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바 합의 형태로 ‘미사일 정국’ 푼다
  • 남문희 전문기자 (bulgot@sisapress.com)
  • 승인 2006.07.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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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협상파, 북한이 미사일 2차 발사하면 중국 중재로 ‘전향적 조처’ 내세워 대타협 나설 듯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유엔의 대북 결의 이후 국내 언론이 보여온 행태는 1994년 제네바 합의 전야와 매우 비슷하다. 당시에도 미국 내 강경 목소리에 편승한 국내 언론의 ‘정부 두들기기’가 극에 달해 있었다. 그러나 클린턴 행정부가 대북 무력 제재의 한계를 절감하고 제네바 합의로 급선회하자, 태도를 돌변해 ‘정부는 그동안 뭐 했나’라는 식의 후안무치한 행태를 보였다. 순진하게 뒤꽁무니를 따라갔던 김영삼 정부만 억울하게 됐던 것이다.

국내 언론의 이 놀라운 변신과 상황 적응력을  또 한 차례 보게 될지도 모른다. <시사저널>이 워싱턴의 전문가들을 통해 청취한 미국 정보기관의 분석에 따르면, 현재 전개되고 있는 북한 미사일 정국이 제네바 합의와 유사 판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는 미국과 일본의 강경 목소리만 횡행하지만 몇 차례의 변곡점을 지나면서 협상파가 다시 전면에 등장해 상황이 급반전할 가능성이 있다.  지금 미?일에 편승하지 않는다고 국제적 고립 운운하는 언론들이 그때 가서 다시 어떤 얘기를 할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스튜어트 레비 방한은 실패작: 최근 정세에 대한 미국 정보기관의 냉정한 평가는, 지난 7월16일부터 18일까지 사흘간 이뤄진 스튜어트 레비 미국 재무부 차관의 방한 결과 분석에서부터 시작된다. 국내 언론에서는 온통 레비 차관을 통해 미국이 강경한 대북 제재안을 한국 정부에 통보한 것인 양 난리를 피웠지만, 미국 정보기관이 관심을 기울였던 것은 바로 한국과 중국 정부의 반응이었다. 사실 레비 차관이 이번에 제시한 미국의 제재안은 새로울 게 없다. 북한이 6자회담 복귀를 계속 거부한다면 클린턴 정부 시절 완화했던 제재안을 다시 복원하겠다는 것인데, 이미 외교 채널로 통보한 내용일 뿐 아니라 실효성도 없는 것으로 평가된 바 있다.

그런데도 그가 이역만리 날아온 것은 내용보다는 미국이 유엔 결의 이후에도 계속 후속 조처를 취할 의지가 있음을 알리기 위한 것이었고, 이 과정을 거쳐 한국과 중국 등의 반응을 평가하고자 한 것이다.

 
한국은 지난 20일 힐 차관보가 미국 상원 청문회 도중 특별히 ‘감사’에 가까운 발언을 했던 것처럼, 국내 보수 언론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그러나 정작 한국 정부의 기본 견해를 무너뜨리는 데는 실패했다.

미국 정보 당국이 더욱 주목한 것은 이 기간에 포착된 중국 지도부의 움직임이었다. 미국은 중국이 지난번 유엔 결의에 동참했던 기조대로만 움직여준다면 한국도 결국은 따라올 수밖에 없으리라 보고 있다. 따라서 내심 중국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웠는데, 결론은 부작용만 냈다는 것이다. 즉 대북 금융 제재의 첨병인 그가 한국을 휘젓고 다니자, 유엔 결의 이후 ‘속앓이’를 하며 침묵을 지키던 중국 지도부가 ‘꿈틀’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베이징에 파견된 미국 정보기관들이 파악한 바에 의하면 ‘북한에 대한 미국의 숨은 의도를 더 이상 방치하면 안 된다.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를 계기로 중국 지도부 내에서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는 게 미국 정보기관의 분석이다.

