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 세대들의 내면 풍경
  • 방민호(서울대 교수·국문학) ()
  • 승인 2006.08.25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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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최근에 주요 일간 신문의 1면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것이 ‘바다이야기’라는 도박 게임기 관련 기사들이다. 이 ‘바다이야기’ 광고판을 보고 그것이 무슨 횟집 홍보물인 줄 알았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인구에 회자하고 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필자에게 이 성인 도박 게임장의 존재가 부각된 것은 이미 지난 겨울쯤 되는 것 같다. 간판은 대부분 바탕이 깊은 바다색을 띠고 있는 경우가 많다. 또 황금빛이 뒤섞여 있기도 하다. 여기에 우주선 같기도 하고 어족들 같기도 하고 인어 같기도 한 물체들이 화려하게 수놓아져 있다. 화려한 간판과는 달리 출입문은 물론 창문까지 까맣게 밀폐해 놓아서 뭔가 수상쩍은 데가 많다. 그래도 ‘아마 그렇고 그런 곳이려니’ 했고 ‘이런 것이 왜 이렇게 많이 생겨나는 거지?’ 했을 뿐이다.

‘바다이야기’ 스캔들이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게 된 최근에서야 드디어 그 실체를 알게 된 느낌이다. 그러자 이름 한 번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나 서정적인 이름인가. 그리고 또 얼마나 넓고 깊어 보이는가. 더구나 그것이 도박 게임 이름이라고 생각해보면 넓고 깊은 도박의 세계를 한없이 유영해 나가는 낭만적인 어족의 이미지가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다.

‘환상의 바다’에 빠진 가난한 영혼들

물론 이 낭만적인 어족의 실상은 게임기 앞에서 한없이 동전을 집어넣으면서 대박이 터지기를 마냥 기다리는 가난한 영혼들, 그것이다. 그러나 이 가난한 영혼에게는 넓고 깊은 바다를 한없이 유영해 나아가 끝내는 심해의 어둠 저편에 놓여 있을 황금광을 발견할 수 있다는 꿈이 있지 않은가. 이 꿈이 있는 한 그들은 결코 가난하지만은 않은 것일까. 사실 게임을 예찬하는 사람들에게는 바로 이 환상이 중요하다.  

지금 정부에는 386 세대가 많이 포진하고 있다고 한다. 또 국회에도 386 세대에 속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모두들 알고 계실 것이다. 지금 386이라는 말이 얼마나 무겁고 어두운 이미지를 덮어 쓰고 있는가를.

1990년대 중반 이후에 386이라는 말은 구체적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낡은 이념형 인간들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또 최근 들어 큰 기대를 모으며 출범했으나 곧 국민들의 지지를 상실한 현 정부 아래서 이 말은 권력 지향적이면서도 실질적 능력은 구비하지 못한 지난 시대의 민주화운동 그룹을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

386 세대에 덮인 무겁고 어두운 이미지

돌이켜 보면 1980년대에 민주화 운동에 뛰어든 386 세대들은 가난했다. 생각난다. 시위 시작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와 함께 모였다가 최루탄 소리에 쫓겨 긴박하게 달리고 달리던 학생들, 대학교 앞마다 나박김치를 안주 삼아 소주와 막걸리를 팔던 주점들, 비밀리에 모여 세미나를 하던 산동네 무허가 판자촌 자취방, 토큰, 농활, 운동권 서점에서 책을 훔치고도 죄의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던 시절….

386 세대는 가난했다. 물질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고전 대신에 사회과학 책을 보고 정치학과 경제학을 공부하던 그때 늦게까지 실천의 현장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가난한 학생들이었다. 그리하여 386 세대가 가진 드높은 이상의 심연 속에는 어둠과 불결함의 요소가 숨겨져 있었다.

가파르던 1980년대로부터 벌써 15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갔다. ‘바다이야기’가 떠들썩한 어두운 세상을 보면서 과연 386 세대가 갈구하던 이상의 빛, 진리의 빛은 저 심연의 어느 끝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가 생각해본다. 지금 386들은 어둡고 쓸쓸하다. 비록 권력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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