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친 데 덮친 코카콜라 ‘굴욕의 세월’ 보내네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2006.08.01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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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출 · 영업이익 '위기' 상황에 독극물 사건까지 덮쳐

 
갓 출소한 40대 여성이 벌인 독극물 협박 사건의 수렁에서 코카콜라가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6월29일 교도소에서 석방된 박 아무개씨(41)는 그로부터 이틀 뒤인 7월1일 한국코카콜라 홈페이지에 e메일을 띄웠다. 자기에게 20억원을 보내지 않으면 시판 중인 콜라에 독을 섞겠다는 내용이었다.

한국코카콜라측에 따르면, 이 회사는 당일로 위기 대응팀을 구성하고 비상 태세에 돌입했다. 전세계 코카콜라 사가 공유하고 있는 돌발상황관리(Incident Management) 시스템에 따른 조처였다. 휴가 중인 홍보팀 직원에게는 즉각 복귀 명령이 내려졌다. 미국 애틀랜타 코카콜라 본사에서 재무 담당자도 급파됐다. 만약에 있을지 모를 현금 협상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박씨는 치밀하고도 대담했다. e메일 혹은 문자 메시지만이 박씨와 연결되는 통로였다. 한국코카콜라측이 보낸 문자 메시지를 확인하고 나면 박씨는 곧 전화를 끄고 자리를 이동했다. 경찰 추적을 따돌리려는 것이었다.

이에 맞서 코카콜라측은 끈질기게 교신을 시도했다. 최초의 협박 메시지가 있었던 7월1일부터 박씨가 검거되던 7월9일까지 회사와 박씨 사이에 오간 문자 메시지는 74통에 달했다. 이처럼 자신들도 범인을 유인해 잡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것이 코카콜라측의 주장이다.

그러나 범인이 검거된 바로 그날 최초의 희생자가 발생하면서 여드레 동안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한국 코카콜라 홈페이지에 “(방금 마신) 콜라 맛이 이상하다”라는 한 소비자의 글이 올라온 것은 9일 저녁 9시께. 이때부터 코카콜라측이 보여준 행태는 사건 발생 직후 위기 대응팀을 꾸려 만약의 사태에 대처해왔다는 저간의 설명이 무색할 만큼 안이한 것이었다.

이 글을 올린 이 아무개씨가 범인이 검거된 전남 광주에 거주하던 소비자였는데도 한국코카콜라측은 이씨를 인근 병원에 데려가 간단한 검사만 받게 한 뒤 돌려보냈다. 이 회사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검사 결과가 나온 다음날 오후에야 농약 중독 클리닉이 설치돼 있는 순천향대 천안병원에 이씨를 입원시켰다. 콜라를 마신 지 24시간이 지나 독성이 이미 온몸에 퍼진 상태였다. 입원 직후 폐 기능이 악화돼 위험한 상태에 빠지기도 했던 이씨는 다행히 건강을 회복해 7월27일 퇴원했다.

 
그러나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국코카콜라측에는 ‘늑장 대응’에 대한 비난 여론이 쏟아졌다. 11일 기자 간담회에 나선 한국코카콜라보틀링 이명우 회장은 이런 비난에 펄쩍 뛰었다. 책임은 통감하지만 늑장 대응을 했다는 지적에는 동의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국코카콜라측 관계자는, 사건 초기 경찰의 수사 협조 지시에 따라 협박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않았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더욱이 독극물 협박은 음료 회사에 연례 행사처럼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이다. “협박을 받게 되면 회사는 즉각 비상 체제에 들어간다. 그러나 협박을 받은 것만으로 이를 소비자에게 일일이 알리기는 어렵다. 다른 회사도 마찬가지이다”라고 그는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식품 회사의 특수성을 십분 감안한다 해도 코카콜라가 고객 목숨을 담보로 무책임한 대응을 했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피해자 이씨의 제보로 인해 전남·광주 지역 콜라에 독극물이 투입됐을지 모른다는 의심이 짙어진 뒤로도 회사는 이틀 가까이 적극적인 조처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코카콜라측은 이씨가 입원한 다음날인 11일 오전에야 전남·광주 지역에서 시판 중인 코카콜라 100만여 병을 전량 회수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그 사이 피해자가 무차별 확산될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독극물 사건으로 코카콜라가 입을 유·무형의 피해 규모는 현재로서는 예측하기 어렵다. 일단 독극물 사건이 공개된 직후 할인점·편의점 등의 코카콜라 매출은 급전직하했다. GS25(편의점)를 운영하는 GS리테일에 따르면, 사고가 발생한 이후 코카콜라 매출은 계속해서 줄고 있다. 사고 발생 1주째인 7월10일~16일 전주 대비 6.44% 감소했던 코카콜라 매출은 2주째인 7월17~24일 전주 대비 6.9% 더 감소했다. 

신제품 개발·사업 다변화 소홀히 해 ‘추락’

이에 대해 한국코카콜라측은 “특정 지역에 국한돼 일어난 사건이어서 여파가 오래가지는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최근 콜라 판매 실적이 저조한 것도 독극물 사건이라는 단일 변수 때문만은 아니고, 유난히 긴 장마 등 여러 악재가 겹쳐 작용한 결과라는 것이다.

