기업고객들, 나아가 한국 경제를 성장시키는 촉매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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