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 시장’은 영영 사라지나
  •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 ()
  • 승인 2006.11.10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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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선택]

 
주말이었고 추적추적 비가 내렸지만, 청계천에는 제법 사람이 많았다. 우산을 받치고 걷는 기분이 상쾌하다. 동대문과 신설동 사이 어디쯤인가를 걷다가 문득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이 근처에 황학동이 있었는데….’ 예전 광화문 교보문고를 시작으로 종로를 거쳐 청계고가도로를 따라 길가에 늘어선 노점상들을 구경하며 신기해하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그 여정의 대미를 장식하던 곳은 항상 황학동이었다. 황학동 시장은 일반적으로 삼일아파트 13동부터 24동까지 펼쳐진 상가 건물들과 그 주변 풍물시장을 일컫는다고 한다. 하지만 정확한 위치 정보 따위를 몰라도 어지간하면 알 수 있다. 그곳은 항상 사람들로 붐볐으니까.

더듬더듬 복원해낸 기억과는 당최 매치를 시킬 수 없을 만큼 황학동은 변해 있었다. 분명히 비가 온 탓도 있을 테지만, 문을 연 가게가 거의 없었다. “예전 황학동 자리가 여기 아닌가요?” 마침 지나가던 노인을 붙잡고 물어보니, 뜨악한 눈길로 쳐다본다. “대부분 동대문운동장 안으로 들어갔지. 거긴 왜?” “그냥 구경 삼아서요.” “구경할 것도 없어, 다들 장사가 안 돼서 접고….” 그렇게 물어물어 찾아간 곳이 바로 ‘제2의 황학동 도깨비 시장’이라고 불리는 ‘동대문 풍물벼룩시장’이었다.

예전 축구장 자리였는데, 노인의 말과는 달리 그날은 찾은 사람이 제법 보인다. 황학동은 여전히 황학동. 일반적인 기준으로 보면 쓰레기로 분류될 온갖 잡화들을 비롯해 특이한 선물이라고 내밀기에 딱 좋은 물건까지 넘쳐난다. 나도 얼결에 ‘춘화’가 그려진 술잔과 절대로 불이 켜질 리 없다고, 파는 이가 호언장담하던 지포 라이터를 구입했다.

지포 라이터를 살 때도 그랬지만 다들 장사하는 데 의지가 없어 보였다. 사정을 들어보니, 서울시의 결정으로 곧 그곳이 철거되고 대신 공원이 조성될 예정이라고 한다. 운동장 밖에서는 시위가 한창이다. 희귀한 것이 높은 가치를 가지는 시장 원리에 비추어보면, 황학동 정도 계속 유지시키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닐 것 같은데…. 이처럼 특이한 도깨비 시장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은 거대 도시의 문명에 무슨 가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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