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어벡 기 살리고 홍명보 일 늘려라
  • 김세훈 (경향신문 기자) ()
  • 승인 2006.10.16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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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한국 축구 살릴 ‘4대 방안’

 
‘베어벡 감독을 구출하라.’ 지난 6월 우리나라 축구 대표팀 사령탑을 맡은 핌 베어벡 감독(50)이 취임 4개월 만에 위기를 맞았다. 베어벡 감독이 이끄는 축구 대표팀은 지난 8월16일 타이완과의 아시안컵 예선전을 시작으로 10월11일 시리아전까지 모두 다섯 경기를 치렀다. 결과는 2승2무1패. 감독 부임 직후임을 감안하면 크게 나쁜 성적은 아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아쉬운 부분이 많다.

일단 2승을 거둔 상대는 국제축구연맹(FIFA) 순위 1백54위의 타이완. 우리 대표팀은 원정 경기에서 3-0으로 이겼고, 최근 수원에서 다시 맞붙어 8-0 대승을 거두었다. 2무는 이란과 시리아를 상대로 얻은 결과이다. 이란은 한국·일본·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아시아 4룡’으로 꼽히는 만큼 이란전 무승부는 어느 정도 용납할 수 있다. 하지만 시리아(FIFA 랭킹 1백16위)와의 홈경기 무승부는 불만족스럽다. 경기가 1-1로 끝나는 순간 붉은악마로부터 터져나온 야유는 졸전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을 그대로 투영한 것이다.

2002년 월드컵 4강 한국 축구가 왜 이렇게 무기력해진 것일까? 불만족스러운 플레이의 원인은 베어벡 감독의 축구 철학에서 기인한다. 베어벡 감독은 합리적이고 이론에 밝은 지도자다. 그는 모험을 꺼려한다. 베어벡 감독이 지휘하는 경기를 보면 모험을 하지 않는 그의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우선 감독 데뷔전인 타이완 원정전을 보자. 후반 초반 추가골로 한국이 2-0으로 리드한 상황에서 베어벡 감독은 공격수(안정환)를 빼고 미드필더(김두현)를 투입한 뒤 미드필더진을 끝까지 수비적으로 운용했다. 감독 데뷔전인 만큼 대승보다는 승점 3이 중요했던 것이다.

지난 10월8일 가나전도 비슷했다. 23세 이하 선수들이 주축이 된 우리 대표팀은 후반 들어 ‘뻥축구’로 일관했다. 가나가 아무리 강했다고 해도 평가전인 만큼 우리가 추구하는 빠르고 정확한 패스에 의한 조직적인 플레이를 계속 시도했어야했다.

시리아전도 마찬가지였다. 1-1에서 결승골을 넣지 못하자 베어벡 감독은 김남일·김정우에게 공격에 가담하지 말고 수비에 치중하라고 주문했다. 비겨도 아시안컵 본선 진출권을 따낼 수 있기에 괜히 공격적으로 하다가 실점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베어벡 감독의 나이는 지도자로서 벌써 꽃을 피웠어야 할 쉰이다. 코치로는 대성했지만, 감독으로는 고배만 들었던 그에게 한국 대표팀 감독은 사실상 지도자로서 마지막 생명을 건 기회다. 베어벡 감독이 경기 결과에 치중할 수밖에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어느 종목이든지 감독이 바뀌면 팀 컬러도 변하기 마련이다. 우리 축구 대표팀도 마찬가지다. 실리 축구를 하는 베어벡 감독이 온 뒤로 화끈한 대승보다는 안전한 승리를 추구하는 모습이다. 결과적으로 아시안컵 본선 진출권 확보라는 1차 목표는 달성했지만, 대표팀 운용 과정에서는 적잖은 문제점이 발견되고 있다.

