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북한 핵 능력’ 의문 접었다
  • 남문희 전문기자 (bulgot@sisapress.com)
  • 승인 2006.08.28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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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 확보·핵 실험 완료’ 인정 분위기…대화로 해결책 찾을 듯

 
평소의 그답지 않았다. 지난 8월21일 백악관 기자회견장에서 부시 대통령이 ‘북의 지도자’와 관련해 했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이날 아침 중국 후진타오 주석과 통화를 했는데, “북한의 지도자에게 핵무기 개발을 계속하는 것보다 더 나은 선택이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공동의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평소의 그답지 않게 매우 점잖고 외교적 언사로 느껴진다.

이상하게 여기자면 한이 없지만 이날 통화의 배경이 됐을 법한 ‘북의 핵실험설’은 아직 ‘설’일 뿐이다. 그마저도 미국 내 전문가들조차 회의적이다. 8월17일 미국 ABC 방송이 북한의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지하 동굴 근처에서 핵 실험시 사용하는 전선 뭉치를 발견했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그런데 미국 내에서 정보통으로 한반도 문제에 일가견이 있고, 강성으로 널리 알려진 래리 닉시 미국 의회조사국(CRS) 연구원의 반응이 특히 눈에 뛴다. 보통 때 같으면 북에 비판적이거나 강경한 톤의 발언을 했을 법한데, 지난 8월22일 자유아시아방송(RFA)과 인터뷰한 내용을 보면, 여러 가지 이유를 들면서 오히려 북이 핵 실험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부시 대통령의 유화적 발언이나 그의 ‘강경한’ 부인이나 뭔가 뜻하는 바가 있어 보인다.

핵 실험설의 진상: ‘북한 핵’의 진실을 조금 더 들어가보면, 북의 핵 실험이 갖는 의미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한마디로 현재 수준의 핵 능력을 높이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다만 미국에 압박을 넣기 위한 무력 시위 정도일 뿐이다. 과거에 북이 핵 실험설을 계속 흘렸던 것은 자신들이 아무리 핵을 가졌다고 주장해도 미국이 반응을 안 보이니까 이것을 역이용한 측면이 있지만, 최근 미국의 태도가 달라졌다. 한마디로 “당신들의 핵 능력을 충분히 인정해줄 터이니, 괜히 핵 실험 카드를 꺼내서 서로 번거롭게 하지 맙시다”라는 분위기다. 부시 대통령이나 래리 닉시의 발언에서 그런 점이 느껴진다. 실제로 최근 북한 핵 능력에 대한 미국의 평가는 눈이 부실 정도이다.

먼저 핵 실험 문제부터 정리해보자. 왜 북의 핵 능력 향상과 무관한 것인가. 한마디로, 이미 간접적이긴 하지만 핵 실험을 했고, 거기에 기반해 실전 배치된 핵무기까지 손에 들고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북의 핵 실험사는 199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북한 소식통에 의하면, 북한 내부에서 핵 실험을 진지하게 검토했던 시점이 바로 1995년이었다. 그러나 당시는 바로 한 해 전의 제네바 합의 때문에 실행에 옮기지 못했고, 그래서 그 돌파구로 찾은 것이 바로 파키스탄과의 핵-미사일 협력이었다. 즉 북한이 미사일 기술을 파키스탄에 제공하면 파키스탄이 북의 핵무기를 대신 실험해주고 데이터를 넘겨주는 방식의 협력이었다.

핵 실험설의 진상

북의 미사일 능력은 지난 1993년 5월29일 노동 미사일을 성공적으로 시험 발사함으로써 독자 기술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 기술이 파키스탄으로 건너가 ‘가우리 미사일’이라는 이름으로 시험 발사된 것이 바로 1998년 4월이었다. 그런데 그 한 달 뒤인 5월28일 파키스탄이 이번에는 갑작스레 핵 실험을 해 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그런데 당시 미국 정보 당국의 눈에는 이 실험이야말로 여러모로 의문투성이었다.

