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죽이는 ‘유령’ ‘유령’ 잡는 저격수
  • 신호철 기자 (eco@sisapress.com)
  • 승인 2006.11.06 09:1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라크 저항 세력·미국, 저격수 전쟁 벌여

 
명사수 영웅담은 전쟁 이야기의 백미 중 하나다. 영화 <에너미 앳 더 게이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실존했던 소련군 저격수 바실리 자이체프와 이에 맞선 독일군 저격수 사이의 전투를 다루어 명작의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영화 속에서 소련군은 바실리의 전공을 확대 선전하며 군대의 사기를 높였다.

요즘 이라크에서는 이런 명사수 영웅 이야기가 현실이 되고 있다. 이라크 저항 세력이 ‘주바’라고 불리는 저격수를 앞세워 기세를 올리는가 하면, 미군도 적의 저격수를 잡기 위해 특수병을 투입하며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지난 10월18일과 10월19일 이틀 연속 미국 케이블 뉴스 채널 CNN은 특종 보도를 했다. 이라크 바그다드와 라마디 인근에서 활동하고 있는 미군이 저격수의 총탄을 맞고 쓰러지는 동영상이다. 비슷한 동영상이 로이터 통신사에 의해서도 배급되었다. 모두 저항 세력이 선전용으로 만든 듯하며 영어 자막이 붙어 있는 것도 있다.

동영상은 미군과 동맹군 군인 28명이 총격을 받고 쓰러지는 장면을 담고 있다. 또 ‘사령관’이라고 자칭하는 복면을 쓴 저격수가 직접 등장해 설명을 한다. 이 저격수는 적군 한 명을 죽일 때마다 벽에 빗금을 긋는데 화면에는 37개의 빗금이 보인다.

이 동영상이 방송되자 미국 전역이 들썩거렸다. 가뜩이나 의회 중간선거를 앞두고 이라크 전황에 대해 민감한 공화당은 이적 행위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10월21일 던컨 헌터 미국 하원 군사위원장은 CNN이 적의 선전 영화를 틀어준 것이라며, CNN 종군기자의 미군 동행 취재 배제를 요구했다.

그러면 이 홍보 동영상은 진짜일까? 뉴욕 타임스 11월1일자에 따르면 지난 10월 한 달간 미군 사망자는 1백3명으로 2005년 1월 이래 최고 수치를 기록했는데, 특히 저격으로 인한 사망자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미군은 저격의 공포 때문에 순찰 활동 중에도 몸을 밖에 내놓을 수 없다. 미군은 보이지 않는 이 유령 저격수를 ‘주바’ 혹은 ‘주바 더 스나이퍼’라고 부른다.

헬멧과 방탄복 사이 백발백중 맞혀

주바를 목격했다는 사람도 없고 실제 이름도 알 수 없다. 한 명인지 복수의 인물인지도 모른다. 그의 사격 솜씨를 둘러싼 전설만이 전해져올 뿐이다.
주바 더 스나이퍼가 처음 등장한 것은 지난 2005년 초부터다. 미군이 험비 차량에서 타고 내리는 찰나를 노려 저격한다. 방탄 헬멧과 상체 방탄복 사이의 20cm도 안 되는 좁은 목 부위를 맞힌다. 원샷 원킬. 한 목표물에 두 번 쏘는 일이 없다. 적어도 200m 밖에서 저격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군 당국은 주바가 오랜 훈련을 받은 전문 저격병 출신이라고 추측한다.

 
저격에 쓰이는 총알은 칼라시니코프 탄환이며, 총기는 칼라시니코프 외에도 두라구노프나 타북(Tabuk)이 쓰이고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타북은 유고 모형으로 후세인 시절 이라크에서 제작된 저격용 소총이다.
저격 공격으로 인한 미군의 피해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영국 신문 가디언은 2005년 8월 주바와 관련한 특집 기사에서 주바에 의해 피살되었다고 확인된 군인은 2005년 2월 기준 두 명이지만, 실제로는 수십 명에 이를 것이라고 추측했다.

