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백일 ‘절반의 성공’ 다가올 백일 ‘운명 좌우’
  • 고제규 기자 (unjusa@sisapress.com)
  • 승인 2006.09.15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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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 의장, 열린우리당 내부 안정에 일정 성과 서민 경제 활성화와 ‘뉴딜’ 은 지지부진

 
9월18일 김근태 당의장이 취임 100일을 맞았다. 지난 6월10일 그는 비대위원장에 올랐다. 비대위원장을 맡으며 그는 “독배를 마다하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정치 입문 이후 만년 2인자에 머무르던 그가 처음으로 전면에 나섰다. 그래서 지난 100일은 그에게 기회이자, 위기의 시간이었다.

김근태 의장은 대권 주자다. 지지율은 좀체 오르지 않아, 5% 벽을 넘지 못한다. 그런데도 그는 정동영 전 의장과 함께 열린우리당을 대표하는 대권 주자로 거론된다. 대중적 지지도는 낮지만, 당내에 김근태 의장의 영문 이니셜을 딴 GT 세력이 많기 때문이다. 386 의원들을 비롯한 민주화 운동 세대들이 그를 따른다.

그런 김근태 의장이 전면에 나서면서 던진 취임 일성은 뜻밖이었다. 민주화 운동의 대부인 그는, 개혁이나 변화가 아닌 서민 경제 활성화를 화두로 제시했다. 김의장은 취임 후 가진 첫 기자간담회에서 “첫째도 서민 경제, 둘째도 서민 경제, 셋째도 서민 경제다”라고 말했다. 지난 6월28일 그는, 박정희 정권의 ‘청와대 수출진흥회의’를 모델로 삼은 서민경제회복추진위원회를 만들었다. ‘김근태의 변신’이었다.

놀라운 변신 했지만 ‘동력’ 못 얻어 ‘고전’

당내에서 개혁주의자 김근태가 실용주의로 돌아섰다거나, 대권 주자로서 승부수를 던졌다는 얘기가 나왔다. 열린우리당의 한 당직자는 “GT가 아톰 헤어스타일에서 조인성 헤어스타일로 머리 모양만 바꾼 게 아니었다. 창당 초기 원내대표 때와 비교해보면 확연히 달라졌다”라고 말했다.

김근태의 변신은 놀라웠지만, 곧바로 벽에 부딪혔다. 동력 상실이었다. 서민경제위원회가 추진 과정에서 삐걱댔다. 인물난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김근태 의장은 지인인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을 통해 전문가들에게 러브콜을 보냈지만, 아무도 응하지 않았다. 침몰 직전인 열린우리당호에 선뜻 오르려 하지 않은 것이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정창교 수석전문연구원은 이를 김근태 의장의 별명에 빗대 ‘햄릿의 비극’이라고 정의했다. 정연구원은 “유권자들은 열린우리당에 사망 선고를 내렸다. 그런 정당의 의장이 어떤 일을 하더라도 전문가나 유권자의 마음을 잡기는 힘들다”라고 말했다.

결국 김의장은 첫 행보부터 주춤거렸다. 서민경제위원회 출범이 늦추어졌고, 김근태 의장 과 대학 선배인 오해진 전 LG CNS 사장이 공동대표를 맡았다. 위상도 낮추어졌다. 당헌에 어긋난다는 핑계를 댔지만, 인물난으로 본부 체제에서 위원회로 격하되었다.

그래도 김근태 의장은 서민경제위원회 활동에 ‘올인’했다. “정책으로 승부를 걸겠다”라며 김근태 의장은 ‘콘텐츠 리더십’을 내세웠다. 당안팎에서 김근태의 우향우 행보에 대한 논쟁이 일기도 했다. 참모들은 이런 논쟁 자체를 반겼다. “GT 하면 민주화운동가 외에 다른 콘텐츠가 알려지지 않았다. 민생·경제 이슈를 선점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이번에 GT가 서울대 상대 출신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는 사람도 있었다”라고 한 참모는 밝혔다.

이런 논쟁은 당을 추스르는 효과를 냈다. 흔히 열린우리당에서는 사사건건 ‘빽바지(개혁)’와 ‘난닝구(실용)’ 논쟁이 벌어지기 일쑤였다. 비생산적이었던 논쟁이 서민경제위원회가 제기한 어젠다 중심의 논쟁으로 바뀐 것이다. 열린우리당의 한 보좌관은 “5·31 지방선거 이후를 되돌아보면, 같은 당 의원들이 아니었다. 개혁파니 실용파니 하며 감정적으로 멀어졌다. GT 등장 이후 그런 분열 양상은 일단 물밑으로 가라앉았다”라고 말했다.

대신, 정책을 두고 찬반이 선명하게 엇갈렸다. 한 의원은 “GT가 어려울 때 당을 맡았지만, 공격적인 목소리를 자제하는 시기에 당을 맡은 것은 행운이다”라고 말했다.

서민 경제 활성화를 화두로 던지면서 자연스럽게 당을 추슬렀지만, 실질적인 실적이 미비 했다는 것은 김근태 체제의 가장 큰 한계로 꼽힌다. 우선 서민경제위원회 안에서부터 손발이 어긋났다. 예를 들면 분양원가 공개를 두고서 김근태·오해진 공동의장은 찬성했지만 채수찬 의원은 반대하는 식이다.