미국·일본의 대북 압박, 빈껍데기에 불과

한.중의 동참 없는 대북 제재는 불가능: 미국이 한국과 중국의 반응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은 어떤 면에서 당연하다. 유엔 결의 이후 미국이나 일본이 다양한 대북 압박 메뉴를 내놓고 있지만, 사실상 실효성이 의심되는  빈껍데기 구호에 불과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동안 북한에 투자를 해놓던지 교류라도 해놓을걸’하는 후회가 나올 만도 하다. 북한과 섞인 게 없으니 제재를 하려고 해도 건더기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북한과 나름의 교류를 해왔고 경협을 해온 한국과 중국에 눈독을 들일 수밖에 없는 처지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그리고 유엔 결의 이후 미국 내에서 다시 재연된 강경?온건 논쟁도 따지고 보면 미국 자신이 어떻게 북을 압박할 것인가보다는  어떻게 하면 중국과 한국을 끌어들일 수 있느냐를 둘러싼 논쟁에 불과하다.

그동안 다 죽어가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기사회생해 최근 강경 여론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의 주장도 따지고 보면 유엔 결의로 중국을 옭아매는 데 성공한 만큼, 여기서 주춤거리지 말고 중국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계속 밀어붙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네오콘의 강경 여론에 대해 일단 국무부를 비롯한 협상파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삼가고 열심히 합창을 불러주고 있다. 때가 때인 만큼 지금은 독창을 부를 때가 아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후 힐 차관보가 ‘현재 미국에서 온건파는 없고 리얼리스트(현실주의자)만 있다’고 한 게 바로 그 얘기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네오콘의 주장대로 중국이 따라와만 준다면 나쁠 게 없기도 하다. 그러나 협상파들은 내심, 중국이나 한국이 그리 만만하게 굴지 않으리라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다만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미국에는 강경한 목소리만 넘쳐난다. 그리고 한편에서는 북한을 고립시키고 중국을 끌어들이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들이 진행되고 있다. 예를 들어 지난 7월19일 미국 상원에서 있었던 미국 망명 허용 탈북자 여섯명의 북한 인권 실태 고발이랄지, 북한 미사일의 이란 수출 문제를 부각시키기 위한 노력, 그리고 방코델타 아시아은행(BDA)에서 발견된 계좌 중 40여 개가 북한 수뇌부 것일 가능성이 높다며, 앞으로 실체를 공개해 ‘창피’를 주겠다는 얘기 등이다. 그동안 매우 낯익은 얘기들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을 보면 미국의 창의력에도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사실은 지난 4월 말에서 5월 초쯤 미국 정보기관들이 인권 단체들을 앞세워 기획했다가 미국 내 협상파들의 반발로 수면 아래 들어갔던 이벤트들이 재탕 삼탕되고 있는 형국이다.

중국, 대북 결의안 찬성 ‘뼈아픈 실수’로 여겨

다만 미.중 군사회담의 경우는 참신한 면이 있다. 지난 7월18일 <신화통신>이 보도한 대로 중국 군부 2인자인 궈보슝(郭伯雄)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이 미국을 방문해, 럼스펠드 국방장관과 미?중 합동 해상구조 훈련에 합의한 것 이 대표적 사례다. 군사 교류는 미국이 중국을 포위할 의사가 없다는 뜻을 전하기 위한 것일 뿐 아니라, 지난 20일 힐 차관보가 상원 청문회에서 솔직하게 밝힌 것처럼, 한반도에서 정치적 변화가 일어나도 중국에 반하는 전략적 이익을 취할 의사가 없음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미국이 구체적으로 중국에 쥐어줄 선물이 없고, 또 미국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을 정도로 중국이 순진하지 않다는 점이다. 1992년 등소평은 북한을 ‘중국의 동북 방면을 지키는 전략적 방벽’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북한이 중국 방위를 위해 전략적 중요성을 가진 곳이라는 등소평의 이 말은 천금 같은 무게로  중국의 역대 지도부에 전수되고 있다. 이 정도의 가치를 상쇄할 만한 것으로 기껏 생각해볼 수 있는 게 대만 문제를 양보하는 정도인데, 미국이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중국이 이미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더구나 최근 베이징 외교가는 중국이 유엔 결의에 덥석 손을 들어준 것을 두고 중국 외교의 뼈아픈 실수라고 여기는 분위기가 대세다. 여기에다 북한은 북한대로 중국의 유엔 결의 동참에 일체의 반응을 보이지 않는 수법으로 중국을 응징하고 있을 뿐 아니라, 8월 말 9월 초 김정일 위원장이 전격적으로 모스크바 방문을 할 것이라는 얘기를 흘려 중국의 애간장을 태우고 있다.  

