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품 선별등재방식, 왜 자꾸 '잡음'이 나올까?
  • 오윤현 기자 (noma@sisapress.com)
  • 승인 2006.08.04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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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 입법 예고하자 국내·외 제약사 강력히 ‘유예’ 주장

 

이 세상에 만인(萬人)의 지지를 받는 제도가 있을까. 보건복지부(복지부)가 시행하려는 의약품 선별등재방식(포지티브 리스트 시스템)을 둘러싼 논쟁을 보면, 한 제도를 정착시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짐작할 수 있다. 특히 그 제도가 ‘돈’과 관련되어 있으면 더욱더. 선별등재방식을 강력히 반대하는 곳은 국내·외 제약협회이다. 그들은 ‘인프라 미비’ 같은 이유를 들어 제도 시행을 중단하거나, 늦추어달라고 요구한다. 한국제약협회(제약협회)는 아예 헌법 소원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복지부의 의지는 단호하다. 7월26일 입법 예고를 했으므로 “두 달 동안 이의 신청과 의견을 들은 뒤 11월쯤 제도를 시행할 계획이다”라고 복지부 박인식 보험급여기획팀장은 말했다. 과연 복지부의 뜻대로 석 달 뒤 선별등재방식이 정상적으로 가동할 수 있을까. 최근 사태를 중심으로 그 가능성을 짚어본다.

왜 선별등재방식인가
우리나라 의약품 수는 2006년 1월 현재 2만8천3백74품목. 그 가운데 77%인 2만1천7백40품목이 보험 급여 대상으로 등재되어 있다. 보험 급여 대상이 되면 가격의 상당 부분을 국민건강보험공단(공단)에서 메워줘, 환자는 비교적 싼값에 그 제품을 이용할 수 있다. 예컨대 1천5백원짜리 고혈압 약을 처방받으면, 환자는 5백원만 내고 나머지 1천원은 공단이 지불하는 식이다. 그렇지만 보험 급여 대상이 아닌 의약품은 다르다. 환자가 100% 값을 치러야 한다. 그래서 웬만해서는 그 약을 쓰기가 어렵고, 제약사들은 약을 팔기 어려워진다.  

 

제약사들이 자사 의약품을 보험 급여 대상에 포함시키려고 애쓰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동안 제약사들은 운이 좋았다. 이른바 ‘네거티브 리스트 시스템(네거티브 제도)’에 따라 거의 모든 의약품이 보험 급여 대상에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네거티브 시스템이란 업무 또는 일상 생활에 지장이 없는 경우에 사용하는 의약품과 예방 목적으로 사용하는 의약품 등을 뺀, 모든 의약품을 보험 급여 대상에 포함시키는 제도이다.  

그런데 이 제도는 단점이 있었다. 효과에 비해 약가가 비싼 제품이 적지 않게 포함되었던 것이다. “비슷한 성분으로 만들어진 약인데도 한 제품은 8천~9천원 하고, 다른 한 제품은 1천원도 안 되는 경우가 있다”라고 약사 오 아무개씨는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환자와 공단의 부담이 늘어난 것은 당연했다.

그 탓일까. 건강보험의 총 진료비 가운데 약제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2001년 이후 매년 평균 14%씩 증가했다. 그 결과 2001년 4조1천8백4억원이던 약제비가 2005년에는 7조2천2백89억원으로 늘어났다. 건강보험 총 진료비(24조8천억원) 가운데 차지하는 비중도 23.5%에서 29.2%로 불어났다(그 외 약제비 증가 원인으로 노인 인구 증가, 만성질환자 증가 등이 꼽힌다).

선별등재방식은 이처럼 늘어나는 약제비를 줄이려는 의도에서 도입되었다. 이 제도는 약효 대비 비용을 따져 약가를 결정한다. 따라서 가격에 비해 약효가 떨어지거나, 약효에 비해 가격이 비싸면 보험 급여 대상에서 제외된다. 만약 이 제도가 순조롭게 시행된다면 현재 2만 개 이상인 보험 급여 대상 품목은 5천 개 안팎으로 줄어든다. 그렇게 되면 29.2%인 약제비의 비중이 2011년에는 24%까지 떨어질 전망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선별등재방식은 환자와 공단, 의사와 약사, 그리고 제약사 모두에게 이로운 제도다. 환자와 공단은 약효가 뛰어나면서 값이 싼 의약품을 사용해서 약제비를 합리적으로 지출할 수 있다. 반면 의사는 비용 대비 효과적인 의약품 정보를 빨리 얻어 처방 의약품 선택을 쉽게 할 수 있다. 약사도 관리 의약품 수가 적어져 재고 부담이 줄어들고, 관리비를 절감하는 등 이득을 챙길 수 있다. 제약사도 처음에는 손해를 보겠지만, 품질 경쟁으로 경쟁력이 높아지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왜 반대 목소리가 높나
하지만 국내외 제약사들은 선별등재방식 이야기가 나오면 눈초리가 올라간다.  제약협회는 경제성을 평가할 인력과 연구기관, 데이터 등이 없어서 제도를 제대로 시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한다. 누가, 어떻게 그 복잡한 업무를 수행하겠느냐는 것이다. ‘피해’도 걱정한다. 보험 급여 대상에서 의약품이 빠지면, 그만큼 제약 업계가 받을 타격이 커진다는 것이디.  

