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부양 정책 동원해야 하는가
  • 김은남 기자 · 김민욱 인턴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2006.07.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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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민간 연구소 “경기 나빠지므로 지금 시행” 정부·국책 연구소 “경기 회복세여서 부양 불가”

 
“여당 ‘(경기)부양책 필요’ vs 재경부 ‘시기상조’”(<한국일보> 2001년 7월13일자) “당·정 경기부양, 시각차 확연”(<한국경제> 2006년 7월19일자).

날짜만 가리고 보면 5년 전이나 지금이나 상황이 판박이다. 여당은 당장 경기부양책을 써야 한다고 정부를 몰아치고, 정부는 그럴 수 없다며 버티는 형국이다. 

홍종학 경실련 정책위원장(경원대 교수)은 지난 7월14일  ‘신진보 연대’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이를 ‘집권 4년차 증후군’이라고 명명했다. 집권 말기, 차기 대선을 앞두고 어김없이 경기부양론이 등장한다는 뜻에서다.

비교해 보면 출연진 중 겹치는 인사도 등장한다. 5년 전 강운태 당시 민주당 제2정조위원장과 함께 경기부양론의 선봉에 선 이가 강봉균 의원(열린우리당)이었다. 당시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이었던 강의원은 강력한 경기부양책의 시행을 주장하며 한국은행에게도 금리 인하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한은이 물가 안정만 고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라는 그의 주장에 전철환 당시 한국은행 총재는 노골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었다. 

이번에도 강봉균 의원은 경기부양론 진영의 맨 앞줄에 서 있다. 게다가 그는 5년 전보다 비중이 훨씬 강력해진 여당 정책위원장 자격을 갖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선거에서 충격적으로 참패한 이후 강의원은 △재정 지출 확대 △금리 인상 자제 △부동산 세제 완화, 비과세·감면 항목 연장 등을 통한 실질적 감세 △기업 투자 확대를 위한 출자총액제한제(출총제) 폐지 등 경기 부양 요구를 전방위로 들고 나오며 재정경제부와 한국은행을 압박하고 나섰다.

경기부양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재정 정책 부양과 통화 정책 부양이 그것이다. 재정 정책을 통한 부양은 다시 두 가지로 크게 나뉘는데, 하나는 건설 경기를 일으키거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는 식으로 정부 지출을 늘리는 것이요, 다른 하나가 세금을 깎아주는 것이다. 정부 지출이 늘고 세금이 줄면 기업 투자와 가계 소비가 살아난다. 통화 정책을 통한 부양은 대개 금리 인하로써 이루어진다. 중앙은행이 금리를 내리면 시중에 돈이 풀리게 되고, 이에 따라 소비·투자도 살아난다.   

이번에 여당이 들고 나온 경기부양책에는 이 모든 방식이 거의 망라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여당이 경기부양책을 주문하는 가장 큰 명분은 비관적인 경기 전망이다. 강봉균 의원은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올 상반기 6%대에서 하반기 4%대로 낮아지고 체감 경기가 바닥인 만큼 조속히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에 정부나 국책 연구소는 ‘이상 무(無)’라고 맞서고 있다. 한국은행은 7월 초 발표한 <2006년 하반기 경제 전망>에서 “우리 경제는 수출의 견실한 증가와 내수 회복에 힘입어 지난 2/4분기 이후 경기 상승세가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며 “하반기에는 경기 상승의 모멘텀이 상반기에 비해 다소 약해질 것으로 보이나 연간으로는 수출과 내수가 균형을 이루면서 5% 내외의 성장이 전망”된다고 밝혔다.  

대선 앞두면 어김없이 경기부양론 등장

그러나 민간 연구소 대부분은 하반기 경제 상황을 부정적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중동 지역의 정세 불안으로 국제 유가가 급등하면서 몇몇 연구소는 하반기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4% 아래로 낮춰 잡으려는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단 하반기 경기가 나빠진다고 해서 경기부양책을 동원해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전문가들도 의견이 엇갈린다.

집권 후반기 들어 경기가 부진해진 것은 역대 정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현상이다. 경기 부양의 유혹이 강해지는 것도 이즈음이다. 지난 4월 현대경제사회연구원이 발표한 <과거 집권 후반기 2년의 경제 성과 평가>에 따르면, 과거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는 공히 집권 전반기보다 후반기 경제성장률이 크게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곧 김영삼 정부 전반기(1993~1995년) 7.9%였던 경제성장률은 후반기(1996~1997년) 5.9%로, 김대중 정부 전반기(1999~2000년) 9.0%였던 경제성장률은 후반기(2001~2002년) 5.4%로 급락했다. 이 밖에 양대 정권 모두 집권 후반기에 △투자 침체 △소비 부진 △부동산 가격 상승 등의 특징이 나타났다고 이 보고서는 분석했다.  

