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위의 전쟁’ 끝이 없네
  • 이숙이 기자 (sookyiya@sisapress.com)
  • 승인 2006.08.21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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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대통령과 보수 언론이 또 맞붙었다. 임기 말까지 지속될 것으로 보이는 이 대결에서 최후에 웃는 사람은 누구일까.

 
유진룡 전 문화관광부 차관 경질을 계기로 촉발된 청와대와 보수 언론 간의 총력전이 점입가경이다. 노무현 정부 초기에 벌어진 참여정부 대 보수 언론 간의 대규모 ‘소송전’이 임기 초반 주도권을 누가 잡느냐를 놓고 전개된 ‘기 싸움’ 성격이었다면, 노대통령의 임기를 1년6개월 가량 남겨두고 진행 중인 이번 전쟁은 대통령의 레임덕을 가속화하느냐 마느냐를 가를 막판 힘겨루기로 보인다.

공격의 신호탄은 동아일보가 쏘아 올렸다. 차관 인사가 있고 난 다음날인 8월9일자 보도에서 “유진룡 문화관광부 차관이 6개월 만에 경질된 이유가 궁금하다”고 운을 뗀 동아일보는 이틀 뒤 “인사 청탁을 거절한 데 대한 보복성 경질이다. 이백만 청와대 홍보수석과 양정철 홍보기획비서관이 청탁 전화를 했었다”는 유 전 차관의 인터뷰를 실었다.

동아일보의 선도투를 계기로 두 사람은 인사 외압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반여 매체’는 물론 친여 성향을 보여온 여타 매체들까지도 일제히 두 사람에 대한 의혹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물론 ‘빼 째 드리죠’ 논란처럼 새로운 이슈를 창출하는 쪽은 이른 바 조·중·동으로 불리는 보수 언론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참여정부의 언론 정책을 총괄하는 이수석과 양비서관은 일부 언론, 특히 조선·동아에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로 여겨져왔다. 그동안 끊임없이 각을 세우고 충돌해왔기 때문이다. 최근에만 해도 양측은 조선일보의 ‘계륵 대통령’, 동아일보의 ‘약탈 정부’ 칼럼으로 정면충돌했다. 이백만 수석이 <청와대브리핑>에 “대통령을 어떻게 먹는 음식에 비유하느냐”라는 내용의 반박문을 실었는가 하면, 이를 계기로 조선과 동아의 청와대 출입 기자가 취재 거부 조처를 당했다. 취재 거부란 청와대 직원들이 전화 취재, 면담, 인터뷰 등에 일절 응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양정철 비서관은 이미 “조선, 동아는 저주의 굿판을 걷어치워라” “조·동의 반노무현 중독증이 심각하다”라는 글 등을 통해 이들 언론과 감정의 골이 깊어진 상태다. 그런 마당에 두 사람이 인사 청탁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호재’가 터졌으니, 이들 언론에게는 ‘딱 걸렸다’ 싶었던 셈이다. 더욱이 보수 언론에는 ‘내부 고발자 유진룡’이라는 천군만마가 버티고 있었다.

이른바 보수 언론의 기세가 홍보수석실을 집어삼킬 듯하자 청와대도 흠칫하는 모양새였다. 첫 보도가 나간 지 1주일이 다 되도록 이렇다 할 대응책을 내놓지 못한 것이다. 평소 언론과의 한판이라면 결코 피하지 않던 이백만-양정철 두 당사자가 입을 닫은 것은 물론이고, 다른 청와대 관계자들도 익명을 전제로 “유 전 차관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라는 점만 되풀이했다. 청와대측은 “자칫 청와대와 이 정부에 몸담았던 전직 관료가 감정 싸움을 벌이는 것처럼 비칠 수 있어서”라고 이유를 댔다.

하지만 상황은 이미 그것을 걱정할 수준을 넘어가고 있었다. 인사 청탁이든 인사 협의든, 두 사람이 정부 산하 기관의 인사에 개입했다는 점은 빼도 박도 못하는 사실로 드러났고, 보수 언론의 집중 포화에 야당의 정치 공세까지 가세해 불똥은 참여정부 전체의 인사 난맥상을 헤집는 쪽으로 옮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청와대가 침묵하자 일각에서는 “청와대가 뭔가 구린 데가 있는 모양”이라는 해석까지 나왔다.

