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아파트’ 또 서는가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2006.08.25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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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교 중대형 분양, 서민에게 ‘그림의 떡’…건교부 “어차피 중상층 이상의 몫”

 
  “자녀가 대입 고사나 취직 시험을 치르면 다들 합격하기를 바라시죠? 그런데 요즘 오히려 당첨되면 한숨이 나오는 추첨이 있어요. 뭔지 아세요?” 강사가 이렇게 말머리를 꺼내자 청중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정답은 판교입니다. 다들 당첨돼도 큰일이라고 속으로 생각하시잖아요.” 강사가 말을 잇자 좌중에 폭소가 터졌다. 8월23일 한 신문사가 주최한 ‘판교 신도시 당첨 전략 설명회’에서 벌어진 일이다.

  8월30일부터 청약이 시작되는 판교 2차 중대형(전용 면적 25.7평 초과) 아파트 분양을 앞두고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특히 8월22일 정부가 이 지역 중대형 아파트 분양가를 주변 시세보다 10% 정도 낮은 수준인 평당 1천8백만원대로 결정·공개하면서 논란은 극에 달했다. 이로써 판교 38평형 분양가가 6억1천만원, 44평형 분양가가 8억1천7백만원 수준에 이르게 되자 “판교는 부자들만 입주하라는 말이냐”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집 장사를 해 폭리를 취하고 있다”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회원이 2만8천명에 달하는 사이버 카페 ‘아내모(아파트값 거품 내리기 모임, http://cafe.daum.net/downapt)’에는 “바다이야기보다 심각한 것이 판교 핵폭탄”(거품폭삭)이라는 비판 글이 오르기도 했다.

  이번 분양가 발표 이후 서민들이 판교 중대형 아파트를 꿈꾸기 힘들어진 것은 사실이다. 이번 청약이 ‘부자들만의 리그’로 치러지게 된 첫 번째 핵심적 이유는 채권입찰제 때문이다. 판교 2차 분양부터 본격 적용되기 시작한 채권입찰제로 인해 분양가가 8억1천7백만원인 44평형 아파트를 청약하려는 입주 희망자는 순수 분양값 5억8천3백만원 외에 채권 손실액으로 약 2억3천4백만원을 부담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44평형 청약 희망자는 계약시 초기 부담금으로만 2억2천만원가량을 준비해야 한다. 분양가의 15%에 해당하는 계약금(8천7백여 만원) 외에 채권 손실액 일부(1억3천6백여 만 원)까지 납부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민이 끼어들기 힘든 두 번째 이유는 대출의 덫 때문이다. 판교는 투기 지역으로 LTV(주택담보대출 인정 비율) 제한이 적용되어 실질 분양가의 40%까지만 금융권 대출을 받을 수 있다. 곧 44평형의 경우 8억1천7백만원의 40%인 3억2천7천만원가량만 대출이 가능하기 때문에 자기 자본을 최소 5억원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아파트 비용을 감당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나마 아무나 대출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실질 분양가가 6억원 이상인 고가 주택에는 DTI(총부채상환비율) 규제가 적용되므로 일정 수준에 이르는 고액 연봉자가 아니면 대출을 받기가 쉽지 않다. 금융권 계산에 따르면, 연봉이 8천만원 이상은 되어야 자기가 원하는 대출액을 모두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연봉이 그 이하라면 자기 자본을 5억원보다 더 많이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잔금까지 잘 치러 아파트에 입주해도 끝이 아니다. 종합부동산세의 덫이 또다시 도사리고 있다. 판교 중대형 아파트는 5년간 전매가 금지되어 있는 데다, 실질 분양가가 6억원을 넘어섬에 따라 입주 뒤에는 종합부동산세 과세 대상으로 분류된다. 당연히 서민들로서는 삼중의 덫을 돌파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이는 전제부터 잘못된 주장이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판교 중대형은 처음부터 서민층을 겨냥한 아파트가 아니라는 것이다. 건설교통부 박선호 주택정책팀장은 “소형 주택(전용 면적 25.7평 이하)이 무주택 서민에게 우선 공급되는 것과 달리 중대형 주택은 이미 집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도 청약 예금에만 가입돼 있다면 누구든지 청약할 수 있다”라며, 이런 중대형 아파트는 집이 크고 내장재가 고급화되어 있어 집값 자체가 비싸기 때문에 처음부터 중산층 이상이 수요자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중산층 이상 부유층을 상대로 한 중대형 아파트까지 분양가를 무작정 내릴 수는 없다는 것이 정부의 분명한 견해이다. 이럴 경우 청약 과열이 심화되고 극소수 운 좋은 당첨자가 이익을 독차지하는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번에 판교 분양가 상승을 부추긴 ‘원흉’으로 지목되고 있는 채권입찰제 또한 본래 소수 당첨자가 독점하게 되어 있는 이같은 부당 이득을 환수해 무주택 서민을 위한 주택 자금으로 활용하자는 취지에서 도입된 제도이다(1980~1990년대 시행했던 제도를 부활시켰다). 채권입찰제로 서민들의 부담이 늘어나게 되었다거나, 판교 이후 분양될 일반 민영 아파트 분양가까지 높아지게 되었다는 비판은 전혀 이치에 맞지 않다고 박선호 팀장은 주장했다.

