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홍보처가 긁어 뚜껑 열린 ‘안티 FTA’
  • 민임동기 (미디어 오늘 기자) ()
  • 승인 2006.07.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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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사들, ‘편파’ 비난받은 후 기획물 등 집중 편성
 
엄밀히 말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오랫동안 언론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2006 독일월드컵’이라는 빅 이벤트에 가려 언론의 관심 영역 밖에 존재했던 것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본 협상이 시작된 것은 지난 6월5일. 이때부터 한국 축구 국가 대표팀이 16강 진출에 실패한 6월25일까지 방송 3사 메인 뉴스에서 다룬 한·미 자유무역협정 관련 뉴스 수는 언론의 무관심 정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KBS <9시 뉴스>와 MBC <뉴스데스크> 이 기간에 내보낸 각각 전체 6백3개 꼭지와 6백68개 가운데 한·미 자유무역협정 관련 보도는 각각 30 꼭지(4.9%) 16꼭지(2.4%)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월드컵 뉴스는 KBS가 2백14 꼭지(35.5%) MBC가 3백74(56%)개에 달해 비교할 수조차 없었다. SBS <8시 뉴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언론의 이같은 무관심은 월드컵이 끝난 이후에도 지속됐다.

이처럼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던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세간의 관심사로 떠오르게 된 것은 방송사들이 다투어 한·미 자유무역협정 관련 프로그램을 편성하면서부터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들이 여론의 관심을 받게 한 것은 김창호 국정홍보처장이었다.
김처장은 지난 7월4일 KBS와 MBC의 한·미자유무역협정 관련 프로그램을 편파적이라고 비난했고 해당 제작진은 강하게 반발했다. 이후 양측의 공방이 가열되면서 자유무역협정 문제가 여론의 주목을 끌기 시작했다.

김처장이 지목한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인 <KBS 스페셜-자유무역협정 12년, 멕시코의 명과 암>은 한·미 자유무역협정 본 협상을 하루 앞둔 지난 6월4일 방영되었다. <KBS 스페셜>은 방영 이후 방송계에서 호평을 받았지만 월드컵 열풍에 밀려 눈길을 끌지 못했다. 이후 방송사들 저녁 메인 뉴스에서 협상 과정을 단편적으로 전했을 뿐, 자유무역협정 관련 프로그램을 별도로 제작하거나 심층 뉴스를 내보내는 데는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하지만 김창호 국정홍보처장이 7월4일 이미 한 달 전 방영된 <KBS스페셜-자유무역협정 12년, 멕시코의 명과 암>을 지목해 “다양한 상황을 균형 있게 전하기보다 제작자의 정치적 관점이 과도하게 담겨진, 걸러지지 않은 방송을 내보냈다”라고 비난하자 해당 제작진이 강하게 반발하는 등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김처장은 또 이날 밤 방영 예정인 MBC <PD수첩-조작된 미래를 홍보하는 참여정부>편에 대해서도 “이 정도면 횡포에 가까운 것 아니냐”라며 “이런 방송이 지속되면 시민들이 방송의 불공정성과 편파성을 문제 삼지 않겠느냐”라고 비난했다.

MBC가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

결국 월드컵에 밀려 관심을 받지 못한 자유무역협정 관련 프로그램(KBS스페셜)을 국정홍보처가 끄집어내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방영도 안 된 프로그램(PD수첩)을 향해 ‘편파적’이라는 비난을 제기함으로써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켰다는 점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 여론화의 첨병은 역설적이게도 국정홍보처였던 셈이다.

계기는 국정홍보처가 마련했지만 자유무역협정 여론화의 주역은 역시 방송이었다. 뉴스보다는 다큐멘터리를 비롯한 라디오·시사 프로그램이 더욱 적극성을 보였다. 특히 지난 4일 밤 방영된 MBC <PD수첩-조작된 미래를 홍보하는 참여정부>편이 예상과는 달리 호응을 얻자 방송사들은 서울에서 진행되는 2차 본 협상 일정인 7월10일부터 7월14일에 맞춰 한·미 자유무역협정과 관련한 프로그램을 집중 내보내기 시작했다.

방송사별로 약간의 편차는 있다. 가장 적극성을 보인 곳은 MBC였다. 지난 4일 정부의 자유무역협정 관련 홍보 자료가 급조되었다고 보도했으며, MBC <PD수첩> 제작진은 현재 자유무역협정 관련 후속 취재를 하고 있다. MBC는 지난 7일 ‘멕시코 대선과 자유무역협정’에서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 이후 심화한 양극화와 빈곤 문제를 조명했으며, 14일 방송에서는 국민의 건강권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헤쳤다. 10일부터 시작된 2차 협상 기간에는 MBC 라디오 프로그램 <손석희의 시선집중> <손에 잡히는 경제>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등에서도 한·미 자유무역협정 특집을 내보내면서 여론을 환기했다. 이 외에도 <뉴스데스크>는 지난 6월27일부터 모두 아홉 차례에 걸쳐 연속 기획 ‘자유무역협정 해외에서 배운다’를 내보냈다.

KBS 또한 한·미 자유무역협정 관련 프로그램이나 기획 등을 비중 있게 다뤘다. KBS는 지난 6월26일부터 다섯 번에 걸쳐 <9시 뉴스>에서 ‘자유무역협정 연속기획-NAFTA, 지금 멕시코는…’을 내보낸 바 있다. <KBS 스페셜>은 지난 6월4일 ‘자유무역협정 12년, 멕시코 명과 암’을 방송한 데 이어 지난 7월9일에는 ‘한·미 자유무역협정, 위기인가 기회인가’도 내보냈다. 방송 3사는 앞으로도 자유무역협정 관련 후속 프로그램을 내보낼 계획이다.

그런데 방송사들이 한·미 자유무역협정과 관련 프로그램을 집중적으로 편성하는 데 대해 일각에서는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기 때문이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한다. 방송과 통신 부문에서 개방이 이루어질 경우 공중파 방송들이 타격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송계 안팎에서는 방송 종사자들의 걱정이나 체감도가 그리 크지 않다고 지적한다. 양문석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되어 방송 시장이 개방되면 방송의 공공성이 훼손되는 것은 물론 민주주의의 토대마저 위협받게 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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