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기류 맞은 고공의 젊은 리더십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2006.07.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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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초유의 집단 식중독 사고라는 초특급 사태를 만나 그동안 승승장구하던 ‘삼성가의 장손’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위기 대응 능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미국 시카고에서 진통제 타이레놀을 복용한 환자 일곱 명이 숨지는 최악의 중독 사고가 발생한 것은 1982년이었다. 누군가 이 약품 캡슐에 독극물을 주입한 것이 원인이었다. 당시 주변에서는 모두 ‘타이레놀은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다. 곤두박질친 매출액과 브랜드 이미지를 타이레놀이 회복할 길은 없어 보였다.  

그러나 타이레놀 제조사인 존슨앤드존슨은 상황에 굴하지 않고 곧바로 비상 체제를 가동했다. 제3자가 저지른 일이라고 손을 놓지 않았다. 존슨앤드존슨은 먼저 진상 조사팀을 구성하고, 전국의 약국과 병원에 비치된 타이레놀 3천만 병을 수거했다. 일련의 작업은 스물다섯 명에 이르는 대규모 홍보팀을 통해 외부에 낱낱이 공개되었다. 결과적으로 존슨앤드존슨은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승화시키며 소자들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었다. 

오늘날 타이레놀 사태는 기업 위기 관리의 교과서적 사례로 인용된다. 그런데 교과서는 그야말로 교과서인 모양이다. 서울·인천·경기에서 발생한 사상 초유의 집단 식중독 사고를 맞아 관할 교육청이 급식 중단 결정을 내린 것이 6월22일. 이들 학교의 위탁 급식을 맡고 있던 CJ푸드시스템이 공식 기자 회견을 열고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것은 이로부터 닷새가 지난 6월27일이었다. 

그 사이 CJ푸드시스템은 그 흔한 사과 광고 한번 내지 않았다. “원인이 규명될 때까지 거래 중인 모든 사업장에 식자재 공급을 중단하겠다”라는 내용의 보도 자료를 뿌리고, 이를 인터넷 홈페이지 공지 사항에 띄운 정도가 고작이었다. CJ측은 “사고 원인이 정확히 규명되지 않은 데다 중간에 주말이 끼어 있고, 24일 새벽 월드컵 스위스전이 열려 온 국민의 관심사가 그쪽에 쏠려 있다 보니 기자 회견 시점이 늦어졌다”라고 해명했다.

사고 발생 5일 후에야 사과문 발표

같은 시각 그나마 정부는 발 빠른 움직임을 보였다. 이런 사고가 터졌을 때 으레 동네북 신세가 되는 것이 정부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부 대처가 오히려 해당 기업보다 빨랐다. 정부는 23일 오전 한명숙 국무총리 주재 하에 긴급 관계 장관회의를 열고 전국 각급 학교의 급식 실태에 대해 전수 조사를 실시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그러나 CJ푸드시스템은 조용했다. CJ측은 이 시기 사고 대응책에 대한 의견을 안팎에서 광범위하게 수렴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고 초동 단계에서 기업이 자체적으로 진상을 파악해 신속하게 소비자와 언론에 정확한 정보와 일관된 입장을 알리는 위기 관리 매뉴얼이 작동되는 기미는 찾을 수 없었다. 사고 초기 CJ푸드시스템의 홍보 인원은 두 명에 불과했다. 그나마 상황이 정확히 파악되지 않아 우왕좌왕하기 일쑤였다. CJ의 한 내부 관계자는 “솔직히 위기 대응이랄 것도 없었다. 5단계 위기 관리 매뉴얼을 갖추고 모의 훈련을 하면 뭐 하나. 실제 상황에서 이것은 거의 작동하지 않았다”라고 토로했다.

결국 사태는 눈덩이처럼 커지고, 여론은 극도로 악화되었다. 26일 CJ푸드시스템 이창근 대표이사가 국민 앞에 머리 숙여 사과하고, 학교 급식 사업에서 전면 철수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지만 성난 민심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학교 급식 사업의 경우 당장의 수익성은 낮지만 성장 잠재력이 충분한 분야라는 것이 관련 업계의 분석이다(상자기사 참조). 그러나 여론은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손가락 하나 잘라내는 심정이라는 CJ푸드시스템의 ‘결단’을 여론은 ‘꼼수’로 해석하려 들었다.