청와대와의 엇박자 탓에 ‘나 홀로 행보’로 비쳐

서민경제위원회는 당의 공식 기구인 원내 정책위원회와도 엇박자를 냈다. 서민경제위원회 활동의 성과는 당의 공식 기구인 정책위원회를 거쳐야 하는데, 강봉균 정책위원장과 서민경제위원회 위원들 사이에 한동안 서먹서먹한 관계가 형성되기도 했다. 당 안에서는 일종의 주도권 다툼으로 보았다. 서민경제위원회에서 활동했던 한 의원은 “정책위에 지나치게 친기업적인 의원들이 많은 게 문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김근태 의장이 부딪힌 가장 큰 벽은 청와대였다. 청와대와의 엇박자가 김근태 행보를 ‘나 홀로 행보’로 비치게 했다. 양극화 해소를 위해 제시한 김근태식 해법인 뉴딜이 힘을 잃은 것도, 참모들은 청와대 탓으로 돌리고 있다.

지난 7월30일 김근태 의장은 ‘뉴딜’을 제안했다. 당시 김의장은 드라마 <주몽>을 빗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소금산’은 투자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이다. 이를 위해 재계와 뉴딜을 제안한다”라고 말했다. 서민 경제 살리기가 재벌 봐주기냐는 비난을 무릅쓰고, 뉴딜은 당의장으로서뿐 아니라, 대권 주자로서 던진 회심의 카드였다. 경제인 대사면을 비롯해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각종 규제 완화 등 재계를 위한 선물 보따리를 준비했다. 다음날 김의장은 대한상공회의소를 찾아 재계측에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김의장은 뉴딜을 성사하기 위해서라도 8·15 때 경제인 사면을 청와대에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재계는 ‘설마 하면서’ 11개 요구안을 제시했다. 특히 김근태 의장이 약속한 경제인 대사면을 잔뜩 기대했다. 하지만 결과는 ‘역시나’였다. 청와대는 경제인 사면을 거부했다. 집권 여당의 당의장이 내놓은 제안을 청와대가 묵살한 것이다. GT계로 알려진 한 참모는 “그때 청와대가 전향적으로 경제인 사면을 했다면, GT에게 힘이 실렸을 것이고, 그러면 뉴딜 상황은 지금과는 상당히 달라졌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한 친노 직계 의원은 “GT의 우향우 행보는 노무현 정부 정체성과 어긋난다. 비리 경제인을 사면하자는 제안도 마찬가지다. GT 스스로 청와대와 각을 세웠다”라고 말했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지자, 뉴딜의 실효성을 두고 회의적인 시각이 퍼졌다. 지난 8월20일 노무현 대통령은 김근태 의장 등 열린우리당 지도부와 오찬을 하며, 뉴딜에 힘을 실어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미 불씨가 꺼진 뒤였다. 재계에 이어 한국노총·참여연대를 찾아 뉴딜을 제안했지만,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김근태 의장은 뉴딜을 제안하면서 “(뉴딜이) 성과를 내지 못하면 당이 상처를 받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제 그의 말은 고스란히 자신에게 돌아온 셈이다.

 
물론 참모들의 생각은 다르다. 김의장의 최측근인 문용식 한반도재단 사무총장은 “뉴딜이라는 어젠다 자체가 단기적인 성과를 낼 수 없다. 장기적인 과제다. 유럽에서도 4~5년 논쟁을 거친 뒤에 뉴딜과 비슷한 사회적 대타협이 이루어졌다. 시작을 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라고 말했다. 내년 대선 국면에서 김근태 의장은 뉴딜로 상징되는 사회적 대타협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울 작정인 셈이다.

지난 100일간 김근태 의장은 부지런히 뛰었다. 고문 후유증 때문에 여름나기가 버겁던 그가, 새벽 5시부터 연일 강행군을 펼쳤다. 매주 화요일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며 민심에도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대권 주자 김근태의 지지율은 지난 100일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정치 전면에서 사라진 정동영 전 의장보다 지지율이 더 낮았다. 최근에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김근태 의장의 지지도는 1.2%이다(9월11~12일 조사). 같은 조사에서 정동영 전 의장의 지지율은 4.6%였다. 지난 9월11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그는 자신의 낮은 지지율에 대해 “대선은 먼 후의 일이다”라고 답변을 피해갔다.

그러나 GT계의 위기감은 크다. 당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김근태 대권 포기설이 나돌고 있다. 연말까지 김근태 의장의 지지율이 정체한다면, 정권 재창출을 위해 킹 메이커로 역할을 바꾸어야 되는 것 아니냐는 내용이다. 문용식 사무총장은 “킹 메이커는 국민이다. 지금 GT는 대권 주자로서 활동하는 게 아니다. 당의장 역할을 1백20% 수행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문총장은 고건씨까지 합류하는 완전 국민경선제를 이루고, 여기서 GT가 살아난다면 태풍(김근태)이 불 것이라고 기대했다.

측근들은 정기국회가 끝나는 12월까지 당의장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후 자연스럽게 진행될 지각변동 과정에서 김근태 의장이 중심에 서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 사이 변수도 있다. 10월25일 재·보선이 당장 눈앞으로 다가왔다. 9월15일 현재 국회의원 재·보선이 확정된 곳은 전남 해남·진도와 인천 남동 을이다. 지난 7월26일 재·보선이야 당의장 취임 40여일 만에 치른 선거여서 책임론으로부터 자유로웠다. 그런데도 서울 성북에서 탄핵의 주역인 조순형 민주당 의원이 당선하면서 열린우리당은 요동쳤다. 김근태 책임론이 아니라, 열린우리당 해체론이 거셌다. 이번 재·보선에서도 열린우리당이 참패한다면, 당이 또 한번 요동칠 가능성이 높다. 뉴딜로 상징되는 김근태 리더십에 대한 책임론이 제기될 수도 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재·보선에 정동영 전 의장 징발설이 나오고 있다.

만년 2인자였다 전면에 나선 김근태 의장에게는 이제 지난 100일보다 앞으로 100일이 더 중요하다. 그는 정치 인생을 건 또 다른 뉴딜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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