 
  판교 중대형 아파트의 경우 평당 1천8백만원대인 실분양가 중에서 사업자인 주택공사가 받게 될 순수 분양값은 1천3백만원가량이고, 나머지 5백만원가량은 국민주택기금으로 쓰게 되어 있는 채권 매입 손실액이다. 따라서 판교 이후 분양을 실시할 다른 지역에서 민간 업체가 기준선으로 삼아야 할 분양가 또한 주공 분양가인 1천3백만원이 되어야지, 채권 손실액이 포함된 1천8백만원이어서는 업체가 폭리를 취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더욱이 채권입찰제로 분양가가 높아졌다 한들 판교 중대평 아파트값은 주변 시세의 90% 수준으로, 분당 등 인근 집값보다 여전히 싸다고 그는 주장했다.

  그러나 부자들이 취할 부당 이득을 환수해 서민을 위해 쓰겠다는 이런 대의에도 불구하고, 이번 판교 분양가는 노무현 정부가 이른바 버블 세븐으로 공격해온 분당 지역 시세를 기준으로 책정되었다는 자기 모순을 피해갈 수 없게 되었다. 한나라당은 논평을 내고 “정부가 판교 분양가를 주변(분당) 시세의 90%로 책정함으로써 그간 정부가 주장해온 거품을 실제 가격으로 스스로 인정하는 모순을 드러냈다”라고 공격했다.

  건교부는 이런 공격이 과장된 논리에 기반하고 있다고 반박한다. 분당 집값의 90%라는 것은, 청약자들이 채권 매입 상한액으로 입찰한다고 가정했을 때 가능한 분양가인데, 앞으로 집값이 떨어질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는 청약자들로서는 무조건 상한액을 써내지는 않으리라는 것이다. 건교부에 따르자면, 이렇게 개별 청약자의 합리적 선택이 모여 적정 수준의 채권 매입액이 자연스럽게 결정되는 것이 채권입찰제의 작동 원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장 반응은 정부 기대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판교 청약 개시를 앞두고 부동산 업자들은 “무조건 상한액을 써내야 유리하다”라며 청약자들을 독려하고 있다. 인기 있는 아파트 단지일수록 이런 현상은 더하다. 순위가 같을 경우 채권 매입 예정액(입찰액)이 많은 순으로 당첨자가 선정되기 때문이다.

  판교 중대형의 경우 지난 4월 분양한 중소형만큼 ‘로또’ 수준은 아닐지라도 당첨만 되면 일정 수준 이상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전망이다. 부동산114 김희선 전무는 “설사 부동산 가격이 하락 추세라 해도 이번에 정부가 발표한 판교 분양가가 이 일대 집값의 심리적 저지선 역할을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반기 부동산 시장, 나아가 노무현 정부 부동산 정책의 성패를 가름할 ‘판교 2차 분양 대전’은 8월30일~9월15일 치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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