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타임스가 신음하고 있다
  • 워싱턴 · 정문호 통신원 (eco@sisapress.com)
  • 승인 2006.11.06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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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급격히 줄고 광고 수주난 심해 ‘위기’ 직원 ‘100여 명 추가 감원’ 거부한 발행인은 해고돼

 
USA 투데이, 월스트리트 저널, 뉴욕타임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미국 ABC협회(신문 발행부수 공인기관)가 최근 집계한 미국의 5대 일간지다. 지난 9월 말 현재 ABC협회가 집계한 현황을 보면 이들 5대 일간지를 포함해 거의 모든 매체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정기 독자가 꾸준히 이탈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번 집계에 따르면 미국 신문들은 올 들어 지난 4월부터 9월까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평균 2.8%씩 독자 수가 줄어들어 15년 만에 가장 급격한 감소세를 나타냈다. 약 10년 전부터 밀어닥치기 시작한 ‘독자 감소’라는 거대한 조류에 맞서 미국 신문업계는 그간 온갖 노력을 다해왔지만, 성공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독자 수 감소에 따른 광고·수입 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 속에서 지난 7월에는 미국 제 2위 신문 그룹으로 32개의 일간지를 거느린 나이트 리더(Knight Ridder) 그룹이 매클라치 사에 팔려 충격을 던졌다.

이번 ABC협회의 발표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미국에서 네 번째로 큰 신문사이자 서부 최대의 유력지인 로스앤젤레스타임스(LA 타임스)의 급격한 독자 감소세다. 경쟁지인 뉴욕 타임스나 워싱턴 포스트가 약 3%, 그리고 월스트리트 저널이 2%가량 독자 감소세를 보인 것과 대조적으로 LA 타임스는 무려 정기 독자가 8%나 줄어들어 77만6천 부에 머물렀다. 지난해 9월 이 신문의 구독자 수가 84만3천명이었던 것에 비하면 갈수록 가파른 감소세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더군다나 이 회사의 모기업이자 신문사 10개와 TV 방송국 25개를 거느린 거대 미디어 그룹 트리뷴 사가 나이트 리더와 비슷한 운명에 처할지도 모른다는 관측이 나돌면서 LA 타임스의 장래도 덩달아 불투명해지고 있다. 사실 요즘 미국 신문업계의 최대 화제도 1백25년 전통을 지닌 유력지 LA 타임스가 과연 현재의 위기에서 벗어나 회생할 수 있을지에 쏠려 있다.

딘 바켓 편집국장도 감원에 적극 반대

계속되는 독자 감소와 광고 악화로 경영난에 시달리던 LA 타임스에는 지난 8월부터 불길한 상황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당시 LA 타임스 최고 경영진인 트리뷴 그룹이 지난 2005년 6월 발행인에 임명된 제프리 존슨에게 권고 사직 결정을 내린 것이다. 해고 사유는 편집국 직원을 100명 정도 추가 감원하라는 경영진의 명령에 불복했다는 것이다. 존슨 발행인은 이미 지난 5년간 1천2백명에 달하던 편집국 직원을 9백40명까지 줄인 상황에서  더 이상의 감원은 고급지를 지향하는 LA 타임스의 장래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며 경영진 요구를 일축했다. 딘 바켓 편집국장도 존슨 발행인에게 동조해 편집국 감원에 반기를 들었다. 회사측은 존슨이 권고 사직 명령에도 끝까지 버티자 결국 지난 10월5일 그를 전격 해고했다. 동시에 그의 후임으로 시카고 트리뷴의 데이비드 힐러 발행인을 임명했다.

