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은 곧 돈이다!
  • 주진우 기자 (ace@sisapress.com)
  • 승인 2006.06.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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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와 돈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독일월드컵에서 FIFA는 중계권료로 1조3천억원 이상을 챙기고, 공식 파트너들로부터 1조원가량을 받아 주머니를 불릴 것으로 보
 
“축구의 역사는 즐거움에서 의무로 변해가는 서글픈 여행이다.” 남아메리카의 지성 에두아르도 갈레아노는 축구가 산업화되어감에 따라 경기에서 맛볼 수 있는 기쁨의 미학을 앗아가버렸다고 통탄했다. 그의 지적대로 축구에서 돈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돈 없는 축구는 무의미해졌다. 선수의 가치를 말해주는 첫 번째 척도가 바로 돈이다. 선수의 실력과 열정보다는 연봉과 소속 팀의 재력에 축구기자들은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구단주, 정치인, 지도자 같은 사람들이 축구계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커지고 있다.

세계 최대 이벤트인 월드컵. 월드컵은 세계에서 가장 이윤이 많이 남는 행사이자 지상 최대의 돈 잔치이기도 하다. 우선 상금이 어마어마하다. 독일월드컵의 총상금은 2천2백억원. 2002년 한일월드컵 상금 1천5백79억원보다 50% 이상 늘어난 액수다. 독일월드컵 우승팀은 우승 상금 1백85억원을 포함해 총 5백70억원을 받는다. 4강에 든 나라에는 1백59억원, 8강에는 1백11억원, 16강에 63억원의 상금이 각각 배정됐다. 16강에 진출하지 못해도 조 예선 3경기 출전 수당으로 44억원을 챙길 수 있다. 이미 국제축구연맹(FIFA) 본선에 진출한 32개국에 월드컵 준비금의 명목으로 7억4천만원씩을 일괄 지급했다. 일단 본선에 진출한 나라는 성적에 상관없이 최소한 50억원이 넘는 돈을 챙기고 시작한다.

 
각국에서 경쟁적으로 내놓는 성과급은 상금의 규모를 훌쩍 뛰어넘는다(표 참조). 사우디아라비아 왕실은 축구대표팀에 약 1백13억을 내놓았다. 토고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들은 월드컵 출전비로 1인당 약 1억8천8백만원을 요구하고 있다. 토고의 1인당 국민소득은 약 3백30달러, 우리 돈으로 32만원 정도의 최빈국이다.

월드컵 돈 잔치에는 선수들 몫만 큰 것이 아니다. FIFA는 독일월드컵에서 심판의 한  경기 수당을 4만달러(약 3천7백89만원)로 책정했다. 2002년에 비해 100% 인상된 액수다. 주심 23명과 부심 46명, 그리고 대기심 7개조(21명)에도 경기 출전에 관계없이 같은 금액이 주어진다. K리그 주심의 한 경기 수당은 55만원이다.

독일월드컵은 베팅 금액 또한 월드컵 역사상 최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영국의 베팅 업체 윌리엄 힐은 “이번 독일월드컵은 단일 대회로는 처음으로 베팅 금액이 10억파운드(약 1조6천8백92억원)를 넘어설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월드컵은 각 나라의 도박 바람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중국·태국·베트남·캄보디아·인도 등지에서는 월드컵을 앞두고 불법 도박이 성행할 것을 우려해 집중 단속에 나섰다. 최근 중국에서는 축구 도박에 나선 한 남성에게 30개월 실형을 선고했다. 태국에서는 월드컵 기간에 80만명 이상이 도박을 벌일 것이라는 여론조사가 나오자, 교육부 장관이  학생들이 어떤 형태의 도박도 벌이지 못하도록 금지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주앙 아벨란제, 축구의 영혼을 돈과 바꿔

월드컵은 4년에 한 번씩 모여 최고의 기량을 겨루는 장이다. 하지만 그에 앞서 최고의 상품을 진열해놓은 쇼윈도이기도 하다. 물론 상품은 선수들이다.
월드컵에서 인상적인 몸짓을 한 선수는 비싼 값에 팔려간다. 별들의 월드컵은 이미 시작되었다. 월드컵에 맞춰 선수들의 몸값이 큰 폭으로 뛰는 경향이 있어 월드컵 직전부터 ‘인신매매’는 시작된다. 우크라이나의 골잡이 안드레이 셰브첸코는 5월 말 잉글랜드 부자 구단 첼시의 유니폼을 입었다. AFP통신 등 외신들은 첼시가 이적료로 5백억원 이상을 들였다고 보도했다. 셰브첸코는 주급으로 약 2억5천만원을 받을 것이라고 한다. 이에 앞서 독일의 ‘국보’ 미하엘 발락도 첼시 옷을 입었다.