 
집권 후반기 경기 침체 징후는 노무현 정부에도 어김없이 나타나고 있다. 과거 정부와 차이점은 있다. 집권 전반기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역대 정권과 달리 노무현 정부의 경제성장률은 2003년 3.1%, 2004년 4.6%, 2005년 4.0%로 집권 기간 내내 세계 경제성장률보다 낮은 수준이었다. 

이를 두고 보수 세력은 노무현 정부의 반시장적 경제 정책 때문에 한국 경제가 조로(早老)하고 있다고 비판해왔다. 반면 노무현 정부는 작금의 저성장 기조가 대내적 요인보다 세계 경제의 구조적 변화에 기인한 바 크다고 맞서왔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경기부양책을 쓸 것이냐, 말 것이냐이다. 비판자들은 ‘4·4 경제 활성화 정책(노태우 정부)’ ‘신경제 100일 정책(김영삼 정부)’ 등 역대 정권이 시도했던 인위적 경기부양책이 어김없이 부작용을 불러왔음을 상기시킨다. 과거의 경기부양책은 경제학자들의 비유대로 ‘짧은 달콤함, 긴 쓰라림’을 가져오곤 했다. 

한 여당 재경위 의원 “경기 부양 필요 없다”

김대중 정부 또한 집권 후반기 경기부양책의 일환으로 신용카드를 남발하고 벤처 기업 지원 붐을 일으켰지만, 이로 인해 가계 빚이 쌓이고 신용 불량자가 속출하는 등 부작용을 양산했다. 그 여파는 다음 정부까지 미쳤고, 이에 노무현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인위적인 경기 부양은 없다”라고 공언해왔다. 

지자체 선거 이후로도 정부 견해는 여전히 경기 부양 불가론으로 요약할 수 있다. 권오규 신임 재정경제부 장관 겸 부총리는 취임 과정에서 “정책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인위적인 경기 부양은 하지 않겠다”라고 밝혔다. 올 상반기 조기 집행을 하지 않아 하반기 재정에 여유가 있는 만큼 이를 모두 집행하는 것만으로도 경기 회복세가 유지될 것이라고 재정경제부는 전망했다.

이와 달리 재벌그룹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민간 연구소 대부분은 강봉균 의원으로 대표되는 경기부양론을 지지하고 있다. “재경부 계획대로 재정을 확실히 집행하는 정도로는 경기 하강 세를 조금 미루는 효과는 있겠지만, 경기의 흐름 자체를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라고 LG경제연구원 신민영 연구위원은 진단했다. 흐름을 바꾸기 위해서는 좀더 적극적인 재정 확대 노력을 보이고, 추가 금리 인상에도 극히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홍성국 대우증권 리서치센터장(상무)은 ‘경기 부양 무용론’을 주장했다. 홍상무는 “한국 경제가 글로벌 경제권에 이미 깊숙이 편입되어 있는 만큼 대내적으로 경기부양책을 쓴다고 해도 그 효과는 극히 제한적일 것”이라며, 그런 의미에서 역대 정권과 노무현 정부는 차이점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경기 부양을 해야 할 필요성으로 제시되는 저성장·고실업 등은 전세계적 디플레이션에 따른 현상으로 대내적으로 대처하는 데는 한계가 뚜렷하다는 것이다. 단 창업이나 벤처기업 지원 등 성장 잠재력을 확보하기 위한 투자는 더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반면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실장은 대내적 요인이 경제에 미친 영향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환율이나 유가 같은 대외적 요인은 어쩔 수 없다 쳐도 정치 불안을 가중시키고, 성장 정책과 분배 정책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며 기업의 투자 의욕을 떨어뜨린 부분은 노무현 정부가 지금이라도 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실장은 따라서 경기부양책 또한 기업 투자를 활성화하는 방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제언했다. 출총제 폐지를 비롯한 각종기업 규제 철폐 요구가 그것이다.

집권 후반기 때 등장하는 경기 부양 요구는 당에서 먼저 나오는 것이 이제까지의 관례였다. 선거를 앞둔 당이 경기 부양을 세게 치고 나오면 정부가 처음에는 버티다가 마지못해 따라가는 식이었다. 

하반기 ‘정치의 계절’이 본격화하면 여당의 경기 부양 요구는 더 거세질 전망이다. 단 여기에도 변수는 있다. 이름을 밝히기를 꺼린 열린우리당 재경위 소속 한 의원은 “전반적으로 경기가 상승세라는 정부 진단에 동의한다. 가만 놔둬도 상승 중인 경기에 박차를 가하면 산이 깊은 만큼 골이 깊어지는 법이다. 더 이상 인위적인 경기 부양은 필요없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나아가 암세포 같은 존재인 단기 부동자금을 회수하고, 이를 설비 투자로 연결시키기 위해서라도 추가적인 금리 인상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강봉균 의원과는 명확히 대립되는 주장이다. 여당 내부의 교통 정리부터 만만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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