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최정화를 믿습니까
  • 반이정(미술 평론가) (dogstylist.com)
  • 승인 2006.09.08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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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천연색 예술가’ 최정화 개인전 <믿거나 말거나 박물관>

 
개봉 전부터 주제의 선정성과 미성년 배우에 대한 윤리 논란에 연루된 덕에 워낙 일찍 망해버린 장선우 감독의 1997년 문제작 <나쁜 영화>는 전무후무한 비주얼로 불량 청소년 극화의 품질을 지원해주었지만 영화 미술의 공로에 관한 합당한 평가를 받을 기회가 없었다. 당시 홍보를 위해 살포된 전단과 포스터 중 하나는 한국 전통 색동저고리로부터 차용했음직한 원색 줄무늬 바탕 위로 영화 제목 네 글자의 굵은 고딕체 활자가 과도하게 큰 사이즈로 올려진 모양이었다. 요란뻑적지근한 원색조의 주문(呪文)에도 불구하고 국민 정서를 크게 거스른 불량 영화 <나쁜 영화>는 결과적으로 상업적 고배를 마셨고 ‘슬픈 영화’로 기억되었다.

옛 동아일보 사옥을 전시장으로 개장한 일민미술관 우측면은 통유리로 리노베이션되어 있다. 5층까지 이어진 통유리창의 역할은 고색창연한 미술관 내부와 급변하는 외부를 시원하게 잇는 통로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9월1일 개막한 중견 작가의 개인전과 더불어 세 개 층의 통유리는 현란한 원색 소쿠리 벽으로 완전 메워지고 말았다. 이 나쁜 소쿠리 벽의 제작자는 9년 전 <나쁜 영화>의 원색 포스터를 만든 이와 동일인물이다.

미술관 밖 애국지사의 ‘뜻밖의’ 소환

 
국내외 유명 비엔날레마다 어김없이 초대작가 0순위로 모셔지는 최정화에게 이번 전시는 고작 두 번째 개인전이란다. 충분히 검증된 거물작가에게 개인전 경력 쌓기란 한낱 남 따라 하기처럼 느껴진 걸까? 그런데 그가 포기한 건 비단 개인전의 횟수만이 아니다. 종래 화단에서 개인전이 갖는 의의는 좋건 나쁘건 작가 1인의 성과물을 과시적으로 드러내는 관례였다. 반면 이번 전시는 개인전을 일견 표방하나 그 안을 들여다보면 개인전을 자진해서 포기한, 참으로 기이한 개인전의 변태를 취한다. 그에게 할당된 전시 공간이 모두 ‘딴 작가들’로 채워졌으니 말이다. 보도 자료에 기재된 출품 작가의 머리 수는 30명을 넘어서지만 팀 단위로 묶인 작가까지 헤아리면 이보다 훨씬 많은 수가 이번 개인전에 가세한 셈이다. 이게 어디 개인전인가? 단체전이지!

이번 행사에서 최정화가 출품한 작품은 미술관 통유리를 메운 원색 소쿠리 외 몇 점뿐, 그의 주된 역할은 초대 작가가 아닌 연출가에 집중되어 있다. 연출은 대개 기획자의 권한이지만 경계 넘어서기를 업으로 삼아온 그의 전력을 감안할 때 경악할 만한 변신 축에도 안 든다. 1987년 중앙미술대전에서 대상을 따내며 고분고분한 환쟁이의 길을 갈 뻔한 그였으나 실은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일찌감치 명성을 얻었고 이후 수많은 직함을 달고 다녔다. 앞서 거론된 영화 미술감독은 물론이고 설치작가, 인테리어 디자이너, 심지어 네이버 인물 검색에는 ‘사진가’로 등록되어 있다(이건 좀 이상하다!). 대학로 ‘살’ 종로2가 ‘오존’ 워커힐 호텔 ‘제스티’ 댄스 바 등은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최정화표 인테리어로 인정받는다. 그가 내놓은 인테리어는 번들번들하고 조야하며 과도한 금빛과 형광색으로 범벅이 되었다.

