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시력, 왜 약해 지나
  • 안은주 기자 (anjoo@sisapress.com)
  • 승인 2006.11.03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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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성근시 등에 잘못 대처해 근시 유병률 급증 컴퓨터 게임·잘못된 눈 교정도 눈에 해로워
 
자녀 손을 잡고 안과를 처음 찾은 때가 언제였는가? 자녀가 칠판 글씨가 잘 보이지 않는다고 호소해야 겨우 안과를 찾았는가? 그런 경우에도 안과에는 들르지 않고 안경점으로 가 안경 맞춰주기에 급급했는가? 자녀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뒤에야 안과를 찾는다면 70점, 자녀에게 첫 안경을 맞춰줄 때조차 안과를 거치지 않고 안경점으로 직행하는 부모라면 50점도 채 못 받을 것이다. 자녀의 눈 건강 관리 항목에서는 말이다.

아이들의 눈 건강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 대한안과학회에서 서울․충북 지역 어린이 2천9백72명(만3~6세)의 눈 질환을 정밀 검사한 결과, 굴절 이상이 75.3%로 가장 많았다. 약시 18.3%, 사시 7.4%, 백내장과 같은 전안부 이상이 11.9%, 기타 안저 이상 질환이 0.3%였다. 또 1970년대부터 2005년 상반기까지 조사한 초등학생 근시 유병률 현황만 보아도 아이들의 눈 건강은 심각한 수준이다. 1970년대에 근시 유병률이 8~15%였던 것이 2005년대 상반기에는 46.2%로 조사되었다. 지난 30여 년간 세 배 가량 증가한 것이다(표 참조).

과거에 비해 진단과 교정 횟수가 늘어남에 따라 근시 유병률이 높아진 측면도 있지만, 눈을 위협하는 환경이 조성 아이들의 눈 건강이 더 나빠졌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백혜정 교수(가천의대·소아안과)는 “취학 전부터 학습량이 증가하고 컴퓨터 게임처럼 가까운 거리에서 눈을 써야 할 일이 늘어나면서 아이들의 시력이 눈에 띄게 나빠졌다”라고 분석했다. 과거에는 ‘시력은 유전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 정설이었지만, 환경이 달라지면서 시력에 미치는 환경의 영향력이 더 커지고 있는 것이다.

“늦어도 만5세 이전에 1차 안과 검진 받아야”

어린이는 만5세 전후가 되면 시세포들이 다 자라 성인과 비슷한 수준에 이른다. 따라서 아무런 이상이 없어도 만3세, 늦어도 만5세 이전에는 1차 안과 검진을 받아야 한다. 어린이 눈 질환을 얼마나 빨리 진단하고 치료하느냐에 따라 평생 눈 건강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특히 생후 6개월 이후에도 눈의 초점이 정상적이지 못하다면 안과 전문의에게 조언을 구해야 한다. 눈동자 색깔이 이상하거나 한 쪽 눈은 이쪽을 보고 있는데 또 다른 눈은 다른 쪽을 보고 있을 때, 고개를 기울이거나 얼굴을 옆으로 돌려서 볼 때, 빛을 잘 보지 못하고 눈부셔할 때도 안과 검진을 받는 것이 좋다.

안경 교정으로 시력이 교정되지 않는 약시 또한 일찍 진단할수록 유리하다. 그러나 약시 환자 둘 중 한 명은 만5세가 될 때까지 진단받지 못했다는 보고가 있다. 어릴 때 발견할수록 효과적인 치료가 가능한데, 시기를 놓쳐 영구적인 시력 장애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장혜란 교수(성균관의대·소아안과)는 “어린이는 자신의 증상을 잘 표현하지 못한다. 따라서 증상을 호소하지 않더라도 일찍부터 안과 검진을 시작하는 것이 어린이 눈 건강을 위한 필수 요건이다”라고 강조했다.

 
의사 표현을 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한 자녀가 ‘사물이 흐릿하게 보인다’며 호소할 때도 당연히 안과 전문의를 찾아야 한다. 오세열 교수(성균관의대·소아안과)는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고르듯 간단하게 시력 교정을 해주다가는 어린이의 시력을 망치기 십상이다. 특히 연령대가 어리거나 첫 시력 검진을 할 경우에는 반드시 조절마비제 점안 굴절검사를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어린이는 조절 작용이 왕성해서 자동 굴절검사만 할 경우에는 근시가 아닌데도 근시로 착각해(가성근시) 잘못 교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성근시는 독서나 컴퓨터 게임 등을 오래 할 경우 눈의 조절 근육이 수축되어오는 일시적인 근시 증상이다. 자동 굴절검사만으로는 가성근시 여부를 확인할 수 없으므로 조절마비제(눈의 조절 근육을 풀어주는 점안액)를 넣은 뒤 검사해야 정확한 시력을 체크할 수 있다. 가성근시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시력 교정을 하면 어지럼증·두통 같은 부작용이 생긴다. 뿐만 아니라 정상 시력을 근시로 만들기도 한다. 예컨대 시력 감소를 호소하는 가성근시 어린이에게 일시적인 근시 상태의 시력을 적용해 근시 교정 안경을 착용시키면, 그 상태로 시력이 굳어 정상 시력으로 회복할 수 없다. 가성근시라면 안경으로 교정하지 않고도 정상 시력으로 회복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대한안과학회에서 최근 조절마비제를 넣고 굴절검사를 한 경우와 자동 굴절검사만 한 경우를 비교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2~14세 어린이 2백30명을 대상으로 조절마비제 점안 굴절검사와 자동 굴절검사를 실시해 비교한 결과 적게는 0.5디옵터에서 많게는 8디옵터까지 오차가 발생했다. 2~5세에서는 둘 중 한 명(49.6%)에게서 오차가 발생했다(표 참조). 장혜란 교수(성균관대 의대)는 “이 조사 결과만 봐도 아이들의 경우 정상 근시인데도 가성근시로 착각하기가 얼마나 쉬운지 알 수 있다. 그만큼 정확한 검진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자녀의 눈 건강, 부모 관심도에 따라 달라져

반대로 가성근시가 아니고 진짜 근시이거나 난시·원시로 인해 시력이 떨어지고 있다면, 반드시 안경 교정을 해주어야 한다. 방치하면 약시로 진행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시력은 성장하면서 계속 변한다. 성장 속도와 굴절 이상이 변하는 속도는 개인마다 다르지만, 대개 6개월 정도마다 안과 전문의에게 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 근시는 18~19세까지 진행되기 때문에 일찍 교정할수록 더 나빠지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
이정희 교수(이화여대·안과)는 “자녀의 눈 건강은 부모의 관심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증상이 발견되기 전에, 정기 안과 검진을 통해 자녀 눈 건강 상태를 체크해주는 것과 일상 생활 중 눈에 피로가 쌓이지 않도록 생활 습관을 바로잡아주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눈의 피로를 줄여주는 생활 습관을 갖는 것만으로도 자녀로 하여금 안경과 거리를 두고 살 수 있게끔 해준다. 독서를 할 때는 책을 눈에서 30cm 정도 떨어져서 보게 하고, 컴퓨터나 텔레비전은 가까이서 장시간 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화면은 눈높이보다 낮게 설치해주는 것도 필수다. 독서나 컴퓨터 활동을 할 때는 반드시 휴식 시간을 자주 갖도록 해야 한다. 실내 조명은 균일하고 어둡지 않게 위에서 비추어주고, 실내 온도와 습도를 조절해주는 것도 눈의 피로를 덜어주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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