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으로 갈까, 오른쪽으로 갈까
  • 고제규 기자 (unjusa@sisapress.com)
  • 승인 2006.09.11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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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2007년 대선 승리 해법 놓고 ‘개혁 추진·보수 강화’ 양론 대립

 
지난 9월6일 오후 2시 국회 의원회관 1층 소회의실. 입구부터 붐볐다. 1백50석 자리는 꽉 찼고 서 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국회의원부터 아줌마 부대까지 청중은 다양했다. 보통 국회의원이 주최하는 토론회는 자리 채우기에 급급해, 토론회가 시작하면 청중은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마지막까지 자리를 뜨는 이가 드물었다. 이상득·이재오·김기춘 의원 등 국회의원들도 자리를 지켰다. 이날 토론회는 박찬숙 의원이 주최하고, 박의원이 공동대표로 있는 국가발전전략연구회(발전연)가 주관했다. 주제는 ‘한나라당 집권 확실한가?’.

한나라당은 요즘 들어 이런 토론회가 빈번하게 열린다. 지난 8월17일 한나라당과 뉴라이트 시민단체 공동 주최로 ‘한나라당 이대로 좋은가’라는 토론회가 열렸다. 모두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자는 주제인 셈이다. 최근 잇달아 열리는 이런 토론회는 2007 대선 승리를 위한 일종의 해법 찾기 과정이다.

토론회 때마다 해법은 다양하게 쏟아졌다. 주문도 많았다. 문제는 정반대의 해법이 제기된다는 점이다. 똑같이 한나라당의 변화를 요구하지만, 방향은 정반대인 것이다. 한편에서는 왼쪽으로 한발 더 움직여야 승리할 수 있다는 처방을 내놓고, 다른 한편에서는 오른쪽으로 더 이동해야 2007 대선 방정식을 풀 수 있다고 주문한다.

“보수층 증가·높은 지지율은 착시 현상”

한나라당이 왼쪽으로 이동해야 하는 이유는, 이날 발제자로 나선 김형준 교수(국민대 정치대학원)의 진단과 해법에서 잘 드러난다. 김교수는 한나라당이 ‘대망론’에서 하루바삐 깨어날 것을 주문했다. 김교수는, 한나라당이 대망론에 빠진 것은 세 가지 착시 현상 때문이라고 본다. 첫째, 보수층이 두터워졌고 둘째, 한나라당 지지율이 상승했으며 셋째, 중도층까지 보수 성향이어서 2007 대선 승리가 무난하다는 것은, 현상을 제대로 보지 못한 착시라는 진단이다.

먼저 김형준 교수가 속한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 조사에 따르면, 보수층은 두터워지지 않았다. 1997년 대선·2002년 대선·2004년 총선·지난 5·31 지방선거 등 네 차례에 걸쳐 유권자의 이념 성향을 조사했더니, 보수층이나 진보층은 모두 줄어들고, 중도층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1997년 대선 때 41.5%에 달했던 보수층은 2002년 대선 때 26.7%, 2004년 총선 때 26.4%, 지난 지방선거 때 27.4%로 조사되었다. 진보층은 1997년 대선 때 36.2%였고, 2002년 대선 때 41.1%, 2004년 총선 때 40.6%, 지난 지방선거 때 30.0%였다. 조사 결과를 보면, 자신을 보수로 여기는 유권자가 20%대에 머물러 있다. 즉 보수층은 엄격히 말해 늘어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체해 있는 셈이다.

대신 1997년 선거 때 22.3%였던 중도층이 지난 지방선거 때는 42.6%까지 늘었다. 그런데 늘어난 중도층이 보수에 가깝다는 시각 역시 김교수는 착시라고 지적했다. 자신이 중도라고 답한 유권자도 안정보다는 오히려 개혁과 변화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김교수는 중도층이 보수가 아니라 진보에 가깝다고 진단했다. 이내영 교수(고려대 정치학)도 비슷한 진단을 했다. 이교수는 “중도라고 답한 유권자에게 8·31 부동산 정책의 찬반을 물어보면, 규제를 완화하기보다는 오히려 규제를 강화하자는 의견이 높다. 고교 평준화도 중도층에서는 찬성률이 높다”라고 말했다.