그러나 관련 업계는 코카콜라의 위기가 단기간에 끝날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이들의 부정적 전망은 코카콜라의 매출 하락세가 어제 오늘 벌어진 일은 아니라는 데서 출발한다.

세계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코카콜라 사업체는 크게 둘로 나뉘어 있다. 코카콜라 원액 생산 및 브랜드·마케팅 관리를 맡는 회사(‘한국코카콜라’)와 이 회사로부터 콜라 원액을 공급받아 이를 음료 제품으로 만들어 파는 일명 ‘보틀러’ 사(‘한국코카콜라보틀링’)가 그것이다. 보틀러는 콜라 이외의 음료도 제조·판매하며, 두 회사는 서로 긴밀한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코카콜라 및 기타 음료 제품 40여 종을 제조·판매하는 한국코카콜라보틀링의 매출액은 2002년 5천9백90억원을 정점으로 이듬해부터 4천억원대로 주저앉았다(그림 참조). 영업이익률 또한 3년 연속 마이너스이다.

 
한국코카콜라보틀링뿐만이 아니다. 현재 국내 콜라 시장은 코카콜라와 펩시콜라(롯데칠성)가 양분하고 있다. 그런데 사회 전반적으로 웰빙 트렌드가 확산된 데다가 경기 침체에 따라 외식 업체에서의 콜라 소비가 감소하면서 2000년 이후 콜라 시장은 꾸준히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2005년 콜라 시장은 전년 대비 10%에 가까운 마이너스 성장률을 보였다.

문제는 한국코카콜라보틀링의 코카콜라에 대한 의존도가 경쟁 업체에 비해 훨씬 높다는 사실이다. 코카콜라측에 따르면, 이 회사의 탄산 음료 대 비탄산음료 매출 비중은 50 대 50에 달한다. 롯데칠성 같은 경쟁 업체의 탄산 대 비탄산 매출 비중이 30 대 70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이 회사의 탄산 음료 의존 비중이 상당히 높은 셈이다.

코카콜라가 위기를 자초했다는 비판을 받는 것은 이 대목이다. 김국태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코카콜라가 과거의 성공 방식에 도취해 신제품 개발이나 사업 다변화를 소홀히 하는 ‘1등의 함정’에 빠져 오늘의 위기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마켓 리더의 함정>). 특히 경쟁사인 펩시가 웰빙 흐름에 맞춰 콜라 외에 과일주스와 이온 음료, 스낵 등을 취급하는 종합 식품 회사로 탈바꿈하는 동안 코카콜라는 오히려 콜라 사업을 더 강화하는 어리석음을 범했다는 것이다(코카콜라는 지난해에만 탄산음료 마케팅에 무려 4천억 원을 쏟아부었다).

그 결과 코카콜라는 세계 콜라 시장에서 펩시콜라에 업계 1위 자리를 내주는 ‘굴욕’을 겪었다. 지난해 매출 규모·순이익·시가총액에서 모두 펩시콜라에 뒤지는 수모를 당한 것이다. 한국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국코카콜라보틀링은 변화에 둔감하고, 설사 변화에 맞춰 신제품을 출시한다 해도 경쟁사에 비해 뒷북을 치기 일쑤라는 비아냥을 들어왔다.

더욱이 한국코카콜라가 고전한 데는 글로벌 기업 특유의 비효율성도 작용했다고 관련 업계는 보고 있다. 코카콜라는 현지화 전략에 따라 나라별 자회사마다 일정한 자율권을 주고 있으되 마케팅과 관련된 주요한 정책 결정을 할 때면 본사의 통제와 자문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이로 인해 의사 결정이 늦어진다는 것이다.
이 회사 사정을 잘 아는 한 마케팅 전문가는 매실·망고 등 과일주스 열풍이 불기 시작하던 2002~2003년께를 예로 들었다. 코카콜라도 서둘러 관련 신제품을 출시해야 한다고 당시 한국측 마케팅 담당자들이 아우성을 쳤지만 결국 본사에서 의사 결정을 미뤄 실기(失機)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코카콜라 특유의 중앙집권적 의사 결정 체제는 1999년 벨기에에서 발생한 독극물 사고 때도 문제가 된 일이 있다. 당시 코카콜라는 첫 사고가 발생한 지 한 달여 만에야 사과 성명을 내고 제품 회수 조처를 취했다가 엄청난 비난 여론에 직면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번 독극물 사태에서도 이런 문제점이 말끔히 해소되지 않아 의사 결정이 늦어졌으리라고 주장했다.

물론 코카콜라는 글로벌 기업으로서 많은 강점을 갖고 있다. 강력한 브랜드 파워 및 일관된 브랜드 관리는 코카콜라를 떠받치는 저력이다. 코카콜라는 무자료 거래 같은 한국 특유의 후진적 관행도 배격한다. 국세청이 올 상반기 여덟 개 음료 회사를 상대로 벌인 세무 조사에서도 코카콜라는 맨 먼저 무혐의 판정을 받았다.

그럼에도 한국처럼 소비자 기호가 시시각각 변화하는 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해서는 현지 회사에 권한을 더 이양하는 현지화 전략이 더 강화돼야 할 것이라고 앞서의 전문가는 지적했다. 자율적 결정권을 확대·강화할 때 기업의 위기 대응 능력 또한 높아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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