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송이 휘날리는 구슬픈 ‘로망스’
  • 유혁준 (음악 칼럼니스트) ()
  • 승인 2006.07.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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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아이스 드라마 <눈보라> 국내 첫선
 
갑자기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눈이 송이송이 떨어지네 / 검은 까마귀는 쌩쌩 날갯짓을 하며, 썰매 위를 빙빙 날고 있구나. (<눈보라> 중에서)

1812년 러시아가 나폴레옹의 프랑스 군대와 맞서 싸우던 ‘애국전쟁’ 시기를 배경으로 러시아의 대문호 푸시킨이 쓴 단편소설 <눈보라>. 이 낭만적인 드라마는 푸시킨의 첫 산문 <벨킨 이야기>에 있는 다섯 개의 단편 중의 하나인데, 나머지 <한발의 사격> <농군 아가씨> <장의사> <역참지기>와 함께 사실주의적 성향이 강한 걸작이다.
마리아 가브릴로브나는 가난한 청년 블라디미르를 사랑한다. 하지만 부모의 반대로 두 남녀는 야반도주를 하여 외딴 교회에서 비밀리에 결혼식을 올리기로 한다. 눈보라가 매섭게 몰아치는 어느 날 밤, 마리아는 결혼하기로 약속한 교회에 도착하지만, 블라디미르는 눈보라 속에서 도중에 길을 잃고 약속한 시간에 당도하지 못한다. 이때부터 펼쳐지는 기막힌 사연들…. 여주인공 마리아의 파란 많은 사랑의 역정은 보는 이로 하여금 끝내 눈시울을 적시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또한 러시아의 겨울을 이토록 생생하게 묘사한 작품도 없을 것이다.

20세기 쇼스타코비치와 함께 러시아 작곡계의 총아였던 게오르기 스비리도프(1915-1998). 그는 쇼스타코비치와 달리 주로 러시아풍 색채로 음악을 만들었던 극히 러시아적인 작곡가였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을 졸업하고 1960년 레닌 상을 수상했으며 1970년에는 최고의 영예인 인민 예술가로 추대되기도 한 위대한 음악가였다.
스비리도프는 1964년 푸쉬킨의 <눈보라>가 영화로 제작되었을 때 영화음악 작곡을 의뢰받았다. 이때 모두 아홉 곡의 음악을 작곡해 영화의 수준을 한껏 높였는데, 정작 그 뒤로 인기를 얻었던 것은 영화보다는 스비리도프의 음악이었다. ‘트로이카’ ‘왈츠’ ‘로망스’ ‘군대의 행진’ 등이 유명한데 그 중에서도 ‘로망스’는 국내에서 1998년 FM 방송을 통해 소개되면서 이후 음악 팬 사이에서 폭발적 인기를 모으며 우리에게도 친숙한 선율이다.

지난해 3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소네바 강변에 자리한 류빌레이뇌이 드바레츠 스포르타 아이스 링크.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 아이스극장의 전용 링크이기도 한 이곳은 매서운 눈보라가 몰아치는 북구의 하늘을 그대로 이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스 링크 내부는 스비리도프의 음악에 맞춰 아이스 드라마 <눈보라>가 공연되면서, 관객으로 가득 찬 객석은 후끈한 사랑의 열기로 달아올랐다. 나폴레옹 군대를 무찌르고 개선하는 러시아 군대의 행진은 흥겨운 왈츠 리듬과 화려한 군무로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마리아와 블라디미르의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는 러시아 정상의 피겨 스케이팅 선수인 마스케비치와 플루첸코가 애절한 활강으로 재현했다. 플루첸코는 올해 초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현역 최고의 남자 피겨 스케이팅 선수이기도 하다.

흥겨운 왈츠 리듬과 화려한 군무에 탄성 저절로

바로 이 <눈보라>가 아이스 쇼로 국내 첫선을 보인다. 오는 8월 안양 아이스 링크와 원주체육관에서는 필자가 보았던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 아이스 극장이 제작한 ‘눈보라’가 국내 팬들에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마리아와 블라디미르가 함께 추는 아이스 2인무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로망스’! 슬프디 슬픈 사랑 이야기가 한여름 빙판 위에서 우리 가슴을 촉촉이 적실 것이다.

혹독한 겨울이 5개월 이상 지속되는 러시아는 예로부터 겨울 스포츠가 발달해왔다. 그 가운데 스케이트는 러시아인의 일상이기도 하다. 러시아를 대표하는 피겨 스케이팅, 아이스 댄싱 선수 출신으로 구성된 아이스 쇼 또한 최고의 실력을 자랑한다. 이는 러시아 전통 발레에 스케이팅이 결합해 낳은 걸작품이다. 더구나 세계 3대 오페라·발레 극장인 마린스키 극장을 필두로 하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발레는 현재 세계 으뜸이다. 아이스 발레 또한 이러한 장점을 살려 기교와 예술성을 겸비한 환상적인 무대를 자랑하며 매년 전세계에 그 명성을 전하고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 아이스 극장은 러시아 현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아이스 관련 단체다. <호두까기 인형> <잠자는 숲 속의 미녀>와 같은 고전 발레는 이 아이스 극장에서 공연하는 기본 레퍼토리일 뿐이다. <오즈의 마법사> <피노키오> 같은 동화 발레에서부터 보로딘의 <이고르 공>과 같이 러시아 오페라를 각색해 ‘아이스 오페라’를 탄생시켰다. 여기에 <눈보라>와 같은 아이스 드라마와 러시아 민요, 댄스 음악, 탱고, 팝, 록 등 다양한 음악 장르에 창작한 안무로 맞춤 서비스를 하는 등 실로 다양한 무대를 제공한다.

즉 예술성과 대중성을 함께 추구해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최고의 여흥을 제공해준다. 특히 아이스 극장의 단원들은 마린스키 극장에서 오랜 기간 안무와 무대 디자인 등을 전수받아 최고의 연기와 연출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8월4일 창원 성산아트홀을 시작으로 안양아이스링크, 원주체육관에서 공연 한다.

올여름 국내 무대에서는 이 외에도 아이스 발레와 아이스 쇼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대규모의 아이스 쇼 제작단 ‘홀리데이 온 아이스(Holiday On Ice Production)’의 극단 창립 60주년 기념 공연인 뉴 모던 댄싱 아이스 쇼 ‘로만자(ROMANZA)’가 1958년 이래 반세기 만에 한국을 찾는다. 8월4일부터 20일까지 서울올림픽공원 펜싱경기장에서 열리는 이번 공연은 일곱 가지 테마의 사랑 이야기로 구성되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 <삼손과 데릴라> <나비부인> <아담과 이브> <클레오파트라와 시저> <드라큘라> 등 가족과 연인이 볼 수 있는, 하지만 ‘절대로 따라 해서는 안 되는’ 사랑 이야기가 담겨 있다.

8월19일부터 9월10일까지 목동아이스링크에서는 ‘샹그리라 그랜드 아이스 쇼 (Shangri-La Grand Ice Show)’라는 제목으로 러시아 아이스 서커스팀이 내한한다. 피겨 스케이팅 전문가들과 서커스 예술가들의 테크닉이 모여 아이스 발레도 아니며 단순한 서커스도 아닌 <서커스 온 아이스(Circus on Ice)>를 만들어 흥미진진한 빙판 위의 묘기를 보여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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