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고, 눈물 흘리고, 위로받다
  • 김형석(<스크린> 기자) ()
  • 승인 2006.09.22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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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라디오 스타>

 
어느 프랑스 영화감독은 “영화는 환상이지만 영화관은 현실이다”라고 했다. 어떤 맥락에서 나온 얘기인지는 모르겠지만, 곱씹을수록 숨은 맛이 배어나오는 경구다. 직업상 일주일에 적어도 한두 번은 극장에 가야 하는 나로서는, 영화라는 ‘빛과 어두움의 마술’을 경험하는 그 공간이 너무 일상적으로 느껴질 때도 많다. 어떨 때는 극장에 쉬러 간다. 푹신한 의자와 적당한 어두움은, 과로에 지친 나를 잠깐이나마 안식하게 한다. 그래서 아예 숙면을 취할 때도 있다는 게 조금 문제이긴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나는, 사람들이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면서 과연 무엇을 얻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저 ‘재미’라고 말하면, 그건 너무 무책임하다. 사실 ‘재미’만큼 개인적이고 수시로 변하는 가치도 없으니까. 그렇다면 감동? 과거엔 그랬다. 386 세대만 하더라도, 좋은 영화의 기준은 ‘감동’이었다. 물론 이 기준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지만, 영화를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감상’하던, 펜팔 취미란에 ‘영화 감상’이라고 쓰던 그 시절에는 영화에서 감동만큼 중요한 덕목은 없었다. 그 감동은 영화 자체가 지닌 것이기도 하지만, 그 영화를 만나기 전까지의 과정 또한 중요하다. 멀티플렉스 시대에 영화관에 가기 시작했던 20대 관객들에게는 이런 광경을 상상할 수 있을까? 표를 사기 위해 극장 앞에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표를 사서 극장에 들어가면 5백원에 팔던 팜플렛을 살까 말까 망설이고, 좌석에 앉아서 광고와 예고편을 보며 설레는 마음으로 영화를 기다리는 심정. 그렇게 기다렸던 영화를, 한 장면 한 장면 음미하듯 바라보고 있으면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간다. 그때는, 팝콘이 없어도 좋았다.

이건 다 옛 이야기이고 아예 ‘전설’이다. 그리고 요즘은, 영화관이 ‘판타지’를 얻어가는 ‘환상 공급소’가 된 것 같다. 일단 티켓은 인터넷으로 예매한다. 극장에 도착하면 커다란 콜라와 팝콘의 콤보 세트를 사고, 알록달록한 카페트가 깔린 복도를 지나 영화관에 도착한다. ‘빵빵한’ 사운드, 뒤로 충분히 젖혀지는 푹신한 의자, 앞 사람 머리 때문에 화면이 가리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 좌석 배치···. 그 안에서 생생한 리얼리즘의 영화를 본다는 건 조금은 안 어울린다. 적어도 <해리 포터> 시리즈는 봐줘야 될 것 같고, 아니면 호러나 스릴러 같은 섬뜩한 장르도 어울릴 것 같다. 최근 한국 극장가에 판타지 장르가 득세하는 것은, 멀티플렉스의 비현실적이며 환상적인 인테리어와 쾌적한 내부 구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영화관은 이제 ‘환상 공급소’

재미와 감동과 판타지. 관객들이 극장에서 얻어가는 건 어쩌면 이 세 가지가 전부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세 가지는, 정말로 관객들이 일방적으로 ‘얻어’ 가는 것이다. 관객은 ‘킬링 타임’이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는 하지만, 결국은 소외된다. 그렇다면 관객이 얻어갈 수 있는 또 다른 뭔가는 없을까? 난 그 뭔가가 ‘위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라디오 스타>를 보면서 나는 위로받았다. 이 영화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찬가다. 우리는 어느새 박중훈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부스의 게스트가 되고, 진정한 ‘라디오 스타’는 주인공이 아니라 관객 자신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러면서 웃고, 눈물 흘리고, 위로받는다. 그리고 극장 문을 나서면서, 우린 누군가를 위로하고 싶어진다. 관객의 영혼을 정화시키고, 그 느낌을 누군가에게 전하도록 만들어주는 것. 영화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이런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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