이를 의식한 것일까. 8월16일 드디어 청와대가 반격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날 청와대 기자실에는 박남춘 인사수석과 전해철 민정수석이 함께 등장했다. 인사 추천과 인사 검증을 맡는 두 사람이 동시에 기자실에 나타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 한 시간이 넘게 진행된 기자들과의 일문일답에서 두 수석은 유 전 차관의 주장과 이를 근거로 언론이 제기한 각종 의혹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어떤 질문에는 기자의 질문 의도를 넘어서는 대목까지 상세하게 설명하는 등 이례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은 ‘원래 이런 말하면 안 되지만’이라는 표현을 여러 번 썼다. “유 전 차관이 차관 승진 2순위였는데, 1순위자가 도덕성에 문제가 있어서 진급시켰다” “영상자료원장 최종 후보에 오른 세 명은 각각 뇌물 수수, 부하 여직원에 대한 부적절한 발언 등 도덕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서 탈락한 것이다” “유 전 차관이 청와대 비서실에 대해 부적절한 발언을 한 적이 있는데, 차관 인사에는 반영되지 않았지만 인사 데이터베이스에는 남겨 놓았다” 같은, 말 그대로 프라이버시에 관련된 내용이거나 내사 자료에나 담겨 있을 내용을 여과없이 쏟아낸 것이다. ‘비보도 요청’도 없어서 오히려 기자들이 “이런 것까지 다 말해도 되느냐”고 되물을 정도였다. 그만큼 ‘다급함’이 묻어났다. 청와대의 한 고위 인사는 청와대가 부랴부랴 반격에 나선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보수 언론이 이참에 청와대 홍보 라인을 무력화하고 나아가 참여정부의 국정 홍보, 언론 정책의 기조 자체를 무너뜨리겠다는 야욕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 마당에 전직 공무원에 대한 예우 같은 것을 따지며 마냥 맞고만 있을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을 한 것이다.”

 
요컨대, 조·동·문(청와대 사람들이 노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비우호적인 3대 언론으로 꼽는 조선·동아·문화의 줄임말, 쪽 상자 기사 참조)이 단순한 홍보 라인 공격에서 벗어나 총체적인 노무현 흔들기에 나선 것으로 간주하고, 청와대도 그간의 소극적 대응에서 기조를 바꿔 적극 방어에 나서기로 했다는 얘기다.

인사·민정 수석의 반격에 이어 8월17일에는 당사자로 지목된 양정철 비서관이 말문을 열었다. 그는 인터넷 신문인 <오마이뉴스>에 보낸 기고문에서 “인사 청탁이 아닌 일상적인 인사 협의였다” “‘빼 째 드리지요’라는 표현을 쓴 적이 없다”라고 반박한 데 이어, 이번 사태의 본질이 실상은 신문법을 무력화하기 위한 보수 언론의 정치 투쟁임으로 시사했다. 보수 언론이 유 전 차관을 감싸며 이를 홍보수석실의 인사 청탁을 거절한 데 대한 보복성 경질로 몰아가는 이유는 (보수 언론에 불리한) 신문법 제정에 반대했고, 그로 인해 탄생한 신문유통원 운영에 비협조적이었던 유 전 차관을 보호하는 한편, 오는 9월 정기국회에서 다뤄질 신문법 개정 논의에서 유리한 국면을 차지하기 위한 의도라는 것이다.

“신문유통원은 신문 공동 배달 시스템을 갖춰 우리 신문업계의 공동 발전을 도모하려는 취지에서 설립된 기관이고, 신문법의 핵심이다. 이런 기관이 부도 지경에 이를 때까지 수수방관했다면 그냥 넘어갈 일인가? 본인(유 전차관)은 억울해한다고 들었는데, 억울하다면 진작 챙겼어야 한다” “신문유통원 설립 취지에 부정적인 일부 보수 신문이 유 전 차관 문제를 처음 꺼내고, 집요하게 제기하고, 본질을 정책 사안이 아닌 인사 청탁 논란으로 몰고 가는 것은 우연인가, 필연인가?”라는 양비서관의 주장에 그런 인식이 깔려 있다. 때마침 8월17일, 18일자 신문에서는 신문유통원의 문제와 모법인 신문법의 졸속성을 비판하는 기사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참여정부 언론 정책 둘러싼 힘겨루기

‘옷 벗은 공직자의 넋두리’ 정도로 끝날 수 있던 ‘유진룡 파문’이 이처럼 청와대 대 언론 간의 총력전으로 비화한 것은 이번 사건이 참여정부의 ‘언론 정책’과 여기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언론의 이해 관계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초기부터 국정홍보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해왔다. 아무리 좋은 정책을 내놓아도 그것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취지에서다. “홍보가 빠진 정책은 정책으로서의 완결성이 떨어진다. 이제는 정책이 국민의 동의 아래 수행되는 시대이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에 성공하지 않고 정책을 성공시키기란 어렵다(2005년 2월22일 국무회의)” “홍보 혁신은 정비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홍보 환경과 정책 환경이 달라졌기 때문에 홍보는 정비와 함께 새로운 방법을 발굴하는 것이 중요하다(2005년 1월3일 수석보좌관 회의)” 같은 노대통령의 발언을 보면 ‘적극적인 국정 홍보→정책 성공→성공한 대통령’이라는 로드맵이 읽힌다.

