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장 옆에 살면 도박중독자 된다?
  • 전상일 (환경 보건학 박사, www.enh21.org) ()
  • 승인 2006.08.24 17:1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집 주변 90km 이내에 카지노 등 있으면 위험 ‘꾼’ 부모 두거나, 외롭고 우울한 사람도 취약
 
바다이야기가 일으킨 거대한 해일이 전국을 강타하고 있다. 비온 뒤 독버섯처럼 피어나던 도박장을 보면서 ‘이래도 되나?’근심하던 국민들은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도박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 서부 지역에서는 카지노 광고판을 흔히 볼 수 있고, 도박 게임 전용 케이블텔레비전 채널도 있다. 편의점에는 수십 가지의 복권이 줄줄이 사탕처럼 계산대 앞에 널려 있고, 패스트푸드 음식점에도 간이 카지노 게임기가 설치되어 있다. 그 결과 지금 미국은 심각한 도박 후유증을 앓고 있다. 고령 사회로 진입하면서 노인층의 도박 인구가 급증하고 있다. 연금이 지급되는 매달 초에는 카지노장이 노인들로 북적댄다.

 사전에서는 도박을‘돈이나 재물을 걸고 서로 내기하는 짓’으로 정의한다. 하지만 건강 측면에서 보면 도박은 단순히 좋지 못한 짓 정도가 아니라 질병에 가깝다. 도박 중독증에 빠진 사람들은 두통·근육통·식욕 저하·위장병·오한·불면증·우울증·초조·불안·호흡 곤란·심장 박동증가 등의 증세가 나타난다.

 도박은 사회적 질병도 야기한다. 도박을 즐기는 인구가 늘어나면 신용 불량자가 증가하고, 가정 폭력과 어린이 학대, 자살자가 급증한다. ‘나만 안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도박의 폐해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나누어 져야 할 부담이다. 도박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병적으로 빠지는 데는 유전·성격·환경 같은 세 요소가 관여한다. 도박꾼 부모를 둔 사람, 외롭고 우울한 사람, 만성 질환자 등이 취약 계층이다.

 지리적 요건도 중요하다. 연구에 따르면, 집 주변 90km 이내에 도박장이 있는 경우 도박 중독자가 될 위험이 높다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90km가 아니라 90m 이내에 도박장이 널렸다. 이론적으로 본다면 국민 누구나 도박 중독자가 될 위험한 환경에 놓인 셈이다.

다행스러운 점은, 도박 중독은 완치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도박 중독자를 치료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은 심리 상담가다. 가족이나 친지의 도움도 중요하지만 한계가 있다. 도박 중독증을 치료할 수 있는 의약품도 개발되어 있다. 도박 중독증에 걸린 사람이 우울증 약을 복용하면 치료 효과가 있다고 한다.

심리 상담과 재정 상담 병행하면 도박 중독 치료율 향상

 미국에서는 환자에게 음주나 흡연 여부를 묻듯, 도박 중독 증세를 보이는 환자에게 도박에 대한 정보를 얻으라고 의사에게 권고한다. 도박 중독자 중에는 재정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므로, 이런 부분도 상담 내용에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실제로 외국의 사례를 보면 도박 중독자들에게 심리 상담뿐만 아니라 재정적 상담을 병행한 경우 치료 효과가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도박 게임기의 디자인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우리나라의 영상물등급위원회와 같은 역할을 하는 미국의 게임기 심의 기구는 특히 인기 만화의 캐릭터를 사용한 게임기를 걱정한다. 친숙한 만화 캐릭터를 도박 게임기에 등장시킴으로써 도박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고, 청소년이나 심지어 어린이들을 도박의 세계로 유인하여 잠재적 도박 인구를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게임기를 도박이 아닌 유희 도구로 활용한다면 오히려 긍정적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특히 노인들이 게임이나 카드 놀이같이 정신적 자극을 주는 활동을 자주 하면 기억력과 지각 속도가 감소하는 것을 늦출 수 있어 치매의 일종인 알츠하이머를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 게임과 도박은 한 끗 차이지만 무슨 목적으로 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크게 달라진다. 전염병이 돌면 국가는 병원체를 찾아내 없애고 환자를 치료한다. 정부는 도박 열풍을 전염병으로 간주하여 이를 치료하는 데 적극 나서야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