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화 값이 모두 똑같다면?
  • 한순구 (연세대 교수 · 경제학) ()
  • 승인 2006.08.22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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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브런치]

 
우리가 어렸을 때와 비교해 보면 요즘 운동화 가격은 너무도 높다. 가죽으로 만든 구두보다 비싼 운동화를 처음 보았던 때에는 정말 놀랐지만, 요즘에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 되었다. 이렇게 비싼 운동화 가격에서 파생되는 문제를 막기 위해서 정부가 국내의 모든 운동화 가격이 2만원이 넘지 못하도록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더불어, 요즘은 너무도 가난한 가정이 많은 상황이므로 이런 2만원짜리 운동화도 신기 힘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정부가 운동화 한 켤레를 살 때마다 1만5천원을 지원해서 실제로 국민들은 5천원만 내고 운동화를 산다고 해보자.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선, 정부의 의도대로 모든 국민이 전혀 부담 없이 운동화를 신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아마 운동화도 여러 켤레 가지게 될 것이다. 또한 모든 사람이 거의 같은 품질의 운동화를 신게 되어 국민적인 위화감도 없어질 것이다. 정말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운동화를 생산하는 업체들은 어떻게 되겠는가? 원가가 2만원 이하인 운동화를 만들어야 하므로 운동화 품질은 낮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무슨 발 건강에 좋은 운동화라든지, 조깅에 알맞은 운동화, 충격을 흡수하는 운동화, 디자인이 멋있는 운동화 같은 것을 만들다가는 망하기 딱 알맞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제 운동화 가격이 2만원으로 고정된 마당에 유일하게 매출을 올릴 수 있는 길은 운동화를 많이 파는 방법뿐일 텐데, 괜히 튼튼한 운동화를 만들어서 사람들이 새 운동화를 자주 사지 않으면 회사로서는 손해일 것이므로 일부러라도 허술한 운동화를 만들게 될 것이다.

운동 선수들은 더 문제이다. 축구나 야구 등 여러 운동을 하려면 보통 운동화로는 어렵다. 하지만, 운동화를 스포츠 종류에 맞추어 특수하게 만들려면 2만원으로는 어림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정부가 그냥 놓아두면 아무도 특수 운동화를 만들지 않을 것이므로 정부는 운동화 생산 업체에 축구화를 만들도록 지시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냥 2만 원짜리 축구화를 만들라고 하면 품질이 형편없어질 것이므로 영리한 정부 관리들이 엄격한 품질 기준을 제시할 것임에 틀림없다.

결과적으로 운동화 생산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적자를 보아가며 2만원짜리 고급 축구화를 제조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보통 10만원을 주고도 못 사는 축구화를 2만원에 살 수 있게 된다면, 사려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을 것이지만, 생산자로서는 이런 축구화는 만들면 만들수록 손해인 셈이므로 일부러 정부의 제재를 받지 않을 만큼 최소한으로 생산할 것이다. 품질 좋고 가격은 저렴한 축구화에 대한 엄청난 품귀 현상이 일어날 것이 뻔하다.

의료 서비스, 값싸다고 좋을까

너무 황당한 이야기라고 독자 여러분들이 당황해 하거나 화내지 않기를 바란다. 사실은 이 이야기는 운동화 이야기가 아니고 우리의 의료 서비스 이야기이다. 정부로서는 국민들에게 소중하고 필수적인 의료 서비스를 부담 없이 저렴한 가격에 제공함으로써, 부자는 비싼 치료를 받아서 살고 가난한 사람은 돈이 없어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죽는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좋은 의도에도 부작용은 있을 수밖에 없다. 우선 싼 운동화가 품질이 좋을 수 없듯 우리의 의료 서비스는 질이 낮다. 한국 의사의 기술이 아무리 좋아도 미국 의사가 환자 한 명을 보는 동안 한국 의사는 환자 10명을 보아야 하는 상황에서 실수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텔레비전에서 병원에 치료를 받으러 갔다가 병원 위생 상태가 엉망이어서 오히려 병원균에 끔찍하게 감염되어 고생하거나 죽어간 사람들의 사례가 보도되었다. 이렇게 된 데는 물론 병원 책임이 크지만, 싼 게 비지떡일 수밖에 없는 측면 또한 분명히 존재한다. 우리나라 1인당 의료비 지출이 30여 개 OECD 국가 중 최저라지 않는가? 반면 OECD 국가 중 약값 지출은 2위라고 한다. 싼 운동화는 여러 켤레 팔아야 생산자가 이윤을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축구화 같은 특수 운동화는 심장 수술 같은 고가의 수술과 같다. 그런데 정부가 여기에 싼 값을 매기는 바람에 한국에는 흉부 외과 의사가 부족한 실정이다. 기술 좋은 의사가 아주 저렴한 가격에 수술을 해주므로 당장에는 좋지만, 결과적으로 의사 수가 부족해지면서 환자들이 수술도 못 받고 죽어갈 수 있는 위험이 생긴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부작용 때문에 현재의 의료 제도를 바꾸자고 하기도 어렵다. 외국의 엄청난 의료비를 보면 아무리 케이크가 맛있다 하더라도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다. 케이크 가격표를 보면 그냥 맛없는 비지떡이라도 싼 맛에 먹고 싶은 생각도 날 것이다.

경제학자가 보기에는 의료 문제도 결국 모두 돈 문제이다. 문제는, 병원 감염·의료 사고 등을 해결하려면 결국 돈이 드는데 그 액수가 정말 만만치 않다는 사실이다. 품질이 좋으면서 가격도 저렴한 의료 기술이 나올 때까지 해결 방법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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