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부른 ‘꿈의 혁명’ 감시와 범죄 부른다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2006.08.25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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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주민카드 98년부터 사용 계획...정보 독점해 개개인 감시 통제 가능
 
동사무소 갈 일이 없다. 주민등록 등.초본이나 인감증명을 떼려면 거리 곳곳에 설치된 무인 발급기를 이용하면 된다. 카드를 넣고 단추를 누르면 각종 증명서가 즉시 발급된다. 교통법규 위반 스티커를 떼느라 시간을 낭비한 일도 없다. 경찰의 휴대용 단말기에 카드만 갖다대면 된다. 손바닥 크기만한 이 단말기는 3초도 안되어 경찰 보관용.본인 보관용.은행 납부용 스티커를 촤르르 쏟아낸다.

앞으로 2년 남았다. 정부는 전자주민카드가 가져올 ‘꿈의 혁명’을 선전하는 데 열심이다. 오는 98년 17세가 지난 국민 모두에게 보급될 전자주민카드는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의료보험증, 국민연금정서, 주민등록 등.초본, 인감, 지문 등 일곱 분야(41개 항목)의 정보가 수록될 다기능 카드이다. 카드마다 내장되어 있는 손톱 만한 반도체 칩(IC)이 이들 정보를 담는 대용량 그릇이다. 이 반도체 칩은 영문 8천자(한국 4천자:8K바이트) 분량의 정보를 기억한다. 순식간에 정보를 검색해 몇 초 안에 증명서나 스티커를 받아볼 수 있는 것도 이 반도체 칩 덕분이다. 흔히 볼 수 있는 마그네틱 카드와는 기억 용량이나 검색 속도 면에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하다.

선진국도 망설이는 ‘위험한 시도’

정보는 주장한다. 전국 읍.면.동 사무소에서 한 해에 발급하는 주민등록 등.초본은 1억7천만여 통. 인감증면만 해도 5천7백만 통을 웃돈다. 막대한 행정 낭비이다. 10년 전 사진을 붙여 있는 주민등록증은 신분 확인이라는 제 구실을 못하는 경우가 숱하다. 위조나 변조가 쉬워 범죄에도 곧잘 쓰이다. 그뿐인가. KR종 증명서와 카드를 따로따로 들고다녀야 하는 국민의 불편 또한 이만저만이 아니다. 전자주민카드는 이같은 부편과 갖가지 위험 요소를 회기적으로 줄일 대안이라는 것이다.

이 ‘대안’에 물음표가 제기되기 시작한 것은 극히 최근이다. 프라이버시 인터내셔널(PI)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의 인권.프라이버시 옹호 단체와 국내 일부 지식인이 반문을 던진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세계 최초 시도’라는 한국 정부의 자화자찬에 공통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황상재 교수(한양대.방송학)는 “정보통신 선진국들이 기술이 모자라 전자주민카드를 만들지 않았겠느냐”라고 되묻는다. 문제는 기술이 아닌 사회적 합의라는 것이다. 전자주민카드와 비슷한 제도를 구상했다가 거센 반대 여론에 부딪혀 이를 철외해야 했던 몇몇 나라의 경험이 좋은 예이다(66~67쪽 기사 참조).

이들이 전자주민카드를 우려하는 것ㅇ,S 개인 정보가 집중.집적되는데 따른 △정보 유출 때 위험성 증대 △프라이버시 침해 우려 △소수에 의한 정보 독점 및 이에 따른 개인 감시.통제 가능성 때문이다.

이를테면 의료보험 정보로는 개인의 건강뿐 아니라 보험 수가로 재산 상태까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국민연금 정보도 재산 상태를 드러내기는 마찬가지이다. 주민등록 등.초본은 본적.가족 관계 따위 정보를 알려준다. 지역 연고주의가 뿌리 깊은 한국에서는 이것으로 개인의 정치 성향을 잴 수도 있다.

그러나 정부는 이에 대해 크게 우려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한다. 우선 전자주민카드에는 개인 별로 비밀 번호가 부여된다. 비밀 번호를 입력하지 않으면 카드에 수록된 정보를 볼 수 없다. 특히 분실 신고가 된 카드를 발급기나 단말기에서 사용하면 ‘카드 사용 불가’메시지가 출력되므로 남이 자기 카드를 불법으로 사용할 염려는 없다는 애기이다, 만에 하나 카드를 위조할 가능성에 대비해 카드 표면은 특수 개발한 비표로 처리한다. 수십 년의 화폐 비표 도안 노하우를 갖고 있는 한국조페공사가 이 작업을 맡는다.

