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검사는 왜 이명박씨를 찾았나
  • 신호철 기자 (eco@sisapress.com)
  • 승인 2006.09.04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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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준씨 사기 사건 참고인 조사 위해 내한…이 전 시장 증언은 무산

 
존 리(John Lee) 씨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노스스프링거 소재 연방정부 검찰 지청에서 일하는 한국계 검사다. 미국에서 한창 공무를 집행해야 할 존 리 검사는 최근 로스앤젤레스 사무실을 떠나 한국에 왔다. 8월27일부터 9월2일까지 그는 서울 세종로 주한 미국대사관 모처에 사무실을 빌려 증인 심문을 했다.

미국 검사가 직접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와 조사를 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국제 협조 업무를 많이 담당했던 한 검사는 “연방검사가 조사를 목적으로 방한한 것은 내가 아는 한에서는 없던 일이다”라고 말한다. 한 한국계 미국 변호사는 “주한 미국대사관이 연방검사를 위해 사무실을 빌려주는 일은 한·미 수교 1백24년 역사상 처음 있는 경우다”라고 말했다.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사건이기에 미국 연방검사가 출동한 것일까? 존 리 검사가 방한한 이유는 옵셔널벤처스 사기 사건 피의자인 김경준씨의 범죄 수익 환수 문제 때문이다(<시사저널> 제765호·870호 참조). 인터폴의 수배를 받았던 김경준씨는 2004년 5월27일 미국 연방수사국(FBI)에 체포되어 현재 로스앤젤레스 메트로폴리탄 디텐션 센터에 수감되어 있다.

옵셔널벤처스 사기 사건은 피해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최소 6백억원대 규모에 이르는 거대 금융사기 사건이다. 이 사건이 특히 흥미를 끄는 점은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주요 피해자 중 한 명이라는 데 있다. 이명박 전 시장은 지난 2003년 5월 김경준씨를 상대로 35억원을 돌려달라는 민사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이명박씨의 민사소송과 존 리 연방정부 검사가 맡고 있는 범죄 수익 환수 소송은 형식상 별개의 소송이지만 내용상 같은 뿌리를 두고 있다. 존 리 연방검사가 한국에 온 목적은 김경준 사건 참고인들의 증언을 받기 위해서인데 애초 이 ‘존 리 리스트’에는 이명박 시장과 그의 측근도 포함되어 있었다. 어쩌면 이명박 전 시장이 미국 대사관에 출두해 참고인 조사를 받는 풍경이 벌어질 뻔했다. 그러나 한·미 양국은 이명박 전 시장을 소환하지 않는 쪽으로 결정을 내렸다.

김경준씨, 미국 정부가 재산 몰수하자 소송 제기

이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0년 전으로 시간을 거슬러올라갈 필요가 있다. 1997년 미국 시카고 대학 경제학 석사·와튼스쿨 MBA 등의 화려한 학력을 자랑하며 한국에 입성한 김경준씨는 살로먼스미스바니 증권사에서 일하며 아비트러리(차익 거래) 투자 분야의 1인자로 각광을 받았다. 금융 천재라는 찬사 속에 김씨는 2000년, 평소 누나와 친분이 있던 이명박씨의 새 사업에 동참하게 된다. 당시 이명박씨는 공직이 없던 자연인이었다.
이 전 시장은 인터넷 금융 통합 사업을 구상 중이었고 김경준씨를 파트너로 삼아 LK이뱅크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LK이뱅크는 두 사람의 영어 머리글자를 딴 이름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동업 관계는 오래가지 못했다. 김경준씨가 운영하던 BBK투자자문이 금융감독원의 제재를 받으면서 인터넷 금융 통합 그룹의 꿈은 사라졌다. 김씨는 대신 2001년 코스닥 등록 기업 옵셔널벤처스코리아를 인수해 CEO가 되었고 이후 ‘옵셔널벤처스 사기 사건’이라고 불린 스캔들의 주역이 되었다.

 
한국 검찰에 따르면 김씨는 2000년 7월부터 2001년 12월까지 옵셔널벤처스를 운영하면서 회사 돈 3백84억원을 횡령했다. 2004년  2월12일 미국 워싱턴 주재 한국대사관은 미국 법무부에 김씨를 체포해주도록 범죄인 인도 요청을 했다. 김씨의 검거는 이런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다.

