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보면 중독되는 ‘치명적 매력’
  • 김창규 (SF소설가 번역가) ()
  • 승인 2006.06.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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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화된 재미 넘치는 ‘외국 드라마 5선’/소재 다양하고 연출·각본 ‘깊은 맛’

 
당장 텔레비전 채널을 한 바퀴 돌려보자.  언제든 적어도 서너 개 채널은 미국 또는 일본 드라마를 내보내고 있을 것이다. 한정된 드라마를 공중파 방송으로만 보아야 했던 시절은 ‘옛날 이야기’가 되었다. 케이블 채널과 위성방송, 컴퓨터와 DVD 등을 통해 외국 드라마를 접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의 시청자들이 외국 작품들을 다수 접하고, 한국 작품에서 볼 수 없었던 매력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면 외국 드라마로 시청자들을 이끄는 장점 혹은 ‘한국 작품에서 볼 수 없는 매력’이란 무엇일까.

첫 번째는 무엇보다도 소재가 다양하다는 점이다. 미국에서 중·상위권 시청률을 기록한 TV쇼(TV Shows·미국에서 ‘드라마’를 뜻하는 용어)에는 단순히 장르만으로 구분해보더라도 스릴러, 공포, 추리, 정치, 의학, 러브 코미디, 환상물 등 다양한 색깔이 있다. SF물을 전문적으로 제작 방송하는 ‘SCIFI 채널’이 따로 있을 정도로 다양하다. 여러 장르를 적절히 혼합하는 시도 역시 종종 보인다.

장르 면에서 볼 때 한국 드라마계는 좋은 점수를 얻기 어렵다. ‘한국에서 의학 드라마는 병원에서 연애하는 이야기이고, 법조물은 로펌과 재판장에서 연애하는 이야기이다’는 우스갯소리는 한국 드라마의 가장 큰 약점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두 번째는 연출과 각본의 깊이다. 물론 연출의 경우 제작비와 시장 규모를 무시할 수는 없다. 웬만한 할리우드 영화급의 제작비를 들인 미국 대형 방송사의 드라마에서 더 자유롭고 다양한 연출 방법을 구사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외국 작품에서 더 높이 사고 싶은 것은 구태의연한 이야기 진행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과, 그로 인해 태어나는 새로움이다. 실제로 관습과 심리적인 장벽을 아슬아슬하게 건드리며 메시지를 전달하는 극중 대사와 사건의 발생에 감탄한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니다.

세 번째는 방영 형식이다. 미국과 일본 드라마는 ‘시즌제’를 따른다. 한 시즌이 적게는 11화에서 많게는 24화로 이뤄지며, 다음 시즌 방영과는 몇 개월에서 길게는 1년이 넘기도 한다. 그리고 각 시즌은 나름의 기승전결을 갖는다. 반면 국내 드라마는 시즌이라는 개념이 아예 없고, 장기 흥행 드라마는 40화를 훌쩍 넘는다(최근 인기작인 <궁>은 두 번째 시즌에 관한 이야기가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시즌제는 드라마 제작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장치이다. 제작진의 입장에서 보면 장기 기획에 따른 부담을 줄일 기회이다. 또 새로운 시즌에 새 요소를 도입하여 활기를 주입하는 장점이 있다. 게다가 각본가의 입장에서 보면 휴지기를 통해 늘어지기 쉬운 호흡을 추스르고 내용을 충실하게 하는 데 더욱 집중할 수 있다.

물론 시즌제에 불만을 토로하는 외국 드라마 팬도 많이 있다. 다음 진행을 보기까지 너무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점 때문이다. 게다가 국내 시청자들은 휴식 없는 장기 방영에 익숙해져 있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주로 인터넷과 케이블 등을 통해 소식을 듣고 드라마를 접하는 젊은층은 이미 외국의 시즌제에 별다른 거부감이 없다.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X-파일>과 <CSI>의 경우를 봐도 시즌별로 나뉘었다는 사실 때문에 충성도가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기다림에 대한 불만은, 해당 드라마가 재미있다는 반증이자 행복한 하소연이다.

이것이 최근 젊은 드라마 시청층에서 호평을 얻고 있는 외국 드라마의 장점, 그리고 국내 작품들과 차이점이다. 드라마란 어디까지나 ‘보고’ 즐기는 것이다. 차별화된 매력과 장점이 돋보이는 외국 드라마 다섯 편을 골라보았다. 드라마를 본 후의 소감은 천차만별이겠지만, 적어도 다양성의 매력에 대해서는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소개 순서는 순위와 무관하다. 우위를 점치기 힘든 작품들이다.