존슨앤드존슨과 CJ의 위기 대응 방식에는 또 한 가지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었다. 바로 최고경영자(CEO)의 역할이 그것이다. 존슨앤드존슨의 제임스 E 버크 회장은 발 빠른 대응을 이끌어낸 주역이었다. 버크 회장은 사고 상황을 파악한 직후 다른 임원에게 회사 경영을 맡기고, 자신은 위기 상황을 해결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그를 비롯한 존슨앤드존슨 임원진은 <포천> <월스트리트저널> 같은 언론의 인터뷰 요구에 적극 응하는 한편 방송사 뉴스 쇼에도 출연해 고객에게 사과와 함께 이해를 구했다.

내부 시스템, 삼성과 닮은 점 많아

그런데 위기 상황의 한복판에 CJ그룹 이재현 회장(47)은 부재했다. CJ측은 이회장이 ‘사업 구상차’ 미국에 출장 중이었다고 밝혔다. 이회장은 CJ푸드시스템의 공식 사과가 있고 난 뒤인 28일 한국에 돌아왔다. 귀국 이후 이번 사고와 관련된 그룹 차원의 대응이 있지 않을까 했던 주변의 기대와 달리 30일 현재 이회장은 침묵 중이다.

이회장이 없는 동안 국내에서는 ‘이런 상황에서 회장이 출타 중이라는 게 말이 되느냐’며 비난 여론이 빗발쳤다. 그러나 이는 오해라고 CJ측은 해명했다. CJ그룹 홍보 책임자는 “비록 미국에서의 주요한 일정 때문에 곧바로 귀국할 수는 없었지만 사고 상황은 이회장에게 실시간으로 보고됐다”라고 말했다. CJ푸드시스템의 학교 급식 철수결정 또한 이회장이 최종 결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CJ측은 이회장이 귀국 이후 CJ의 브랜드 이미지를 회복시키기 위한 근본적인 수습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전혀 그렇지 않다고 반박했다. 이회장이 미국에서부터 ‘선언 차원의 수습책’을 내놓기보다 ‘피해 학부모와 학생, 관련자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이회장은 귀국 다음날인 6월29일부터 서울 지역 학교를 돌며 피해 당사자들에게 사과하고, 의견 수렴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고가 있기 전까지만 해도 이회장은 재벌 2~3세 경영인 중 가장 능력 있고 리더십이 뛰어난 것으로 꼽히곤 했다. 널리 알려진 대로 이회장은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장손이자,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조카이다. 이회장이 경영에 뛰어든 것은 1993년 삼성그룹으로부터 제일제당이 계열 분리를 시작하면서부터였다. 

1985년 제일제당 경리부 평사원으로 입사해 1988년 경리부 차장, 1989년 기획관리부장을 거쳐 1992년 삼성전자 전략기획실 이사대우로 승진한 이회장은 1993년 제일제당 이사로 친정에 복귀했다. 삼성으로부터의 계열 분리 작업이 완료된 것은 그로부터 4년 뒤인 1997년이었다.

당시 36세로 경험이 일천했던 이회장(당시 부사장)은 외삼촌인 손경식 회장(67)과 함께 공동 경영을 하는 방식을 택했다. 현재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겸임하고 있는 손회장은 경영에 세부적으로 간여하지는 않지만, 그룹 차원의 굵직한 투자 건에 대해서는 큰 방향을 조언하는 등 이회장의 ‘경영 멘토’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회장이 경영자로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1995년 드림웍스와의 합작을 성공하면서부터였다. 스티븐 스필버그, 제프리 카젠버그 등이 설립한 이 회사와 손을 잡기 위해 이건희 회장과 이재현 회장이 제각기 미국으로 건너갔던 일화는 유명하다. 결과는 이재현 회장의 승리. 청바지 차림에 햄버거를 먹으며 스필버그 팀과 난상 토론을 벌인 끝에 이회장은 드림웍스의 2대 주주가 되는 데 성공했다. 