현재 김씨에게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크게 세 부류다. 첫 번째로 김씨가 LK이뱅크 회사 재산을 부당하게 가져갔다고  주장하는 이명박 전 시장측이다. 35억원은 이명박 전 시장이 사재를 털어 투자한 30억원과 이명박 전 시장을 믿고 하나은행이 투자한 5억원을 합친 금액이다. 이 전 시장은 하나은행측에 5억원을 대신 물어줬다.
두 번째 피해자는 경주에 소재한 자동차 부품 기업 (주)다스다. 이명박 전 시장의 친형인 이상은씨가 회장으로 있는 이 회사는 김경준씨가 운영하던 BBK투자자문에 1백40억원을 투자했다. (주)다스가 환수를 요구하고 있는 금액은 이자 등을 합쳐 2백억원에 이른다.
세 번째는 옵셔널캐피탈로 이름을 바꾼 전 옵셔널벤처스코리아 회사측과 소액 주주들이다. 소액 주주 27명은 2002년 초 김경준씨를 고소한 바 있다.
이와 별도로 미국 연방정부는 김경준씨에 대해 범죄 수익 환수 절차를 밟고 있다. 미국 정부가 몰수한 김경준씨 일가 자산은 무려 2백3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급 주택과 1백30만 달러(12억원) 상당의 예금, 고급 자동차 일곱 대 등이다. 김경준씨 가족은 재산 몰수는 부당하다며 미국 연방법원에 소송을 냈다.
존 리 검사의 최대 현안은 네 번째 소송이다. 한국 정부의 한 관계자는 “미국 검찰은 범죄 수익 환수에 목숨을 건다. 거액의 정부 국고, 즉 자신들의 돈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가 굳이 한국까지 날아온 이유는 김경준씨측 변호인들이 나름의 수완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8월31일 <시사저널>과 만난 김경준씨측 변호인은 “미국 정부가 몰수한 김씨의 재산은 정당하게 벌어들인 것이다. 이미 은행 계좌 3계좌와 자동차 다섯 대는 돌려받았다”라고 말했다(상자 기사 참조). 미국 검찰과 공조를 하고 있는 한국 사법 당국은 김경준씨의 범죄 행위를 입증할 일체의 자료를 미국으로 보냈지만, 미국 연방법원은 외국 기관이 작성한 자료는 증거 능력이 떨어진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미국 연방법원 오드리 콜린스 판사는 판결문에서 “증인들은 이명박씨로부터 증언을 번복하지 말라는 회유를 받았다. 한국 검찰이 심문을 할 때 편호사가 동석하지 않았고, 증인들이 이명박씨로부터 보복을 당할까봐 두려워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증언에 신뢰성이 없다”라고 밝혔다. 차기 대권 주자라는 이명박씨의 위상이 역설적이게도 김경준씨를 이롭게 한 셈이다. 사정이 이러하자 미국 연방검찰이 서울에 직접 가서라도 증언 청취를 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운 것이다.

 
존 리 검사와 미국 정부가 범죄 수익 환수를 미루기 위해서는 한국 증인들의 증언이 절실하다. <시사저널>은 주한 미국 대사관에 출두해 존 리 검사에게 심문을 받은 몇몇 참고인과 접촉했다. 이명박 전 시장의 전 비서이자 현재 이명박 캠프에서 일하고 있는 이 아무개씨는 8월27일 가장 먼저 증언을 한 사람이다. 그는 사건 이야기를 꺼내자 “아무 말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인터뷰에 응하지 않겠다”라고 답했다. 이 아무개씨는 LK이뱅크 시절부터 이명박씨를 보좌해왔다. 이명박 전 시장측에 이 사건과 관련한 질의를 여러 차례 했으나 아무런 답변이 없었다.

역시 ‘존 리 리스트’에 올라 8월30일 증언을 한 금융감독원의 ㅈ아무개씨 역시 “그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라고 답했다. 몇몇 증인은 아예 출석 자체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검찰의 출두 요구는 한국인에게 강제력이 없다.
이명박 전 시장이 직접 증언대에 설 뻔했다가 무산된 사연은 이렇다. 피의자 김경준씨는 미국 연방법원에 이명박씨와 그의 대리인인 김백준씨를 증인으로 요청했다. 미국 연방법원은 이를 받아들였고, 연방검찰은 (마지못해) 워싱턴 소재 주미 한국대사관에 이 사실을 알렸다. 하지만 연방법원의 결정은 이명박 전 시장에게 공식적으로 전달되지 않았다. 한국 법무부의 한 관계자는 “주미 대사관을 통해 미국 연방법원의 요청(이명박씨 증언 관련)을 전달받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강한 요청이라기보다는 이명박씨의 출두를 도와줄 의향이 있느냐는 식의 물음이었다. 우리가 미국 사법 절차에 개입할 이유가 없었으므로 거절했다”라고 말했다.

이명박 전 시장의 측근으로 김경준 사건 관련 소송을 대리하고 있는 김백준씨는 “한국 정부나 미국 정부로부터 어떤 증언 요청을 받은 일이 없다. 존 리 검사가 서울에 왔다는 건 안다. 하지만 그쪽에서 부르지 않는데 우리가 출두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라고 말했다.
웬일인지 양국 정부는 이 전 시장을 증언대에 세우는 데 부정적인 자세이다. 존 리 검사는 8월21일 김경준씨 변호인측에 보낸 답신에서 “이명박씨나 김백준씨의 이름을 재판 서류에 올리는 일은 그들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주는 일이다”라고 언급했다.

미국 정부와 김경준씨가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는 사이 김씨의 신병 인도는 계속 늦어지고 있다. 김씨는 미국 법원에 헤비어스 코퍼스(인신보호 탄원)을 요청한 상태다. 이대로라면 김씨는 차기 대통령선거가 임박한 때 한국으로 송환될 가능성이 있다. 김씨측 변호사는 “이 전 시장은 피해자가 아니며 거짓말을 하고 있다”라고 주장한다. 이명박씨가 진짜 피해자였든 아니든 김경준씨 문제는 차기 정국의 시한폭탄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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