김교수에 따르면, 보수층에 대한 착시보다 더 심각한 것은 한나라당 지지율 착시이다. 40% 가까이로 높아진 한나라당의 지지율에는 거품이 끼여 있다고 그는 진단했다. 반노무현·반열린우리당의 반사이익을 누린 ‘휘발성 지지’라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5·31 지방선거 유권자 의식을 조사했는데, 수도권에 거주하는 호남 출신 유권자 40%가 한나라당 후보에게 투표한 것으로 조사되었다고 김교수는 지적했다. 이들은 ‘대선’에서 얼마든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잠재적 이탈표인 셈이다.

김교수는 한나라당이 집권하려면 개혁을 바라는 중도층을 공략하라는 해법을 제시했다. 증가한 중도층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먼저 ‘한나라당판 과거사 정리’가 필요하다는 주문도 곁들였다. 기득권을 버리라는 것이다. 또한 완전 국민경선제(오픈 프라이머리)를 통한 후보 선출은, 선거공학상 2007 대선을 승리하기 위한 전제라고 김교수는 지적했다. 여권은 완전 국민경선제를 통해 ‘국민 후보’를 내세우는데, 한나라당은 당헌 당규에 따라 ‘당원 후보’를 내세우면, 대선 필패라는 것이다.

 
당내 소장파나 발전연 등 비주류 쪽은 김교수의 이런 진단이나 해법에 상당히 공감한다. 굳이 분류하자면, 이들은 이명박 전 시장이나 손학규 전 지사 쪽과 가깝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한 소장파 의원도 “박근혜 전 대표가 와서 들어야 할 내용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반대의 해법도 제시되었다. 오른쪽으로 더 이동해야 한다는 주문이 그것이다. 주로 박근혜 전 대표 쪽과 가까운 영남권 의원들이 공감하는 해법인데, 이날 토론자로 나선 선진화국민회의 사무총장인 서경석 목사가 이런 주장을 했다. 서목사는 “2007년 대선의 시대정신은 ‘좌파 척결’이다. 좌파 척결을 내세우면 중도층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순간 객석에서 박수가 터져나왔다. 왼쪽으로 한나라당이 이동해야 한다는 김형준 교수 발제 때는 박수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머리는 왼쪽으로, 가슴은 오른쪽으로 이동

서경석 목사는 이렇게 좀더 보수적인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완전 국민경선제 도입에는 적극 찬성했다. 서목사는 “완전 국민경선제 도입을 주장했더니 나를 이명박 지지자라고 하더라. 누구를 지지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고건씨까지 끌어들여 광범위한 반좌파 연합을 구축하기 위해서 완전 국민경선제가 도입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서목사는 뉴라이트의 양대 산맥인 김진홍 목사와도 이미 합의가 되었다며, 한나라당이 국민경선제를 받아들일 때까지 대대적인 촉구 운동을 벌이겠다고 말했다(이 대목에서 또다시 박수가 터져나왔고, 서목사는 토론장을 나서며 이명박 전 시장의 형인 이상득 의원과 악수를 나누었다).

정반대의 방향이 제시된 이날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머리로는 한나라당이 왼쪽으로 한발 다가가야 한다는 데 공감했지만 가슴으로는 오른쪽으로 이동하자는 해법에 더 끌린 듯했다. 한 소장파 의원은 “이것이 한나라당 현실이다. 머리로는 개혁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행동은 보수적으로 한다. 지난 대선 때도 이런 논의가 무성했다. 결국 변화를 거부했고 대세론에 안주해 패했다”라고 말했다.

당내 역학 구도까지 얽혀 있어, 대선 방정식을 풀기 위한 해법 찾기는 자칫 분열의 전주곡이 될 수도 있다. 한나라당이 2007년 대선 승리를 위한 해법 찾기에 나서기는 했으나 갈 길은 여전히 험난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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