바켓 편집국장은 회사측이 LA 타임스의 활로를 모색하는 동안 국장 직을 계속 수행해줄 것을 요청해 이를 수락한 상태다. 힐러 신임 발행인과 바켓 편집국장은 전임 존슨 발행인의 해고 직후 편집국 전직원에게 보낸 사내 e메일을 통해 LA 타임스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표시하고 난국 수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결의를 다졌다. 그러나 트리뷴 경영진은 존슨의 전격 해고를 몰고 온 LA 타임스 편집국 직원의 추가 감원 요구를 거두어들이지 않아 앞으로 이 문제를 놓고 또 한 차례 내홍이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트리뷴 경영진이  향후 트리뷴 그룹을 매각할지 아니면 분할할지 여부에 대한 결론을 연말까지 내릴 것이며, 그 경우 12월쯤 LA타임스 편집국에 또다시 감원 바람이 불어닥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자 최근 LA 타임스 편집국 내에서는 기자들이 소위 ‘맨해튼 프로젝트’ 팀을 띄우는 등 자구책을 마련하기 위해 팔을 걷고 나섰다. 세 명의 전담 기자와 여섯 명의 부장으로 이루어진 이 팀은 연일 토론을 벌이며 신규 독자 확보 방안을 포함해 LA 타임스의 생존책을 강구할 계획이다. 프로젝트 팀 창설 멤버중 한 사람인 버논 로브 특집부장은 “발행인이 잘리고 회사가 존망의 기로에 서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자구책을 마련해 경영진에 건의하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현재 맨해튼 프로젝트 팀이 구상 중인 자구책 가운데는 지역판을 늘리는 동시에 지역 뉴스를 집중적으로 다룰 일반 시민과 신규 칼럼니스트를 확보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이처럼 일반 편집국 기자들이 중심이 된 맨해튼 프로젝트의 최종 성과물이 과연 트리뷴 사 경영진을 얼마나 움직일지 두고보아야겠지만, 현재 회사가 직면한 경영난을 감안할 때 극적인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는 한 LA 타임스의 미래는 계속 불안할 수밖에 없다.

LA 타임스는 트리뷴 그룹의 최대 수입원

시카고에 본사를 둔 미디어 그룹 트리뷴 사의 간판 매체는 시카고 트리뷴이지만 실질적으로 이 그룹의 가장 큰 수입원은 LA 타임스였다. 실제로 지난해 말 트리뷴 사 전체 수입액 56억 달러 가운데 약 20%를 LA 타임스가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지난 2000년 LA 타임스를 인수한 트리뷴 사는 신문사들을 거느린 다른 미디어 그룹과 마찬가지로 많은 독자들이 인터넷으로 떠나면서 광고와 발행부수가 급감해 경영난을 겪어왔다. 급기야 트리뷴 사는 자사의 주가 하락을 막기 위해 지난 5월 모든 계열 신문사에 대한 인원 감축과 차관 도입, 나아가 5억 달러의 자산 매각을 감행했으나 큰 효과를 거두지는 못한 것 같다. 특히 지난 8월 LA 타임스는 20% 정도의 흑자를 기록하고 있었지만, 트리뷴 사는 흑자폭을 30%까지 올리도록 존슨 발행인에게 지시하면서 그 방안으로 편집국 인원 감축을 명령한 바 있다.

 
존슨 발행인이 편집국 감원 정책에 맞서다 해고당한 뒤 LA타임스 기자들의 사기는 말 그대로 최악인 것 같다. 경력 30년으로 고참인 윌리엄 렘펠 기자는 에디터&퍼블리셔와의 인터뷰에서 “트리뷴 본사에 대한 편집국 직원들의 반감이 대단하다”면서 “편집국 기자들 사이에서는 트리뷴 경영진이 LA 타임스를 제대로 끌고 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찾아볼 수 없다”라고 밝혔다. 다만 편집국 기자들은 존슨 발행인과 함께 결연히 회사측의 감원 결정에 맞섰던 딘 바켓 편집국장이 현직에 그대로 유임된 것을 그나마 안도하는 분위기다.

한편 LA 타임스가 창간 이래 최대 위기에 빠지자 미국 서부의 유력한 민간 인사들은 트리뷴 경영진에 대해 LA 타임스를 매각할 경우 새 주인은 로스앤젤레스 지역 인사가 되어야 한다고 촉구하고 나섰다. 이런 가운데 로스앤젤레스의 일부 재력가들이 LA 타임스 인수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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