 
파키스탄의 핵 개발은 널리 알려진 대로 칸 박사의 주도로 이뤄져왔는데, 그의 전공 분야는 핵 폭발 과정이 비교적 간단해, 별도의 실험이 필요 없는 농축 핵무기 분야다. 그런데 난데없이 웬 핵 폭발 실험인가. 때마침 현장에서 플루토늄 핵 실험 때만 발생하는 클립톤이 검출되면서, 파키스탄이 남의 플루토늄 핵무기를 가져다 대신 실험해줬다는 사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즉 한 달 전의 가우리 미사일 시험 발사와 연결해볼 때 북한과 파키스탄이 서로서로 품앗이를 해줬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이같은 내용은 상당한 시간이 경과한 뒤, 북측 역시 몇몇 친분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외부 인사들에게 “1998년 파키스탄의 핵 실험은 사실 우리 것을 가져다 한 것”이라는 형태로, 공공연하게 흘려왔다.

주목할 것은 바로 이 1998년의 핵 실험을 계기로 ‘원시적인 수준의 핵무기를 한두 개 가지고 있다’는 미국 정보기관의 오래된 북한 핵 능력 평가 내용이 바뀌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즉 지난 2001년께 네댓 개로 올라갔다가 현재는 대체로 12개의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미사일 발사 능력 평가 ‘수정’이 의미하는 것: 북에 대해 핵 실험 같은 소모적인 일을 하지 말라는 메시지와 더불어, 최근 미국이 북한의 핵 능력을 비록 ‘전문가 버전’이긴 하지만 매우 높이 평가하기 시작했다는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8월17일 ABC 방송 보도로 북의 핵 실험설이 대중적 관심사로 떠오른 것과 같은 시기, 워싱턴 타임스가 운영하는 인터넷 주간 매체인 ‘인사이트’에 익명의 정보기관 소식통을 인용해 7·5 미사일 발사 이후 미국 정보기관이 북의 핵과 미사일 능력에 대한 평가 내용을 어떻게 ‘수정’했는지 진솔하게 밝혔다.

미사일 발사 능력 평가 ‘수정’이 의미하는 것

한마디로 이런 내용이다. 7월5일 발사 당시에는 주목의 대상이던 대포동 2호 미사일이 42초간 날아가다 폭발해버려 전반적으로 실패라고 평가절하했는데, 그 이후 재평가를 통해 소기의 목적을 전부 달성한 것으로 수정했다는 것이다. 이 중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북이 당시 장거리·중거리·단거리 미사일을 새벽에 일시에 발사한 의도가 ‘핵 공격을 포함한 미국의 어떠한 공격에도 살아남아 핵 보복을 가할 수 있는지 실전 점검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그 목표를 훌륭히 달성했다는 것이다. 북의 지휘 통제소는 당시 지하 벙커에 있었고 미사일은 산악 지대에 숨겨진 상태에서 발사됐는데, 이는 미국의 핵 공격을 받아도 절반가량의 핵 보복 능력이 살아남아 한국이나 일본, 하와이, 심지어 미국 본토 서부 지역까지 타격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밝힌 것이다.

<인사이트>의 보도 내용은 그동안 북의 핵 능력과 관련해 미국 정보기관 내부에서 제기돼왔던 여러 가지 중요한 쟁점이 이미 해소 단계에 접어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가장 간단하게는, 7월5일 발사된 대포동 2호가 과연 실패인가 아니면 의도된 실패인가라는 문제에 대해, 미국 본토 서부 지역까지 공격할 수 있다고 함으로써 의도적인 실패, 즉 실패가 아니었다고 인정한 점이다.