전담 스카우트·지도자 추가 선임 필요

우선, 선수 선발부터 문제가 있다. 베어벡 감독은 기존 대표 선수들에다 어린 선수들을 함께 뽑았다. A대표팀뿐만 아니라 연령 제한이 있는 아시안게임·올림픽 대표팀을 맡은 베어벡 감독으로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는 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소속 팀에서 후보로 밀린 선수, 대표팀 코칭스태프가 한 경기도 제대로 보지 못한 선수들이 발탁되면서 대표팀의 가치는 추락했다. 쉽게 말하면 선수들이나 팬들이 대표팀을 우습게 본다는 뜻이다.

용병술도 비난의 대상이다. 약체와 싸우면서 수비를 두텁게 하는 선수 교체, 경기 도중 발생한 문제에 대한 늑장 대응, 테스트라는 이유로 부진한 선수를 빼지 않는 고집 등이 비판의 대상이다. 물론 약체를 상대로 지나치게 소극적인 전술을 펼친 것이 비난의 핵심이다.
최근 언론들도 베어벡 감독에게 물음표를 던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보도는 졸전에 대한 이유와 현상만 거론할 뿐, 개선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도 긴급회의를 여는 등 부산을 떨었지만 결과는 언론 보도와 비슷하다. 그렇다면 정말 대표팀의 경기력을 끌어올리면서 베어벡 감독을 도울 방법은 없는가?

필자는 몇 가지 현실적인 방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우선 연령대별 선수들을 전문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협회 전담 스카우트 제도의 도입이다. 대다수 유럽 국가의 축구협회는 협회 전담 스카우트들의 분석과 평가를 이용해 연령대별 대표 선수를 뽑는다. 반면 우리 대표팀은 베어벡 감독, 홍명보 코치 등 네 명의 지도자가 선수 발굴 및 선발을 전담한다.

프로 주전은 몰라도 프로 2군, 대학 선수, 청소년 대표까지 파악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렇다고 이런 임무를 기술위원회에 무작정 넘길 수도 없다. 기술위원회는 무임금 비상근이라 적극적인 활동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 상황에서 우리가 참고할 수 있는 곳은 네덜란드 축구협회다. 네덜란드 협회는 상근직 기술국을 운영하면서 그 산하에 A대표팀뿐만 아니라 청소년 대표팀·여자 대표팀 등 연령대별로 각급 대표팀을 둔다. 기술국이 네덜란드 축구의 모든 것을 관리하는 구조다. 대한축구협회도 현재 기술국 업무 영역을 넓히고 하루바삐 인력을 보강해야 한다.

두 번째는 홍명보 코치가 좀더 적극적으로 업무를 처리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이다. 홍코치는 지금 대표팀 코칭스태프 중 유일한 한국인이다. 베어벡 감독과 국내 지도자 간 교량 역할을 하면서 베어벡 감독에게 정확하고 확실한 정보를 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 홍코치는 빨리 프로팀 감독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프로팀 감독만큼 선수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대표팀이 프로팀 감독으로부터 정확한 정보를 얻으면 시행착오를 많이 줄일 수 있다.

연령대별 대표팀을 관리할 지도자의 추가 선임도 필요하다. 베어벡 감독이 혼자 A대표팀·아시안게임·올림픽 대표팀을 모두 맡는 것은 무리다. 특히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은 23세 이하 선수로 구성된다. 아시안게임은 오는 12월에 열리지만 올림픽은 2008년. 현재 21세 이하 선수들이 2008년 올림픽의 주전인 만큼 베어벡 감독은 이들에게까지 신경을 써야 하는 형편이다. 협회가 어린 선수들을 관리하면서 베어벡 감독에게 경과를 보고할 전담 지도자를 추가로 뽑아야만 베어벡 감독이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마지막으로, 기술국·기술위원회가 베어벡 감독을 외롭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현재 기술국과 기술위원회에서 베어벡 감독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인사는 없다. 베어벡 감독이 혼자 모든 것을 결정하고 책임지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외국인 감독은 자신이 고립되었다고 느끼는 순간 계속해서 무리수와 자충수를 두기 마련이다. 기술국·기술위원회와 베어벡 감독의 관계가 소원해질수록 베어벡 감독은 점점 위험에 빠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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