노대통령의 언론 정책은 이런 국정 홍보의 큰 흐름 안에서 정책 방향이 결정되었다. 우선 각 부처에는 정책홍보관리관이라는 과거의 공보관 개념을 뛰어넘는 홍보 전담맨 자리가 마련되었고, 청와대는 <청와대브리핑>이라는 국정홍보처는 <국정브리핑>이라는 ‘새로운 매체’를 만들어 청와대와 정부가 직접 뉴스 생산자와 전달자 역할에 나섰다.

이처럼 노대통령이 ‘자기 매체’에 강한 애착을 보인 것은 정치인 시절 특정 언론과 ‘빡 세게’ 싸우며 체득한 경험이 작용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노무현 캠프 출신인 여당의 한 의원은 “사실과 언론이 전달하는 왜곡 사이에서 가장 절망감을 많이 느낀 사람이 노대통령이다”라고 말했다.

기존 언론에는 두 갈래 정책을 구사했다. 우선 ‘악의적 보도’에 대해서는 공개 반박, 언론중재위 회부, 소송, 취재 거부, 편의 제공 중단 등의 강공책을 썼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국민과의 소통’을 방해하는 행위는 원칙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취지다. 한 참모는 “조·동은 이미 거대한 정치 세력이 되었다. 이들과 좋아지려면 특종을 주거나 편의를 제공하는 과거의 방식으로 돌아가면 된다. 하지만 그 경우 결국 피해자는 국민이 된다”면서 참여정부는 끝까지 유착을 거부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원칙적 대응’과 별개로 노무현 정부는 신문 시장의 질서를 근본적으로 바로잡는 방안을 모색했다. 조·중·동 3사가 언론 시장의 70%를 차지하는 독과점 현상이 결국 여론을 왜곡하는 주범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여권은 ‘한 개 신문이 전체 신문 시장의 30%, 세 개 신문이 60%를 차지하면 시장 지배적 사업자로 추정한다.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되면 신문발전기금을 받을 수 없다’는 내용이 담긴 신문법을 지난해 1월 국회에서 통과시켰고, 조선·동아 등은 이에 대한 위헌 소송을 내서 일부 승소했다.

 
이런 참여정부의 국정 홍보와 대언론 정책을 진두지휘한 곳이 바로 홍보수석실이다. 그러다 보니 청와대의 홍보수석실은 보수 언론의 표적이고, 노대통령으로서는 홍보수석실에 대한 공격이 곧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다.

청와대, ‘조선·동아 잔혹사’ 준비 중

문제는 노무현 대 보수 언론 간 전쟁이 좀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당장 이번 사태만 해도 청와대가 반격에 나서자 보수 언론은 “홍보수석실의 인사 협의는 중앙인사위원회 규정을 어기는 것” “인사 추천은 인사수석만 할 수 있다더니 왜 홍보수석실이 나섰나” 등의 기사를 쏟아내며 재반격에 나서고 있다. 정권 초부터 ‘반노무현’ 기조를 견지해온 보수 언론의 처지에서 보면 ‘정권 말기’는 더더욱 대통령 흔들기에 좋은 시점이다.

이에 맞서 청와대는 이른바 ‘조선·동아 잔혹사’를 준비 중이다. 노무현 정부 들어 보수 언론이 마치 ‘나라가 망할 듯’ 문제 제기를 했지만, 그 이후에 아무 문제도 없는 것으로 드러난 사안들을 조목조목 정리해 국민에게 고발하겠다는 것이다. 이 작업을 진행 중인 청와대의 한 참모는 “대중을 잠깐 속일 수는 있지만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는 말이 있다. 일부 언론의 치고 빠지기식 선전 선동이 얼마나 허구였는지 알려지면,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도 달라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대통령 후보 때부터 시작되어 임기를 마칠 때까지 지속될 것으로 보이는 ‘노무현 대 보수 언론의 전쟁’에서 최후에 웃는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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