보안 체계 치밀해도 정보 유출 가능성 상존

 
정부는 또 전자주민카드의 핵이라 할 수 있는 반도체 칩에 대해서는 더욱 강력한 보안책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한다. 서울대 IC연구센터 탁승호 소장에 따르면, 반도체 칩은 보안 열쇠와 특수 암호 체계(알고리즘)로 보안 장치를 하므로 들여다볼 자격이 없는 사람은 절대로 암호 벽을 뚫을 수 없다는 것이다. 반도체 칩의 보안 체계는 국가안전기획부 주관 아래 전문 기관이 극비리에 개발하고 있다. 전국 읍.면.동 사무소, 경찰청, 의료보험관리공단, 국민연금관리공단 등으로부터 제공되는 자료 1억9천여만 건을 취합.제공하게 될 ‘발급 센터’(가칭) 또한 방화벽을 철저히 세워 외부인은 물론 관련 기관 내에서도 다른 부처의 데이터 베이스를 넘나들 수 없도록 보안을 유지할 계획이다. 이를테면 주민등록 업무를 관리하는 직원은 경찰청이나 다른 기관 자료를 절대로 볼 수 없게 설계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한글과컴퓨터사 박순백 상무이사(전 경희대 교수)는 보안 체계가 허술해 정보가 유출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못 박는다. 오히려 문제는 뇌물과 연고에 취약한 한국의 특수 상황이다. △94년 4월 심부름센터 업주에게 뇌물을 받은 경찰과 전화국 직원 35명이 주미등록을 조회해 주거나 전화 가입자 주소를 확인해 준 혐의로 검찰에 구속되었다. △같은 해 6월에는 공무원들이 국세청△.서울시 등 관공서 컴퓨터에 들어 있는 일반 시민들의 신상기록, 소득세 과세 자료를 빼돌리다가 검찰에 적발되었다. 이들이 빼돌린 자료는 무려 2백92만건, 이들 공무원 역시 상품 광고지 발송을 대행하는 정보 대행사로부터 돈을 받은 것으로 검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국민연금 가입자 정보가 유출된 사건도 있었다. 범인은 정보 대행사에 다니는 후배의 부탁을 받은 국민연금관리공단 직원이었다. 석사 학위 논문에서 73~94년 발생한 공공기관의 정보 유출 사례 48건을 분석한 안병규씨(고려대)는, 이들 범죄 대부분이 자료 부정 입력, 컴퓨터 부정 사용, 자료 유출 등 ‘기초적 범행 수법 차원의 단순 범죄’였다고 결론지었다.

개인 정보가 유출되었을 때의 피해 형태는 다양하다. 원치 않는 우편물 공세에 시달리는 정도는 누구나 경험해 보았을 가벼운 피해이다. 주민등록 기록을 열람한 후 가족 상황을 파악해 독신녀 주거지를 범죄 대상으로 선정하거나, 자동차 관리 전산망을 통해 외제 고급 승용차 차주를 확인한 후 강도 행위를 저지른 범죄가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발생했다. 유명 백화점 고객 명단을 입수해 범행 대상으로 삼은 94년의 지존파 사건은 가장 대표적인 예라 할 만하다.

박순백 이사는 개인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우려가 0.001%라도 있다면 정보를 아예 흩어진 상태로 놔두는 편이 낫다는 것이 외국의 일반적인 경향이라고 소개했다.

안전성 검증 없는 2천7백35억원짜리 실험

 
정보는 한데 모이고(데이터 베이스화), 관련 정보가 서로 연결될수록(네트워킹) 그 위력이 눈덩이처럼 커진다. 바꾸어 말하면 위험성 또한 그만큼 커진다는 뜻이다. 따라서 프라이버시 의식이 강한 외국이라면 전자주민카드 같은 제도는 상상할 수도 없었으리라는 것이 박이사의 지적이다.

