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가 대리 운전사의 ‘고달픈 밤길’
  • 주진우 기자 · 김범래 인턴기자 (ace@sisapress.com)
  • 승인 2006.09.02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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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바래다주고 ‘현장’에서 일감받아 이동…‘그들만의 셔틀버스’ 타고 복귀하기도

 
저가 대리 운전이 계속 늘고 있다. 대리 운전 업체와 운전사들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대리 운전사 자격 조건이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추가 수입을 원하는 많은 사람들이 손쉽게 대리운전을 택하고 있다.

‘대리 운전, 서울 시내 전 지역이 1만원!’ 새벽 1시에 강남역에서 상계동으로 간다고 치자. 주행거리 25km에 심야 할증을 더하면 택시비는 2만원이 족히 넘는다. 그런데 대리 운전 업체 중에는 1만 원도 받지 않는 곳이 있다. 이 돈은 대리 운전사가 돌아가는 차비도 안 된다.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 일일까?

저가 대리 운전이 가능한 이유는 우선 대리 운전사들만의 이동 경로가 있기 때문이다. 대리 운전사들은 손님을 태우고 이동한 후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대부분 그 지역에서 다시 ‘콜’을 받는다. 그런 식으로 돌고 돌다 새벽녘이 되면 첫차에 몸을 싣는 것이다. 첫 번째 전략이다.

물론 도착한 곳에서 ‘오더’가 들어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 외진 곳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최소한 근처 번화가까지는 이동해야 한다. 한적한 동네에서는 히치하이킹을 주로 시도한다고 한다. 대리 운전 1년차인 최 아무개씨(37·서울 신림동)는 “번화가까지 30분 정도 거리면 걷거나 뛰고, 1시간 이상 떨어진 ‘오지’에 있을 땐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탄다”라고 말했다.

빈번이 이용하는 장거리 구간은 택시를 탄다. 이때는 반드시 장거리만을 전용으로 운영하는 택시들이 밀집한 곳에서 택시를 이용한다. 또 대리 운전사들끼리 모여서 택시비를 줄인다. 분당에서 강남역까지 1만2천원 한다면 네 명이 모여 3천원씩 내고 택시를 탄다.

장거리 이동 때는 대리 운전사들끼리 합승

무엇보다 대리 운전사들이 값싸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은 그들만의 ‘셔틀버스’다. 외곽으로 나간 기사들이 중심지나 번화가로 복귀할 수 있도록 한 시간에 한 번씩 서울과 수도권 곳곳을 오고 간다. 주로 봉고차 형태인데, 자발적으로 생긴 수많은 노선들이 새벽 서울을 거미줄처럼 잇고 있다. 서울 지역을 기준으로 했을 때 보통 한 번에 3천원, 한 달 이용하면 3만원이다. 셔틀버스는 새벽 2~3시 쯤이면 집으로 돌아가는 아르바이트형 ‘투잡스족’(Two Jobs) 대리 운전사들의 퇴근 수단이기도 하다. 그러나 택시 업계에서는 셔틀버스 운행이 위법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또 교통사고를 당할 경우 동승자 보험 적용 여부가 문제점으로 대두되면서 셔틀버스의 이용을 꺼리는 기사들도 있다.

 
그들만의 이동 수단이 있다 해도 대리 운전사들이 이윤을 남기기는 거의 어렵다. 대리 운전을 하고 있는 신 아무개씨(49·경기도 성남시)는 “1만원대 초반의 요금으로 대리 운전을 할 경우 복귀 교통비를 3천원으로만 잡고 수수료 20%(2천6백원)에 기타 부대 비용(약 1천~2천원)을 제하면 고작 4천~5천원이 남는다”라고 말했다.

