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푼 꿈 안고 조선족 '대이동'
  • 칭다오 · 정유미 통신원 ()
  • 승인 2006.09.11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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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동북 3성’에서 산둥성 연해 도시로 대거 이주…90%가 서비스업에 종사
 
중국 산둥성 칭다오시의 한국인 밀집 지역인 청양에서 운전기사로 일하는 장용건씨(32)는 2년 전 지린성에서 건너온 조선족이다. 부모가 모두 돈을 벌기 위해 한국으로 떠난 후 2만 위안(약 2백40만원)을 들고 이곳으로 온 그는 중고 봉고차 한 대를 구입해 한국인을 대상으로 차량 영업과 가이드를 한다. 월수입은 한족 기사들의 두 배 수준인 4천 위안(약 48만원) 정도. 한국어가 가능하다는 이점 하나로 고소득을 올리는 그는 동료들 사이에서 ‘귀족’으로 불린다.

장씨는 최근 산둥성 지방에 급증하고 있는 동북 3성(지린성·랴오닝성·헤이룽장성) 출신 조선족 가운데 한 명이다. 동북 3성 거주 조선족인구가 급감하고 있는 반면 산둥성 연해 도시의 조선족 인구 비중은 높아지고 있다. 2000년에 1.45%(2만7천명)에 불과하던 조선족의 산둥성 거주 비율은 2005년 10.5%(18만명)로 급증했다.
최근 몇 년 사이 이 지역 한국인들이 급증하면서 한국 기업체나 서비스 업종에 일자리가 늘어난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현재 산둥성에 거주하는 18만여 명의 조선족 중 12만명이 한국인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도시인 칭다오에 정착해 있다. 이들 가운데 90% 이상이 식당 등 서비스업에 종사 중이다. 액세서리, 가방, 봉제 완구 등을 만드는 제조업체에 종사하는 비율이 그 다음을 차지한다.

지난해 옌볜에서 온 조선족 최일남씨(37)는 “고향 사람들 사이에 칭다오나 옌타이는 별다른 기능이 없어도 통역이나 식당 종업원으로 쉽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곳으로 소문이 났다”라고 전했다. 동북 3성인 고향을 떠나 도시로 향하는 열풍은 최근 1~2년 사이 더욱 거세지는 추세다. 그는 얼마 전 자신이 다녔던 조선족 소학교가 학생 수가 모자라 폐교되었다는 얘기를 들었다면서 씁쓸해했다. 대신 베이징, 톈진, 칭다오 등 대도시에 있는 조선족 소학교에서는 학생 수가 증가해 교실 부족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가히 ‘민족 대이동’에 가까운 풍경이다.

칭다오에서 가장 성공한 조선족으로 꼽히는 40대 중반의 김 아무개씨는 8년 전 한국인과 손을 잡고 유학원 사업을 시작해 이제는 시내 중심가에 여러 채의 건물을 지닌 거부가 됐다. 그는 산둥성 주류 사회에 진입하기 시작한 이주 조선족 가운데 한 명이다. 산둥성 고위층과의 친분도 두터워 당국이 지난해 교육 사업에 대한 엄격한 감사를 실시할 때에도 타격을 입지 않았다.

대도시 조선족 소학교, 학생 수 많아 교실난

조선족 신문인 <흑룡강 신문사> 조사에 따르면 부동산 개발, 해외무역 등으로 자본금 수억 원대의 중견 기업으로 성장한 조선족 기업은 전국적으로 100여 개에 달한다. 다롄 세계무역빌딩 김태익 회장, 우통그룹 리웅진 회장 등이 대표적이다.

 
한국인 밀집 지역에 형성된 상권은 한국 교민과 조선족이 양분하고 있는 형태다. 한국인이 주로 찾는 슈퍼마켓이나 식당은 한국인 주인과 조선족 주인이 절반 정도씩 차지하고 있다. 종업원은 대부분 조선족이다. 한국에서 한국 식품이나 물건을 가져다 팔아 5년 내에 수채의 집을 장만했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린다.
조선족들이 늘어나면서 음식 문화도 빠르게 유입되고 있다. 보신탕 등 보양식 문화가 대표적이다. 조선족들이 운영하는 보신탕 전문 식당은 한국인들까지 연일 북적이면서 분점을 여러 곳 낼 정도로 성업 중이다.

제조업체에서 조선족은 한족에 비해 임금 수준이 높은 편이다. 한족들이 공장 생산직에 주로 종사하는 데 비해 언어가 통하는 조선족들은 중간 관리자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옌볜에서 4년 전 중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칭다오로 와 한국 액세서리 회사에서 총무로 일하는 있는 이춘매씨(20)는 “월급 1천2백 위안(약 14만4천원)을 받아 절반 이상을 고향으로 보내고 있지만 회사에서 숙식을 제공해주기 때문에 부족하게 느낀 적은 없다”라고 만족해했다.

최근에는 SK, LS그룹 등 한국 대기업이 속속 중국으로 진출함에 따라 이곳에서 일할 경우 도시 근로자 평균 임금인 월 1천5백 위안(약 18만원)의 두세 배 정도 수익을 올리는 것도 가능해졌다. 이 때문에 다른 중국인 직원들 사이에서 위화감을 조성하는 일도 없지 않다.

대부분 한족보다 임금 더 많이 받아

전업 주부인 오윤선씨는 “가정부나 보모를 구하더라도 말이 통하는 조선족은 임금을 1.5배 정도 더 줘야 한다. 한국인들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조선족 가정부의 월급이 3~4년 사이 두 배로 뛰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이주 조선족들이 많다 보니 탈북자들 가운데 몇 몇은 조선족으로 행세하다 중국 공안에 체포되기도 한다.

 
탈북 여성이 조선족이라고 속이고 한국인 가정에서 1년 이상 가정부로 일하다 올해 초 공안국에 적발된 사건은 한국 교민 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길거리에 붙은 전화번호만 보고 전화를 걸어 가정부를 구한 집주인은 수더분하게 생긴 40대 아주머니의 말투와 행동에 조선족임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그는 탈북자를 은닉하고 취업을 도와준 죄로 한화 5백만원의 벌금을 물어야 했다. 도시로 온 조선족 젊은이들이 고향에서 느끼지 못하던 도시 생활의 향락과 유흥 문화에 젖어드는 사례도 적지 않다. 부모가 한국에 나가 있는 경우 한국에서 부쳐주는 돈으로 경제적 여유를 누리며 방탕한 생활에 빠져들기도 한다. 최근에는 고스톱과 같은 도박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성인 오락실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도박에 빠지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일부 조선족 여성들 중에는 한국인 사업가와 내연의 관계를 유지하다 폭력이나 살인 사건에 연루되는 경우도 있다. 공안국 관계자는 “최근 일어나는 한국인 살해 사건은 단순 강도가 아닌 치정 관계에 얽힌 청부 살인 사건이 절반에 육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국인들의 이동 경로를 따라 산둥성 연해 도시에 정착한 조선족들은 필연적으로 한국인들과 공생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한국인들의 중국 진출이 활발해지는 것과 맞물려, 동북 3성 조선족이 산둥성으로 내려오는 민족 대이동은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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