이에 대해 김기중 변호사는 ‘주민등록증이라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던 셈’이라고 덧붙인다. 내무부는 주민등록증이라는 한국 고유의 제도가 있었기 때문에 전자주민카드를 구상하는 일도 가능했다고 밝히고 있다. 내무부가 배포한 홍보 자료에 따르면, 일본의 경우 전국 단위의 주민등록제도가 없어 국회의원 선거를 실시할 때 3개월에 걸쳐 선거인 명부 작성을 위한 주민 신고를 받고 명부 작성에 총 6조 엔이 소요되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주민등록 전산망이 구축되어 있어 단 하루 만에 선거인 명부를 작성하고 있고, 종이값 정도의 비용만 단다고 한다. 김변호사는 그러나 행정 효율을 구실로 전국민을 일렬 번호로 관리하고, 심지어 전시도 아닌 평시에 그 번호를 새긴 ‘증’을 항시 소지할 의무(주민등록법 제17조)를 부과하는 제도가 사생활 권리를 헌법으로 보장하고 있는 체제(헌법 17조)와 어떻게 양립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주민등록증 제도는 박정희가 쿠데타로 집권한 직후인 62년 탄생했다.

전자주민카드도 마찬가지이다. 이 제도에 비판적인 지식인들은 ‘2천7백35억 원이라는 막대한 세금을 쏟아 부어, 전국민을 상대로, 아직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안전성이 검증된 바 없는 실험을 시도하는 것이 과연 행정 효율을 높이고 국민의 행정 편의를 도모하기 위한 소박한 이유에서일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전자주민카드 구상 자체가 89년 안기부와 경찰청의요청에서 출발했다는 내무부 관계자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특히 전자주민카드에 지문을 넣는 문제에 대해서는 내무부 안에서도 프라이버시 침해 시비를 우려해 반대하는 의견이 우세했다고 한다. 외국의 경우 지문 채취는 범죄자나 외국인에 한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지적 때문이었다. 그러나 안기부와 경찰청의 ‘강력한 요청’으로 결국 수록하게 되었다는 후문이다.

전자주민카드에는 지문이 두 가지 형태로 수록될 예정이다. 현재 발행되는 주민등록증과 같은 형태로 카드 뒷면에 새겨지는 것이 하나고, 다른 하나는 반도체 칩 속에 ‘특징점’ 형태로 수록된다. 이렇게 되면 전국민의 지문을 대조하는 데 몇 초도 걸리지 않게 된다. 뉴미디어 평론가 김주환씨는 이를 두고 ‘전국민의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셈’이라며 강하게 비판한다.

박순백 이사는 그의 박사 학위 논문에서 거대한 정보 전산망 출현에 따른 폐해로 △대량 정보를 일원적.집중적으로 관리해 거대한 독점 권력이 탄생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모든 개인에 대한 감시가 쉬워지며 △정치.신앙.사상 등에 대한 개인 성향 또한 쉽게 드러나 인권 침해 계층간.지역간 정보 격차가 발생할 수 있다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오랜 기간 독재 권력을 경험해 본 우리로서는 그 의미가 서늘하게 와 닿는 지적들이다.

한국에서 세계 최초의 ‘빅 브라더’ 탄생할 수도

전자주민카드가 처음 논의되던 89년 이 제다가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가능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던 국제이권옹호 한국연맹 조성국 사무국장은 ‘당시 인권단체 사이에서도 이를 배부른 소리로 치부하는 분위기였다’며, 이 때문에 더 이상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없었다고 회고한다. 그러나 이제 시대는 바뀌었다. 개인의 프라이버시권에 대한 인식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그 속도 또한 빠르다.

박순백 이사는 2000년대에 이르기 전에 우리나라에서도 정보 편중 현상과 프라이버시 침해 사례가 속출할 것으로 예상했다. 전자주민카드는 이같은 현상을 가속시킬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외국의 인권단체들은 ‘한국에 지금 막 세계 최초의 빅 브라더가 탄생하고 있다’는 표현으로 네티즌의 눈길을 끌어당기고 있다. 김기중 변호사는 ‘당장은 피해가 없을 것처럼 보이지만 불과 몇 년 뒤 엄청남 파괴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환경 오염과 전자주민카드는 닮은 꼴’이라고 비유한다. 뒤늦게나마 전자주민카드 제도 시해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는 것은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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