제약협회는 네댓 가지 ‘부작용’을 이유로 들어 선별등재방식의 유예를 주장한다. 첫째, 선별등재방식을 시행하면 제약사들이 전문가를 확보하고 외부 연구 용역을 발주하는 데 많은 비용이 든다. 둘째, 국내 제약사와 다국적 제약사의 차이가 드러난다.  다국적 제약사는 연구·임상 데이터가 풍부하지만 국내 제약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셋째,환자의 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 부득이 보험 급여 대상에서 제외된 의약품을 사용하게 되면 그만큼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넷째, 단일 보험 체계에서 정부가 일방적인 정책으로 의약품을 퇴출시키면 재산권 침해가 될 수 있다.

제약협회의 결론은 명료하다. 일단 제도를 유예한 뒤 경제성 평가 인력을 확보하고, 다(多) 보험 체계(사보험·공공보험 등)를 구축하고, 균형 잡힌 선별 목록 제도를 마련한 뒤 시행하라는 것이다. “현재 제약사들이 한 제품의 효과와 경제성을 평가하는 데 5천만원 이상의 돈과  대여섯 달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 어떻게 그 복잡한 일을 하겠다는 것인지 의문이다”라고 제약협회의 김용정 팀장은 말했다. 

7월 말, 26개 다국적 제약사로 구성된 한국다국적의약산업협회(KRPIA)도 선별등재방식을 강력히 반대하고 나섰다. 이 방식이 ‘환자와 의사들의 신약에 대한 접근권을 떨어트리고, 약효 검사가 제대로 이루어질지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심한섭 RPIA 부회장은 “의사는 약효를 가지고 처방한다. 그런데 단지 비싸다는 이유로 보험 급여 대상에서 제외하면, 의사도 환자도 신약으로 접근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가격 대비 약효 검증은 지난한 작업이다. 예컨대 새로 나온 폐암 치료제를 검증할 경우, 신약의 기본적인 약효·임상 자료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약과 비교할 만한 기존의 폐암 치료제에 대한 자료도 챙겨야 한다. 외국의 사례도 확보하고, 환자 인터뷰도 하고, 효과 대비 경제성도 분석해야 한다. 그 과정이 적어도 2, 3년은 걸린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검증 기간이 오래 걸리면, 아무리 뛰어난 신약이 나와도 환자들이 도움을 받을 수 없다”라고 그는 말했다.

신약을 만드는 데 들어간 어마어마한 경비와 시간(10년 이상)을 무시한 채, 가격 대비 약효만 검증하겠다는 것도 불만이다. 제조사 처지에서는 엄청난 투자비를 회수하고 싶은 게 당연한데, 단순히 약효에 비례해 가격을 매기겠다는 방침은 그같은 수고를 무시한 처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해결 방법은? KRPIA에서는 깜짝 쇼처럼 추진하지 말고, 환자·학자·약사·의사·제약사가 모두 협의해서 제도를 만들자고 주장한다.

시민단체 “시행하려면 제대로 해라”
지난 7월31일,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건강약사회)는 서울 달게비식당에서 ‘선별등재방식 도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 자리에서 오한석 사무국장 등은 세 가지 주장을 했다. 하나는 약가 산정 시 ‘선진 7개국(A7)’ 가격을 기본으로 삼고 있는데, 그것을 실거래에 근접한 가격을 기준으로 삼으라고 권고한 것. 다른 하나는 선별등재방식을 신약에만 적용하지 말고, 모든 보험 급여 대상 품목으로 확대하라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선별등재방식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물로 연계하지 말라는 것이다.

세 가지 주장에는 근거가  있다. 우선, 약가 산정 기준. 현재 우리나라는 신약의 가격을 매길 때 미국·독일·영국 등 선진 A7의 기준 약가집을 참고로 한다(딸린 기사 참조). 문제는 기준 약가집이 실제 거래가보다 비싸다는 데 있다.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의 경우, 한국의 약가는 미국의 도매가(2만1천2백58원)를 기준 삼은 2만3천45원인데, 미국의 연방정부 공급가는 1만9천1백35원이다.

 
미국의 ‘빅4(국방부·보훈처·공중위생국·해안경비대)’ 공급가는 더 낮아서 1만2천4백원. 따라서 기준가를 연방정부 공급가나 빅4 거래가에 맞추면 더 값싸게 약품을 공급할 수 있다는 것이다(그러나 KRPIA에서는 정부 기관에 납품되는 약가는 어느 나라건 더 싸다고 주장한다).

선별등재방식을 기존의 보험 급여 대상 품목에까지 확대하라는 주장은 ‘네거티브 제도로 보험 급여 대상에 오른 품목을 모두 재평가해야 한다’는 뜻이다. 복지부도 그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2011년까지 거의 모든 품목을 재평가해서 1만5천여 개를 보험 급여 대상에서 퇴출시킬 계획이다.

