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의 고민 깊어간다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2006.07.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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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별 노조 확산에 사용자 단체 재편 등 대책 찾기 부심

 
모든 협상에는 파트너가 필요하다. 산별 노조 또한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산별 노조에 대처하는 재계의 자세는 현재로서는 낙제점에 가깝다.

일단 재계가 선택한 것은 ‘무시’ 전술이다. 현대자동차 등 대규모 노조가 산별 전환을 선언한 뒤에도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등 재계 단체는 별다른 공식 견해를 표명하지 않고 있다.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노조가 산별로 바뀐다고 해서 회사 차원에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현행 노무 관리 체계를 변화할 계획이 없다”라고 말했다. 경총 또한 산별 노조 전환과 산별 교섭은 엄연히 별개의 문제라는 의견을 내세우고 있다(인터뷰 기사 참조).

재계가 이런 생각을 밝히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하나는 산별 노조에 대응할 준비가 덜되어 있기 때문이요, 다른 하나는 무시로 일관하는 편이 재계에 더 유리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재계는 이번 대기업 노조의 전격적인 산별 전환에 내심 당황스러워하는 기색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언젠가 산별로 갈 수 있겠다고는 생각했지만 솔직히 이번에 산별 전환 투표가 가결될 줄은 몰랐다”라고 말했다. 이 때문인지 산별 전환 투표를 앞두고 현대차 노조 집행부가 치열한 선전전을 펼치는 동안 사측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노조가 ‘사측 방해 행위’로 꼽은 것도 산별 전환의 폐해를 지적한 보수 언론 사설을 짜깁기해 사원들에게 유인물로 배포한 건 정도가 고작이었다.   

‘산별 교섭’ 압박하면 대응책 논의할 듯

이제 ‘기습’을 당한 이상 재계도 전열을 재정비해야 하는 상황인데, 이와 관련해 뚜렷한 합의점은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일단 산별 노조에 대응해 사용자 단체를 재편할지부터가 관심사이다. 산별 노조의 경우 개별 기업체 단위로 대응하기에는 한계가 명확하다.
 
산별 교섭을 벌이고 있는 사용자 단체가 그간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은행산업연합회, 대한병원협회, 금속산업사용자협의회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대부분은 노조의 요구에 떠밀려 산별 교섭에 응하기 시작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2003년부터 금속노조와 단체 교섭을 벌여온 금속산업사업자협의회이다. 협의회는 지난 4월25일 노동부로부터 정식 설립 허가를 받음으로써 노동법상 국내 최초의 사용자 단체가 됐다.

금속산업사용자협의회가 산별 교섭을 위해 만들어진 것과 달리 은행산업연합회(은행연합회)는 본래 금융기관 상호 간의 정보 교환 및 업무 협조를 위해 탄생한 단체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사용자 단체라기보다 사업자 단체인 셈이다. 그런데 은행연합회 또한 2003년부터 소속 은행(32곳)의 위임을 받아 금융노조와 산별교섭을 진행해왔다. 이를 위해 연합회 산하에 산별 교섭을 전담할 노사협력팀도 구성했다. 

흥미로운 것은 은행연합회의 경우 노조뿐 아니라 사용자들의 교섭 대행 요구도 높았다는 사실이다. 노사협력팀 공성길 부장은 “은행장들로부터 산별 교섭으로 인한 시간·비용 낭비가 심하다는 불만이 많이 접수됨에 따라 연합회가 단체교섭권을 위임받았다”라고 말했다. 
  
법적 사용자 단체인 금속산업사용자협의회에는 현재 중소 사업장 87곳이 가입되어 있을 뿐이다. 현대차·기아차·대우차 등 대규모 사업장 노조가 산별로 전환되면서 경총이나 한국자동차공업협회 같은 일반 사용자·사업자 단체에 관심이 쏠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산별 교섭에 대한 압박 수위가 계속 높아진다면 아마도 협회 차원에서 대응책을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현대·GM대우·기아·쌍용·르노삼성 5개 회원사로 이루어진 한국자동차공업협회는 본래 자동차 산업 발전을 위해 결성된 사업자 단체이다. 

“경총, 산업별·지역별로 개편해야”

그런가 하면 경총은 한국을 대표하는 중앙 사용자 단체라고 할 수 있다. 2003년 말 현재 경총에는 8만여 사용자가 가입되어 있는데, 경총에 소속된 사업장의 노동자 숫자를 기준으로 했을 때 국내 사용자 단체 조직률은 20% 안팎으로 추정된다. 노조 조직률은 11% 내외이다. 유럽 나라에 비하자면 사용자 단체 조직률이나 노조 조직률이나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그림 참조).

 
올해 초 한국노총의 의뢰를 받아 <한국의 사용자단체 연구> 보고서를 펴낸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영두 연구위원은 “산별 노조의 확산 흐름에 맞춰 사용자 단체도 전향적으로 변신할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경총 등 주요 단체가 기업별 노조 체제에 대한 강한 집착을 버릴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간 경총은 기업별 노조 체제 유지를 통한 협력적 노사 관계 구축을 주요 정책으로 삼아왔다. 노조가 먼저 바뀌지 않는 이상 산별 체제를 인정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경총의 견해이다.

경총에 따르면, 산별 교섭을 벌일 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이중 교섭에 따른 비효율성이다. 은행연합회 공성길 부장은 “산별 교섭을 일단 마치고 나면 지부 교섭은 사업장 특성에 맞춰 보충할 안건 중심으로 진행되어야 하는데, 현재는 모든 안건을 처음부터 다시 짚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라고 말했다. 금속산업사업자연합회 교섭단  실무를 맡고 있는 신상식 노무사는 “이중 교섭이 아니라 산별-지부별-지회별로 삼중 교섭을 벌이는 경우도 흔하다”라고 전했다.
 
그렇지만 산별 전환이 노동계 대세라면 재계 또한 이같은 비효율성을 최소화하고 재계에 유리한 방향으로 산별 교섭을 이끌어가야지 산별 교섭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방식으로 사회 갈등을 증폭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김영두 연구위원은 지적했다. 산별 전환 추세에 맞춰 대기업 중심인 경총의 현행 조직 구조 또한 산업별·지역별 중심으로 재편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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