네오콘이 실수할 때까지 기다려라: 중국이 미국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 게 분명해지면 성질 급한 네오콘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즉 중국을 제치고 대북한 압박 강도를 높여 북한이 두번째 미사일을 발사하도록 유도하는 게 낫다는 주장이 ‘반드시’ 제기될 것이라는 얘기다. 네오콘의 생각으로는 북한이 이렇게만 해준다면, 그것을 빌미로 국제적으로 북을 더욱 꽁꽁 옭아맬 수 있다.

그러나 그 반대로 판을 읽는 사람들도 많다. 상황이 역전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네오콘의 강경 정책이 북한을 자극해 또다시 한반도와 북.일, 북.미 간에 불필요한 긴장이 초래된다면 미국 내 여론뿐 아니라 중국이나 러시아, 한국이 반발하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어쨌건 북한은 네오콘의 초대에 응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미 박길연 유엔 주재 북한대사가 <시사저널> 대담(7월25일자, 874호)에서 밝혔듯 북한은 미국이 대북 압력을 높일 경우 언제라도 2차 발사를 감행할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다. 2차 발사는 1차 때와 같은 ‘의도적 실패’ 없이 ‘위력적이고 놀라우며 성공적인 발사’가 되게 함으로써 ‘군사 강국 북한의 위상을 유감없이 발휘할 것’이라고 한다.

바로 이 북한의 2차 발사를 전후해 여론의 반전이 일어나기 시작하면, 그동안 강경파와 합창을 하던 미국 협상파들이 ‘독창’을 부르기 시작할 거라는 얘기다. 그동안 물밑으로 유지해온 중국 채널이 가동되고, 중국은 북?중 관계 복원을 위한 ‘험난한 장정’에 ‘맞을 각오를 하고’ 다시 나선다. 이런 과정을 통해 1995년 7월 6자회담 직전 중국 중재 하에 힐과 김계관이 베이징에서 비밀 회동을 했듯이, 이번에도 북?미?중 간의  비공식 3자회담이 시작되고, 이 자리에서 ‘금융 제재에 대한 미국의 전향적인 조처와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맞바꾸는 문제의 협의’가 시작된다. 이 방식이야말로 미?중 양국의 외교 라인이 내심 구상하는 해법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에 대한 네오콘의 태도이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네오콘이 이를 받아들이면 북한이 또다시 미사일을 발사하는 불상사 없이 국면 전환이 이뤄진다. 

네오콘의 저항 그리고 2차 발사?: 그러나 네오콘이 그리 호락호락하게 물러나지는 않으리라는 게 좀더 냉정한 판단이다. 이 경우 북한은 주저하지 않고 2차 발사를 감행하게 되고, 네오콘은 정면 대응에 나선다. 어떤 대응일까. 군사적 옵션? 국내 언론들은 대체로 이 대목에서 이런 상상을 많이 하는 듯 하다. 그러나 네오콘 내부에서조차 군사 옵션은 정말 ‘위험하고 무식한 짓’이라고 결론이 나 있는 상태이다. 그렇다면 그 방법은? 다시 중국에 매달리는 수밖에 없다는 게 바로 미국 정보 당국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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