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우파
  • 신호철 기자 (eco@sisapress.com)
  • 승인 2006.10.16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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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신조어]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는 파시스트들이 대중을 지배하기 위해 어떻게 말장난을 이용하는지 잘 보여준다. <1984>에서 정부의 슬로건은 ‘전쟁은 평화’ ‘자유는 굴종’ ‘무식은 힘’이었다. 서로 반대되는 단어를 하나로 뭉뚱그려 버림으로써 의미를 혼란시킨다.

단어가 혼란스러워지면 대중이 현실을 이해하기 힘들어지고 이것이 파시스트가 대중을 지배하는 비결이 된다.

지난 3월23일 노무현 대통령이 “(참여정부는) 좌파 신자유주의 정부다”라고 말했을 때 몇 몇 지식인들은 <1984>를 떠올렸다.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말은 우파 사회주의라는 말만큼이나 난센스에 가까운 언어 조합이다. 대개 서로 반대되는 두 낱말을 결합해 신조어를 선보일 때는 그 중 한 단어에 진짜 의미가 있고 나머지는 꾸밈말일 가능성이 높다.

지난 9월18일 소설가 이문열씨가 중앙일보 지면을 빌려 신조어를 선보였다. 그는 “지금 세계를 주도하는 세력은 ‘진보 우파’이다. 진보가 좌파의 전유물이 아니다”라고 했다. 진보 우파라는 조어는 최소한 두 낱말이 완전한 반대말이 아니라는 점에서 ‘좌파 신자유주의’보다는 나아 보인다. 흔히 ‘진보=좌파=친북’이라는 공식이 대중에게 각인되어 있지만, 학술적으로 진보와 좌파와 친북은 전혀 차원이 다른 개념이다.

아무튼 이 신조어 역시 한 낱말에 진짜 의미가 있고 나머지 낱말은 수사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신조어와 이문열의 신조어를 쉽게 풀이하면 아래와 같다. ‘좌파라는 풍설을 듣는 신자유주의 정부’ ‘진보라는 젊은 이미지를 얻고 싶은 우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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