그 다음 좀더 본질적이고 중요한 쟁점이었던 핵 탑재 능력에 대해서도 이를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동안 미국은 북한의 미사일 능력과 핵무기 능력을 개별적으로 충분히 인정해왔다. 그러나 문제는 과연 북한이 핵탄두를 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에 관해서는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다. 핵을 탑재하지 않은 미사일과 미사일에 올라타지 않은 핵무기는 사실, 아무리 갖고 있어도 군사적 의미는 크지 않다. 대량살상 능력을 갖춘 핵무기를 장거리 운반체인 미사일에 실어 나를 능력이 있을 때 비로소 핵 강국이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

북한에 시간 벌게 해준 미국 강경파

그런데 7월5일 미사일 발사 이후 미국 고위 당국자들 발언 등을 살펴보면, 가장 민감하게 생각했던 이 문제에서 미국이 북한의 능력을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7월11일 네그로폰테 미국 국가정보국(DNI) 국장이 미국 상공회의소에서 한 발언을 들 수 있다. 청중과의 질의 응답 시간에 그는 북한 문제를 핵무기와 운반체인 미사일의 결합 가능성 때문에 ‘특별히 심각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또한 국내외의 언론 매체 등에는 7월5일 이후 북의 핵 탑재 미사일 수가 100여 기라는 등 여러 가지 주장이 우후죽순으로 범람하고 있기도 하다.

 
이 핵 탑재 문제와 지난 7월5일 동해상에 떨어진 여섯 개의 단거리 및 중거리 미사일의 파괴력과 의도 문제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들여다보자. 지난 7월30일자 일본 언론들은 일본 방위청 정보를 인용해 ‘6발의 미사일이 직경 몇km 반경 안에 떨어졌다’고 보도했다. 만약 통상 병기를 단 미사일이라면 직경 ‘몇km’라는 것은 큰 위협이 안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핵탄두를 장착했다면 사정이 달라진다. 지난 1945년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폭의 경우 단 5초 만에 직경 30km 반경 안의 모든 생물체가 궤멸했다는 얘기도 있다. 직경 몇km 안에 핵 미사일이 떨어진다는 것은 바로 전멸을 뜻한다.

북한 정보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이 당시 동해상에 여섯 발의 미사일을 동시에 날린 것은 두 가지 타격 목표를 부각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하나는 괌-오키나와-도쿄 만(해군 기지)-삿포로(통신 시설) 등으로 이어지는 동아시아 주둔 미군 기지가 모두 타격 대상이라는 점이고, 또 한 가지는 바로 미국의 항공모함을 타격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얘기다. 아무리 미국의 항공모함이 무적을 자랑한다 해도, 반경 수km 안에서 터지는 핵 미사일에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한 가지 대응 방법이 있다면 바로 선제 공격, 일본식 표현으로 하자면 ‘적 기지 공격론’이다. 그래서 미국 정보 당국이 한 달 반을 끙끙댔던 것인데, 아무리 선제 핵 공격을 퍼부어도 절반 이상 살아남아 보복 공격을 가해온다면 사실 방법이 없다. 북의 핵 능력에 밝은 정보 소식통에 의하면, 지난해 9월까지만 해도 북의 핵 탑재 기술은 불완전했다. 이는 북한 당국자들도 솔직히 인정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미국이 금융 제재를 통해 6자회담이 표류한 기간 북의 핵 탑재 능력이 향상되기 시작해 7월5일 미사일 발사 시점에는 최소한 단거리 핵에 있어서만은 자신감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결국 미국의 강경파들이 북측에게 시간을 벌어준 꼴이 됐고, 이제는 대화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게 된 셈이다.

결국 최근 북한 핵 실험설의 등장과 부시 대통령의 일련의 발언 등은 미사일 정국이 이제 반원을 돌아 협상 국면으로 갈 수밖에 없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징후들이다. 그동안 강경파들 등쌀에 숨죽이고 있던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가 9월 초순경 한국과 일본을 동시 방문하고, 그 이전에 6자회담 대표들 간의 상호 방문이 재개되는 등, 최근 대화 움직임이 재개된 것도 결코 우연의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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