이로써 CJ는 전통적인 식품 회사의 이미지를 벗고 21세기형 생활문화 기업으로 변신했다. 2000년을 전후해 이회장은 △식품 및 식품 서비스 △생명공학 △엔터테인먼트 및 미디어 △신유통 4개 부문을 주력 핵심 사업군으로 선포하며, 무섭게 사업 영역을 확장해나갔다(상자기사 참조). 2002년에는 사명도 제일제당 주식회사에서 CJ주식회사로 변경했다.   

새로운 기업 이미지에 걸맞게 보수적이었던 그룹 문화를 ‘젊고 활기찬 문화’로 혁신한 주역도 이회장이었다. CJ를 가까이서 관찰할 기회가 있었다는 한 대학 교수는 “임원진 회의에서 상무가 그룹 회장을 ‘회장님’이라 부르지 않고 ‘이재현님’이라 부르는 것이 어색하면서도 퍽 신선했다”라고 말했다. 이는 2000년 이회장이 주도해 도입한 호칭 파괴 제도 때문이다. 이때부터 CJ 내부에서는 모든 호칭이 ‘○○○님’으로 통일됐다. 직위에 따른 존대는 모두 사라졌다. 복장 또한 자율화되었다.

이런 변신을 주도하면서 이 40대 회장의 리더십은 세간의 화제로 떠올랐다. 2004년 이재현 회장은 한국리더십학회로부터 ‘가장 리더십이 뛰어난 경영자’로 꼽히기도 했다. 이건희 회장, 구본무(주) LG 회장,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회장 같은 쟁쟁한 선배 경영자들을 제치고 뛰어난 리더십을 평가받은 것이다. 이회장이 특히 좋은 점수를 받은 부문은 전략 비전 수립 능력이었다.

“이회장 언론 기피증이 사태 악화시켰다”

이렇듯 순항하던 이회장에게 이번 사고는 최대 시련이라 할 만하다. 이회장은 특히 올해를 ‘글로벌 원년’으로 선포하고 식품·식품서비스·엔터테인먼트 사업 부문을 중심으로 한 해외 진출에 박차를 가하던 중이었다. CJ측은 사고 발생시 이회장이 미국 출장을 가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 와중에 대형 사고가 터지고, 사고 수습 과정에서 여러가지 허점이 드러나면서 이회장의 리더십에 적신호가 켜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간 이회장은 크고 작은 위기에서 오히려 더 큰 리더십을 발휘해온 것으로 평가되었다. 초고속 인터넷 사업(드림라인)에 의욕적으로 뛰어들었다가 사업이 부진하자 실패를 곧 인정하고 드림라인을 접은 일, 이회장이 배정받은 에버랜드 전환사채에 대해 특혜 시비가 일자 이를 곧 되돌려준 일 등이 이에 속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명확한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CJ 내부의 한 관계자는 “회장 개인의 판단 착오 문제라기보다 내부 시스템 문제라고 본다. 민첩하게 상황 판단을 내리고 회장에 직언하는 참모가 내가 알기로는 거의 없다”라고 말했다. 

삼성에서 분리된 회사답게 CJ의 내부 시스템은 삼성과 닮은 꼴이 많다. 일단 CJ는 그룹 내 정예 인재 30여 명으로 구성된 회장실을 운영하고 있다. 흡사 삼성그룹의 전략기획실을 연상시키는 구조이다. 1996년 두 명으로 시작한 이 조직은 그룹 규모가 커진 2002년께부터 현재 규모로 확대되었다. 회장실을 이끄는 총책임자는 정홍균 부사장(CJ 회장실 차장). 정부사장은 그룹 차원의 비전과 성장 전략을 구상하고, 자금 흐름을 통제하며, 주요 임원 인사를 관할하고 있다. 