기업에 월드컵은 생방송 광고 촬영장이다. 유니폼에서 나이키와 아디다스의 상표는 더욱 커지고 도드라지고 있다. 선수 유니폼은 국가의 상징이기 앞서 어느 회사 소속인가에 중요성이 실린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 프랑스와 결승전을 앞두고 브라질의 골잡이 호나우두는 극심한 노이로제 증세를 보였다. 근육 경련까지 일으켰다. 그러나 나이키사가 그를 강제로 결승전 그라운드에 밀어넣었다는 수군거림은 아직도 그치지 않고 있다. 주목을 받는 경기일수록 ‘신발 끈을 고쳐 매는’ 선수가 등장한다. 그는 반드시 특별히 제작된 신발을 신고 있다.

선수들은 오직 회사를 위해서만 플레이할 수 있다. 그 어떤 사회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행위는 용납되지 않는다. 용기 있는 발언이나 민감한 메시지에는 FIFA가 옐로카드를 지체없이 빼든다. 유니폼 안에 교사들의 권리를 증진시키라는 구호를 표시한 아르헨티나 축구 선수들은 모두 징계를 받았다. 항구 노동자들을 지지하는 문구를 셔츠에 새긴 잉글랜드의 로비 파울러 선수에게 FIFA는 벌금형을 가했다. 그 이유가 스포츠맨십·순수성 때문이라는 설명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처럼 월드컵이 돈 잔치가 된 것은 1974년 FIFA 회장으로 취임해 24년 동안 전권을 휘두르던 주앙 아벨란제 회장 덕이다. 그는  ‘축구의 영혼을 돈과 바꿨다’는 비난을 듣는다.

1990년·1994년·1998년 세개 월드컵 대회 텔레비전 중계권료는 3억4천만 달러였다. 그러나 FIFA는 2002년·2006년 대회 중계권을   23억 달러(약 2조2천2백18억원)에 팔았다. 독일월드컵에서 FIFA가 챙길 중계권료는 무려 1조3천1백70억원에 이른다. 대회 평균보다 10배 이상 늘어난 액수다.

1986년 멕시코월드컵에서 그랬던 것처럼 1994년 미국월드컵도 정오에 시작되었다. 유럽의 텔레비전 방송과 광고주를 만족시키기 위해서였다. 선수들은 상대편보다 살인적인 무더위와 싸워야 했다. 아르헨티나의 마라도나는 “살을 튀겨버릴 것 같은 무더위에서 축구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라고 항의했다. 그러나 이것은 주최측에 의해 바로 묵살됐다.

1994년 월드컵을 앞두고는 미국 방송사들이 축구 경기를 25분씩 네 번으로 나눌 것을 제안했다. 아벨란제 회장은 이에 동의했으나 실현되지는 않았다. 방송사들이 분할 제안을 한 것은 축구는 쉼 없이 경기를 진행하기 때문에 중간에 광고를 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경기장 잔디까지 케이크처럼 잘라 팔아

중계권료와 함께 월드컵을 떠받치는 ‘돈 기둥’은 공식 스폰서들이 지불하는 후원금이다. FIFA는 스폰서를 ‘공식 파트너’라고 부른다. 이번 독일월드컵에서 FIFA의 공식 파트너는 모두 15개 업체다. 현대자동차를 비롯해 아디다스·어바이어·버드와이저·코카콜라·콘티넨털·도이치텔레콤·아랍에미리트항공·후지·질레트·마스터카드·맥도날드·필립스·도시바·야후 등이다.

 
중계권료는 공개되지만 후원금 액수는 비밀에 부쳐진다. 블래터 회장을 비롯한 FIFA의 고위 관계자만이 그 액수를 알고 있을 뿐이다. 이번 대회 공식 파트너는 아니지만 일본 소니는 2014년까지 FIFA 주관의 모든 국제 대회에서 독점적인 광고권을 얻는 조건으로 3억5백만 달러(약 3천억원) 후원 계약을 했다. 이번 월드컵에서 공식 파트너들이 FIFA에 지불하는 후원금은 회사당 7천만 달러를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독일월드컵에서만 스폰서들에게 1조원가량을 받았다는 계산이 나온다. FIFA는 ‘공식 파트너(official partner)’이외에 ‘공식 공급업체(official LOC supplier)’를 선정해 주머니를 불리고 있다.

월드컵 입장료도 계속해서 비싸지고 있다. 그나마 일반석은 계속 줄고 있다. 축구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는 월드컵경기장에 들어가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졌다. 이번 월드컵에서 가장 싼 입장권은 조별 예선전 4등석으로 약 4만5천5백원. 하지만 4등석은 얼마 되지 않는다. 결승전 1등석은 약 78만1천원이다. 최고급 식사가 포함된 스카이박스는 4억원가량 한다.

월드컵 경기장에 등장하는 물품 가운데 주심의 휘슬만이 어느 회사에 속한 것인지 알려지지 않는다. 경기장 잔디마저도 광고로 이용된다. 한 네덜란드 업체가 독일월드컵 경기장 열두 곳 중 여덟 곳에 잔디를 납품하기로 하자, 해외 언론들은 이를 대서특필했다. 1994년 미국월드컵이 끝나고 로스앤젤레스 스타디움에서 그랬던 것처럼 프랑스월드컵이 끝나고 주경기장인 생드니 스타디움의 잔디도 조각 케이크처럼 잘려서 팔려나갔다. 이것은 돈 잔치 월드컵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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