 
이 날림 미학의 창시자는 경계선을 넘어 순수미술계 진입에도 일찌감치 성공했다. 오랜 내공 끝에 그가 내놓은 이번 지각 개인전은 도입부터 호락호락하지 않다. 정작 전시의 백미는 전시장 외곽으로부터 촉발될 정도다. 일제치하인 1926년 지어진 구 동아일보 사옥(현 일민미술관)과 21세기 초입 신축된 동아미디어 센터 사이 터에 1970년대 전국 국민학교 교정에 들어선 철지난 애국지사 동상을 뿌리째 뽑아왔다. 폐교에서 파낸 듯한 유관순상과 ‘반공소년’ 이승복상이 심상치 않은 자태로 듬성듬성 놓여 있는 폼이라니.

기단 뿌리는 전부 드러났고 유관순 왼팔은 파손되어 철근이 보이는데 동상 주변에는 그럴듯한 해설도 찾을 수 없으니 행인들은 영문 모를 표정으로 이 기이한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패잔병처럼 전시회의 출품작으로 초대된 일그러진 과거의 영웅 입상들은 영웅 박제의 남용을 통해 정치적 의지를 관철하려 했던 지난 세대를 미학적으로 관찰하기 위해 불려온 듯했다. 일선 학교에 일괄 보급할 목적에서 날림으로 주형된 유관순과 이승복의 조잡한 동상 조형물을 유년 시절 교육 기관에서 보고 자란 세대는 21세기 세종로 한복판에 퇴물로 되돌아온 낯익은 애국 지사 앞에서 어떤 기분에 젖었을까?

전시장 안 사정도 비슷했다. 비록 초대받은 30여 작가들의 출품작으로 채워졌지만 마치 최정화의 개인 출품작으로 오해할 만큼 그와 닮아 있었다. 이것은 최정화의 영향력이 동시대적이란 뜻일 게다. 자유의 여신상 모형을 러브호텔 옥상 위에 ‘장식으로’ 세운 한국적 풍경 사진(구성수), 건물보다 간판이 압도하는 번화가 풍경 사진(이영준), 이발소 그림을 똑같이 복제한 유화(홍성민)도 있다. 거기에 금칠로 번들거리는 수집품도 잔뜩 진열되었다. 최정화의 출품작으로 알려진 흑색과 백색 소쿠리는 마치 값나가는 청화백자 모셔놓듯 진열대 위에 올려졌다.

최정화는 키치가 아니다

 
이렇듯 그동안 최정화는 한눈에 알아볼 자기 색을 구축했는데, 완벽한 새 것을 추종하기보다 기왕 제작된 공산품에서 아이디어를 따왔다.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값싼 플라스틱 재료와 금박과 형광 안료를 입힌 외관이 선호되었다. 이런 이유로 최정화는 곧잘 키치예술가로 범주화된다.

그러나 엄밀한 용어 적용을 따를 경우 키치를 재료로 삼는 최정화를 키치 예술로 간주하는 것은 반어적이지만 맞지 않다. 왜냐하면 키치(kitsch)란 전위에 상반되는 미학 용어로 나쁜 취향과 정형화된 인습을 반복하는 태도를 칭할 때 쓴다. 반면 최정화의 전략은 한국적 상황이 안주하고 있는 실제 키치적 삶의 유형을 좀더 ‘쎄게’ 증폭시켜 제시하는 것이다. 키치를 차용하지만 인습에 저항하며 인습이 안고 있는 정치적 무관심을 비판한다. 일반 관객이 익숙한 소재를 취한 최정화의 예술 앞에서 난해함에 부딪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들의 인습적 사고로 볼 때 ‘정화된 성역의’ 미술관 안에 작가의 손을 거치지 않은 일상용품이 예술품으로 둔갑하는 상황이 용서되지 않기 때문이다.

예술을 정형화된 규정 속에 가둬두려는 장삼이사의 완고함이야말로 실은 키치다. 유관순과 이승복 동상을 통해 근대화가 남긴 마감 덜된 정치 예술의 병폐를 읽어내고, 요란한 소쿠리의 원색을 통해 무감각해진 생활 속 미감을 되돌아본다면 오죽 좋을까. 하지만 키치 문화에 중독된 자에게 키치의 병폐는 보이지 않는다. 때문에 그것을 증폭시킨 최정화에게는 그를 믿는 이와 믿지 않는 이가 엄격하게 양분되어 있다. 그래서일까? 전시 제목이 <믿거나 말거나 박물관>인 것은. 당신은 최정화를 믿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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