2005년 6월 라마디 피격 사건은 주바를 이라크 저항 세력의 영웅으로 만들었다. 미군 해병대 스나이퍼 정찰팀이 주바를 잡기 위해 라마디 지역에 투입되었으나 대원 네 명이 모두 헤드 샷(머리 저격) 시체로 발견되었다. 올해 통계를 보면 2006년 1월부터 6월까지는 공식적으로 세 명 이 저격당해 사망했으며 2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사상자 집계 사이트인 icasualties.org에 따르면 2003년 3월 개전 이래 저격으로 죽은 미군 병사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합쳐 38명이다. 그 중 일곱 명이 올해 저격으로 죽었다.

이라크 민중에게 주바는 전설이 되어가고 있다. 무엇보다 주바는 무고한 시민을 죽이는 테러리스트가 아니라는 점에서 매력적으로 느끼는 듯하다. 일반 시민이나 이라크 보안군까지 희생양으로 삼는 폭탄 테러범과 달리 주바는  철저하게 미군과 동맹군 군인만을 노린다. 아무도 그의 실체를 알 수 없다는 신비감이 주바의 주가를 높이는 데 한몫 한다.

주바의 활약으로 저항 세력의 사기가 높아지자 미국도 반격에 나섰다. 저격수는 저격수가 잡는다. 미군은 주바를 잡기 위해 ‘주바 저격조’를 운용하고 있는데, 관측병 1인·저격병 1인이 한 조가 되어 움직인다. 옥상 지붕 등지에서 24시간 망원경으로 주위를 감시하고 탐색하며, 야간에는 열 감지기까지 동원해 관측한다. 저격수로 의심되는 자가 있으면 관측병이 저격병에게 알려 사살하고, 그자가 도피하면 비행기가 출동해 공중 폭격한다.

올해 1월 미군은 주바 전설에 대응되는 영웅 저격병 신화를 만들었다. 미국 국방부가 발행하는 주간지 <디펜스 뉴스> 등에 따르면 미군 저격수 짐 질리란드 하사(28)가 M24 소총으로 무려 3천3백 피트(1천2백50m) 거리에 떨어진 적 저격수를 사살했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 육군 사상 최고 사살 기록을 경신한 것이라고 한다. 질리란드 하사는 멀리 병원 4층에 매복 중이던 적의 저격수를 보고 원샷 원킬로 해치웠다고 자랑했다. 미군이 병원 4층 현장에 가  확인해보니 시체 손에 칼리시니코프가 쥐여져 있었다고 한다. 질리란드 하사는 저항 세력 저격수를 잡아내는 ‘셰도’팀 요원으로 얼마 전 저격에 희생된 친구의 복수를 했다고 말했다.
질리란드 하사가 잡은 사람이 진짜 주바였는지는 알 수 없다. 다소 인위적인 느낌도 드는 영웅담이다. 이 이야기는 미국 우익 신문 워싱턴 타임스와 영국 우익 신문 데일리 텔리그래프를 타고 전파되었으나 뉴욕 타임스 등은 이 기사를 다루지 않았다.

주바가 체포되었다는 뉴스는 올해 들어 여러 차례 발표되었다. 실제 한동안 주바의 활동이 뜸하기도 했다. 그러나 가을부터 다시 저격으로 인한 미군 사망이 잇따랐고, CNN 방송으로 주바는 화려한 부활을 알렸다. 10월 방송된 저격 동영상은 2005년 버전에 이은 2탄이다.

저격은 원래 서구적인 전술이다. 최근 공개된 저항 세력의 저격 동영상에는 퇴역 미군 장교가 쓴 저격 교본이 보였다. 그 교본은 미국 서점에서 누구나 살 수 있는 책이다. 아랍 저항 세력이 점점 적의 전술을 배워가며 진화하고 있다.

정체 모를 저격수 주바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미군이지만, 사실 처음 저격수를 살상용으로 적극 활용한 것은 미군 쪽이었다. 미군 저격 부대와 이라크 저격 영웅이 대결하고 있는 라마디 지역은 저격에 대한 아픈 기억이 있다. 지난 2004년 4월 미군은 라마디 초토화 작전을 펼치면서 주요 건물 옥상에 저격수를 배치했다. 저격수들은 ‘움직이는 것은 모두 사살하라’는 명령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거리에는 저격으로 죽은 주민의 시체가 즐비했다. 저격수가 무서워 피난을 떠나지 못했다가 공습으로 죽은 시민들도 있었다. 저격으로 흥한 자 저격으로 망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