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 휩쓸린 주식시장 '펀드 제방'도 아슬아슬
  • 이철현 기자 (leon@sisapress.com)
  • 승인 2006.06.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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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합작 금리 인상, '환매' 시한폭탄에 불붙여
 
주식 시장에 ‘펀드 환매’라는 시한폭탄의 초침이 ‘째깍째깍’ 소리를 내며 돌고 있다. 6월7~8일 주가지수는 80포인트 가까이 폭락했다. 이 와중에 주식형 펀드의 환매 사태까지 발생하면 투자 심리에 치명타를 가해 주식 시장이 ‘장기 침체’에 빠질 수 있다. 주식형 펀드 환매 사태가 발생하면, 기관투자가는 환매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손해를 보더라도 보유 주식을 시장에 내놓아야 한다. 기관투자가가 손절매 물량을 내놓으면 주가는 더 떨어지고 환매 요청은 늘어난다. ‘주가지수 하락 → 펀드 환매 요청 증가 → 기관투자자 손절매 물량 출회 → 주가지수 하락’이라는 악순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주식형 펀드 투자자가 환매 움직임을 보이지 않아 다행이지만, 주가가 빠르게 떨어지는 바람에 환매 타이밍을 놓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주가가 상승세로 돌아서지 않는 한 환매 도미노를 피할 수 없는 듯하다.

자산운용협회가 6월2일 발표한 주식형 펀드설정액은 38조22억원이다. 5월 말보다 1천986억원 늘어났다. 지난 5월 하락장에서도 주식형 펀드 설정액은 3조968억원으로 늘어났다. 5~6월 주가가 크게 떨어진 것을 감안할 때 펀드 설정액이 늘어난 것은 이례적이다. 주가지수가 떨어진 것을 ‘저가 매수’ 기회로 삼은 것이다. 주가 움직임이 반전되지 않으면 펀드 설정액 증가 추세가 꺾일 수밖에 없다.

‘펀드 환매’라는 시한폭탄의 뇌관에 충격을 주는 것은 한·미 합작 금리 인상이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가 6월8일 콜금리(은행 간 초단기 차입금리)를 0.25%포인트 올렸다. 이로써 시중은행이 금리를 결정할 때 기준으로 삼는 콜금리가 4.25%로 상승했다. 유동성조절대출과 총액한도대출도 0.25%포인트씩 인상했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6월8일 기자 간담회를 열고 “원화 강세와 농산물 값 하락으로 물가가 그동안 안정된 수준을 보였지만 앞으로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시중에 풀린 돈을 은행으로 끌어들여 물가 상승(인플레이션) 압력을 줄이겠다는 뜻이다. 시중에 돈이 풍부하면 물가가 올라가는 것을 선제적으로 대응해 막겠다는 조처이다. 

금융 당국, 마땅한 대응책 없어 꽁꽁

콜금리 인상에 앞서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6월7일 ‘미국  경제의 물가 상승 압력이 위험 수위에 접근했다’고 발표하면서 연방금리를 추가적으로 올리겠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밝혔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연방금리를 추가로 올리는 것이 유력한 상황에서 금통위가 콜금리를 4%로 동결했다면 한·미간 정책금리 차이가 1%를 넘어서게 된다. 국내·외 투자자들이 금리 차익을 얻고자 국내 금융기관에 예치된 달러로 미국으로 빼낼 위험이 커진다. 이 부담을 줄이려는 것도 콜금리 인상 요인으로 작용했다.

 
금통위가 콜금리를 인상하자 6월8일 종합주가지수(코스피)는 전날보다 43.71포인트 하락한 1223.13을 기록했다. 코스피 시장 시가총액은 596조6천940억원으로 600조 원이 붕괴됐다. 지난해 4월 7일 이후 최저치다. ‘버냉키 쇼크’라고 일컬어진 6월7일에는 종합주가지수가 34.78포인트, 코스닥지수도  35.8포인트로 폭락했다.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주재하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6월28일 금리를 올릴 것이 분명해지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보유 주식 물량을 던지다시피 했다. 5월5~31일 한국과 관련한 연방준비제도이사회 해외 뮤추얼 펀드에서 23억3천4백만 달러가 순유출되었다. 같은 기간 신흥 시장 펀드에서도 20억 달러 가량이 빠져나갔다. 그동안 저금리가 오래 지속되면서 위험도는 높지만 투자수익률이 높은 신흥 시장으로 투자 자금이 몰렸으나 이제 미국 금리가 올라갔으므로 안정 자산 쪽으로 자금 흐름의 물꼬가 틘 것이다. 미국과 함께 일본이 잇따라 정책금리를 올리면서 전세계 유동성이 빠르게 마르고 있다.

금리 인상 조처와 함께 경기지표가 불안한 것도 ‘펀드 환매’ 분위기를 고조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소비자기대지수·경기종합지수 선행지수와 한국은행이 발표한 기업경기실사지수를 비롯한 선행지표들이 한꺼번에 추락하고 있다. 이 판국에 국제 원유와 원자재 가격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안정되고 있어 한숨을 돌렸으나 전세계적으로 달러 가치가 떨어지고 있어 언제 원화 가치가 다시 올라갈지 모르는 형국이다.

‘펀드 환매’라는 시한폭탄 뇌관을 제거할 방법이 마땅치 않은 것이 금융 당국의 고민이다. 저금리 기조를 접는 것은 전세계 추세이고 원유나 원자재 값 상승도 외생 변수이므로 국내 정책 당국이 개입할 수 없다. 앞으로 주식 시장 흐름을 결정할 힘은 시장 참여자일 수밖에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시장 참여자는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 펀드 투자자가 버티면 주식 시장 붕괴는 막을 수 있으나 누군가 견디지 못하고 팔기 시작하면 펀드 환매 폭탄이 터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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