매월 열리는 ‘리더십 커뮤니티’도 삼성을 떠올리게 한다. 삼성이 매주 수요일 사장단 회의를 열 듯 CJ는 김진수 CJ 사장, 정진구 CJ푸드빌 대표, 임영학 CJ홈쇼핑 대표 등이 참석하는 사장단 포럼을 이재현 회장이 주재하고 있다(상자기사 참조). 경영과 관련한 주요 의사 결정을 놓고 이 5인 회의에서 주로 토론이 벌어지는데, 손경식 회장은 중요한 의사 결정이 있을 때만 회의에 참석한다고 한다.

글로벌 전략을 추구하며 글로벌 인재를 적극적으로 영입하는 것도 CJ와 삼성의 닮은 점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CJ푸드시스템 이창근 대표이사 또한 올초 글로벌 인재로 영입한 사례이다. 뿐만 아니라 CJ는 삼성의 63개에 필적할 만큼 많은 계열사를 선단식으로 거느리고 있다. 계열 분리 직후인 1997년 15개였던 CJ 계열사는 2003년 33개, 2006년 6월 말 현재 56개로 급증 추세이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장손 의식’을 거론하기도 한다.  삼성가의 적통은 자신이라는 생각에서 이회장이 삼성을 의식한 공격적인 경영 전략을 선택하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문제는 재계 서열 1위인 삼성을 15위인 CJ가 벤치마킹하기에는 근본적으로 한계가 따른다는 사실이다. 

CJ를 출입했던 한 기자는 이를 ‘몸에 맞지 않는 옷’으로 비유했다. 곧 외형은 급속히 비대해지는데, 내부적으로는 삼성처럼 주도면밀하고 일사 불란하게 의사 결정이 내려지지 않는 어설픈 구조 속에서 이번 사태가 발생했다고 본다는 것이다. 삼성 이학수 부회장처럼 확고하게 그룹 총수를 보좌하는 핵심 참모도 눈에 띄지 않는다. 

그는 또 이회장 특유의 ‘언론 기피증’이 이번 사태를 악화시켰다고도 해석했다. 공항에 들어서면서 최고경영자가 사과하고 여론의 지지를 구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CJ의 브랜드 이미지 회복에도 큰 도움이 됐을 것이라는 진단이다.  

이회장은 외부에 자신이 노출되는 것을 꺼리는 경영자로 유명하다. 이건희 회장에 빗대 ‘리틀 은둔자’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이다. 비판적인 이들은 이를 삼성가 특유의 ‘신비주의 마케팅’이라고 비꼬기도 한다. 복잡한 가족사 때문에 노출을 꺼린다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가까운 사람들은 이를 이회장 특유의 성정으로 파악한다. 외환위기 때 서울역에서 노숙자들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은 뒤 몇 년간 주말 자원 봉사를 나갔는데도 CJ 직원들이 이를 눈치채지 못했을 만큼 이회장이 자신을 드러내기 싫어한다는 것이다.
 
이회장을 만나본 이들에 따르면, 그렇다고 그가 내성적인 성격은 아니라고 말한다.  CJ 직원들도 이회장이 격의없는 대화와 토론을 즐긴다고 말한다. 이회장은 이를테면 권위적 위계 질서보다는 수평적 네트워크 질서에 더 익숙한 경영자라는 것이다. 이름을 밝히지 달라는 한 대학 교수는, 이런 네크워크 질서가 채 정착되지 않은 과정에서 이번 위기 상황이 발생했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빚어졌다고 해석했다.

6월30일 질병관리본부는 이번 급식 사고의 원인 물질을 밝혀내는 데 사실상 실패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CJ는 일단 최악의 위기 상황은 피하게 됐다. 제임스 E 버크 회장은 존슨앤드존슨에 직접적인 사고 책임이 없는데도 적극적으로 사태 수습에 나서고 재발 방지 프로그램까지 선보이며 기업의 신뢰를 되찾았다. 이재현 회장은 과연 실추된 CJ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위기 관리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을까. 국민들이 그의 모습을 매서운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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