싸다고 좋아할 일만은 아니다. 대부분 새로 유입되는 초보 기사들이 저가 운전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가 있는 운전자도 전혀 걸러지지 않는다고 한다. 따라서 사고가 났을 때 다툼의 소지도 크다. 대리 운전자 김 아무개씨(34·서울 역삼동)는 “업체야 접수 건당 수수료만 떼면 되니 싸게 여러 건 받으면 된다. 초저가로 접수하고는 초보 기사들을 저가 운전으로 밀어넣는 악덕 업체들이 있다”라고 말했다. 4년 전부터 대리 운전을 해온 김 아무개씨(47·경기 안산시)는 “일반적으로 베테랑 기사들은 저가 콜을 맡지 않는다.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운전할 경우 사고의 위험이 큰 것도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대리 운전 경력 5년차인 조 아무개씨(46)는 “아르바이트 나온 대리 운전사들이 술 취한 손님의 지갑을 털고 여자 승객을 성추행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 대리 운전을 직업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범죄로 악용하는 사람도 있다”라고 말했다.

초저가 대리 운전, 무보험 수두룩

자신의 재산과 생명을 내맡기는 대리 운전을 선택할 때는 좀더 신중해야 한다. 보통 대리 운전사들은 회사 혹은 개인 명의로 대리 운전 보험에 가입하고 한 달에 4만원~5만원가량의 보험료를 낸다. 요즘은 무면허·무보험 대리 운전자가 많이 줄었다. 그러나 초저가 대리 운전일수록 무보험 운전일 가능성이 높다. 대리 운전 경력 4년차인 이 아무개씨(30·경기도 안양시)는 보험증을 반드시 확인하라고 조언했다. 이씨는 “예전과 달리 요즘은 기사들도 보험증을 들고 다니며 보여준다”라고 말했다.

길에서 만난 대리 운전사들이 낮은 가격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대단히 위험한 선택이라고 한다. 운전자의 정확한 신원과 보험 가입 여부를 확인할 수 없어서이다. 게다가 업체에 운행 기록이 남지 않아 사고가 났을 때 정당한 보험 처리를 받을 수 없다. 대리 운전 기사 정 아무개씨(35·경기도 군포시)는 “혹여 길에서 믿을 만한 대리 운전사를 만났더라도 그 기사의 업체 콜센터에 전화를 걸어 반드시 기록을 남기라”고 말했다.

운전 면허증만 있으면 ‘기사 OK!’
사업자 등록만 하면 ‘운행 OK!’


대리 운전이 보편화한 지 5년이 넘었다. 하지만 아직 관련 기본법마저 제정되지 못한 상태다. 대리 운전 요금부터 기사 자격 조건과 교육 내용까지 모두 업체가 자율적으로 정하고 있다. 물론 자격 요건이 달랑 운전 면허증만 있으면 대리 운전 기사로 채용하는 회사가 상당수다. 대리 운전 업체는 관할 세무서에 사업자 등록만 하면 누구나 개설할 수 있는데, 일부 업체는 최소한의 등록도 하지 않고 있다.

대리 운전사들의 자격 조건이 법제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기사들이 반드시 대리 운전 보험에 가입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피해 보상 규정은 말할 것도 없다. 대리 운전사가 대리 운전보험에 가입했다 하더라도, 현행법상 인명 피해를 낸 교통사고의 경우에는 차주가 가입한 책임보험(대인배상Ⅰ)에서 우선 보상하게 된다. 이에 따라 차주의 보험료가 할증됨은 물론이다. 술에 취한 차주도 뒷좌석에서 맘 편히 쉴 수만은 없다는 얘기다.

대리 운전사들의 신분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범죄에 노출될 확률또한 높다. 최근 대리 운전 기사의 여성 고객 성폭행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 방증이다. 택시의 경우는 여객운수사업법에 의해 강도나 성폭행으로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사람은 2년 동안 자격 시험을 볼 수 없게 되어 있다. 하지만 대리 운전기사는 관련 규정이 전무하다.

대리 운전 기사들 역시 확실한 법제화를 원하고 있다. 스스로의 지위와 안전을 보장하고 적정 요금을 실현하기 위해서다. 한국대리운전협회 박정규 총무팀장은 “10만명에 달하는 대리 운전 종사자들의 법적 지위를 마련하고 제대로 된 서비스를 보장받기 위해 대리 운전 시스템 전반을 조속히 정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정의화 의원은 대리 운전 보험 및 대리 운전사의 자격 조건 등을 담은 ‘대리운전업법(안)’을 국회 건교위에 상정한 바 있다. 그러나 이 법안의 주무 부처를 건설교통부로 할 것이냐, 경찰청으로 할 것이냐를 두고 몇 년째 다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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