 
1. <Law&Order> (NBC) (1990년~현재)
장르
: 법조/형사물
에피소드별로 별개의 사건을 다루고 있으며, 1990년부터 지금까지 방영 중인 장수물이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흔히 이 장르에서 내세우게 마련인 정의보다는 ‘법과 질서’라는 차원에서 이야기를 끌어나간다.
철저히 각 사건 위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에피소드별로 공통되는 것은 형사들과 검사측뿐이다. 그나마 시즌에 따라서 배역이 바뀌므로 개개인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SVU(Special Victims Unit)와 CI(Criminal Intent)라는 부제가 붙은 두 개의 스핀오프(Spin-off·외전·오리지널 시리즈에서 파생된 비슷한 형태의 새 시리즈를 뜻함)가 방영 중이다.
추천 대상 : 정의 사회 구현과 진실만을 외치는 법조물에 식상한 시청자들.
감상 포인트 : 형사들은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고 범인이 처벌을 받게 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검사는 어떻게 해서든 피고가 죄에 걸맞은 형량을 받게 하기 위해 배심원들을 설득한다. 때로는 목적을 위해서 공범자들과 형량 거래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사건을 파고들수록 진실과 진범은 모호해진다. 그리고 궁극에는 과연 진실과 정의는 무엇인가에 대한 기준마저 불분명해져 시청자의 사회관과 판단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2.<House M.D.>(미국 Fox, 2004년~현재)
장르
: 의학 드라마.
기존 의학 드라마가 환자의 휴먼 스토리와 다양한 의사들의 생활, 갈등을 다루고 있는  데 비해 이 드라마는 주인공의 독특한 인물 성을 전면에 떠올린다는 점에서 이색적이다. 주인공인 하우스 박사는 진단의로서 가히 천재적이라 할 만한 명성을 얻고 있지만, 신체적 장애와 극단적 경험, 행복하지 못했던 과거 때문에 비뚤어지고 자기중심적인 세계관으로 똘똘 뭉쳐 있다. 하지만 그의 명성과 실력은 대단하다. 그래서 다른 의사들이 모두 두 손을 놓고 고개를 내젓는 환자들을 주로 담당한다.
추천 대상 : 정형화된 병원과 의사 이야기에 지쳤으나 그래도 소독약 냄새 속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다시 찾아보고 싶은 분들.
감상 포인트 : 주인공은 ‘모든 환자는 거짓말을 한다’는 강박관념을 안고, 자신의 치부를 숨기려는 환자들과 머리싸움을 해가며 고군분투한다. 다분히 추리물 같은 재미가 있다. 하우스 자신도 환자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아집에서 벗어나며 조금씩 변화한다.

 
3. <I.W.G.P> (일본 TBS, 2000년 )
등장인물 대부분이 청소년으로 상정되어 있지만 청소년물은 아니다. 두 소년 갱단의 어느 쪽에도 소속되지 않은 주인공 ‘마코토’가, 이케부쿠로라는 유흥가에서 야쿠자, 경찰들과 엮이면서 겪는 이야기다.
추천 대상 : 폭력과 범죄 속에서 자신을 지켜나가는 주인공의 활약상에 목말라하는 분들.
감상 포인트 : 유머와 폭력, 살인과 사건  해결을 기가 막히게 배합해놓은 각본가의 능력. 주인공이 친구의 죽음에 분노를 참지 못하고, 정면충돌하기 직전의 두 갱단 사이에 홀로 서는 장면은 이 작품의 절정이다.
이 드라마는 유명 각본가인 ‘구도 칸구로 (宮藤 官九?)’의 팬이 생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 작가는 후기 작품들에서는 멜로물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일본 드라마도 멜로물의 비중이 큰데, 이 각본가의 작품은 그 틀에서 벗어나 가히 발군이라 할 만큼 개성과 내용에 충실하다. 각본가의 개성이 마음에 들었다면 이후 그의 다른 작품 <기사라즈 캐츠아이>도 흡족해할 것이다.

 
4. <Prison Break> (미국 Fox, 2005년~ 현재)
장르
: 스릴러/액션물
주인공 마이클은 살인 누명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형을 탈옥시키기 위해 고의로 감옥에 들어간다. 교도소의 세부 설계도와 건축에 대한 전문 지식이 탈옥을 성공으로 이끌 열쇠이다. 시즌 사이에 공백이 길어 많은 팬들을 비명 지르게 만든 작품이다.
추천 대상 : 지능적인 스릴러물을 좋아하고 주인공의 위기를 즐거워하는 분들.
감상 포인트 : 감옥의 허점을 찾아내어 목표를 이루려는 마이클의 노력이 눈물겹다. 그러나 적은 감옥뿐만이 아니다. 가장 큰 장애는 감옥 안의 사람들. 게다가 그들은 범죄자이다. 처음에는 완벽해 보였던 치밀한 계획이 수많은 요소와 인물로 인해 굴절된다. 새로이 파생하는 문제점들에 대처해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재미있다. 시청 도중 20분 정도만 한눈을 팔아도 그 다음이 이해되지 않을 만큼 내용이 꽉 짜여져 있다.

 
5. <24> (미국 Fox, 2002년~현재)
액션/스릴러 대표 흥행작.
CTU라는 대테러 팀을 지휘하던 주인공 잭 바우어의 활약상을 그리고 있다. ‘실시간 드라마’라는 독특한 형식을 본격 도입해 큰 효과를 거두었다. 각 시즌은 24화로 구성되어 24시간 동안에 일어나는 일을 그린다. 한 화가 한 시간을 다루고 있음은 물론이다.
현재 5시즌이 완결된 상태이며, 제작진은 아직 시리즈가 끝나지 않았음을 공언하고 있다. 그러나 한 시즌이 사건 하나를 다루기 때문에, 시리즈가 완결되고 나서야 감상을 시작하는 습관을 가진 시청자도 시즌 단위로 편하게 즐길 수 있다.
추천 대상 : 음모, 총격전, 원맨 히어로 등의 단어를 들으면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분들.   
감상 포인트 : 형식의 특수성 때문에 호흡이 느려지는 일은 없다. 동시 다발적인 위기들로 시청자가 눈을 뗄 여지를 주지 않는다. 상황 판단과 총격전에서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주인공의 종횡무진 활약상이 가장 큰 매력이다.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상황과 거듭되는 반전이 그 뒤를 탄탄하게 받친다.
전반부 세 개 시즌에서 과감한 결단력과 주인공을 향한 신뢰를 보여주는 대통령 역시 시청자에게서 많은 지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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