선별등재방식을 한·미 FTA 협상물로 만들지 말라는 주장은 자칫 잘못하면 특허 연장과 약가를 산정 할 때 (다국적) 제약사 참여 등을 양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나왔다. 오한석 사무국장은 “약가 결정 제도와 특허 관련 제도는 각 나라 상황에 맞게 결정해야 한다. 다른 나라나 제약사가 참견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복지부 “우리 갈 길을 간다”
선별등재방식은 7월26일 입법 예고되면서 시행이 기정 사실화되고 있다. 9월24일까지 이해 관계자의 의견을 청취한 뒤, 규제개혁위원회와 법제처 심사를 받으면 확정 공포될 예정이다. 그 일의 실무를 맡고 있는 복지부 박은식 보험급여기획팀장은 최근 제기 중인 여러 지적에 조목조목 반박했다.
다국적 제약사들은 정부가 선별등재방식을 일방적으로 추진한다고 말한다.
“이미 오래전에 공고했다. 그리고 일곱 차례 국내·외 제약사 관계자들을 불러 논의했다.”

전문 인력 부족 등 인프라 구축이 안 되어 있어 시행착오가 클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6월에 최종 지침을 만들었고, 이미 2003년부터 검증 인력을 육성해왔다. 현재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의 인력만으로도 검증이 가능하다. 조만간 전문가들로 구성된 약제급여평가위원회도 구성할 계획이다.”

의약품의 효용 대비 경제성을 평가하는 일은 어려운 작업이다. 재평가할 품목 수도 적지 않다.
“이미 보험 급여 대상으로 등재된 약품은 성분별로 검증하게 된다. 가령 같은 성분의 약이 열 가지라면, 한두 가지만 남기고 퇴출시킨다.”

뛰어난 신약이 단지 고가라는 이유로 보험 급여 대상에 포함되지 않을 수도 있나.
“경험적으로 볼 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도 이미 선별등재방식을 활용하고 있다. 게다가 기존 약보다 효과가 뛰어나거나 복용법이 편리해졌으면 당연히 등재된다.”

 
한국제약협회에서 시행 규칙으로 이 제도를 시행할 수 없다며, 위헌 소송을 검토 중이다.
“입법자가 정한 법률의 위임에 근거해서, 그 범위 내에서 시행 규칙을 만들면 문제될 게 하나도 없다. 기본 방향을 문제 삼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 선별등재방식이 위헌이면 네거티브 제도도 위헌이다. 왜 그때는 가만히 있었는가?”

미국측과 특허 연장이나 최종 약가 결정 기구에 다국적 제약사 관계자가 참여하는 등의 이면 합의를 했을지 모른다는 소문이 있다.
“어떤 이면 합의도 없다. 아마, 복지부에 설치하게 될 약제급여조정위원회에 다국적 제약사 대표자가 참여할 수 있다는 내용을 잘못 알고 있는 것 같다. 이 위원회에는 다양한 이해 관계자가 참여한다. 최종 약가 결정 기구는 심평원에 설치될 약제급여평가위원회다. 당연히 그 위원회에는 제약사 관계자들이 포함되지 않는다.”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복지부 논리대로라면 선별등재방식은 우리나라 의료 체계에 없어서는 안 될 제도이다. 또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에 한 해 공급되는 신약은 약 30~50품목이다. 2, 3년 정도 전문 인력을 키우면 못할 일도 아니다”라고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이의경 의약품정책팀장은 말했다. 그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보험 급여 대상 의약품이 너무 많아, 이대로 가면 약제비 비중이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심평원 의약품경제성평가연구팀의 배은영 책임 연구원은 “1차 약효 대비 경제성 평가는 심평원의 약제관리실에 있는 훈련된 사람들이 한다. 2차로는 조사연구실의 박사급 연구원들이 자문을 하게 된다. 따라서 처음에는 좀 혼란스럽겠지만, 이내 궤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실제 최근에 심평원에서 자료 아홉건에 대해 효용 대비 경제성 평가를 하거나, 진행 중인데 아무 문제도 없었다고 그는 덧붙였다. 

  LG경제연구소 고은지 책임연구원은 제도 자체를 반대할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보험 급여 대상에서 퇴출되는 약이 많아 제약사들이 재정 압박을 받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경쟁력이 없는 영세 제약사들이 문을 닫으면서 제약 시장이 투명해지고 건강해진다는 것이다. 합병·매수(M&A)도 빈번히 일어날 전망이다.

현재 국내에는 7백 개 이상의 크고 작은 제약사들이 난립해 있는 상태. 그 가운데 몇 개의 제약사가 문을 닫을지는 미지수다. “제도가 시행되면 3, 4년 안에 옥석이 가려질 것이다. 복제 약품 개발과 영업 판매에 집중하느라 연구 개발에 소홀했던 제약사들이 주로 문을 닫게 될 것이다”라고 고은지 책임연구원은 전망했다.

입법 예고로 이제 선별등재방식 시행은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과연, 복지부는 국내·외 제약사의 저항과 미국의 강력한 압박과 저항을 이겨내고 ‘시행’ 스위치를 누를 수 있을까. 모든 피보험자가 그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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